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소수만을 위한 투어
“아니… 굳이 왜?”
윤석준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사실 평소에도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서동구 역시 석준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저도 부담이란 게 생기네요.”
진혁이 방긋 웃었다.
전 세계에 얼굴이 알려졌다.
언제 어디서건 자신이 등장하기만 한다면 수만 명은 순식간에 모일 것이다.
그리고 더 굉장한 공연을 보여야 할 것이다.
진혁은 이번 공연으로 자신의 어두운 부분까지 모두 받아들였다.
숨어 있던 작은 아이도, 열정으로 불타올랐던 열아홉도, 사회의 시스템에 녹아들었던 마흔넷도.
이젠 하나의 자아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랬더니, 눌러 뒀던 감정들이 몰려왔다.
그중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지금 자신의 위치가 가져다주는 부담감이었다.
“네가?”
너구리와 멧돼지의 못 믿겠다는 게슴츠레한 눈빛에 진혁은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마음으로 노래하는 건 영 재미가 없어서요.”
그나마 그들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섞었다.
진심이었다.
지금의 진혁은 어눌하게나마 대답해 주는 아내에게 쉼 없이 조잘댄다거나 딸아이와 기타를 들고 흥얼거리는 것이 가장 재밌었다.
그리고 자신이 빠진다고 해도 마구 즐거워진 세상이었다.
세계 모두가 음악과 함께 삶을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은서와 아내는 자신이 빠진다면 즐겁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 진혁에게 가장 중요한 것.
그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가족의 곁이었다.
먼 곳으로 움직이며 며칠씩 떠나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었다.
적어도 더 재밌는 뭔가가 생기기까지는 가족의 곁에만 있을 생각이었다.
“은퇴한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방향이 좀 달라진 거지.”
너구리와 멧돼지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그… 그렇지?”
석준이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음악에 미쳐 있는 놈이라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사실 쉼 없이 달려오기는 했었다.
휴식이 필요할 때가 되기는 했다.
이제 막 깨어난 아내의 곁을 지키고 싶을 것이다.
다만, 앨범도 좀 내고, 공연도 좀 하면서 병행해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극과 극인 녀석이었다.
“가끔 공연 비슷한 건 할 생각이에요.”
“아……?”
석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세상이 너무 밝아졌어요.”
“그렇지!”
“그래서 그림자는 더 어두워졌고요.”
“응?”
“그 경계를 조금 옅게 만들어 보려고요.”
석준이 멍하니 진혁을 바라봤다.
한결같이 정상적인 대화가 참 어려운 녀석이었다.
“그때 도와주세요.”
“어? 아… 그럼! 그럼!”
진혁이 방긋 웃자.
석준과 동구의 표정이 활짝 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는 못 했지만.
뭘 하더라도 재미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 * *
여전히 사람들은 일터에 나가야 했고, 학교에 가야 했으며,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감정을 다치는 일들은 생기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넘쳐났다.
거리 어디를 가더라도 공연하는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치기도 전에 즐거움을 충전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너무 많았다.
차고 넘칠 만큼.
그랬기에 시골 여기저기의 노인들을 회춘하도록 만든 ‘노인 회관 콘서트’라든지, 장애인 시설들에서 펼쳐졌던 작은 연주회나, 곳곳의 보육원 아이들 앞에서 열린 월드 클래스급 동요 메들리는 그다지 큰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경기도 구석의 작은 소극장에 준비된 조금 특별한 공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연장은 아주 조용했다.
태린이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저기서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런 모임은 간혹 있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렇게 서로의 아픈 감정을 희석하려는 시도가 좋은 의미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결국 남게 되는 것은 더 큰 고립감이었다.
어차피 보통 사람들과는 제대로 어울릴 수 없다는 현실의 반증이기도 했으니까.
여전히 사회 속에선 자칫 무례해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상대를 빤히 바라보며 입술을 읽어야 했고,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어도 대충 알아들은 척을 해야 했다.
그래야 상대방이 답답해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최근 그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 많아졌다.
눈으로 좇아서는 절대로 읽을 수 없는 것들이 세상을 가득 메운 것이다.
짐작조차 하지 못해 멍해 있는 사이에 사람들은 신나 했고, 즐거워하며 활짝 웃곤 했다.
그나마 공연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그들의 몸짓이나 표정으로 대충 상황을 파악하곤 했는데, 스피커만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자신 혼자만 홀로 고립되고는 했다.
주로 태린의 안에 담긴 감정은 꽃이 활짝 피는 듯한 청춘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감이 있었다.
우울하고 공허했다.
활짝 피는 꽃보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서 쉽게 부서지는 마른 낙엽의 이미지가 훨씬 더 어울린다고 여겼던 삶이었다.
그런데 요새는 그 우울감이 더욱 심해졌다.
장애인 중 외형적으로는 그나마 보통 사람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서 노력만 하면 적당히 섞일 수 있었는데.
결국 그들과는 완벽하게 다른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하루하루였다.
안 그래도 보통이라도 하려면 보통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며 애써야 하는 세상이었는데.
완벽하게 뒤처져 버렸다.
저 빌어먹을 ‘음악’이라는 것 때문에.
그래서 더욱 적대감이 생겼다.
태린이 무대 위에 있는 악기들을 노려봤다.
우울한 자신에 대한 원망은 주로 자신에게 화살을 쏘지만, 세상을 향한 화살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오늘은.
그 활시위가 저 무대를 향했다.
시선을 돌리지는 않았지만, 지금 느껴지는 공기를 보니 아마도 이 공간에 모인 모두가 같은 과녁을 겨누고 있는 듯했다.
모든 적의가 향한 그곳에 토끼 가면을 쓴 누군가가 나타났다.
* * *
관객석 가장 뒤에 앉은 제니스가 적개심에 가득한 공기를 느끼며 무대를 바라봤다.
-지금 가장 어두운 곳은 어디일까?
해맑게 꺄르륵대는 네다섯 살 아이들 앞에서의 ‘동요 메들리’ 공연 후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음악을 증오하는 사람도 있지 않겠어?
적어도 지금 이 세상에서만큼은 불가능하다고 여겼었다.
그때는 말이다.
숨 막힐 듯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 소름 끼칠 듯한 조용함, 굳어 버린 표정들.
지금껏 그 어떤 공연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분위기였다.
언제나, 공연이 시작하기 전부터 사람들은 들떠 있었고, 저마다 시끄럽게 떠들었으며, 기대감에 가득한 눈빛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다른 세상에라도 온 것만 같았다.
생각지도 못했었다.
언제나 수많은 사람을 상대했었으니까.
그리고 무대를 찾은 사람들의 기본값은 비장애인들이었다.
간혹, 외견으로 확연히 알 수 있는 장애가 있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현장 요원들이 일반인과는 다른 공간을 마련해 줬었다.
적어도 최대한 배려했다고 생각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도, 휠체어에 앉은 이도, 정신 질환을 겪고 있던 이도, 결국엔 환호하며 즐거워했으니까.
제니스가 관객석에 앉은 이들의 모습을 살폈다.
정상인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그래서 더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자신의 장애를 굳이 알려야만 배려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행복한 비명을 질러 댈 때, 자신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릴 수 없어서 더욱 고립되었을 사람들.
그랬기에.
지금 저 무대를 향해 쏘아지는 적대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무대 위의 토끼를 바라봤다.
그러자 움츠려졌던 어깨가 펴졌다.
이 적대감으로 가득한 공기가 어떻게 바뀔지 상상하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의심 따위는 없었다.
그는 래빗이고.
제니스에겐 신이었으니까.
* * *
수많은 사람을 앞에 두고 노래한다는 것은 언제나 굉장한 경험이었다.
그들의 감정을 뒤흔드는 것도 짜릿했다.
언제 어디서건 기타를 잡기만 하면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들 것은 뻔한 일이었다.
어떤 큰 공연장도 가득 채울 자신이 있었다.
사실, 지칠 리가 없었다.
그런 열기 속에선 당연히 더 굉장한 공연이 펼쳐질 테니까.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은 이미 모두가 부르고 있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보편적인 감정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만.
진혁은 그 당연한 것에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가장 짜릿했던 순간들을 기억해 내자 그 모든 것이 그대로 흐려졌다.
영등포역 공연의 관객 수는 약 백 명도 채 되지 않았고, 산부인과에 있던 사람은 스무 명 정도였다.
하지만 수십만 명의 사람을 열광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굉장했던 순간이었다.
자신이 유명해지기 전에 있었던 그 기적 같은 순간들.
다수를 이해시키기보다 그 자리에 있던 소수만을 위했던 공연.
점점 공연의 규모가 커지며,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가 놓쳐 버린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렇게 시작한 소수만을 위한 투어였다.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서 공허함만 남은 시골의 노인회관들을 뜨겁게 달궜고.
사회에 속하기 힘든 중증 장애인들만을 위한 연주를 했으며.
이제 막 말을 떼기 시작한 아이들의 앞에서 동요를 불렀다.
아직도 세상에는 음악이 닿지 못하는 소수가 넘쳐났다.
엄청난 환호도, 수많은 사람의 찬사도, 쏟아지는 찬양의 기사도 없었지만.
확실히.
더 재밌었다.
‘저건 뭐여?’ 하며 시큰둥하게 모였던 노인들이 저마다 신나게 흔들어 대던 모습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꺄르륵거림에 또 다른 감정들을 배웠으며, 소수의 약자로서 배제되었던 장애인들의 사회에 섞이기 위한 열정과 도전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 장애인 시설에서 처음으로 느낀 감정이 있었다.
자신의 음악을 함께 했음에도 끝까지 변하지 않은 표정을 만났던 것이었다.
그 감정은 명백한 적대감이었다.
바로 지금 관객석에서 쏟아지는 저 눈빛들과 똑같은.
가면 아래 드러난 진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천천히 손을 들어 살짝 흔들었다.
* * *
태린은 무대 위 토끼를 노려봤다.
워낙 떠들썩했기에 저 가면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지금의 음악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썼던 가면이라지?
인터넷 쇼핑몰 인기 상품에 올려져 있던 그 토끼 가면이었다.
‘하필 써도 저딴 걸.’
자신의 팔을 꼭 잡은 엄마의 손길을 툭 뿌리쳤다.
물론, 자신을 위해 벌인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못 이기는 척 따라오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음악’일 줄은 몰랐다.
요즘 자신이 날카로워져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이 저 거대한 스피커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런 자리에 데리고 왔다니.
그래서 더 짜증 났다.
‘어디 해 볼 테면 해 보라지.’
어떤 감언이설로 순진한 엄마를 꼬드겼는지는 몰라도 절대 놀아나 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상상할 수 있는 몇 가지를 떠올렸다.
전에 있었던 모임에서 했듯 나무판자를 두드리는 것이라든지, 핸드폰의 진동을 이용해 리듬을 알려 준다든지, 4DX 영화관에서 진행했던 의자의 흔들림과 함께한 오케스트라 공연이라든지, 차일드 애플이 마련했던 자선 공연 속 퍼포먼스…….
아, 마지막 건 좀 괜찮았다.
리더인 티안은 정말로 잘생겼고, 사실 그 얼굴 자체가 음악이었으니까.
노래는 들을 수 없었지만, 뮤직비디오는 환상적이었기에 골수 ‘아기 사과’가 되어 버렸던 태린의 표정이 잠시 온화해졌다가 흠칫 놀라며 서둘러 다시 무대를 노려봤다.
아무튼 어떤 괴상한 무대가 펼쳐진다고 해도 절대로 반응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것이 한없이 즐거워진 세상에 대한 자신의 작은 반항이었으니까.
다른 곳에선 적당히 보통 사람들의 표정을 흉내 냈지만.
이곳에선 마음껏 진짜 감정을 내보일 수 있었다.
여기 모인 모두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었으니까.
슬쩍 옆을 바라봤다.
역시 모두가 같은 표정이었다.
엄마에겐 미안했지만.
오늘 제대로 삐뚤어질 생각이었다.
무대 위 토끼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
가면 아래 반만 보이는 얼굴의 미소는 제법 그럴싸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관객들이 모인 이곳의 반응은 들을 수 없어도 뻔했다.
아마 형식적인 박수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모두는 짜증 나 있을 테니까.
‘흐음.’
저 해맑은 미소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졌다.
5분? 10분?
자신이 준비한 그 어떤 것도 먹히지 않아서 당황해할 상황을 상상했다.
아주 조금 기분이 풀리는 것도 같았다.
모든 불이 꺼지고.
무대 위 단 하나의 조명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