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하늘과 맞닿은 그늘
이제 4년 차였다.
일 년에 두 번, 세계 모두가 음악으로 하나 되는 순간.
세계 최대의 음악 축제는 미국의 여름에 한 번, 한국의 겨울에 한 번, 그 화려한 무대들에 조명을 밝혔다.
‘월드 뮤직 페스티벌 X 하늘 아래 음악 축제’는 규모만으로도 엄청났다.
작년 겨울에는 총동원 관객 수만 190만 명을 찍었다.
축제가 열리는 K2 리조트와 하이로원 리조트는 수많은 산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렇기에 주변의 산에도 관객석을 만들었다.
자연 속에 캠핑존이 만들어졌고, 관객들은 저마다의 텐트에서 공연을 즐길 수도 있었다.
이제 4회차에 접어든 하늘 아래 음악 축제는 세계인들이 가장 기다리는 축제였다.
장장 일주일 동안 세계의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했고, 수많은 장르가 함께했으며,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세계 최고의 문화 축제가 되었다.
그렇기에 11월의 강원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니, 대한민국 전체가 겨울을 잊을 정도로 뜨거웠다.
이 시기에는 또 다른 음악과 관련된 문화 활동들은 모두가 숨을 죽여야만 했다.
세상의 모든 이슈가 이곳에 먹혀 버리는 때였으니까.
그리고 그 축제의 후원사 가장 위에는 언제나 창천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작년에 건너편 산에서 즐기던 관객들의 의견들을 종합해서 저쪽에도 스피커와 스크린를 설치했습니다. 메인 스테이지는 다섯 개를 더 올렸고 곳곳의 광장에는 각종 문화 콘텐츠도 준비했습니다.”
“이번엔 더 커졌군.”
“예, 회장님.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들의 수가 작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예상되는 관객 수도 200만 명 이상으로 잡았습니다.”
“그래.”
현장 직원의 말에 김충석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익’만을 좇던 그가 딱 한 번 감정적으로 선택했던 한 수는 정말로 엄청나게 커져 버렸다.
한때, 그저 헐값에 지방자치단체로 넘기려고 했던 K2 리조트와 강원도에서도 낙후된 도시 중 하나인 태각시가 세계음악의 성지가 된 것이다.
그 노후 됐던 리조트는 증축을 거듭하다가 보니 어느새 하이로원 리조트보다도 더 거대해졌다.
4년 전, 첫 축제 준비에 한창이던 이곳을 방문했었던 때가 기억났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꿈꾸는 눈을 가진 남자를 떠올렸다.
윤석준.
그 나이에도 화려하게 빛나던 그의 눈이 결국 여기까지 이뤄 낸 것이다.
사업가로서 실격이라는 말을 했던가?
김충석 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사업가가 가장 가져야 하는 눈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세계 최고의 부호들은 사실 모두가 그런 눈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저 멀리까지 펼쳐진 무대들을 바라보던 충석이 시선을 당겼다.
케이블카 창에 비친 눈을 바라봤다.
언젠가 자신이 별로 맘에 들어 하지 않았던 그 눈빛이 빛을 내며 자신을 바라봤다.
이젠 가장 좋아하게 된 눈빛이었다.
“그래서, 담장 너머는 어디라고?”
“첫날 단독 공연은 저쪽 고급 슬로프 중간에 설치된 세컨드 스테이지고, 마지막 날 제일 위에서 합동으로…….”
“흐음.”
김충석 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을 눈치챈 직원이 움찔했다.
“아,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서… 제가 행사 팀장과 다시 연락을…….”
“그렇겠지. 한국 최고의 블루스 밴드를 세컨드 따위에 세우지는 않을 테니.”
“네! 맞습니다.”
그제야 충석이 굳어진 표정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재벌 순위도 2위까지 올라왔다.
자신이 투자해서 여기까지 온 세계 최대의 음악 축제였다.
약간의 실력 행사는 용인될 터.
누군가가 능글맞게 옆구리를 찌를 수도 있겠지만, 큰형으로서 그거 하나 감수하지 못하겠는가.
그러고 보니 그 능글맞은 인간이 잠잠했다.
“진봉구 이사장은 언제 들렀지?”
“아… 지난달에 공사 시작 때 들리시고 아직…….”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케이블카에서 내리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역시 양반은 못 되는 것 같았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이사장님.”
김충석 회장의 미간이 조금 좁아졌다.
“…갑자기 그런 넓은 공간을 만들라는 말씀은…….”
방금까지 본인 동생을 위해 스테이지 변경까지 감행했던 사실이 살짝 찔리기는 했다.
하지만 공간은 조금 달랐다.
“누군가 공연하기 위한 스테이지는 몰라도, 공간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캠핑존도 빽빽하고… 네. 아무래도 이번엔 더 몰릴 수도 있어서… 뭐, 우선 상의는 해 보도록 하지요… 그럼 서울에서 뵙도록 하죠.”
김충석 회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에 와서 그만한 공간이 필요할 일이 뭐가 있는 거지?
그간 축제에 있어서는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었던 진봉구 이사장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전화해서 대뜸 공간을 만들어 달라니?
김충석 회장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실룩였다.
뭔가가 있는 듯했다.
이럴 때 짐을 지우는 것도 괜찮은 판단이었다.
“나머지는 다음에 보고하게.”
“네. 회장님.”
대기하고 있는 차로 향하는 발걸음이 상당히 가벼웠다.
* * *
“아빠!”
“응?”
“이번에도…….”
진혁이 방긋 웃으며 은서를 바라봤다.
“나 없어도 잘들 놀잖아.”
“그래도…….”
이젠 엄마보다도 키가 커진 은서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사실, 아빠가 이렇게 곁에 있는 것이 너무 좋기는 했다.
지금도 아빠는 노래했다.
어젠 구름이 예뻐서, 저번엔 날씨가 화창해서, 언젠가는 엄마가 끓인 김치찌개가 맛있어서.
그 한 곡 한 곡이 예술이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과 엄마가 아닐까?
이런 엄청난 노래를 매일같이 들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다만, 솔직히 조금 아까웠다.
그 곡들을 듣게 된 사람들이 지을 표정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 두렵기도 하고.”
“응?”
은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가의 주름이 조금 깊어진 아빠를 바라봤다.
“내가 짠! 하고 나타나면 사람들은 또 엄청나게 기대할 거거든.”
“아…….”
“더 재밌게 만들어 줄 자신은 있는데, 그게 내 맘에 들지는 모르겠어.”
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자신은 잘 모르는 세계였다.
하지만 아빠가 저렇게 말하는 의미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언젠가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모두가 즐겁게 놀려면 음악은 다양해야 해. 내가 무대에 오르면 또 세상은 날 중심으로 돌아갈 거야. 아주 밝게…….
마구 즐거워진 세상.
너무 밝아져 버려서 더욱 짙어진 그림자를 알게 되었다.
결국 그렇게는 ‘모두가 즐거운 세상’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밝은 곳에는 노래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빠가 없더라도.
그래서 그 이후로 아빠는 빛이 닿지 않는 그늘을 찾아다녔다.
은서가 보기엔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는데, 아빠는 그마저도 아쉬워했다.
어디까지나 아빠는 세상에서 단 하나만 존재했고, 세상의 그늘은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아빠 혼자서 모든 곳을 밝힐 수는 없었다.
지금 아빠는 세상이 더 즐거워질수록 더 소외되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것이다.
“어? 엄마 부른다.”
은서가 저 멀리 트레일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빠는?”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
“응!”
달려가는 딸아이를 흐뭇하게 좇던 진혁의 눈이 방파제에 부닥쳐 흩어지는 파도를 향하며 낮게 가라앉았다.
불멸의 존재를 앞에 두니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유한한 존재였다.
모두가 즐거운 세상.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꿈을 꿨던 걸까?
차라리 알지 못했다면 모르겠지만, 자신의 노래가 그들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만큼 짐은 더욱 무거워졌다.
지금이야 조금 여유가 생겼지만, 초기에만 해도 일주일에 세 곳 이상을 도는 강행군이었다.
그만큼 초조했다.
한 명이라도 더 그 외로운 공간에서 구해 내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달렸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이들은 많았다.
물론 수많은 관중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굉장한 무대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심장이 두근댔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었다.
반대로 지금 찾아다니는 이들은 자신만이 치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작은 곳에서 더 큰 가치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3년이 지났다.
아직 남은 시간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유한하다.
그래서 조금 갑갑해진 마음이었다.
나지막이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파도가 부닥치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일부러 리듬을 달리했다.
마치 반항하듯이.
저 무한한 존재에게 한풀이하듯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도 결국 인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헤매던 그 고통도, 즐거움만을 찾아대며 흥분되던 마음도, 좌절의 슬픔도, 다시 만나게 된 환희도, 되찾은 행복도…….
저 무한한 존재 앞에서는 한 줌뿐인 모래알과도 같았다.
인간의 문명보다 앞섰고, 어쩌면 인간이 사라진 후에도 오래 지속될 불멸의 존재를 닮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한쪽으로만 밀어대는 반쪽짜리 파도였다.
결국 언젠가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 정해져 있는…….
벌떡 일어났다.
옷에 묻은 모래를 털어 냈다.
상념도 함께 날려 버리듯 꼼꼼하게.
역시 오늘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사실 무의미한 사색일 뿐이라는 것은 진혁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작은 투정이었다.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저 멀리 손짓하는 아내와 아이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지금만큼은 자신의 행복에 충실해야 할 순간이었으니까.
마주 손 흔들며 발걸음을 옮겼다.
진혁이 떠난 자리.
그가 털어 낸 상념의 모래들 위를 파도가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 * *
“그러니까… 무료라는 말씀이시죠?”
“네. 그 구역은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김충석 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형평성 문제도 있지만… 아무리 무료라고 한들 사람들이 모이겠습니까?”
“흥행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진봉구 이사장이 방긋 웃는 얼굴을 바라보던 김충석 회장의 미간이 좁아졌다.
“흠…….”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참가하는 축제의 옆에서, 같은 시기에 그 옆에다가 또 다른 무대를 기획하다니…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더 굉장한 아티스트들이 오른다고 해도 묻혀 버릴 분위기인데, 순수 일반인들의 무대라니.
“설명해 보시죠.”
“음… 빛이 있는 곳엔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죠.”
“…….”
“보통, 그 둘은 바짝 붙어 있곤 합니다.”
“흠… 계속하시죠.”
“상징적인 메시지를 남길 겁니다.”
김충석 회장의 눈썹이 살짝 꿈틀댔다.
느낌상, 저 능구렁이가 저런 눈빛을 띠었을 때는 따라붙는 게 맞았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정기 휴일’이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겪어 보지 않았던가.
브랜드의 이미지 상승은 곧 거대한 수익과 직결됐다.
고작 3년 만에 재계 서열 2위까지 올라왔다.
지금 저 눈빛은 그때의 눈을 닮아 있었다.
다시 한번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빛과 그림자처럼 붙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네 맞습니다. 그래서 가장 구석진 곳이라도…….”
“A 캠핑존 정도면 될까요?”
“아…….”
저 능구렁이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A 캠핑존은 메인 스테이지보다도 더 높은 곳에 있었다.
축제의 모든 구역 중 가장 높은 공간이었다.
일명 ‘하늘과 맞닿은 자리.’
이번 4회차 축제에 만들어 둔 비장의 수였다.
분명 진봉구 이사장도 그 공간이 가진 가치의 의미를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저런 표정이겠지.
“대신 창천의 이름도 함께입니다.”
김충석 회장이 방긋 웃었다.
“일정이 빠듯하네요. 실무자를 통해서 상세한 기획안 부탁드립니다.”
“아…….”
재계에서 얼굴을 마주한 지 수십 년.
이토록 통쾌하게 저 얼굴을 당황 시킨 적이 있었던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얻어 낸 단 하나의 승리였다.
좀 유치했지만.
나름 괜찮은 기분이었다.
* * *
[뭐야! 하늘과 맞닿은 자리 예약 안 열림?]└거기 특별 이벤트 한다던데?
└뭔 소리야? 메인 스테이지 위에다 이벤트를 한다고?
└몰라. 뭔가 있겠지.
└아… 그거만 바라보고 총알 모았는데.
└근데 거기 무료라는 말이 있던데?
└진짜?
└미친. 그걸 믿냐? 메인 스테이지 위에 있는 객석이 무료라고?
└난 그렇게 알고 있음. 이미 초대장 돌고 있다더라.
└초대장?
└이거 엠바고라 나도 더 이상 말 못 함.
└기자 사칭 오졌고요.
└그러게, 엠바고 이 지랄.
└믿기 싫으면 말고.
└이거 뭐 VIP들 모시는 거 아님?
└그럴 리가. 만약에 그런 거면 이미지 완전히 나락 가는 건데?
└맞아. 국제적 망신임.
└뭐 발표 나겠지. 그때까진 중립 박자.
└아무튼 아쉽긴 하다. 거기 완전 명당일 텐데.
네트워크상의 작은 불만들을 제외하고는 성황리에 준비되던 4회차 하늘 아래 음악 축제였다.
이미 사전 예약은 열림과 동시에 매진되었고, 1차와 2차 티켓도 마찬가지였다.
축제 일주일 전.
3차 티켓이 풀렸고.
그와 함께 하늘과 맞닿은 자리에 대한 공지가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정식 명칭
[하늘과 맞닿은 그늘]특설 무대의 정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