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진짜 자유
진혁이 믹싱머신에서 손을 뗐다.
“자. 혼자 해봐요.”
모니터를 터치하던 다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란한 테크닉도 필요 없었고, 화려한 몸짓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가장 기본적인 비트를 찍기만 했을 뿐.
그것만으로 플로어를 휘어잡고 흔들어 대던 토끼가, 자신에게 혼자 하라고 했다.
멍했지만, 모니터에 닿아 있는 손을 멈출 수는 없었다.
자신까지 멈춘다면,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해피엔딩이 좋지 않은가?
“지금, 그 모니터를 터치하는 느낌 그대로, 저 앞에 있는 친구를 따라가면 돼요.”
“제··· 제가요?”
“조금 전부터 혼자 하고 있었는데?”
“엑?”
물론, 화면을 터치하면, 버튼을 누른 것과 같은 소리가 나기는 했다.
토끼의 지시대로 바쁘게 누르기는 했었다.
그런데,
방금 나 혼자 한 거라고?
토끼가 방긋 웃으며 양손을 흔들었다.
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다온이 대화 중에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자기 손가락을 바라봤다.
플로어를 사로잡은 사운드는 아직도 촘촘했다.
“잘하네요. 파이팅! 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매정한 토끼가 주먹을 쥐어 보이더니, 날름 몸을 돌렸다.
황당한 표정이었던 다온이 피식 웃었다.
뭐 어때?
꿈인데.
신나게 몸을 흔들며, 맘껏 감정을 표출했다.
플로어는 여전히 요동치고 있었다.
***
문을 박차고 나와,
세 명의 경호원 사이에 갇힌 충기가, 멍한 눈으로 사자와 토끼를 바라봤다.
입 부분만 보일 뿐이었지만,
자신만만하게 디제잉을 하던 토끼와 저 큰 덩치의 사자는,
분명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경호원들이 충기를 제지했다.
화장실 방향이 아님에 뭔가 낌새를 차린 것일까?
자신만만하게 뛰쳐나왔지만,
감시자들을 마주하니 저도 모르게 주춤했다.
시끄러운 음악 때문에, 소리쳐도 저곳까지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자신이 움직여야만 했다.
토끼 가면 아래,
성질 긁는, 오만한 미소가 가득했다.
여기까지 와봐.
그럼 끼워 줄게.
라고 말하는 듯.
‘내가 혼자 못할 줄 알아?’
앞을 막아선 경호원들 사이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술에 취해 아무리 난동을 피워도, 적당히 붙들기만 할 뿐이었다.
자신에게 직접 해를 가하지는 못할 터.
이를 악물고,
덩치들을 밀어내며 달렸다.
그렇게 달렸지만, 고작 다섯 발자국.
팔이 잡혔고, 또 한 놈은 허리춤을 잡았다.
팔이 부러져도 상관없었다.
바지가 뜯어져도 상관없었다.
‘난 담장을 넘을 거야.’
덩치 둘을 매단 채,
이마에 핏대가 선 충기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결국 디제잉 박스 앞에 도착했다.
사자의 입이 달싹였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입 모양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형!”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사자가,
포효했다.
***
창천 그룹 직속 경호원이라는 타이틀은, 경호업계에서는 제법 알아줬다.
계열사 창천 시큐리티는 국내 최대 경호업체 중 하나였고, 거기에서도 선발된 이들만 로열패밀리의 곁을 지킬 수 있었다.
그만큼 자부심이 대단한 이들이었다.
고작 한 명.
덩치는 상당했지만, 자기들도 보통 덩치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한 명은 이미 바닥에 누워있었고, 지금 자신은 공중을 날아가고 있었다.
뒤늦게 달려오던 동료를 향해서.
두 덩치가 뒤엉켜 바닥을 굴렀고,
다시 일어나 반격하려 했지만,
목표는 이미 디제잉 박스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클럽의 모든 조명을 독차지하는 곳.
저 밝은 곳에서 소란을 피울 수는 없었다.
바닥에 누운 동료를 부축하며 사자 가면을 노려봤다.
***
“야! 이거 계획된 거야?”
“공연 전에 요청은 없었습니다.”
“와. 크리스 제리가 즉흥? 지금껏 그런 적 없었잖아?”
공연의 모든 연출을 총괄하는 PD가 흥분한 얼굴로 플로어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수많은 클럽을 돌며, 젊은 영혼들을 광기로 몰아넣었던 그였지만,
오늘은 정말 특별했다.
“저 여자애는 누구야?”
“어···. 확인해보겠습니다.”
신나게 머리를 흔드는 발랄한 여신.
직원 하나가 달려갔고, 이 클럽 총괄PD의 심장은, -잠시 놓쳤던- 마구 날뛰는 리듬을 다시 따라가기 시작했다.
‘메탈리카’라니.
20대 초반이었던,
199X년 4월.
IMF를 날려버린,
잠실 종합운동장의 열기가 떠올랐다.
30년 가까이 훌쩍 지난 이때,
EDM으로 다시 태어난,
헤비메탈의 전설이,
파릇한 꼬맹이들의 멱을 잡고,
흔들어 대고 있었다.
***
플로어를 가득 메운 젊음.
그들은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끼리 감정을 공유하기 위해, 이 시끄럽고 좁은 곳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줄 알았던 이 공간은,
어쩌면, 그들을 옭아매는 족쇄일 수도 있었다.
친구가 스타그램에 영상을 올렸다.
화려한 조명이 번쩍거리는 무대.
나도 저길 가야만 뒤처지지 않아.
나도 저 조명 속에서 사진을 찍어야 해.
몸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으니,
사람들의 시선을 받네?
더 자극적이고,
더 눈에 띄어야 해.
거긴 셀럽들이 한가득 이래.
나도 그들 사이에 끼고 싶어.
목적을 잊고,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며,
자유롭게 날뛰어야 할 공간에서,
어느샌가 그들끼리 경쟁하고 있었다.
디제잉 박스를 바라보며,
열광하고는 있었지만,
거기에는 ‘자유’가 빠져 있었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며,
같은 템포에,
비슷한 몸짓들.
플로어 가득 퍼지는 리듬을 놓쳐서는 안 됐고, 유행하는 춤은 연습해야만 했다.
자신만 뒤처질 수 없으니까.
자유롭게 감정을 뿜어내기엔,
서로의 시선이, 서로를 묶어대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을 이끌었던 일정한 리듬은,
자유의 탈을 쓴 허상이었다.
진정한 자유란,
남을 의식해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플로어는 자유로웠다.
박자를 놓쳤지만,
옆에 있는 이도, 이미 반 박자 빨리 뛰어올랐다. 그 옆엔 이미 뛰어오르길 포기해 허우적대고 있지 않은가?
이 엇박자들은 불쾌해야 옳았다.
예상되는 리듬에 자신의 매력을 발산해야만 했으니까.
이렇게 템포가 마구잡이면, 꼴사납게 박자를 놓칠 텐데?
아,
다들 제멋대로네?
자신이 틀린 것은, 티도 나지 않았다.
뭐지 이 리듬은?
템포를 따라갈 만하면, 멜로디가 제멋대로 튕겨 몸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자꾸 제멋대로 움직이다 보니,
어느 순간,
주변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모두가 템포를 맞추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나 혼자만 틀린 게 아니었으니까.
모두가 틀려버리자,
그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른’것이 되었다.
음악이 그들을 비웃고 있었다.
근데,
그 비웃음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맘껏 비웃다가,
갑자기 들어오는 훅이 심장을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제멋대로 움직이다가도,
심장을 움켜쥐는 순간 숨을 죽였다.
준비,
조금 더 기다려봐.
얼른 뛰고 싶지?
플로어를 가득 채우던 모든 소리가 멎었고,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던,
그 훅이 터진 그때.
플로어 가득,
진정한 자유를 찾은 영혼들이 동시에 뛰어올랐다.
단 한 번, 모두가 같은 움직임을 하자,
방금 느꼈던, 엉망진창 자유로움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생전 처음 느끼는,
‘진짜 자유’라는 카타르시스에, 모두가 전율했다.
***
경진은 이 엉망진창인 열기에 정신이 몽롱했다.
2층.
지금 가장 빛나는 공간을 바라봤다.
니가 왜 거기 있어?
어떻게 크리스 제리와 함께 할 수 있는 거지?
그렇게 무시했던 다온이, 오늘 이 클럽의 주인공이 되다니.
뭣보다, 엇박자가 불쾌해질 만하면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예술적인 훅.
그 훅이 터지는 순간 여지없이 뻗는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이,
이 열기를 이끄는,
진짜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줬다.
이런 실력이 있었으면서 왜?
판에 박힌 리스트와 퍼포먼스.
잘 입력된 컴퓨터 같은 인형.
그냥 예쁜 애.
아,
어쩌면, 그녀를 옭아맸던 것은, 그런 퍼포먼스에 익숙해진 ‘우리’였을 수도 있었다.
‘여기선 페이드 아웃을 걸어서 스크래칭 하고, 이건 공식이니까 외워.’
‘여기서 베이스 튕기면서 섞으면 안 돼?’
‘그럼 곡이 겹치잖아. 공식이라니까?’
‘겹쳐도 신나게 겹치면···.’
‘아! 몰라! 맘대로 해.’
어제,
믹싱이라며 가르친, 판에 박힌 테크닉이 떠올랐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곡을 가지고 놀아야 할 자신들이,
답이 정해져 있다는 듯,
수학처럼 공식을 만들었다.
‘팔리는 음악.’
경진의 얼굴이 빨개졌다.
어지럽게 마구 날뛰는 리듬 속, 갑자기 터지는 훅.
그녀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믹싱.
‘내가, 쟤를 무시했어?’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엄청 부끄러운데도,
몸은 리듬에 맞춰 움직이니,
더 부끄러워졌다.
***
크리스 제리는 직감했다.
이런 공연은 다신 없을 것이다.
다시는, 자신의 리듬이 이렇게 날뛰지 못할 것이다.
무대를 경험하는 횟수가 늘어나며,
어쩌면, 겁쟁이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런 리듬은 싫어할 거야.
여기서는 예상하기 쉽게···.
이 곡은 이게 포인트니까.
그렇게,
정확하게 짜인 리믹스. 그들이 원할 때, 터트리는 칼 같은 훅.
그게 최고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이 최고였다.
따로 노는 리듬과 멜로디에 정신 차리지 못하는 플로어.
자신에게 내려진 미션.
허둥대며 따라오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모두가 다른 움직임을 하며 어리둥절할 것이다.
자신 있게, 리듬을 흔들어 댈 수 있었다.
저 여신이 있으니까.
절대로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무대.
저 위의 그녀는,
자신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 마구 엇갈리던 리듬과 멜로디를 모아,
모두의 심장을 동시에 움켜쥐었다.
마치, 지금 터지니까 준비하라는 듯.
그녀가, 그렇게 신호하면, 팡 터트렸다.
그러면 여지없이,
파트너가 자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잘했어!’라고.
저 칭찬이 받고 싶어서, 리듬을 더 흔들어 댔다.
엉망진창,
굉장한 공연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온전히 그녀를 믿었기에 가능한 믹싱.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준, 저 여신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지금 당장!
디제잉 머신을 발로 밟고, 그녀를 향해 팔을 벌렸다.
그리고,
플로어를 가득 메운 젊은 영혼들을 향해 다이빙했다.
***
2층 디제잉 박스 앞의 난간은 허리 높이였지만, 앞에 세워진 투명 아크릴이 조금 높았다.
난간을 밟고,
낑낑대며 넘어야 할 만큼.
크리스 제리가 자신을 향해 팔을 벌리고 다이빙했다.
다온은 저 부름을 거부할 수 없었다.
‘어. 높다.’
급한 대로 매달렸지만, 겁이 덜컥 났다.
플로어에 있는 수많은 손이 받아줄 테지만···.
‘아. 꿈이지.’
맘 놓고 뛰어내리려는데,
사자와 토끼가 먼저 뛰어내렸다.
그리고,
자기처럼 아크릴에 매달려, 겁을 집어먹은 남자가 보였다.
‘C2K?’
어디서 떨어지는 꿈은, 키가 크려는 거라고 했던가?
아래 사자와 토끼를 보니,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오늘 꿈은 참 다이나믹 하구나.
‘크리스 제리’에,
‘C2K’라니.
평소 가장 좋아했던 DJ와,
평소 가장 재수 없었던 가수.
순위 조작?
꿈에서라도 한 방 먹이고 싶었다.
그 C2K의 덜미를 잡았다.
황망한 그의 표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다온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아래를 향해 확 밀어버렸다.
‘나도 가요.’
그녀도,
플로어에 만들어진, 수많은 손의 파도 속으로 다이빙했다.
오늘 꿈은 참 실감 나네.
파도를 타고, 크리스 제리에게 옮겨졌다.
이게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는 절대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고 있었다.
***
‘아차.’
설마 저 높이에서 뛰어내릴 줄이야.
디제잉 박스를 비추는 조명 밖에서 대기하던 경호원들이 당황했다.
서둘러 달리면, 지하에서 저 인파를 뚫고 움직이는 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빨리 클럽 입구로 움직여야 했다.
얼른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잠시만요.”
이 클럽의 보안 팀장이라고 했던가?
그가 경호원들을 막아섰다.
“어···. VIP맞습니까?”
분명 C2K와 자신들이 함께 들어오는 것을 봤을 텐데?
“회원 카드 확인 좀 할 수 있겠습니까?”
“아까 C2K와 함께···. 아. 테일씨!”
경호원 하나가 룸에서 나오는 테일을 발견하고 화색을 띠었다.
“저분께 여쭤보면···.”
보안 팀장이 고개를 돌리자,
테일이 몸을 돌려 외면했다.
“음···. 이 플로어는 VIP전용인데···. 어떻게 들어오셨는지, 얘기를 좀 들어봐야 하겠습니다.”
경호원 하나가 황급히 아래를 바라봤다.
사자와 토끼,
그리고, C2K는 입구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
경호원이 이를 악물었다.
***
“오! 포르쉐 또 지나갔어. 아빠!”
치킨집 창문에 붙어있던 아들 서준이 상정에게 외쳤다.
“오. 오늘은 몇 대 째야?”
“아까, 벤틀리도 봤고, 포르쉐 두 대랑, 마세라티 한 대. 오늘은 네 대네.”
최근 비싼 외제 차에, 푹 빠져 있는 아들이었다.
“아빠. 나중에 뭐 사준다고?”
“람보르기니!”
상정이 피식 웃었다.
“엄마는?”
테이블을 정리하던 선하가 소리쳤다.
“페라리!”
주방에서 나온 상정이 서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들, 돈 많이 벌어야겠네.”
“나중에 말 바꾸면 안 돼!”
“각서 써서 변호사 공증받아야 한다니까?”
상정이 단호하게 말하자,
“그건 좀 너무하지 않으십니까? 아버지?”
‘어. 그건 하기 싫구나.’
두 부부가 흐뭇하게 웃었다.
“오! 롤스로이스다! 와! 대박! 이 후진 동네에서 롤스로이스라니!”
서준이 화들짝 놀라 창문에 코를 묻었다.
“어?”
“왜. 아들?”
“가게 앞에 주차했는데?”
“응?”
상정이 창밖을 내다봤고,
살면서 몇 번 보지 못한 번쩍거리는 승용차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내렸다.
“와. 진짜 며칠 만에 다 모였네···.”
상정이 방긋 웃었다.
***
“도유야! 이번만 좀 도와주지?”
“도유야?”
“아! 도유님! 아니. 세계적 락커 임도유님!”
팔짱을 낀 임도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 앉은 PD는 대학교 선배.
이럴 때가 아니면, 골려 먹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근데, 그 경연이라는 게 참···.”
“야. 너도 이제 빌보드에 오른 이상 매니아층 말고, 일반 대중한테도 좀 가깝게 가야 할 필요가 있어.”
“뭐. 또 예능 얘기야?”
“너 혼자 잘되라고 하는 거냐? 혹시라도 밀어주고 싶은 애들 생기면, 밀어줘야 할 거 아냐? 니 인지도가 받쳐 줘야 그것도 하지.”
“흠···.”
몇 번이나 섭외가 들어왔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재밌게 놀 자신은 있었지만, 억지 상황을 연출하며 노닥거리는 게 성격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이 선배는 그나마 음악과 관련된, 경연 프로그램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떠올리자, 임도유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필이면 애들 데리고···.”
“그래서, 너한테 부탁하는 거잖냐. 워낙 니 이미지가 개판···. 아. 취소.”
“늦었다.”
임도유가 인상을 팍 썼다.
밴드위주의 경연은 이미 있었다.
임도유가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적도 있었고, 신랄하게 까대는 독설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번은 좀 꺼려졌다.
프로그램 이름부터 ‘고등 밴드’라니.
애들을 상대로, 맡는 악역은 조금 부담됐다.
“이거 잘못하면, 나 진짜 나락 간다.”
“뭐, 이미지로만 따지면, 더 떨어질 것도···. 아. 이것도 취소.”
“에이씨!”
“야! 형이야 형!”
임도유가 손을 올리자, 문철민 PD가 과장된 몸짓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연신 고개만 끄덕이던 작가가, 서둘러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확보했습니다. PD님!”
“잘했어!”
둘이 하이파이브 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임도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상은 ‘또라이’천지였다.
문득,
음악에 있어서는 최고의 ‘또라이’였던, 꼬맹이가 보고 싶어졌다.
‘언제 모습을 드러낼 거냐.’
분명 엄청난 파도를 몰고 올 것이다.
생각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 파도에 동참할 수만 있다면···.
“오. 썩소! 그거야! 내가 원하는 게!”
“확! 씨!”
카메라 셔터음이 들렸고,
“두 장째 확보입니다.”
“잘했어!”
임도유는 낄낄대는 혼성 ‘또라이’들을 보며, 나지막이 한숨 쉬었다.
체념하며 커피를 들던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응? 이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