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어둠 면역
나는 밝기만 한 세상이 너무 싫어.
난 우울하기만 한데.
왜 나만 외톨이가 되어야 해?
난 혼자이기 싫은데?
어두운 건 싫어.
나만 빼고 다들 웃는 게 싫어.
좀 봐 줬으면 좋겠어.
외톨이가 되기 싫으니까.
혼자 두지 말아 줘.
이렇게 소리치잖아. 혼자 두지 마.
뭐가 옳은데?
뭐가 맞는 건데?
내가 외롭고 힘든 건 틀린 거야?
따뜻하게 기대고 싶어.
나도 여기 있어.
왜 다들 웃고만 있어?
왜 다들 외면하는 거야?
내가 나쁜 거야?
왜 내가 숨어야 하는 거야?
거봐, 너도 혼자인 게 싫지?
그래. 같이 있자.
혼자보단 둘이 낫지.
* * *
같은 멜로디였다.
같은 감정이었다.
기교 없이 툭툭 내뱉는 느낌도 같았다.
다만, 앳된 그 목소리가 달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가사가 직설적이었다.
사실 아이의 서툰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공감되지 않을 가사였기는 했다.
어른이라면 저렇게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내비치지는 않을 테니까.
어른의 목소리였다면 철이 없다고 여겼을 수도 있었다.
아이들은 감정 표현이 서툴다.
그 말은.
자기감정에 솔직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감출 줄 모르고, 그렇게 내뿜어지기에 투명했다.
그래서 마지막 가사의 여운은 상당했다.
그렇게.
꽁꽁 숨겨 두었던 어둠 속 무언가를 바라보게 했다.
* * *
‘이건 정말로 부럽단 말이야.’
진혁은 어느새 자신의 옆에 서서 빤히 바라보는 소녀와 눈을 맞췄다.
어둠 속, 자신의 바로 옆에 다가와 어깨를 맞댄 아이.
그 아이가 방긋 웃었다.
확실히.
바글바글해진 어둠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어깨에 맞닿은 따스한 느낌도 좋았다.
눈으로는 볼 수 없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연하게 알려 주는 촉감이었다.
‘진짜 굉장하네.’
저 멀리 제니스부터, 바로 옆의 나비계곡까지…….
많은 사람이 엄청난 무대를 만들어 줬다.
혼자만이 존재했던 어둠이 왁자지껄했다.
분명 나쁘지 않은 감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어둠 속이잖아.’
진혁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이번 정기 휴일은 아무래도 이렇게 마무리될 것 같았다.
이건 아무리 자신이더라도 수습이 힘들었다.
자신조차도 이 깊은 어둠의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태였으니까.
이곳에 모인 아티스트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렇게 기타를 잡은 손을 놓고 그대로 늘어뜨렸다.
그런데.
두둥두두둥.
어디선가 베이스 솔로가 울리기 시작했다.
* * *
‘그’가 ‘noname’였다니.
그 충격은 지금 펼쳐진 무대로 희석되어 버렸다.
자신들의 마음, 그 속의 어둠을 바라보도록 만들었었다.
그리고 그 숨기고 싶은 감정들을 맞닥뜨리자 숨을 죽였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 온 삶이었지만, 순간순간 스치듯 지나갔던 어떤 마음들.
어떨 땐 잘나가는 친구를 향한 시기심이기도 했고, 어떨 땐 자신을 떠난 여자를 향한 저주이기도 했으며, 어떨 땐 물려받은 재산으로 떵떵거리는 동료를 보며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시기심은, ‘야. 축하한다. 한 턱 내라.’
저주는, ‘네가 행복하길 바랄게.’
원망은, ‘아냐. 집도 힘든데 뭘.’
아무렇지 않은 듯 가면을 썼었다.
밖으로 내놓는 순간 우스운 꼴이 되어 버릴 감정들이었다.
철저하게 외면되었고, 그렇게 구석 아주 어두운 곳에 쌓여만 갔었다.
그렇게 애써 잊고 지냈던 부끄러운 감정들이 마구 요동쳤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고개를 떨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앳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감추거나 외면하지 않고 솔직하게 내뱉는 단어들이 가슴에 와서 박혔다.
‘맞아. 이 감정들이 틀린 건 아니잖아?’
결국 시기심은 더 정진하기 위한 원동력이 되었고, 저주는 이 악물고 더 멋진 남자가 되려는 노력을 가져왔으며, 속으로 원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송스러워 더 효도하도록 만들었다.
세상엔 틀린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편협하게 감춰 온 감정들을 향해 소녀의 순수한 물음들이 던져졌다.
그 어둠에 함께 앉았고.
틀리지 않았다며 어깨를 맞댔다.
방긋 웃으며, 모두가 같을 거라고 얘기했다.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즐겁지 않은 기억이 만들어 낸 어둠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 감정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즐거움도 있는 것이었다.
이해도 됐고, 그 모든 걸 인정하게 되었지만, 떠올릴수록 자신이 더욱 작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고개를 들지는 못했다.
오늘 알게 된 어둠의 무게는 너무 무거웠기에.
그렇게 가라앉은 사람들의 귀를 때리는 둥둥거림이 시작됐다.
마치, ‘그게 뭐?’라는 듯, 이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나타난 것이다.
* * *
밴드에 있어서 베이스의 위치는 참 중요했다.
다만, 그 존재감은 커다란 덩치의 악기를 빼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있을 땐 있는 줄도 모르다가 곡의 허리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나서야 소중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악기다.
밴드에서 기타, 드럼, 키보드는 알면서도 베이스는 고개를 갸웃하곤 했다.
저음이라서 솔로 파트를 따로 마련하거나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듣지 않는 이상 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았고, 듣는 사람들도 일부러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귀에 들어오기 힘들었다.
특히 음악을 특별히 배운 적 없는 일반인이라면 베이스의 소리를 감지조차 못 하고 ‘왜 기타가 둘이나 있지?’라며 의문을 품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드럼과 멜로디를 담당하는 키보드, 기타를 연결해 주는 가교 역할이었으며, 그렇기에 기본기를 가장 우선으로 쳐주는 악기였다.
그래서 ‘절제’가 필요했다.
베이스란 그런 악기였다.
다만.
공연장의 거대한 스피커를 앞에 둔 사람들은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심장을 때려 대는 것이 저 화려한 드럼도 아니고, 귀에 익은 멜로디들도 아니며, 있는 줄도 몰랐던 그 저음 영역의 굵은 줄들의 울림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들려오는 엄청난 울림의 정체였다.
세계에서 가장 ‘절제’되지 않은 베이시스트.
언제나 자신의 곡에는 베이스 솔로를 욱여넣어야만 하는 아티스트.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중저음의 사내가 어둠 속에 뛰어들었다.
그 묵직한 저음으로 저런 경쾌한 소리라니.
어쩌면, 이렇게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악기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별다른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제니스가 바로 옆에서 신명 나게 흔들어 대는 머저리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팍 가라앉을 텐데, 우리도 그렇고…….
-맞아. 제대로 된 감정도 없이 적당히 연주만 한다고 되진 않을 거야.
-그 무거운 상황에서, 바로 직후에 신나게 흔들 수 있어?
-스타트가 제일 중요한데…….
제니스가 바꾼 계획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모두가 그 어둠에 동참하게 될 테고, 감정은 가라앉을 것이었다.
그 직후, 자연스럽게 밝은 감정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연주를 할 수는 있겠지만, 어설픈 감정 따위로는 ‘그’의 손을 잡아끌 수 없을 테니.
-내가 할게.
그때 저 머저리가 손을 들었었다.
-이 심장에 어둠 따위는 없거든.
자신의 심장을 퉁퉁 두드리는 칼리를 모두가 멍하니 바라봤었다.
확실히.
그는 언제나 유쾌했다.
항상 어떤 자리에서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뿜어낼 줄 알았고, 그래서 무언가가 숨어들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었다.
-난 우울한 어둠 따위에 먹히지 않아.
저 생각 없는 놈이 이렇게 든든하게 느껴질 줄이야.
생각이 없는 덕에 ‘어둠 면역’인 그 머저리는 이곳, 이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에서 무적이 되었다.
미친 듯한 베이스 솔로가 마구 울려 댔다.
방금 그들 모두가 연주하고 불렀던 그 곡이 장조로 바뀌어 있었다.
베이스만으로도 제법 흥겨운 멜로디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조금씩 그들이 준비했던 곡의 리듬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제니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계속되는 베이스 연주에, 깊이 가라앉았던 모두의 기분이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제니스가 기타를 잡았다.
* * *
“이사장님, 괜찮을 겁니다.”
걱정스럽게 환자를 바라보던 진봉구 이사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봤다.
“사실 혼미 상태인 채로 몇 달이 지났습니다. 동공 반응도 안정적이고, 자가 호흡도 이미 기면 상태의 환자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밖으로 나와 있다고 해도 면역력이 조금 걱정될 뿐이지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습니다.”
의식 수준의 단계는 다섯 단계였고, 그중 이 환자의 상태는 혼미 상태에서 기면 상태의 그 중간쯤으로 주치의는 판단했다.
혼미 상태는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비교적 강한 통증 자극을 주거나 환자를 지속적으로 심하게 흔들면 깨어날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이 환자는 자신의 의지로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상당했고, 눈꺼풀이나 손가락의 힘을 이용해 의사 표현도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자가 호흡이 가능해 산소호흡기를 떼어 낸 지도 벌써 두 달째였다.
그렇기에, 그는 기면 상태에 다가섰다고 판단했다.
기면 상태는 심할 정도로 졸리지만 힘겹게나마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반응이 느리고 주의력 결핍이 있을 뿐이지 대화도 가능한 단계였다.
그렇기에, 완벽한 기면 상태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쯤 어딘가라고 판단했다.
기면 상태 다음이.
바로 각성 단계라고 말하는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단계가… 소위 말하는 환자의 의지가 필요한 단계이기는 합니다.”
“그래…….”
“그래서 저는 이런 기회도 긍정적인 자극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반대도 하지 않고 따라왔군.”
“혼수 상태에서 이렇게까지 호전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사례니까요.”
국내 최고의 뇌의학 전문의 윤성환이 활짝 웃었다.
“이쯤 되면 오기로라도 깨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영역이 아닌, 기적의 영역입니다.”
진봉구 이사장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 비과학적인 것들을 배제해 왔던 그의 입에서 ‘기적’이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작년에는 산부인과 전문의 김록영 교수의 ‘음악이 태아에게 끼치는 기적 같은 영향’이라는 칼럼을 대놓고 비판하지 않았던가.
“자네도 많이 변했군.”
진봉구 이사장의 말에 윤성환 박사가 창문 밖을 바라봤다.
“직접 봤으니, 믿어야지요.”
음악이 사람의 감정을 마구 뒤흔들고 있었다.
감정이란 뇌에서 일어나는 가장 원초적인 자극이었다.
귀를 통해 들어온 소리를 뇌를 통해 판단하고 그 느낌을 분석하여 다시 뇌로 전달하여 감정이라는 결과물을…….
고개를 저었다.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들은 접어 둬야 했다.
귀를 통해 들어온 음악이 그대로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마음.
그 위치는 어디일까?
어떤 의학 전문 서적에도 명시되지 않은 기관이었다.
수 대에 걸쳐 진화해 온 의학으로는 절대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을 기적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어둡게 내려앉았던 사람들의 분위기가 다시 밝아지고 있었다.
저들의 뇌파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인가.
첨단 측정 장비로 관측한들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 자신이 직접 느끼고 있었기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을 몇 달간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도 음악이었고.
오늘 한없이 어두운 감정을 내려앉게 만든 것도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 어둠을 밀어내는 저 둥둥거림도 음악이었다.
“논문을 하나 준비해야겠네요.”
윤성환 박사가 활짝 웃으며 맞은편 6층 건물 옥상을 바라봤다.
* * *
‘어? 이 음악?’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한 달가량 지겹도록 귀에 울려 댄 음악이었다.
카페에서도, 거리에서도, 유투부 알고리즘에 의한 플레이 리스트에서도 수도 없이 나왔던 곡.
사실 워낙 좋은 음악이어서 한 번만 들어도 따라서 흥얼거리게 만드는 곡이었다.
바로 얼마 전 끝난 수능 수험생들에겐 저주의 곡으로 남게 된, 그 노래의 전주가 흐르고 있었다.
음악을 굳이 찾아 듣지 않는 사람도 알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온 세상에 퍼진 멜로디가 짙은 어둠 위로 떠올랐다.
광장 분수대에선 피아노로, 메인 스테이지 옆에선 나비계곡의 합주로, 그 옆 건물 옥상에선 레몬티가, 또 황지선이, 그 뒤에 임도유가, 테일이…….
그리고 제니스가.
수많은 소리가 사람들의 어둠 사이를 마구 비집고 들어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겨운 소리는.
가장 낮은 음역대인 칼리의 베이스였다.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