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우울증
-이것은 연주하는 것만이 가능한 악보이다.
윤성환 박사는 이번 공연의 서두를 이렇게 적었다.
소리 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이들이었다.
일반적인 범주에서 그들의 소리는 불협화음이었으니까.
어떤 의미가 담겼더라도 ‘언어’로서의 역할은 어려웠다.
그들에게는 수어라는 그들만의 언어가 있었고, 그랬기에 버린 표현 방법이었다.
평소엔 그저 묵묵히 주변을 흉내 내면 됐다. 그러면 대충 일반인처럼 보이기는 했으니까.
그렇게 나이를 먹어 갈수록 ‘소리’라는 것은 더욱 멀어져만 갔다.
그런 이들이 마음껏 소리 내고 있었다.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음정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다.
-점자 악보는 있죠. 그런데 농아인들을 위한 악보는 없어요. 세상은 애초에 ‘음악’에서 그들을 배제한 거죠.
그가 이번 공연을 계획하며 했던 말이 기억났다.
-같은 사람이고, 감정이 있어요. 그런데 음악을 하지 못할 리가 없죠. 목으로 소리 내지 못할 수도 있어요.
어느새 관객들의 앞에 작은북이 하나씩 놓였다.
-음악은 어디에나 존재해요.
그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그게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뿐일지라도.
무대 위의 그가 방긋 웃으며 스틱을 들었다.
스크린엔 작은 북이 확대되었고, 북 여기저기에 오늘 처음 알게 된 음표들이 그려졌다.
북 가장자리의 음표가 밝아졌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틱’ 하는 소리가 났다.
그가 고개를 젓고는 다시 그 음표를 가리켰다.
이번엔 더 많은 사람이 그 소리에 동참했다.
윤성환 박사도 자신의 앞에 있는 작은북의 가장자리를 두드렸다.
틱.
스틱에 느껴지는 감촉이 매우 딱딱했다.
그가 작은북의 중앙을 가리켰다.
스틱을 휘두르자 훨씬 부드러운 부딪침이 느껴졌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퉁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메아리치듯 울렸다.
소리를 배제하고 다시 가장자리와 가운데를 두드려 봤다.
틱, 퉁.
손에 전달되는 감각이 확연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북의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멀어질수록 스틱에 닿는 느낌은 더욱 딱딱해졌다.
이것은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듣기 위한 음악이 아니었다.
오로지 느끼기 위한 음악.
스크린에 악보가 생겨났고, 그들만을 위한 음표가 반짝였다.
여기저기서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들리지 않으니 그저 악보를 보며 스틱을 휘두를 뿐이었다.
소리로서는 보통 사람의 기준으로 ‘소음’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 진지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연주’였으니까.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음악을 만난 것이다.
서툰 두드림을 귀가 아닌 마음으로 느끼자, 윤성환 박사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실 수어를 이용한 농아인들의 음악 활동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정상인의 음악을 따라 하는 것뿐이었다.
그저 반복적인 훈련으로 만들어진 흉내 내기였다.
게다가 그들은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다거나, 후천적인 장애여서 어느 정도 ‘소리’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모인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2급 이상의 농아인들이었다.
그간의 사례를 이미 조사했었기에 지금 이 광경이 얼마나 굉장한지는 윤성환 박사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 합주는 역사적인 한 걸음이었다.
여전히 서툰 두드림은 계속되는 중이었고, 처음 본 음표들은 반짝이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최초로 중증 농아인들만을 위한 음악 체계가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이날 세상에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 * *
진혁은 작은 소극장에 울려 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 몇 되지 않는 음표였다.
그것도 리듬 중심의 단순한 소리였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이것만으로도 굉장할 것이다.
처음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난 것이니까.
마구잡이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들이 귀를 때려 댔다.
어쩌면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일지 모른다.
지금도 그들의 감정을 귀로 먼저 들어야만 했으니까.
그래서 진혁은 그저 방법을 제시한 것뿐이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그들의 영역이었다.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는 음표는 더욱 늘어날 테고, 저 단순한 두드림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듣기 위한 음악이 아닌 표현하기 위한 음악.
소리와 가장 멀었던 사람들이 펼쳐 내는 세상에서 가장 능동적인 음악이 될 것이다.
진혁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전율이었다.
이렇게 또 하나의 굉장한 감정을 만났다.
수많은 두드림을 감상하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무대 바깥 휠체어를 탄 아내와 그 옆의 아이가 방긋 웃고 있었다.
‘이번에도 진짜 재밌었지?’
둘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윤 교수님께서 요청하셔서 자리를 만들기는 했는데…….”
“알지. 눈치 보이는 거.”
“그… 의협에서도 조금씩 신경 쓰는 거 같습니다.”
윤성환 박사의 미간이 조금 좁아졌다.
지금 자신이 준비하는 논문은 어쩌면 기존의 기득권 세력에게는 눈엣가시일 수도 있었다.
의학이란 상당히 보수적인 학문이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에 어쩌면 당연한 부분이었지만, 사실 기득권의 고집도 상당 부분 묻어 있었다.
의사들은 할 수 있는 조치를 모두 끝낸 후, ‘환자의 의지만이 남았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어쩌면 마지막 책임 회피의 변명일 수도 있는 말이었다.
[의지]어떤 의학 서적에도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단어.
결국 마지막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영역으로 미뤄 뒀으면서, 새롭게 발견되는 영역에는 언제나 그 잣대가 엄격했다.
“다들 중증입니다. 약물도 고용량으로 처방 중이고… 사실, 이 병동은 밖에 보이기가 조금…….”
정신과 전문의 추경훈이 슬쩍 윤성환 박사의 일행을 바라봤다.
카메라를 든 한 명의 외국인과 그 옆에서 또 다른 촬영 기기를 만지는 한국인에게 시선을 멈췄다.
“논문 자료로 쓰려고 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단 믿겠습니다.”
“아무튼 고맙네.”
추경훈이 굳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갑작스러운 행보로 의사협회나 학계에서 조금 찍힌 면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한국 최고의 뇌 의학 박사임은 틀림없었다.
이럴 때 약간의 짐을 지워 놓는 것이 괜찮은 선택이기도 했다.
사실 정신과 병동이라는 곳이 외부인에게 공개하기 썩 괜찮은 환경은 아니었다.
창문을 막고 있는 쇠창살부터 병실마다 달린 잠금장치라든지, 환자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도를 낮춰 놓은 조명이라든지…….
아무리 잘 관리된 곳이라고 해도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이곳은 중증 우울 장애 환자들의 병동이었다.
다른 병동들보다 훨씬 더 그 공기가 무거웠다.
경증이야 약물 외에도 치료법이 다양했다.
운동이라든지, 명상이라든지, 밝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은 대표적으로 알려진 우울증을 완화하는 방법들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음악도 끼어 있었다.
어디까지나 도움을 주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었다.
결국 약물과 전문의의 상담 등을 통한 심리 치료가 가장 중요했다.
하물며 경증도 아닌 중증 환자에게 고작 음악을 들려주는 것만으로 유의미한 객관적인 수치가 나오리라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의사협회에서 고개를 젓는 이유가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일단 아티스트를 소개해야겠지.”
윤성환 교수가 문 쪽을 가리켰고, 추경훈이 안경을 고쳐 썼다.
“아…….”
어쩐지 직접 만날 때까지 정체를 말해 주지 않더라니…….
“반갑습니다.”
현시점 세상 사람들이 애타게 찾고 있는 그가 방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 * *
“그… 조금 있다가 사인 하나만…….”
“물론이죠.”
“괜찮으시다면 사진도…….”
“사진은… 제가 사람들 몰래 움직이는 거라서요.”
“아…….”
“아무튼 자리 만들어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아이고. 별말씀을…….”
추경훈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상담실로 안내했다.
어쨌거나 지금 이곳에 방문한 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월드 스타였다.
그의 아내가 청강의료원에서 회복했다더니, 이런 식으로 함께 등장할 줄이야.
예상 밖의 손님이었다.
사실 정신 의학계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었다.
과연 ‘리버풀의 기적’이 의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정신학적으로 ‘노숙인’들의 심리 상태와 정신 질환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 왔다.
노숙인의 정신 질환은 굉장히 만연하고 복잡한 문제였다.
우울증, 불안 장애, 정신분열증, 양극성 장애 등등 어느 하나로 통합하기 힘든 장애들이 마구 뒤섞여 있었고, 그렇기에 이들을 같은 방식으로 치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겼었다.
거기에 그들의 생활 환경이 주는 악순환은 더욱 그들을 사회적으로 고립되도록 만들었다.
그렇기에 사회의 가장 어두운 단면과 정신적으로 좋지 않은 예를 들 때면 자주 등장하는 예시로서 남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기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었던 그 사건은, 그간의 사례들과 발표된 논문들을 완벽하게 뒤집은 사례였다.
의학적으로 전혀 설명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일화였고, 실제로 사회에 다시 통합된 그들의 인터뷰는 그 ‘기적’이 절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리고 그 ‘기적’이 한국의 영등포역이라는 곳에서 먼저 일어났었다는 사실은 제니스의 인터뷰로 인해 세상이 모두 알게 되었었다.
그 영등포역 공연의 장본인이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 노숙인들 앞에서 했던 음악은 진짜인가요?”
아직도 정신 의학계는 의심하고 있었다.
음악이 도움은 될 수 있겠지만, 치료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분명 다른 어떤 무언가가 개입했을 거라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렇기에 조금 무례하더라도 직접 만난 이때 질문해야만 했다.
그래야 상대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저는 진심이었습니다. 제니스도 그랬고요.”
전혀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 목소리 하나하나에 깃든 확신. 약간의 주저함도 보이지 않는 몸짓.
진실이었다.
“그때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환자들은 모두 중증입니다. 수면 장애는 기본이고, 자살 충동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일으키곤 합니다. 자해도 이곳에선 흔히 있는 일입니다.”
의학적인 판단으로 봤을 때, 영등포역의 노숙인들은 여기 있는 이들 정도의 중증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들은 삶을 이어 가고는 있었으니까.
여기 있는 환자들은 말 그대로 죽음의 경계선에 있는 이들이었다.
“정신력이 약하다느니, 의지나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한 질병이 아닙니다. 사실 약물로도 한계가 있고, 그 당사자가 되어 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해하기 힘든 질병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단호하고 진중한 대답.
우울증에 대해 잘못 알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더 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했다.
“노래하실 거죠?”
그가 방긋 웃었다.
“당연하죠.”
추경훈도 그제야 굳어졌던 표정을 풀었다.
저리 해맑게 웃는 얼굴이라면 결과가 어찌 되든 상관이 없었다.
“오늘 그 기적을 직접 보고 싶네요.”
과학적 의심과는 별개로.
추경훈 자신의 진심이었다.
“여깁니다.”
단체 상담실의 문을 열었다.
* * *
동그랗게 마련된 객석.
열 명 남짓의 사람이 앉아 있다.
진혁이 숨을 들이마셨다.
압도적인 슬픔.
기쁨을 찾는 능력을 잃은 사람들.
공허함과 무감각.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 자체를 지워 버린 절망감.
지속적인 자기비판과 죄책감.
피로감에 찌든 얼굴들이 무표정하게 진혁을 바라봤다.
확실히 방금 그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이 맞았다.
적어도 그 영등포역의 사람들은 밥을 먹겠다는 의지로 그곳에 모여든 이들이었다.
이들은 그들보다 훨씬 더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었고, 훨씬 더 아픈 사람들이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에 진혁의 표정도 가라앉았다.
기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공허한 눈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절대로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어둠.
직접 마주하고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 자신의 안에 자리했던 어둠의 존재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끝없는 고립감을 떠올렸다.
진혁이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