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마음으로만 부를 수 있는 악보
이 세상은 대중음악 중심의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중이었다.
공연의 형태도 바뀌었고, 그 질도 상당히 높아졌으며, 즐기는 이들도 온 마음을 다해 아티스트들을 맞이했다.
현대의 음악은 어떻게 보면 진입 장벽이 많이 낮아져 있는 상태였다.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른다고 해도 컴퓨터만 있으면 자신만의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듣는 문화에서 만드는 문화까지 더해졌다.
세상 모든 곳이 음악이었다.
세계 최빈곤국 중 하나인 말레이시아에서도 여기저기서 고물 앰프들이 기증되어 거리 곳곳에서 음악이 흐르는 중이라는 기사도 올라왔다.
서구권의 르네상스는 문학적인 측면이 강했고, 그 때문에 여유롭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부유층들이 그 주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 르네상스의 주축은 대중음악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뻗어 있는 네트워크가 있었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핸드폰이 있었으며, 어디서건 만날 수 있는 공연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의 현상은 너무나도 빨리 퍼졌고, 모든 사람이 빠짐없이 누릴 수 있는 문화적 부흥이었다.
모든 사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이도 흥겨웠고, 다리를 쓸 수 없는 이도 즐거운 하루하루를 만났으며, 정신적으로 발달이 저해된 이들도 신나게 즐겼다.
다만.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은 그 대중음악의 범람에서 완전하게 벗어난 사람들이었다.
이 즐거운 세상에서 어울리지 못해 더욱 위축된 사람들…….
그들의 적의는 그래서 정당했다.
더군다나, 눈치 볼 ‘보통 사람’들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랬기에 훨씬 더 노골적으로 그 감정을 드러냈다.
깜깜해졌고, 토끼가 등장했다.
조명 하나가 그를 비췄고 그가 손을 흔들었지만, 보호자들의 소심한 박수 소리가 조금 들려올 뿐, 냉랭하게 가라앉은 공기는 그대로였다.
그런데도.
토끼 가면의 사내는 방긋 웃을 뿐이었다.
그 능글스러움이 더 싫었다.
곧 그를 비추던 조명조차 꺼졌다.
그리고 무대 뒤에 있는 스크린이 환하게 켜졌다.
오선지가 나왔고, 음표가 하나 그려졌다.
여기저기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어두운 틈을 타서 손가락으로 욕을 하는 중일 수도 있었다.
소리를 나타내는 그림.
이들과는 전혀 연결점이 없는 것이기에.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들이었다면 짜증의 탄성을 내뱉었을 것이다.
고요한 불만이 부스럭댔다.
* * *
한국 최고의 뇌 의학 박사 윤성환 교수는 최근 6시간이었던 수면 시간을 4시간으로 줄였다.
권위 있는 심리학 박사들과 산부인과 전문의 김록영 교수와 함께 시작했던 공동 논문 프로젝트가 막바지였기 때문이었다.
음악이 일으킨 기적을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언제나 의학은 과학적인 근거를 만들어야만 인정받는 학문이었다.
수도 없이 많은 세월을 거쳐서 확립되어 온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학문이기도 했다.
그 사이사이에 ‘오컬트’로 치부되어 지워진 부족 의학들은 그 근거가 부족했다.
최근 한의학이 부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그 효능이 과학적인 증명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살얼음판 같은 바닥이었다.
가장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학계에서, 음악으로 질병을 치료한다는 정신 나간 말을 할 수 있는 이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윤성환 박사의 이름을 달고 발표한다면 그 파장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만큼 더욱더 많은 검증이 필요했고, 더욱더 많은 샘플이 필요했다.
가장 과학적인 부분으로 접근해야 할 자신이 과학을 배제한 채로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업계를 설득하려다 보니 골치가 아프기는 했다.
그렇게 따라다니게 된 투어였다.
뇌 의학 박사이기 이전에, 정신분석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이번 ‘소수만을 위한 투어’의 관객들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들은 모두가 잠재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이었다.
노인들은 보통 죽음과 가까워질수록 아무도 알지 못하는 우울증에 빠지곤 한다.
게다가 세상과 단절된 작은 마을에서 활기참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반복한 이들에게는 무기력증이 동반한다.
의학적으로 분석한 부분이었다.
그런 이들을 찾아가 아빠와 딸이 신나게 노래했다.
그 뒤에 방긋 웃고 있는 휠체어를 탄 VIP가 있었다.
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그곳의 노인들은 저 흥겨운 가족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저 그 음악에 즐겁게 흔들었을 뿐이었다.
사실, 유명세 따위는 그에게 필요 없었는지도 몰랐다.
매번 잊지 못할 엄청난 무대를 선사했으니.
죽음을 앞두고 아무런 의욕도 없이 풀려 있던 눈에 생기가 생기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구부정했던 허리가 펴지며 들썩거리는 활기참을 목격했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으로 외과학 계열 박사들은 고개를 저었었다.)
하루에 몇 번 내지 않았을 그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리는 것을 목격했다.
죽는 날만을 바라보던 이들의 얼굴이 아이같이 반짝였다.
그는 항상 엄청난 숙제를 내주곤 했다.
이를 어찌 설득해야 하는 것일까.
만일, 의학계에 정설로서만 남길 수 있다면, ‘음악’이라는 매체는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곳저곳에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번에 생긴 윤성환 박사의 염원이었다.
공연이 끝난 곳은 고용한 직원들을 시켜 추적 조사를 진행했다.
그 한 번의 공연이 그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확실하게 기록해야 했으니까.
통계학은 무의미했다.
검증할 수 없기에, 현상으로만 접근해야 했다.
순수한 아이들을 모아 놓고 바닥에 앉아 방긋 웃던 젊은이들도 떠올렸다.
그날 그 보육원의 어른들은 졸도할 뻔했었다.
제니스를 필두로, 테일, 나비 계곡의 제이, 박재경, 유레이시, 황지선이 등장했으니까.
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가들만큼은 그저 꺄르륵대기만 했었다.
이렇게 많은 어른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고 들었다.
당시 아이들을 유심히 살폈었다.
의학적 소견으로 훗날 우울증에 가장 쉽게 노출될 아이들이었다.
꺄르륵대고는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어둠이 존재했다.
뭔가 모르게 눈치를 보는 느낌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일방적인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아이들이었으니까.
저 아이들은 노력해야만 그 대가로 어른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보육교사의 따뜻한 손길을 한 번이라도 더 받으려고 ‘착한 아이’의 뒤에 숨겨 왔던 ‘짜증’, ‘슬픔’, ‘결핍’, ‘분노’, ‘불편함’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눌린 감정들이 아이들을 병들게 만든다.
보통의 서너 살 아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저 아이들의 질서가 서글펐다.
그때, 졸도할 듯 파르르 떨던 보육교사들을 모두 내보냈었다.
아이들의 꺄르륵 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그리고 눈치 볼 것이 없어진 아이들의 얼굴에 숨겨졌던 표정들이 아주 조금씩 비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없었기에 부모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아예 품지도 못하는 아이들.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알아 버려, 무덤덤해진 절망의 얼굴이었다.
후에 기록을 살피며 알게 된 것인데, 그 장면을 기록하던 다큐멘티스트의 카메라도 조금 흔들린 것을 확인했다.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들의 가장 작은 공연은 그 절망을 앞에 두고 시작됐었다.
언제 만들어 왔는지 수많은 동요가 아름답게 편곡되어 흘러 댔다.
때론 경쾌하게, 때론 서정적으로, 때론 광기 어린… (아, 베이스를 든 칼 리가 등장하며 ‘똥’송을 불러 댔을 때는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렸다.)
어느새 아이들의 얼굴에 눈치 보지 않는 즐거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자아이가 아빠의 손을 잡고 방긋 웃으며 등장했다.
-같이 놀자!
그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아가들이 아장거리며 들썩였고, 그 나이대에는 지키지 않아도 될 질서가 무너졌다.
서로 뒤엉켜 신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몇이 서로 머리를 부닥쳐 잠깐 ‘힝’거리기는 했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그 즐거움에 동참했다.
아이들의 얼굴에 만들어지지 않은 웃음이 가득했다.
저 나이대 가져야 할 표정이었다.
아직 훈육이 필요하지 않은 나이, 그렇기에 가장 아가다운 모습이 남아 있는 때.
통제되지 않는 아장거림이 이토록 가슴 벅찰 줄이야.
저도 모르게 시야가 흐려졌던 장면이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자, 자신의 앞에 있던 휠체어에 탄 여인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이런 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이런 것이 치료가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이것은 의학 서적에서 절대로 찾을 수 없는 마음 치료였다.
이들은.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의학 서적에서 언급되지 않는 ‘마음’의 위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윤성환 박사를 위시한 심리학 박사들 모두가 ‘설마’ 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간의 공연들은.
음악을 들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이 적대감으로 가득한 공간을 어떻게 녹일 것인가.
이번만큼은 고개를 저었지만.
마음만큼은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스크린의 오선지에 음표들이 마구 들어섰고.
그가 피아노 앞에 섰다.
* * *
나이대는 젊었다.
아직 세상에 억지로 물드는 것이 서투른 이들이었다.
감정이 조금 더 격한 어른과 청년의 사이.
그렇기에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만일 더 어렸다면 그저 흥미롭게만 지켜봤을 수도 있었고, 만일 더 나이가 많았다면, 사회생활을 하며 이미 감정이 닳고 닳아 건조하게 바라봤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이들이었다.
피아노의 건반을 누른다.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냉소적인 반응은 당연했다.
어차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까.
자신들의 상태를 알면서도 저런 행동을?
마치 놀리는 듯한 손놀림이었다.
적개심은 어느새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다.
모두 성대를 울릴 수는 있었다.
그랬기에 여기저기서 어눌한 분노가 마구 터져 나왔다.
소리는 낼 수 있었다.
다만,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입을 닫았던 것뿐.
오랜만에 성대를 떨게 된 이들이었다.
어차피 이곳에선 어떤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마구 자신만의 분노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가 피아노를 누르는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방긋 웃으며 입을 움직였다.
‘잘하네.’
‘……?’
상대의 입을 읽는 것은 이들에게 기본이었다.
‘저게 무슨 소리지?’
어느새 스크린에 그려진 음표들에는 X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모양의 부호가 그 위에 덮어졌다.
그가 손을 뻗어 화면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방금 부른 음표야. 기억해.’
천천히 이동해 기타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그 뒤 스크린에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 그 앞의 행복한 얼굴의 부모가 눈물짓는다.
아기는 입을 웅얼거리기도 하고, 크게 벌리기도 하고, 마구 웃기도 한다.
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소리가 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가의 얼굴이 바뀌고, 부모의 모습도 바뀌었다.
또 입을 움직여 소리를 냈다.
또 주인공들이 바뀌었다.
여전히 부모들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아기는 입을 움직였다.
역시 소리를 내고 있을 터였다.
화면을 바라보던 모두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들의 어린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기였을 땐 들리지도 않았으면서 잘도 저렇게 소리를 냈었구나.’
그 해맑은 아기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누군가 저도 모르게 웅얼거렸다.
분명히 보호자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듣지 못했을 소리였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도 웅얼거렸다.
또 다른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또 다른 소리가 얹어졌다.
어느새, 작은 극장 내부가 소리들로 가득했다.
‘언어’는 아니었지만, 감정이 담긴 소리임은 확실했다.
분명히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 낸 목의 울림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분노로 질러 댔을 때의 울림과 지금의 울림.
확연하게 다른 감각이었다.
화면에 또 다른 부호가 그려졌다.
‘이건 방금의 음표.’
스크린에 그려진 오선지에 두 개의 음표가 일정한 리듬으로 섞이기 시작했다.
그가 피아노를 가리키고, 처음 보여 줬던 음표로 손을 옮겼다.
기타를 가리키고, 두 번째 보여 준 음표로 손을 옮겼다.
‘아…….’
모두가 한 번은 겪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농아인협회나 수어교육원에서 그들만의 언어를 배울 때가 기억났다.
이제야 그가 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음표를 알려 주려는 것이었다.
극과 극의 감정.
그에 상응하는 그들만의 음표.
물론 들리지는 않았지만, 목의 울림은 확연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그가 피아노를 두드렸다.
모두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가 기타를 두드리자.
모두가 부드럽게 목을 떨었다.
분명 모두의 소리는 다를 것이다.
같은 소리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감정만큼은 같았다.
그리고 그들 자신만큼은 이 떨림의 음표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마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의 손을 따라 입을 열고 목을 울렸다.
나이를 먹어 가며 어느 순간부터 감춰 왔던 자신만의 ‘소리’를 마음껏 내질렀다.
자신만 느낄 수 있는 ‘음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오늘 처음 배운 음표를 따라 소리 내던 태린이 문득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봤다.
눈물범벅이 된 엄마가 두 손을 꼭 모으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감정은…….’
태린이 목의 울림을 달리했다.
‘들리는 것 같은’이 아니라.
정말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나 마음이 뭉클한 것을 보면 말이다.
오늘 그녀는 새로운 ‘소리’를 배웠고.
자신들만의 ‘음악’을 알게 되었다.
세상 자체가 변화한 것만 같았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음’으로만 부를 수 있는 악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