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마침표 (2)
‘무대는 어디지?’
처음 확 트인 이 구릉지에 도착했을 때, 골디 램파드가 가장 궁금했던 것이었다.
분명 그 논문에 나왔던 그 가수가 노래할 테고, 그러려면 무대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그저 넓은 공터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띄엄띄엄 모여 있었고, 그 어디에도 스피커는 보이지 않았다.
미국 정신 의학 협회장 로버트 휘스터도 자신의 환자들과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그때,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느 방향으로도 시선을 줄 수가 없었다.
처음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곧 이 공간 모든 곳에서 그 소리들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골디 램파드는 서둘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살폈다.
윤성환 박사의 말로는 경증 이상의 우울 장애로 판정받은 한국 환자들 이천 명도 초대했다고 했었다.
‘쇼’라면 지금부터 모든 상황을 체크해야 했다.
자신이 데리고 온 직원들이 알아서 핸드폰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
아무리 잘 짜였더라도 어딘가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욱 유심히 사람들의 얼굴을 읽었다.
평생 수많은 정신 질환의 사람들을 만나 왔던 그였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행동, 표정, 눈동자의 움직임만으로도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했다.
일단 주변은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는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확실해 보였다.
불안해하는 눈빛들과 심한 경우엔 손을 떨고 있었으며, 몸짓 하나하나가 일반인과는 묘하게 달랐다.
만일 저 모든 것이 만들어진 연기라면, 그건 그것대로 대단할 정도였다.
우선, 주변의 사람들만큼은 증상의 경중을 떠나서 꾸며지지 않은 환자임을 확인했다.
뭣보다 그들도 불안한 눈빛으로 노랫소리의 진원지를 찾고 있었다.
적어도 사전에 어떤 언질을 받지는 않은 것 같았다.
자신의 환자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그보다…….
‘이건 도대체 무슨 노래야?’
그리 잘 부르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참 밋밋한 노래였다.
도저히 좋은 노래도 아니었고, 부르는 이들도 일반인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마치 주문 같은 웅얼거림이 계속됐다.
기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직원들이나 동료 뇌의학 박사들도 고개를 갸웃하는 중이었다.
그 논문에 첨부된 영상에서도 밋밋한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직접, 그것도 일반인들의 목소리로 들으니 더욱 아리송했다.
그렇게 동료들과 의아한 눈빛을 교환하다가 문득 자신의 환자들을 바라봤다.
‘어?’
아마도, 같은 노래가 두 번째 반복되었던 때였던 것 같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본 골디 램파드의 눈이 커졌다.
세상의 모든 무료함과 우울감을 담고 있던 얼굴들에서 확연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누군가는 울음을 터뜨렸고, 누군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으며, 누군가는 환희에 가득 찬 표정으로 그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평생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곳에 몸담아 왔다.
완치된 이들도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극적으로 한순간에 감정의 변화를 일으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노랫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골디 램파드가 황당한 눈으로 동료 박사들을 바라봤다.
그들 역시 자신과 같은 표정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사기일 거라고 여겼었다.
그랬기에 지금 그가 느낀 충격은 더욱 컸다.
‘어… 어떻게…….’
자신이 데려온 중증 우울 장애 환자 전원이 울거나, 웃거나, 노래했다.
그중엔 몇 년간의 약물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았던 이도 있었다.
골디 램파드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기… 기적……?’
그 논문에서 가장 비웃었던 단어였다.
의학 논문에 ‘기적’이라는 단어라니…….
하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보다 더 괜찮은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들에게는 그저 그런 흥얼거림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는 엄청난 울림을 줬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뭣보다 그 논문과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논문에서 말했던 ‘그 가수가 노래하는’이라는 전제가 바뀌었다.
그 말인즉슨 마지막까지 꼬투리 잡았던 ‘광범위한 치료 효과’역시 해결되었다는 말이었다.
윤성환 박사의 논문 그 이상이 증명된 것이다.
어느새 이 공간은 그 노래들로 가득 찼다.
스피커 하나 없었지만.
사방이 탁 트인 탓에 걸리는 장애물 하나 없이 세상에 마구 뿌려졌다.
기적의 노래가.
* * *
스톤 브레인의 리더 최옥환은 스크린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 그 노래들이 흘러나올 때만 해도 고개를 갸웃했었다.
잘 부르는 것도 아니었고, 굉장히 단순한 멜로디의 밋밋한 반복이었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관객들의 반응도 자신과 비슷한 듯 술렁였다.
스크린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이 계속해서 비쳤다.
멍했고, 초췌했다. 확실히 뭔가가 빠져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그 대단치 않은 노래는 계속됐고.
의아함이 쌓이고 쌓일 때쯤.
‘어?’
그들의 표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감정의 탄생? 부활?’
한두 명이 아니었다.
한 번씩 드론에 잡힌 풀샷을 봤을 때, 족히 몇천 명은 되어 보였다.
그들 모두가 그런 변화를 보여 준 것이다.
일종의 플래시몹인가 싶었지만, 그렇게 보기엔 저 극적인 감정의 변화가 너무나도 실감 났다.
진심을 담은 목소리들이 모이고 모이자 어설프고 단순하던 멜로디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해졌다.
마치, 저 위에서 감정으로 만들어진 산사태라도 난 것만 같았다.
어느 순간 화면에 가득 찬 이들 모두가 노래하고 있었다.
지금 이 스크린 옆의 스피커에서도 그 노랫소리는 들렸지만…….
옥환이 고개를 들어 저 위를 바라봤다.
이미 그들의 목소리는 그대로 여기까지 전달되고 있었다.
옥환이 눈을 비볐다.
저 위에서 빛이 쏟아져 내려오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술렁이던 관객들도 숨을 죽인 듯 조용해졌다.
누군가의 죽어 있던 감정이 깨어나는 순간을 실제로 목격한다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일이었다.
옥환의 입이 달싹였다.
저 성스러운 소절에 목소리를 더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관객석을 돌아봤다.
이미 그들의 입도 열려 있는 상태였다.
* * *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축제, 하늘 아래 음악 축제의 영광스러운 총책임자 – 조금 전 그 권한을 뺐기기는 했지만 – 김홍렬이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다.
설마 했지만, 정말로 ‘페이즈 2’에 다다랐다.
“이쯤이면 해도 되겠죠? 선배님?”
정태강의 말에 김홍렬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컨트롤 테이블의 메인 스피커 볼륨 바에 손을 올렸다.
-오늘은 우리가 전설이…….
조금 전 후배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볼륨 바 바로 옆 빨간 버튼을 꾹 눌렀다.
그 어떤 공연에서도 건드려 본 적 없는 버튼은 새것처럼 빡빡했다.
연결된 모든 스피커의 전원을 내리는 버튼이었기 때문이다.
바뀐 기획서의 두 번째 연출 조건.
관객들의 목소리가 축제 현장에 가득 차게 된다면…….
역사상 세상의 그 어떤 음악 축제에서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야…….”
“네. 선배님.”
“최고네…….”
“물론이죠.”
정태강이 방긋 웃었다.
* * *
스피커가 꺼진 줄도 몰랐다.
이 산에 모인 모두가 목청껏 저 멜로디를 따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옥환은 스피커 바로 옆이었기에 뒤늦게나마 눈치챈 것이었다.
스피커를 바라보던 옥환이 무대를 향해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봤다.
“어… 어?”
화들짝 놀란 최옥환이 벌떡 일어났다.
자신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그’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입을 오므렸다.
“아… 네!”
무대 위에 퍼질러져서 스크린을 바라보며 노래하던 스톤 브레인의 멤버들이 서둘러 자세을 바르게 했다.
“편하게 있어도 돼요.”
진혁이 해맑게 웃으며 그들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스크린을 바라봤다.
정말로 생각지도 못했다.
자신이 그들을 위해 불렀던 그 노래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자신 없이도 그 목적을 이뤄 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훨씬 더 크게.
문득, 강남역 앞에서의 버스킹이 떠올랐다.
군중들의 목소리가 모여 퍼져 나갔던 그날의 결과를 자신은 확인하지 못했었다.
산모들이 모여 있던 산부인과를 떠올렸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닿을 수 없었던 뱃속 아가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산모들의 목소리였다.
그 콘트라베이스의 소리마저 삼켜 버릴 정도로 울려 퍼졌던 거센 희망의 물결.
지금 이 산을 감싸 안은 목소리들도 그랬다.
결국 진짜 기적은 그들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모인 그늘들에 환한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저 기적의 물결이 모이고 모여 거센 파도가 될 것이다.
마구 몰아치며 세상에 퍼질 테고.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마치, 불멸의 존재처럼.
인간의 삶이 이어지는 한 영원히.
진혁의 머릿속에 막혀 있던 무언가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저 음악을 만들면 된다.
결국 슬픔도, 괴로움도, 즐거움도, 행복도 그들의 몫이니까.
어제는 즐거웠다가 오늘은 슬플 수도 있고, 내일은 행복하게 될 수도 있다.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음악들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같은 이들끼리 어울려 노래하게 될 것이다.
삶은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다.
삶이란 말 그대로 진짜 ‘라이브’니까.
모두가 즐거운 세상이란 틀린 것이었다.
모든 감정은 소중하다.
슬픔 뒤에 찾아온 행복이 더 크고, 괴로움 뒤에 찾아온 즐거움이 훨씬 더 값지다.
깊은 슬픔에 빠져 있던 저들이 되찾은 행복한 미소가 훨씬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처럼.
“멋지지?”
스톤 브레인의 멤버들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스크린 속에 그들의 환한 얼굴이 비치다가 오버랩되며 이 축제 전역이 한 화면에 담겼다.
산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아니, 어쩌면 태각시 전체가 울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오늘은.
우울한 이들을 위한 파도였다.
앞으로 또 어떤 이들을 위한 파도를 만들어 줄까?
오늘 이곳에 진혁이 오를 무대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껏 해 온 공연 중 가장 굉장한 무대가 펼쳐졌다.
스크린에 가득 찬 사람들을 배경으로 글자가 타이핑되기 시작했다.
-당신이 만들어 낸 기적입니다.
진혁이 해맑게 웃었다.
이건 좀, 낯 뜨겁네.
* * *
「제니스와 칼리는 어디에!」
-하늘 아래 음악 축제 무대에 서지 않았던 제니스와 칼리가 아프리카 내전국 수도에서 깜짝 평화 콘서트를 열며 그들의 전쟁을 중재하려는…….
「음악으로 세계에 우뚝 선 한국 의학.」
-국제 정신 의학 협회에서 발행되는 개정판 DSM(정신질환 진단 및 치료 통계 편람)에 한국의 윤성환 박사가 연구한 ‘우울 장애에 적용된 음악 치료’라는 논문이 실리게 되며…….
「태교를 넘어서 태아의 건강까지 책임지는 음악.」
-그간 보류되어 왔던 김록영 산부인과 전문의의 ‘음악과 태아의 상호작용’이 재조명되어 이젠 음악이 의학계에 있어서…….
「듣기만 하는 공연의 시대는 끝났다.」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무대가 많아지며 공연의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함께 즐기는 문화가…….
「가장 작은 곳에서 열린 가장 위대한 무대.」
-PTSD를 앓고 있는 소방관들 앞에 깜짝 등장한 조진혁 씨의 노래가 응수동 축제에서 등장해 또다시 기적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괴물 신인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정체.」
-음원도 내지 않고 홍대를 휩쓸었던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정체가 바로…….
「또 터졌다. ‘인간 회사’ 선행의 끝은 어디인가.」
-인간 회사의 기부 금액이 또다시 역대 최고를 갱신하며 올라온 공지 내용이 화제가 되며…….
「조진혁 그는 진정 단군신화를 재현하려는 것인가.」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이라는 이념을 공지에 올리며, 예로부터 한민족은 오지랖으로 완성된 민족이라는 말과 함께…….
「진정한 라이브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음악 프로그램.」
-이번 주 뮤직 톱 텐의 시청률이 30%에 육박하며 OTT 서비스에 밀려 찬밥 신세가 되었던 공중파 프로그램들을 함께 견인하는…….
「앨런 무어의 다큐멘터리 전 세계 동시 상영 결정.」
-조진혁의 음악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기적의 천재 뮤지션’이 결국 전 세계 모든 미디어에 동시 상영을 결정했다. 각종 OTT 서비스 채널에도 같은 날 공개되며 이미 대중들에게 알려진 영상 외에도…….
* * *
“뭘 그렇게 프린트까지 해서…….”
프린트된 기사를 정성스럽게 오려서 클리어 파일에 넣던 윤서연이 방긋 웃었다.
“오빠.”
“응?”
“언제까지 노래할 거야?”
진혁이 창밖에 펼쳐진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봤다.
“전 세계인이 한곳에 모여서 동시에 점프할 때까지.”
둘이 손을 꼭 잡았다.
“진짜 흔들리는지는 확인해 봐야지.”
진혁이 서현을 바라봤다.
“재밌겠지?”
“응!”
둘은 동시에 해맑게 웃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