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24
24화. 첫곡
옛것은 낡았고, 도태된다.
물건도, 건물도, 땅도, 사람도.
높은 아파트들 바로 옆,
변화를 따르지 못하고, 아직 낮게 자리한 건물들이,
옛것과 새것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동네.
나이 들어 희끗희끗한 이들이, 자신들보다 더 나이 든 나무 아래 모였다.
“허! 내가 똘이를 이겨 부렸으!”
“와. 형님 대단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치킨 잔치여?”
“암! 오늘은 똘이가 쏘는 거여!”
평상에 자리 잡은 노인들이 왁자지껄했다.
“치킨 왔습니다.”
오토바이가 도착했고, 뚱한 표정의 주성돌 할아버지가 카드를 내밀었다.
“엄청 많이 시키셔서, 한 마리는 서비스입니다.”
“음. 장사하는 자세가 되었네. 어디 치킨이라고?”
“안가네 치킨입니다.”
“그려. 오늘은 초면이지만, 앞으로 자주 봄세.”
“감사합니다. 어르신!”
헬멧 속 얼굴을 보이지 않았지만,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주는 활기참에 노인들이 방긋 웃었다.
“거, 목소리 좋구먼. 가수 해도 되겄어.”
할머니 한 분이 치킨을 받아들며, 눈을 흘겼다.
“가수는 무슨, 아무나 하나.”
계산을 마친 주성돌 할아버지가 팽 하고 몸을 돌렸다.
돈이 아까운 것 보다,
아까 진 장기가 너무나도 억울했다.
절대,
공씨가 알 수 없었을 수였기 때문이다.
“근디, 거, 연습실은 아직도 주인이 안 나온겨?”
“몰러, 저 냥반이 좀 까탈스러워야지.”
“그냥 열심히 노래하는 애들 줘. 괜히 애기들 속 태우지 말고.”
“시끄러! 내 거야! 내가 알아서 할 거여.”
주성돌 할아버지는 무리에서 멀어지더니,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저··· 어르신?”
치킨 배달원이 카드 단말기를 챙기다가, 옆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응?”
“연습실이라면···.”
“그 뭐, 쿵짝거리는거 있잖여. 두구두구 챙. 하는 거.”
“아. 음악 연습실이요?”
“그치. 그치.”
“어디 있는 거죠?”
“조 앞에 사거리 상가 알지? 거, 나눔 은행 건물. 거기여. 지금 비어있는데···.”
“아···. 아직도 있었네요?”
“으이? 아는겨?”
“아···. 네.”
헬멧의 방향이 멀리 담배를 문, 주성돌에게 향했다.
‘나이 많이 드셨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려! 수고혀. 운전 조심하고!”
노인들은 치킨을 가져다준, 고마운 배달부를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
벌써, 일주일.
제법 서비스직이 몸에 맞았다.
얼굴을 다 가리는 헬멧을 쓰니, 또 다른 자유가 생겼다.
무시당해도 크게 화나지 않았다.
그 생소한 느낌이 오히려 재미가 있을 정도였다.
언제나, 자신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관계를 배워왔기에, 처음 느끼는 감정들이 새로웠다.
표정 관리를 해야 할 필요도 없었고, 시선을 숨기지 않아도 됐다.
충기에게 있어서 헬멧은, 정말로 대단한 특권과도 같았다.
“와. 빠르네! 너 우리 남편보다 낫다.”
“내가 그나마 했던 반항이 바이크였어.”
“암튼, 너 이렇게 적응 빠른 걸 보니, 대단하다. 그래도 재벌이었잖아.”
충기가 쓰게 미소 지었다.
“돈으로 다 되지는 않더라.”
“지랄 염병하네.”
상정이 포장된 치킨을 내밀며 인상을 썼다.
“거, 배부른 소리 하지 말고, 이거나 배달해.”
“네! 사장님!”
충기가 서둘러 헬멧을 썼다.
무적의 헬멧.
돈으로도 가질 수 없었던 자유였다.
***
“그···. 제 논문 때문이라고 얘기하기는 했는데···. 조금 예민한 산모님들도 계실 수 있으니까, 분위기 봐 가면서···.”
산부인과 전문의 록영이, 강당에 모여있는 산모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그런 그의 걱정을 이해한 진혁이 방긋 웃었다.
“분위기가 나빠질 리 없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혁의 부탁으로 산모들을 모집했다.
대충 ‘음악으로 하는 태교의 성과.’라는 제목을 붙인 설문지를 나눠줬고, 논문을 핑계 댔다.
그래도, 언론에 몇 번 얼굴을 비춘 적이 있어서 모집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만일, 이런 상황에 부정적인 산모라도 끼어있어,
‘맘카페’에 라도 소문이 퍼지면, 자신의 산부인과는 곤욕을 치를 것이었다.
그렇게 모집된 산모가 마흔 명.
5개월 차부터, 만삭에 이르기까지, 뱃속에 희망을 품은 예비 엄마들이 모였다.
진혁은 베이스 기타를 앰프에 연결했다. 오늘 하게 될 일은, 음원 소스를 녹음하는 것.
유투부로 이것저것 공부했고, 지금 모인 산모들의 목소리를 녹음할 것이었다.
전원을 켜자,
약간의 노이즈가 섞여 나왔다.
무대 위에 설 생각은 없었다.
이 음악은 온전히 산모들이 주인공이었으니까.
무대 구석,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에 앉았다.
산모들은,
자신에게 집중할 필요가 없었다.
오로지,
뱃속 또 하나의 심장만을 느끼면 될 터.
진혁이 신호하자,
록영이 프로젝터를 켰다.
곧, 태교에 관한 정보들이 거대한 화면을 가득 채웠다.
산모들은 단상 위, 화면에 집중했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때,
아주 작은 울림이 시작되었다.
아주 작게,
그들의 심장을 간질이듯 조심스럽게.
진혁은 눈을 감고,
뱃속 아가들의 심장 소리를 떠올렸다.
***
현주는 아이가 생긴 이후로, 인터넷 정보의 노예가 되었다.
처음이란,
누구에게나 어려운 법.
엄마가 지방에 있으니, 그때그때 물어보기도 힘들었고, 뭣보다 나이 드신 분들의 정보는 정확하다고 믿기 어려웠다.
당시에는 입에서 입으로, 더 나이 든 경험자에게서 전해 들은 말이 다였을 테니까.
그렇기에,
산모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가입했고, 하루 중 절반은 그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쳤다.
통상적인 내용들은 대부분 같았지만, 조금 세부적으로 들어가자, 말이 다 달랐다.
그 어떤 것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의견과 사례가 있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태교의 방향이 바뀌곤 했다.
그래서, 더 답답해졌다.
태교에 좋다는 것은 모두 찾았고, 아이가 좋아한다는 수중 운동도 했다.
그래도, 그 답답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한 아이를 낳을까.
어떻게 하면, 더 똑똑한 아이가 될까.
어떻게 하면, 더 활달한 성격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방금까지도,
핸드폰으로 누군가의 블로그에 쓰인 글을 읽고 있었다.
이 자리도,
태교와 관련된 자리라서 나왔다.
거대한 화면에 뜬 글들은, 이미 학습이 끝난 것들.
저도 모르게 하품이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산모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응?’
전혀 몰랐는데,
어떤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둥둥.
‘음악?’
음악이라기엔 너무 단조로웠고, 귀로 들린다기엔 너무 조용했다.
마치 몸속에서 울리는 듯.
둥둥거림을 느낀 순간부터, 화면의 글자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그 소리가 커짐을 느꼈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 봄날의 햇살 같아서, 너무나도 마음이 편해졌다.
둥둥.
‘들리나요?’
그 소리가 너무나 예뻐,
저도 모르게 그 선율을 따라, 콧노래가 나왔다.
옆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났다. 아마도 자신만 이 신비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자,
뱃속 아기가 뽀글댔다.
‘아. 이게 태동인가?’
처음 느낀,
그 뽀글거림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째서,
이런 감정을 이제야 알게 된 거지?
자신이 품고 있는 생명은 그 존재만으로도 너무나 소중한 것을.
더 건강한, 더 똑똑한, 더 활달한 성격의.
더 나은 존재여야만 했던 것일까?
왜? 그렇지 않으면 실망이라도 하려고?
그저,
이렇게 와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데.
어떤 욕심을 더 부리고 있었던 거지?
현주는,
왠지 모를 미안함에 눈앞이 흐려졌다.
딸이 갖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은 커피도 끊었고, 과일을 먹었고, 자신도 식습관을 바꿨으며, 날짜도 맞췄다.
설레던 5개월 차.
‘와, 손가락이 아주 잘 생겼어요!’
잘 생겼다?
아들이라는 말이었다.
괜히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을 원망했던,
얼마 전 그날이 기억났다.
태명도, ‘샛별’이었지 않은가?
그간, 배를 만지며, 딸아이에게 말하듯 했던 모든 것들이 떠오르자, 가슴이 미어졌다.
이미 생겨난 순간에 결정되었을 텐데,
5개월간,
아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는 내가 아들이라서 싫어요?’
아이의 심정을 생각하며,
눈을 감자,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자체로, 축복받아야 할 아이에게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가.
‘미안해. 아가야. 엄마가 정말로 미안해.’
마구 흘러내리는 눈물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때,
동동.
아가가 움직였다.
‘괜찮아요. 엄마.’
라고,
달래주듯.
처음 느낀 그 작은 움직임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눈물 자국 선명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만들어주는 존재.
‘아···. 이런 느낌이구나.’
어쩌면,
이제야 처음으로 아이와 교감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
그 존재 자체로 너무나도 축복인,
생명의 시작.
새로운 생명을 품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아이에게 전해야 했다.
‘엄마는 널 정말로 사랑해.’
강당 전체에 산모들의 부드러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랑해. 아가야.”
곳곳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그 음악과 너무나도 어울려서 마치, 약속된 화음을 넣는 것 같았다.
귀에 들리는 그 둥둥거림은 사라졌지만, 엄마들의 노래는 계속됐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감정으로 노래했다.
***
록영은,
땀이 흥건한 손을 바라봤다.
그날, 산모들에게 전해 들었을 뿐이지, 직접 보지는 못했다.
사실,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하고도,
그다음 날,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지 않았던가.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었다.
산모들이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생겨난 착각일 것이었다.
심장이 약해졌다가 다시 뛰게 된 사례가, 백만 명 중 하나쯤 있지 않은가.
그 부부가 극악의 확률을 뚫었다는 것이, 더 현실성이 있었다.
그래, 백만 분의 일, 그것만으로도 기적일 테지.
그렇기에, 그저 산모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 하나 만들어준다면, 그것에 감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부담스러운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했던 말이 있으니,
여기까지만 도와주자.
큰 기대는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가 연주하는 베이스 기타 소리를, 산모들보다 더 빨리 들을 수 있었다.
엄청나게 작은 소리.
과연 이 소리가,
앉아 있는 산모들에게까지 전해지기는 할까?
역시, 산모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품하거나, 핸드폰을 보기 시작하는 산모도 있었다.
이미 다 아는 정보들이겠지.
자신이 봐도 너무나 뻔하고, 지루한 활자들의 조합.
그의 목소리가 작게 울리기 시작했지만, 저 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때, 산모들이 그 소리를 따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산모 하나가 눈물을 흘렸다.
아니, 그 산모를 먼저 발견한 것뿐이지,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어쩌지?
여기서 중단해야 하나?
그때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지 않았나?
어째서 다들 우는 거지?
록영이 혼란스러워하던 그때,
작게만 들리던 그 베이스 기타 소리가,
어느새 커져 있었다.
이것도 환상인가?
마치 처음부터 큰 소리였다는 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강당을 울려댔다.
그리고,
산모들이 배를 쓰다듬으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산모들의 노랫소리가 더 커졌고,
마치 연습이라도 한 듯,
선율에 맞춰,
“사랑해. 아가야.”
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소리가 커졌던 때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베이스 기타 소리는 사라진 후였다.
멍하게 구석을 바라보자,
그가 방긋 웃으며 양손을 들어 보였다.
***
서울 북부 산모들의 커뮤니티 관리자는 모니터를 노려봤다.
간혹, 산모인 척 위장하고, 광고해대는 업체가 꽤 있었기에, 그 인터넷 카페의 가입조건은 까다로웠다.
먼저, 태아의 사진과 임신확인증을 관리자에게 보내야 했다.
검증된 협력업체 외에 광고하는 업체가 늘어나면, 카페의 정보성 점수가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까다로운 가입조건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이유가 그 ‘깨끗한 정보성’때문이었다.
지금 올라오는 게시물의 작성자들을 확인했지만, 모두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 가입한 산모들이었다.
산모들이 보낸 정보를 확인해 보니, 산부인과도 제각각이었다.
[늘푸름 산부인과 완전 대박임.] [늘푸름 원장님 덕에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됐어요.] [늘푸름이 찐이예요.] [힐링 제대로 했어요. 우울하신 산모님들 강추.] [왜 이제야 여기를 알게 됐는지. 정말 감동. 감동입니다.] [전 내일 산부인과 옮깁니다. 둘째도 무조건 늘푸름이예요.]게시판이 ‘늘푸름’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광고 회사도, 눈치가 있는지라 저렇게 대놓고 작업하지는 않는다.
하도 찌그리고 있었더니,
미간에 쥐가 나는 것만 같았다.
‘며칠 전에도 늘푸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모두가 그 산부인과 산모들이었고, 말도 안 되는 게시물을 두세 개 삭제했다가, 항의 쪽지를 수십 통이나 받았었다.
광고 회사라면 항의를 할 리가 없는데.
내용도 가관이었다.
무슨 저절로 시작되는 합창이니, 심장 소리 음악이니, 눈물을 흘렸다느니. 말도 되지 않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신종 종교가 생겼나?’
이건 광신도들이나 하는 행동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관리자는, 애꿎은 머리만 쥐어뜯었다.
“아! 도대체 늘푸름이 뭐길래!”
***
“뭐길래, 그렇게 집중이냐?”
치킨집 구석에서 신디사이저를 만지는 진혁에게, 두 친구가 다가갔다.
“니들은 내가 기적을 일으킨다면, 믿어?”
두 친구가,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조금 조잡하긴 한데···. 니들은 뭐 크게 느낄 수 없을 거고···.”
진혁이, 롤스로이스에서 잠든 서준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들어오는, 선하를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누나! 이거 한 번 들어봐.”
“응?”
헤드폰을 받아든 선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혁이 노트북을 만졌고,
헤드폰을 쓴 선하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