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마침표 (1)
세계 최대의 음악 축제.
다양한 배경과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때 ‘시’에서 강등당할 뻔했던 인구 4만의 도시로 몰려들었다.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11월 말.
이곳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의 열기로 후끈할 정도였다.
3회차에서 이미 ‘세계 최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가장 큰 후원사인 창천은 더 크게 일을 벌였다.
태각산을 둘러싼 주변 모든 곳에 스테이지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마치 태각시 전체가 축제의 장이 된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결국 축제의 중심은 K2 리조트였지만, 굳이 그곳까지 오르지 않더라도 주변 곳곳에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에,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도 태각시로 몰려들었다.
이제는 이 축제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버린, 하늘 높은 곳에 설치된 LED 불꽃이 화려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거대 비행선이 저 높은 하늘에 떠 있었고, 그랬기에 훨씬 더 높고 거대하고 화려한 연출이 가능했다.
태각시 전체를 울릴 정도의 굉음이 모든 스피커를 때렸고, 수백 대의 드론이 만들어 낸 환상적인 에어쇼와 함께 모든 불꽃이 일제히 터졌다.
그곳에 오르지 않은 이들도 확연히 들을 수 있는 함성.
지상에서 즐거움을 즐기던 사람들도 하늘 위 불빛들을 바라보며 환호를 질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도시 전체가 들썩이는 듯했다.
이번에도 사람들은 유료 영상으로 축제를 관람할 수 있었다.
이미 단일 콘텐츠 최다 동시 접속자 수로 기네스에 오른 영상 관람 시스템이었다.
이젠 현장 수입보다도 영상 스트리밍 수입이 월등하게 높을 정도가 되었다.
빌보드 차트 상위권 아티스트들을 그대로 옮겨 온 역대급 라인업과 예고 없이 갑자기 터지는 유명인들의 이벤트들로 사람들이 영상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들었다.
특히 이젠 한국을 대표하는 기술 중 하나가 되어 버린 양방향 네트워크 동시 스트리밍 서비스는 그 지역에만 있을 수 있다면 거의 딜레이가 없는 영상을 시청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현장을 함께 느끼고 싶었던 사람들이 티켓을 사지 못했음에도 태각시로 모여든 것이다.
페스티벌과 함께할 관객 수는 추산 200만 명이었고, 티켓 없이 태각시로 모여든 사람은 대략 그 두 배 정도나 되었다.
명실공히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문화 축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전야제부터 뜨거웠으며, 오프닝에 등장한 월드 스타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였다.
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공연이 곳곳에서 계속되었다.
매일 새롭게 오픈되는 무대들에는 장르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하나하나가 단독 콘서트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무대였다.
미칠 듯한 슈퍼스타들의 러쉬에 사람들은 딴생각할 겨를도 없이 스테이지들을 쫓아다니기 바빴다.
그래서 축제 시작 전까지 사람들을 갸우뚱하게 했던, ‘하늘과 맞닿은 그늘’이라는 이벤트는 깨끗하게 잊힌 지 오래였다.
가장 위에 있는 메인 스테이지까지만 오픈되어 있었기에 그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일도 없었다.
뚜껑을 연 축제가 예상보다 훨씬 더 엄청났으니 그런 부정적인 이슈는 자연스럽게 묻힌 것이다.
아래가 열광에 빠져 허우적댈 때, 가장 높은 곳의 케이블카는 초청된 사람들을 나르느라 분주했다.
“확실히 굉장한 축제군.”
케이블카의 창문으로 아래를 바라보던 국제 정신 의학 협회장 골디 램파드가 혀를 내둘렀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다더니 상상 그 이상이네.”
미국 정신 의학 협회장 로버트 휘스터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들은 이번 축제에 초청된 세계에서 가장 큰 정신 의학 단체의 수장들이었다.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이라는 ‘정신 질환 진단 및 치료 통계 편람’을 발행하는 주축이었다.
이번 윤성환 박사의 논문에 가장 부정적인 의견을 냈던 단체이기도 했다.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의 재벌 기업인 청강의 엄청난 후원금이 아니었다면 사실 움직일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던 골드 램파드였다.
그랬기에 아직도 애매한 스탠스를 유지하는 친구가 못마땅한 그였다.
“윤 박사는 유능한 사람이야. 그가 조작 같은 수를 썼을 리는 없어. 뭣보다 얻을 게 없지 않은가. 다만, 내가 자네와 같은 의견을 낸 것은, 모든 사실이 증명된다고 하더라도 광범위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이야.”
“그럼 자네는 그 사이비 종교 같은 영상을 믿는다는 말이지?”
“경증 환자의 차트를 조금 과장했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노골적인 트릭은 아니란 거지.”
“흠…….”
“뭐, 자네도 궁금했으니까 직접 따라온 것 아닌가?”
골디 램파드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사실, 궁금한 것보다는 그 사기 행각을 파헤치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이 의학적 가능성을 뭉갰다는 의견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으니까.
자칫 이대로 흘렀다간 악역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중증 우울 장애 환자를 열 명이나 추려서 함께 온 것이다.
앞의 친구도 자신의 환자 다섯을 데려왔다고 했다.
그리고 이 사안을 궁금해하던 의학 전문 기자도 몇 데려왔다.
아무래도 이번엔 확실한 공증을 받아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래야 은근슬쩍 자신들을 흘겨보던 의심스러운 눈빛들을 치울 수 있었다.
아마도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음악만으로 정신 질환이 치료된다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바글바글한 아래 세상을 바라봤다.
저들의 즐거움과 행복들이 하늘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문득 뒤를 돌아보자.
또 다른 케이블카가 보였다.
그 안에는 아래 세상과는 완전하게 동떨어진 이들이 타고 있었다.
우울 장애란 명백한 질병이었다.
인간의 감정, 행동 등을 결정하는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의 불균형에 따라 발생하는…….
의학적으로도 충분히 검증된 뇌 질환이었다.
경증의 환자 정도에서나 음악이나 운동 같은 것들을 권하고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처방이었다.
지속적인 약물 복용과 상담으로도 완치가 어려운 질병인데, 음악으로 완치가 가능하다는 말을 믿으란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연구를 발표해서 괜히 분란만 일으킨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난, 절대로 믿지 않네.”
골디 램파드는 굳은 표정으로 가까워지는 축제 현장을 바라봤다.
마치, 사기꾼 초능력자들을 사냥했다던 제임스 렌디가 된 느낌이었다.
이미 결과를 확신한 그였다.
* * *
고급 슬로프에 설치된 무대에서 축제를 즐기던 남자가 가장 위에 설치된 거대한 메인 스크린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메인 스테이지에 뭐 있었나?”
“응? 잠깐만… 없는데? 있다가 밤에 스래쉬 블루 공연이… 어? 저거 뭐야?”
“저거…….”
“맞지?”
사실, 3년간 너무 많은 슈퍼스타가 쏟아졌다.
그래서 그만큼 덜 절실해졌는지도 모른다.
1년 정도는 그리워하기도 했고, 기다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즐길 거리가 넘쳐났다.
어느 순간 그의 영상을 찾아보는 행동을 멈췄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잊지는 않았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그였으니까.
그렇기에 저 멀리 스크린에 뜬 토끼 가면은 심장을 두근거리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야! 가 보자!”
언제나 예고 없이 나타나는 그였다.
“와. 이거 진짜면 대박인데?”
대화를 나누던 둘이 사람들을 헤집고 움직였다.
그리고 뒤늦게 그 화면을 확인한 사람들도 웅성대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메인 스테이지 주 컨트롤 타워의 앨런은 텅 빈 객석을 마주한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토록 고민하던 마침표를 찾았다.
다만 아직 찍지는 못했다.
-그쪽은 준비가 다 됐다고 합니다. 앨런!
“네. 상영 시작하겠습니다.”
무전기에서 들려온 태강의 목소리에 앨런이 영상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해맑게 웃는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노래했다.
생명은.
태어난 자체만으로 그 가치는 이미 증명된 것이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등장 초기 강남역에서 찍힌 영상으로 다큐멘터리는 시작되었다.
고귀한 생명의 시작이 울려 댔다.
한국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부른 노래는 어쩌면 그의 음악 철학 전체를 관통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오프닝 음악이었다.
그리고 응수동 축제의 옥상 공연 영상부터 KSB 측에서 제공한 그의 유일한 공중파 방송과 1회차 하늘 아래 음악 축제, 겨울 바다 공연, 삼일절의 무대, 끝으로 미국의 월드 뮤직 페스티벌까지, 그의 엄청난 음악 여정이 다이내믹하게 이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
약 8분 정도였다.
따로 안내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메인 스테이지의 관객석은 가득 찬 상태였다.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이렇게나 많은 것이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올라왔다.
숨을 들이마신 앨런이 컨트롤 패드를 눌렀다.
조잡한 화질의 영상이 흔들리며, 종이봉투를 뒤집어쓴 밴드가 나타났다.
악기의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연주 실력도 – 기타를 제외하고는 – 썩 듣기 좋은 정도는 아니었으며, 음질도 엉망이었다.
잠깐 유투부에 떴다가 사라졌기 때문에 소문은 들었지만, 직접 본 사람은 몇 되지 않는 그 영상이었다.
갸우뚱하던 사람들이 음악을 가만히 듣다가 그제야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시계태엽’
노래 자체는 정말로 유명했지만, 그 원곡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공연 수준은 엉망이었다.
사전 지식 없이 그냥 이 영상을 봤다면 피식하고 넘겨 버릴 정도로.
그 장엄한 목소리는 엉망인 음질 때문에 잘 표현되지도 않았다.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가톨릭 성가 정도로만 인식될 수준이었다. 그것도 전체적으로 상당히 어설픈 연주와 함께였다.
-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곡이 끝났고.
갑자기 화면 밖에 있었던 특별한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며 마구 몰려들었다.
노숙인들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세상에서 소외되어 시간이 멈춰 있던 사람들이 삶을 되찾는 순간이 여과 없이 펼쳐졌다.
리버풀의 기적은 워낙 유명했기에 잘 알고 있었지만, 저 장면은 모든 사람이 처음 보는 것이었다.
훨씬 더 날것이었고, 근접해서 찍혔기에 그들의 표정이 더욱 자세하게 보였다.
솔직히 음악은 굉장하지 않았다.
다만 몇 안 되는 노숙인 관객들의 그 희망찬 얼굴을 목격한 사람들은 뭔지 모를 뭉클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겐 인생의 전환점과도 같았습니다. 망가졌던 삶이 새롭게 태어난 거죠.
-그날 아내와 아이에게 돌아갔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선물받은 것 같았어요.
-전 그 공연을 만나고 다시 태어났어요.
-새로운 삶…….
-다시 태어난…….
-또 다른 탄생…….
그날 관객이었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의 앞에서 사라진 이후 그가 해 왔던 작은 공연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 * *
5분 전.
“어떻게… 진행합니까?”
“각 무대 이탈률이 어떻게 되지?”
“지금 공연 중인 스테이지 대부분이 60% 이상입니다.”
“후…….”
“그…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수치가 만들어지기는 했는데…….”
이 축제의 총책임자인 김홍렬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처음 이 기획안을 받아들었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만일 메인 스테이지의 영상이 상영된 이후 각 무대의 이탈률이 50%가 넘어간다면 모든 축제의 포커스를 그쪽으로 옮긴다는 기획이었다.
거기다 연출의 결정권도 함께.
조건부로 전체적인 축제의 연출 자체를 바꾼다니…….
동네 칠순 잔치도 아니고,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축제를 즉흥적으로 커버할 수 있을 리가…….
빙글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후배를 노려봤다.
“태강아…….”
“네. 선배님.”
“이거 확실히 할 수 있는 거냐?”
아무리 KSB에서 날고 기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잘 세팅된 방송국에서 만들어진 스킬들일 것이다.
무대 연출계에서도 톱에 올라 있는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도 앞이 막막한데, 과연 이런 급박한 전개를 감당할 깜냥이 있긴 한 걸까?
“선배, 뮤직 스테이션 알죠?”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회자되는 전설의 생방송으로 각인된 JH의 데뷔 무대.
그 굉장했던 즉흥 무대를 김홍렬이 모를 리 없었다.
“그때 거기 PD 장창이랑 백민부 둘 다 제가 키운 애들이거든요?”
정태강이 슬쩍 메인 컨트롤러 앞을 차지하며 씨익 웃었다.
“오늘은 우리가 전설이 될 겁니다.”
뭘 믿고 저렇게 신난 걸까.
김홍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각 무대를 뜨겁게 달구던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하나씩 마무리되었고, 인이어를 통해 미리 고지되었던 ‘상황 B’가 전달되었다.
마지막 곡을 부를 때 관객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이미 확인했기에 예상했던 결과였다.
누군가는 항의할 만한 데도, 무대 위에 서 있던 모두는 당연하다는 듯 옆으로 비켜섰다.
이 세상을 음악으로 물들인 최초의 시작점인 ‘그’를 향해 불만을 표출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도 관중이 되어 무대 위에 털썩 주저앉아 스크린을 바라봤다.
곧, 메인 스테이지에서 상영되는 영상이 모든 스테이지의 스크린에 띄워지기 시작했다.
* * *
‘어…….’
공연을 요청했다면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초대’였다.
조금 갑갑하기도 했던 차였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린 것이었다.
은서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기도 했고, 이젠 많이 건강해진 아내에게 이곳을 보여 주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러운 전개라니…….
-원래 갑작스러워야 훨씬 더 재밌는 법이거든…….
항상 자신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건 맞지.’
미리 알았다면 이렇게까지 가슴이 뭉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혁이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래서 어디지?’
이렇게까지 했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무대가 있다는 것일 터.
‘메인 스테이지?’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세컨드 스테이지가 있는 중급 슬로프 쪽이었다.
위로 올라가는 무빙워크를 바라봤다.
아직도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흠…….’
진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남이 마련해 준 무대에 얌전히 올라가는 것은 역시 성미에 맞지 않았다.
무대 위에 앉아 화면을 바라보는 – 방금까지 공연했던 – 밴드를 바라봤다.
스톤 브레인이라는 헤비메탈 밴드였다.
제법 신나게 놀기에 구경하던 중이었다.
진혁이 발걸음을 옮겼다.
무대에 다다를 무렵.
갑자기 들려온 노래에 멈춰 섰다.
그리고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봤다.
오늘 두 번째 만난 갑작스러운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