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21
21화. 알 것 같아
녹초가 된 제니스와 멤버들이,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방송국 기자들의 방해가 있었지만,
제니스가 기타를 휘둘러, 카메라 두 대를 박살 냈고, 그들은 먼저 휴식을 챙길 수 있었다.
기자회견 일정을 조율하고, 박살 낸 카메라를 변상하느라 뒤늦게 도착한 ‘척’이, 멍한 눈으로 제니스를 바라봤다.
“어때?”
제니스가 하얀 이를 드러내자,
멤버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영상을 보면 깜짝 놀라겠지?”
누군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제니스가 놀라게 하고 싶은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내가 더 잘했어.”
엄청나게 신나 있어야 할, 그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점점 일그러지더니,
“씨발! 어떻게 만든 거야? 그런 곡을?”
결국, 그의 원곡이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자신이 세계 최고라 여겼던 천재는,
그 종이봉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신과도 같았다.
직접,
버스킹을 하고 나니, 더 확실해졌다.
그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있을까?
제니스가 보기에,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방금 공연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되새겼다.
그 완성되지 않은 투박한 음악은,
정말로 대단한 곡이었다.
자신들에 맞춰 편곡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체만으로도 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그는, 절대로 시간이 멈춘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제니스 본인이 그 감정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확연히 느껴졌던 것.
그는, 상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 그 감정을 짐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짐작만으로,
그들을 치유하는 음악을 만들었다.
제니스는 직접 톱니바퀴가 빠진 시계였던 적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같은 곡이지만,
더 많은 톱니바퀴를 선물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가 그 감정을 더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이었다.
연주한 횟수도 훨씬 많았고, 뭣보다 자신들이 그 곡을 마스터한 후였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거기다, 그 기적을 맛본 이들이 동시에 외치자 그 파동은 더욱 거세졌다.
짐작컨대,
감정의 중첩이, 그 노래가 가진 힘을 증폭시킨 것 같았다.
마치,
신의 언어와도 같았다.
오늘의 공연은 정말로 기적과 같았다.
하지만,
제니스는 구겨진 얼굴을 펴지 못했다.
이 곡의 주인은 명백히 그 종이봉투였기 때문이다.
결과가 아무리 좋더라도,
제니스는 그를 이긴 것이 아니었다.
“어때? 우리 앨범 발표할 수 있겠어?”
동료들을 돌아봤다.
하나하나가 세계 최고라 자부하는 인물들.
“이런 곡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최고라고 외칠 수 있겠어?”
멍한 표정의,
자칭 세계 최고들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
둥둥.
절망 가득한 공간에,
아주 낮은 현의 울림이 조심스럽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 울림은 너무나도 조심스러워서,
그 누구도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꽃밭에 앉아있다가 그 향기가 스며들 듯.
그 누구도,
그 소리를 이질적으로 느끼지 못했고,
마치, 한참 전부터 본래 울리고 있었다는 듯, 아주 천천히 공간을 채워갔다.
둥둥.
바닥부터 올라오는 저음이,
적막 가득,
불안한 심장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
록영은, 벽에 걸린 자신의 약력을 노려봤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의면 뭘 하는가.
이토록 무력한 한 인간인 것을.
똑똑.
오전 진료는 끝났을 텐데 울리는 노크.
“아. 선생님. 아직 안에 계셨네요? 하원 메디컬에서 왔습니다. 진료가 없으시다길래. 지금 초음파기기 점검해 드리려고···.”
아, 오늘 정기 점검이 있는 날이었던가.
록영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열심히 일하는 의료기기업체 직원의 등을 바라봤다.
“그, 이상은 없고요. 여기 케이블은 교체해 드렸고, 젤은 이번에 나온·········.”
희망이 무너지자,
직원의 말이 점점 흐려졌다.
“그럼 혹시라도 문제 생기면 연락하세요.”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던 직원이 밖으로 나갔다.
후.
자신도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분명 어두워져 있을 대기실이 두려웠다.
수도 없이 겪는 일이지만,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었다.
희망과 절망,
극과 극으로 치닫는 감정을 버텨야 했다.
이 직업은 방금 죽음의 절망을 마주하고도, 또 다른 희망에게는 웃어줘야 하는 직업이었다.
조심스럽게,
진료실 문을 열고,
조금 거리가 있는 대기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눈물이 범벅된 방금 그 부부가 바로 앞에 와 있었다.
또 어떻게 위로를 전해야 할까.
“서···선생님.”
도저히 저 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표정이 조금···.
“아기가···. 아기가 발로 차요!”
“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정도로 멎어가던 심장이, 다시 뛸 수 있을 리 없었다.
산모의 착각일 터.
그 희망을 다시 짓밟아야만 하다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산모님. 저는 의사로서···.”
“이거 보세요! 또 차요!”
록영은 멍하니 산모의 배를 바라봤다.
자신도 착각을 일으킨 것인가?
헐렁한 후드티였지만,
배 부분은 달라붙어 있어 그 굴곡이 선명했다.
“어···.”
“보셨죠?”
그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작은 생명에게 얼굴을 갖다 대었다.
볼에 전해지는 꿈틀거림.
‘저 살아있어요.’
아이가 인사했다.
“얼른 들어오세요!”
전문의가 된 후,
자괴감에 머리를 쥐어뜯은 적도 많았고,
마음이 무너져 엉망진창이 되었어도,
절대 눈물은 보이려 하지 않았었다.
예상은 빗나간 적이 없었고,
준비된 이별은 담담해야 했다.
자신마저 무너진 모습을 보인다면,
그 부모들은 맘껏 감정을 표출할 수 없을 테니까.
말라버린 줄 알았던,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직 아니야.’
얼른 아이의 상태를 봐야 했다.
산모가 언제 누웠는지,
초음파기기를 언제 준비했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검은 화면에, 흰색 생명이 가득 차 있었다.
시야가 자꾸만 흐려져 그 화면이 보이질 않았지만,
선명한 심장 소리는,
동동.
아주 잘 들렸다.
그제야,
참고 참았던 눈물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
대기실에 모인 모두의 심장이 무언가를 느꼈을 때는,
이미 그 리듬에 익숙해진 후였다.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이들은,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저는 잘 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잠잠하게 있던 아이들이 노크했다.
그렇게,
아이가 엄마를 안심시켰다.
걱정으로 얼룩져 마구 날뛰던 심장이 점차 가라앉았고,
다시 희망이 스며들자,
지금 낮게 공간을 울리는 소리가, 누굴 위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모든 산모는,
애써 외면하던 절망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같은 공간에 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차마 마주할 수 없었던 깊고 깊은 절망.
‘아가야. 힘내.’
낮게 퍼지던 음색 사이로, 허밍이 흘러나왔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응원가.
산모 하나가 저도 모르게 그 음을 따라 하기 시작했고,
그 옆의 산모도 흥얼거렸다.
절망을 마주했지만,
산모들의 표정엔 꺾을 수 없는 희망이 가득했다.
‘할 수 있어. 힘내.’
희망의 응원가가 대기실 가득 퍼졌다.
어느새,
낮게 깔리던 현악기 소리가 묻혀버릴 정도로, 거센 희망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희망이라서,
누구 하나 동참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주저앉아 흐느끼던 절망이 고개를 들었다.
더는 커질 수 없는 눈.
절망으로 얼룩졌던 얼굴에, 희망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여···. 여보. 움직여.”
어둡던 그 진료실 앞.
환한 빛이 내리쬐었다.
산모들이 환한 미소 지으며 눈물 흘렸고,
뿌연 시야 가득,
그 빛이 보였다.
흐려진 눈에 보인,
분명 환상일 터.
하지만,
환상치고는 너무나 선명한 광경.
정말로,
그곳에 광채가 내려오고 있었다.
산모 하나가 옆에 산모를 바라봤고,
그녀의 눈이 멍한 것을 확인하자,
지금 이 기적의 환상이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저도 모르게 그 빛에 고개를 숙였다.
***
진혁은,
산모들이 놀랄까,
아주 살짝 현을 튕겨봤다.
조금 늘어졌지만,
소리가 나옴에 안심했다.
아주 낮은 저음.
지금 딱 어울리는 악기였다.
먼저,
이 어둠을 걷어내자.
그래야 함께 응원할 수 있을 테니.
놀라지 않도록,
아주 자연스럽게.
먼저, 엄마들을 진정시켰고,
아가들에게 부탁했다.
작은 생명들은 너무나도 순수해서, 아주 작게 부탁했는데도 금세 고개를 끄덕여줬다.
산모들이 저마다 배를 만지는 걸 보니, 너무나도 기특했다.
자,
이제, 저 친구를 응원하자.
밝은 세상에서 기다리는 부모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자.
이 커다란 악기 하나만으로는 부족했다.
조금 더 큰 울림이 필요해.
베이스 음보다 조금 더 높은,
응원가치고는 너무 잔잔한,
콧노래가 시작됐다.
진혁 자신은 다른 심장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딸아이를 품었던 아내의 감정을 헤아렸을 뿐.
더군다나,
꺼져가는 또 하나의 심장을 부여잡고, 절망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저 절망을 짐작했을 뿐.
그래서,
이 울림이 전달되기 힘든 것인가?
저 감정을 잘 알았다면,
더 제대로 된 응원을 보낼 수 있을 텐데.
진혁은 이를 악물었다.
저 꺼져가는 심장에 닿기에는,
자신의 ‘짐작된 감정’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해왔듯,
그저 감정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
감히 짐작 따위로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자신의 짐작된 감정의 소리에 끼어든,
진짜 감정.
누구보다, 저 절망을 잘 이해하는 이들의 응원이 더해졌다.
그 응원은 점차 커졌고,
어느 순간, 진혁의 ‘짐작된 감정’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물결이 일어났다.
‘아···.’
진짜 감정이 향한,
그곳에,
빛이 내려왔다.
자신이 만든 응원가였지만,
그 응원가를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저 산모들이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진혁이 방긋 웃었다.
***
“그러니까, 제 방을 빌려달라는 말씀이시죠?”
짐짓 어른 흉내를 내는 서준이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아마도, 방세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고민중인 모양이었다.
흥미진진하게 둘의 거래를 바라보던, 상정과 선하가 미소 지었다.
‘그 삼촌 돈 많으니까, 맘껏 벗겨 먹으렴! 파이팅! 아들!’
“음, 서준이 차 좋아한다면서?”
충기삼촌의 말에,
이마를 톡톡 두드리던 서준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이미, 미니카는 넘쳐났다.
조금 더 큰, ‘다이캐스트’도 몇 개 있었다.
그런 서준이,
지난주 마트에서 발견한 람보르기니 ‘RC카’를 떠올렸다.
무려 10만 원이 넘는 가격.
부모님은 절대 사주지 않을 금액.
이번 크리스마스를 노리고 있었는데,
“적당한 차는 취급 안 합니다.”
서둘러 팔짱을 끼고,
밑밥을 깔았다.
“음···. 그렇단 말이지?”
충기가 눈을 흘겼다.
“요만한 차는 이미 많거든요.”
서준이 자기 손바닥을 펴 보여줬다.
“그거보다 크면 돼?”
“어···.”
흥정이 좀 쉬운데?
“이거보다 더요.”
자기 손바닥 두 개를 세로로 붙여,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흠. 그래? 알았어!”
충기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서준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오예! 카드구나!’
심장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그 ‘RC카’를 손에 넣는 것인가.
가늘게 뜬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충기가 주머니에서 꺼낸 주먹을 탁자 위에 올렸다.
“자. 숙박비.”
상정이 고개를 저으며 한 발짝 다가섰다.
“야. 카드 그냥 주면 안 돼. 얘 막 긁고 그런다. 같이 가서···.”
충기가 주먹을 펴자,
뭔가가 달그락 떨어졌다.
“시동 걸면 바로 압수. ‘배터리온’만 가능하고, 면허 딸 때까진 그냥 장난감이다.”
알파벳 ‘R’자가 정 가운데 선명하게 박힌, 버튼이 몇 개 있는 덩어리.
어리둥절한 서준을 바라보며,
충기가 입꼬리를 올렸다.
“니 방 빌려 쓰는 동안만 빌려주는 거다.”
상정과 선하의 입도,
떡 벌어졌다.
서준만, 이 물건의 정체를 알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뭐지?
아빠 차 키랑 비슷하긴 한데,
버튼을 누르자,
가게 앞 롤스로이스의 불빛이 반짝이며,
그릴 위 여신이 올라왔다.
“우와아아악!”
서준이 뛰쳐나갔다.
*
“서준아! 그렇게 막 손으로 만지면···.”
선하가 안절부절 서준을 말리려 했다.
“괜찮아. 어차피 회사 법인 리스라 막 건드려도 돼.”
“그래도···.”
“아마, 오늘부터 나 카드도 못 쓸 거고, 현찰은 어제 받은 20만 원이 전부야. 방금 말했듯이 저 차도 법인이라 팔지도 못해.”
충기가 치킨집 간판을 바라봤다.
그리고, 상정에게 시선을 돌리며,
“알바 구한다면서?”
“응?”
“여기 취직 좀 시켜주라.”
상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평생,
설거지는 해 봤을까?
“이제 막 사회 나온 초년생 같아. 뭘 해도 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야.”
충기가 해맑게 웃었다.
열아홉, 밴드에 들어오고 싶어 하던, 철없는 부잣집 아들과의 첫 만남이 기억났다.
‘나 여기 청소만 시켜도 좋아. 끼워주라.’
장하와 함께 나타났던 뽀얀 녀석의 모습.
진짜 이틀간 청소만 시켰었는데,
너무 엉망으로 열심이라서 빗자루를 빼앗았었다.
주름이 제법 늘어있는, 충기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을 기다렸고,
상정이 마주 웃어줬다.
“너 오토바이는 좀 타냐?”
“내 취미가 바이크 모으는 거였는데?”
상정이 가게 옆 세워진 스쿠터를 바라봤다.
“시급 만 원이다.”
“네. 사장님.”
충기가 밝게 대답했다.
“아빠! 나 오늘부터 여기서 잘래!”
세상 가장 신난 서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