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가치
나노 사회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만큼 공동체는 나노미터 단위처럼 개개인으로 나뉘어 쪼개져 모래알처럼 흩어졌다는 단어였다.
개인은 더 미세한 존재로 분해되고 서로 이름조차 모른 채 고립된 섬이 되어 간다.
우리 사회가 나노 단위로 산산이 부서지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단체보다는 나 자신을 우선시하는 경향은 계속해서 강해지는 추세였다.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를 고립시켰다.
우울증이라는 것이 현대인에게 있어서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흔한 질병이 되어 버린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학계에서는 여러 원인을 제시하고는 있었지만, 결국 ‘고립’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웃이 없었고, 동료도 없었으며, 친구가 없었다.
드러내지 못한 슬픔은 숨겨져 곪고 썩어 간다.
지독한 악취에 그 어둠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절대 이론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질병.
누군가의 감정적인 위로나 격려 또는 따뜻한 말 따위로는 오히려 질환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었다.
더욱 고립되고, 더욱 외면받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진혁은 세상에서 고립되었던 아이를 떠올렸다.
가슴 한구석에서 분노와 슬픔만을 간직한 채 밝은 세상을 노려보던 아이.
그 아이가 만난 세상을 이들에게도 보여 주고 싶었다.
이들에게도 행복한 순간은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 즐거움을 떠올리는 방법을 잃었을 뿐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한 가지만 생각했다.
이들에게도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면, 그들이 놓쳐 버린 많은 것이 제자리를 찾으려 할 것이다.
주제넘은 위로나 따뜻한 말은 담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신이 들어가 보지 못한 세계에 대해서는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저 그들이 잃어버린 단 하나의 감정에만 집중했다.
진혁이 기타를 잡았다.
* * *
앨런의 다큐멘터리는 계속해서 진행 중이었다.
그날의 공연 바로 전에 만들었던 인트로는 폐기했다.
토끼는 더 이상 울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의 어두운 삶을 화면에 옮기는 것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어둠을 직시했고, 그대로 온전하게 받아들였다.
그 공연을 만난 모든 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었을 자신만의 어둠을 모두가 인정했다.
결국 소녀를 만난 소년은 웃고 있었기에 토끼의 눈물을 꺼낼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가장 그늘진 곳을 찾을 거예요.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존재가 시골의 노인회관들과 구석진 곳의 보육원을 찾아다녔다.
심지어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새로운 음악 체계까지 만들어 버렸다.
그를 기록하며 상식이라는 것은 벗어던진 지 오래였다.
노인들의 낡아 버린 마음을 고쳤고.
기대를 잃은 아이들에게 진짜 행복을 선사했으며.
들을 수 없는 이들에게는 그들만이 읽을 수 있는 음표를 선물했다.
수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무대가 아닌 곳에서 그의 음악은 더욱 빛을 발한 것이다.
무언가를 잃은 이들을 위한 음악.
무언가가 부족한 이들을 위한 음악.
그들이 관중이었기에 가능한 기적.
지금 자신은 기적의 길을 따라 걷는 중이었다.
앨런은 모든 장면을 사실적으로 기록해야 하는 다큐멘티스트였다.
그렇기에 처음 그의 음악을 좇으며 과학적으로 교차 검증이 될 만한 것들을 확인했었다.
식물이 자라는 농장에서 실행되었던, 음파의 세포 운동성 증가 실험은 이미 수많은 논문으로 그 사실성을 입증한 후였다.
식물조차도 영향을 받는 음악이었다.
그 이전에 닭이나 돼지, 젖소 같은 동물들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었다.
당연하게도 인간에게는 훨씬 더 큰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기에 이미 세계 음악 치료학계가 존재했다.
다만, 20년이 넘는 동안 발표된 수많은 논문에도 불구하고, 정작 의료계에서는 어디까지나 심리적 상태를 개선하는 선에서 머물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극적인 치료 효과를 보인 적이 없었던 이유였기도 했다.
지금 저 정신의학 전문의의 반응이 시큰둥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눈에 보이는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의학계의 모습이었다.
앨런은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어떤 장면에서 극적인 분량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상식적인 의학계의 표정을 화면에 담았다.
어차피 정태강 PD가 진혁의 모습은 잘 담고 있을 터였다.
‘그’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잠시간 환자들의 얼굴을 스케치한 뒤 의사의 얼굴로 뷰파인더를 옮겼다.
무덤덤한 표정에서 눈썹이 꿈틀대며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미간이 좁아졌다.
‘그’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의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은 동그래졌고 그의 눈가가 떨려 오기 시작했다.
노래는 계속되었고.
꾹 닫혀 있던 그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그가 당황하며 환자들의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앨런의 뷰파인더도 그의 시선을 쫓아 환자들의 얼굴을 담았다.
두 눈 가득 고인 눈물.
눈물과는 별개로 환하게 변해 있는 표정들.
아련하게 무언가 떠올리며 미소 짓는 그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분명히 지금 흐르는 이 노래에 ‘치료’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절대 부족함이 없었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은 의사를 뷰파인더에 꽉 채웠다.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을 맞이한 인간의 당연한 모습이었다.
노래가 끝이 났고.
감정이 결여되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박수 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에선 더 이상 상실과 고립, 좌절감과 절망감, 우울과 슬픔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정상인과 다름없는 감정을 쏟아 내고 있었다.
또 하나의 기적의 공연이었다.
* * *
“대중음악으로서는 낙제점이죠.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음악은 아니니까.”
그 공연이 끝난 뒤에 했던 인터뷰였다.
앨런은 그저 기록할 뿐 인터뷰는 남기지 않으리란 금기를 깰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따로 움직인다고 선언했으니까.
“사실, 시계태엽도 제니스가 불렀고, 그렇게 엄청난 장면을 만들어 냈으니까 사람들이 좋아한 거지, 아무것도 없이 무명 밴드의 앨범만 나왔다면 유명해지기 어려웠을 거예요.”
이 얘기는 음악계에서 종종 돌았던 의견이었다.
광팬들에 의해 처참하게 몰매를 맞기는 했지만 맞는 말이긴 했다.
그만큼 대중적인 음악과는 거리가 있었으니까.
그가 갑자기 기타를 쳤다.
언뜻 듣기에도 너무나도 좋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음악은 세상에 정말로 많아요. 그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들에 대한 음악은 수백 년에 걸쳐서 널리 알려져 왔으니까요.”
그의 연주가 계속됐다.
“제가 아니라도 이런 음악은 계속해서 나올 거예요.”
아니, 그렇진 않을 거 같은데…….
앨런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기타 소리가 멎었다.
“노인회관에서 불렀던 노래를 앨범으로 만들면 사람들이 들어 줄까요?”
노인들의 앞에서 딸과 함께 타악기를 두드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시큰둥하던 노인들이 신나서 마구 흥분하다가 그 스틱을 빼앗는 장면도 몇 번 있었다.
결국 나중에는 모두가 어울려 북을 두드렸었다.
다만, 지금 그의 말대로 그 음악이 그대로 사람들에게 들려진다면 그만큼의 흥겨움이 그대로 전달될 것인가?
“그분들이었기에 그 두드림을 즐거워했던 거예요.”
앨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스꽝스럽게 불렀던 동요는 어떨까요?”
한국 속담에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당시 보육원 동요 공연이 끝난 후 정태강이 알려 준 말이었다.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그렇게 단순한 멜로디가 반복되는 노래를 부르다니.
하지만 아이들은 너무나도 행복해했었다.
“마찬가지죠. 그 공연은 철저하게 아이들을 위한 공연이었으니까.”
역시 대중음악이라는 개념에는 속하지 않는 노래들이었다.
그가 하려는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의 공연도 그래요. 실제로 우울증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밋밋한 발라드 정도이지 않을까요?”
환자들의 심리 변화가 극적이었던 것과는 별개로 음악은 이해하기 힘들었었다.
자신이 듣기엔 그렇게 엄청난 감정은 없었으니까.
그건 정태강과 대화를 나눠 보니 자신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사실 눈앞에서 펼쳐진 기적적인 광경이 아니었다면, 그 음악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의 음악이 그들에게만큼은 절실했던 무언가를 채워 줬다는 것이다.
어쩌면 수십만의 관중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보다도 훨씬 더 가치 있는 음악일 수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기적일 테니까.
“저는 이쪽이 더 재밌어요.”
그의 해맑은 웃음으로 인터뷰는 끝이 났었다.
앨런은 멈춰 있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 다큐멘터리가 향해야 할 방향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모니터 옆에 차곡히 쌓인 하드디스크들을 바라봤다.
기적을 만드는 천재 뮤지션의 기록들이었다.
* * *
-이번에 동해 소년 라라미용실이랑 같이 올라오는 거 맞지?
└스타그램보니까 확실한 듯.
└걔네 스튜디오 합쳤다는 소문도 있음.
└주문진에서 벌써 같이 공연도 했다던데?
└아무튼 둘 캐미가 장난 아님.
└오. 이번 무대 기대되네.
-이번 축제에서 차일드 애플 신곡 발표한다더라.
└전 세계 아기 사과들 티켓팅 장난 아니겠다.
└젠장. 그것들 손 진짜 빠른데.
└아… 사전 예약은 물 건너간 건가?
└하필이면…….
-임도유 전 와이프랑 재결합 진짜임?
└오피셜 떴음. 진짜임.
└이미 데이트 사진들 뜨지 않았음?
└두 줄 나왔다는 말도 있던데?
└두 줄? 뭔 소리임?
└임테 말하는 거 아님?
└임테가 뭐임?
└아… 여기도 핑프가 있네.
-그린내 빌보드 핫 100 진입!
└대박! 누나 나 죽어!
└지선누님 아직도 생생하심!
└이번 곡도 진짜 달달하더라.
└유레이시 피처링이 장난 아니지.
└아무튼 이번엔 10위권까지 가 보자!
-나비 계곡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록 앨범에 노미네이트된 거 실화?
└오… 드디어!
└후보에 오를 때 됐음. 빌보드 1위만 몇 번을 했는데!
└드디어 한국 밴드가 저기에 이름을 올리는구나!
└좀 늦은 감이 있음!
└이제라도 된 게 어디임.
└이대로 수상까지 가자!
-레몬티 후지 록 페스티벌 확정!
└진짜? 일본 애들이 레몬티를?
└예전에 일장기 태우지 않았음?
└ㅇㅇ 그 이후로 해외 페스티벌 다 막혔었음.
└근데 초청받았다고?
└이번 곡이 일본에서 완전 대박 쳤다고 하던데?
└하긴, 일본은 아직도 펑크가 먹히지?
└레몬티 형아들 펑크가 대단한 거임.
└맞음! 대한민국 대표 펑크!
대중음악과 유행성이라는 단어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가 있었다.
언제나 계속해서 변해 왔으며, 시대와 국가 그리고 즐기는 사람들에 의해서 흘러가고, 밀려나고, 새롭게 탄생했다.
대중들의 눈과 귀에서 멀어지면 그 생명력을 잃고 마는…….
어디까지나 널리 많은 사람, 즉 대중이 즐기는 음악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인 장면에 더욱 열광하기 마련이었다.
과거의 전설에 매달리고만 있기엔 너무나도 굉장한 음악들이 넘쳐났다.
네 번째 ‘하늘 아래 음악 축제 × 월드 뮤직 페스티벌’이 확정된 시점, ‘인간 밴드’의 등장을 염원하는 게시물이 사라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듯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억은 추억으로 남기곤 했다.
한국은 여전히 세계 음악의 중심이었고, 굉장한 음악은 넘쳐났으며 세상은 즐거웠다.
-근데… 이번에도…….
하지만 아무리 세상에 굉장한 음악이 넘쳐난다고 해도, 몇 년 전에 만났던 그 기적 같은 가슴 벅참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허! 언급하지 말 것!
단지, 밖으로 꺼내면 그 그리움이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서 참고 있을 뿐이었다.
* * *
“야! 얘 지금 어디래?”
“그… 울산 어디라고…….”
“후…….”
“물어봐요?”
석준의 한숨에 서동구가 눈치를 슬쩍 봤다.
“됐어. 자기가 놀고 싶으면 벌써 연락했겠지.”
간간이 연락은 주고받았지만, 얼굴을 본 지는 벌써 1년이 넘은 상태였다.
여전히 트레일러 하나 끌고 전국을 돌고 있는 중이었다.
-가족 여행 갑니다.
3년 전, 해맑게 손을 흔들던 그 얼굴이 기억났다.
“시끼가 무슨 가족 여행을 몇 년 동안이나…….”
윤석준이 이번 축제의 기획안을 신경질적으로 넘겼다.
월드 뮤직 페스티벌과 하늘 아래 음악 축제가 콜라보를 하게 되며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한 번씩 열리게 되었다.
K2리조트와 하이로원 리조트가 함께했고, 그 규모는 세계 최고였다.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독일의 락앰링&락임파크 페스티벌, 미국의 코첼라 페스티벌 등 역사 깊은 음악 축제 사이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린 것이다.
딱 4회 만에 달성한 쾌거였다.
세계의 유명 밴드들이 가장 참가하고 싶어 하는 축제가 되었고, 무대를 채울 라인업은 넘쳐났다.
헤드 라이너급 아티스트들만 해도 몇 팀이나 됐다.
올해도 강원도는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 틀림없었다.
손에 들린 서류 역시 어디 하나 빈 곳 없이 빽빽했는데.
왠지 어딘가 텅 빈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