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25
25화. 낡은 것
눈을 감은 선하가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감은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그 모습이 너무나 빛이 나서,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상정과 충기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 이 사태의 장본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지없이,
방긋 웃고는 있었지만,
조금 어두웠다.
***
“쪼!”
“넵!”
“할 수 있겠어?”
“넵!”
은서가 기합이 잔뜩 들어간 대답을 외쳤다.
그 앞에 앉은 소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도 하는 거다!”
이한이 활짝 웃으며 손뼉을 짝 쳤다.
“그리고···,”
연습실 문이 열리며 청년과 소년의, 그 사이 어디쯤의 남자가 들어왔다.
*
“지완이가 해외여행을 가는 바람에, 이 형님께서 베이스를 맡아 주시기로 하셨다.”
이한이 소개하자,
열렬한 박수가 울려 퍼졌다.
무려, 전 ‘박재경 밴드’의 베이시스트 신기수가 거만하게 턱을 세우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뭐, 유투부 촬영도 없고 하니. 내 친히 너희를 보살피겠노라.”
“오!”
“멋지다!”
“형! 수능 포기?”
고등학교 3학년인 신기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준호는 저쪽 찌그러지고.”
멤버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준호가 구석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신기수는 두 살 어린 귀여운 동생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아,
홍일점 은서는 네 살이나 어렸다.
이맘때의 아이들에게, 두 살 차이는 꽤 컸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들어온 아이들과 성인에 근접한 어설픈 ‘어른.’
아이들에게 신기수는 그런 존재였다.
기수는 자신이 이끌어야 할 밴드의 면면을 살폈다.
먼저,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멤버들부터 보자면.
리드기타이자 보컬 이한.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졌고, 가창력도 좋았다. 뭣보다 그 나이치고는 기타실력이 상당했다. 리더로서 성격도 괜찮았다. 그리고, 밴드의 얼굴을 담당하기에 외모도 썩 좋았다.
드럼의 한준호.
눈치가 좀 없고, 자기 기분에 더 충실한 녀석이지만, 꽤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티 내지 않는 노력가. 프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덩치만 봐도, 뭔가 든든하기는 했다.
키보드의 한현호.
한준호와 이란성 쌍둥이.
둘은 전혀 다르게 생겼다.
키도 준호가 더 컸고, 냉정하게 말해 더 잘생겼다.
피아노를 오래 쳐와서, 간혹 메인 멜로디에 간섭하곤 했는데, 그거야 자신이 잡아주면 될 터였다.
물론, 실력도 좋았다.
그리고,
리듬 기타의 조은서.
중학생치고는 키도 컸고, 손가락도 길었다. 곡을 이해하는 능력이 좋은 편이라고 들었고, 자신의 현재 실력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아직 기타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금방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긴장한 티가 역력했지만,
중학생이란 걸 고려했을 때, 상당한 실력이라고 들었다.
직접 확인해 봐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뭐, 중학생이 끼어있는 모습이, 어쩌면 더 주목받을 수도 있었다.
“유정이 누나가 유투부 채널에, 우리 연습하는 거 브이로그로 하나 올려준대.”
“오!”
“진짜?”
“대박!”
안 그래도 올라가 있던 기수의 턱이, 조금 더 올라갔다.
“우선, 그 정도면 주목받고 시작할 수 있어. 잘해보자.”
기수가 손을 뻗자,
다들 그 손 위에, 자기 손을 포갰다.
구석에 있던 준호도 쪼르르 달려왔다.
모두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고등학생 밴드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고등 밴드’
그 경연에 출사표를 던지기 위해 모인 멤버들이었다.
기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갑작스러운 보컬의 솔로 선언으로, 학업까지 등한시하며 목숨 걸었던 밴드가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실의에 빠져있을 때, 사촌 누나가 도움을 요청해서 바쁘게 쫓아다녔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는데,
누나가 유투부를 잠정 중단해 버렸다.
다시,
시간이 생겼고,
혼자가 된 느낌에 멍해 있었는데,
“꼬맹이들아! 파이팅!”
“““아자! 아자! 파이팅!”””
새롭게 집중할 일이 생겼다.
기왕 하기로 한 것,
동고동락한 밴드를 저버린, 배신자 박재경에게 한 방 먹일 정도로 성공하리라.
기수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
“어땠어?”
선하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진혁의 눈빛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서준이 가졌을 때가 막 떠오르더라. 그때 힘들었던 것, 행복했던 것, 미안함, 뭐 그런 것들이 밀려오는데···. 마지막에 다 괜찮다고 보듬어 주는 거 같았어. 계속 눈물은 나는데, 눈물의 의미가 달라졌다고 할까?”
진혁이 조금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따라 부르지는 않더라?”
“응?”
진혁은,
미간을 좁혔다.
자신이 이 곡을 만들며 집중했던 것은,
아이를 가져본 경험이 있다면,
듣기만 해도 함께 흥얼거릴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감정을 원했다.
방금, 눈물을 흘릴 정도로 집중한 선하였지만, 따라 부르지는 않았다.
“야! 이 정도면 엄청난 거 아냐?”
“그러게, 누나 울었잖아?”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부족해.”
뭐가 부족한 걸까?
진혁이 손을 들어 더 말하려는 친구들의 입을 막고,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했다.
분명,
그 감정도 잘 표현했고, 진심을 담은 산모들의 목소리도 담겼다.
신디사이저의 화면을 노려보던 진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브.”
“응?”
“이제 조건을 알겠어.”
“얘는 참, 상대를 이해시키는 능력이 부족해.”
“맞아. 음악으로는 잘하는 애가 언어가 떨어져.”
“인정.”
부부와 친구가 보내는 핀잔의 콜라보에, 눈썹 한쪽을 꿈틀거린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내 ‘기적’은 라이브에서 나와.”
진심으로 감정을 끌어내기에는, 디지털로 변환된 음원으로는 어려웠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따라가야 했다.
임산부들을 상대로 한, 두 번의 연주.
직접 그들을 마주했기에, 그들의 심장을 따라가며 어루만질 수 있었다.
음원으로 일원화된 감정은,
각각의 마음을 건드릴 수 없었다.
물론, 음원 자체로도 감정을 건들 수는 있겠지만, ‘기적’까지는 아니었다.
“우리 얼른 연습해야겠다.”
두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던 말이었다.
그들 모두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
그때,
충기가 가만히 손을 들었다.
“그···. 예전에 우리 연습하던데 기억나?”
“응. 사거리 건물?”
“거기 지하···. 아직도 있대.”
충기의 말에, 진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신과 락의 역사에 대해, 열띤 논쟁을 펼치던, 그 머리 긴 아저씨가 떠올랐다.
“알아볼까?”
진혁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에···. 그래서 우리 동네도 도시 정비 계획에 따라···.”
“시끄러 이눔아!”
주민 자치 센터 강당에 모인, 주민들 사이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울렸다.
“아. 어르신. 이거 다 나라에서 하는 겁니다. 이미 승인이 다 끝났고···.”
“끝나긴 뭐가 끝나? 내가 다 알아봤구먼! 지금 동의서 받아 내려고 쇼하는 거 아냐?”
단상에 선 동장이 살짝 인상을 쓰며 턱짓하자, 입구에 서 있던 남자들이 소리치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어허, 몸에 손만 대봐. 확 의자에 머리를 박아 버릴 테니까.”
할아버지의 으름장에, 남자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단상을 바라봤다.
단상 위의 동장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깽판의 시동을 걸기 시작한 노인은, 이 동네에서 유명한 고집불통이었다.
그냥, 고집불통이면 적당히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이 동네에 있는 건물만 다섯 채.
보유한 땅도 제법 넓었다.
거기다, 이 동네 토박이들에게 입김이 가장 센 노인이었다.
제법 시민단체들과의 연결망도 있었고, 아마 그 단체의 변호사들이 언질을 준 모양이었다.
대충,
나랏일이라 퉁치고, 설명을 이어가려 했건만, 오늘의 주민 설명회는 나가리 인듯했다.
씩씩거리며 노려보는 노인의 기세에 움찔한 동장이,
슬그머니 눈을 깔았다.
***
“아니, 그러니까 재정비가 아니라, 재개발이라는 말이지?”
“그려! 내가 아주 화딱지가 나서!”
“허허. 그럼 그렇지. 어쩐지 설명이 뭔가 건너뛴다 혔어.”
“그래도, 우리 성돌이 오라버니 덕에 미리 알았으니 다행이네.”
할머니 한 분이, 주성돌 할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렀다.
턱을 치켜든 할아버지가, 앞에 모인 이들을 살폈다.
“우선, 이놈들이 조만간 보상금으로 찔러볼 거여. 자식들이 아무리 흔들어도 넘어가면 안 돼. 알지?”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들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노인들은, 저마다 60년 이상을 한동네에서 지내 온 이들이었다.
하천 주변은 논이었고, 밭이었다.
그들이 젊었을 때, 도로가 놓이고, 제법 신식 집들이 지어졌다.
논과 밭이 사라짐에 걱정하던, 부모를 설득했던 때가 기억났다.
‘이제, 여기도 발전하는 겁니다. 새로운 걸 받아들여야지요. 언제까지 농사만 지으실 겁니까?’
자신들도,
부모의 터전을 덮고,
그 위에 세월을 쌓았다.
그렇게 쌓인 세월을, 다시 밀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저마다 알고는 있었다.
어쩌면,
억지라는 것을.
오래된 것은,
새로운 것에 자리를 넘겨줘야 하기 마련이다.
버텨봐야,
‘도태’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만 할 것이다.
주성돌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다.
당시,
자신들의 부모들이 끝까지 지켜낸,
그들보다 더 나이 든,
물푸레나무의 가지를 바라봤다.
쌀랑해진 날씨에,
조금씩 앙상해지는 가지가 어쩐지 자신과 닮아있는 것만 같았다.
어릴 적엔,
언덕 위, 이 나무보다 더 높은 것은 없었는데,
가지 사이로, 하늘을 가리는 높은 아파트들이 보였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그 시기 동안 버텨왔는데,
버티고, 버티다 보니,
어느새 이 소중한 동네는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다.
아버지도,
이런 심정이셨을까?
‘그려. 신식 건물 들어오면 도로도 놔준다니까···.’
갑자기 너무나도 선명하게 떠오른 기억.
평생을 갈아엎은 논과 밭을 바라보며,
주름진 눈가에 쓸쓸한 물빛이 어렸었다.
자신도 모르게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
“응수동 입찰 날짜 나왔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던 창천 그룹의 회장 김충석이 몸을 돌렸다.
“아직 승인도 안 떨어졌는데?”
“중심부와 주변부를 따로 승인하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래?”
“네. 바로 옆에서 포크레인이 삽을 뜨기 시작하면, 뭐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좁고 좁은 서울 땅에,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모였다.
대책은,
같은 면적이라면,
낮은 건물을 허물고, 더 높은 건물을 세우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세계에서 아파트의 수가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인구 밀집도, 세계 3위.
서울의 현주소였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은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고 있었다.
지금 언급된 응수동은,
2000년도 초반 세계적 빅 이벤트를 맞이했고, 지하철 6호선이 개통되었다.
서울에서도 변두리에 불과했던 동네가, 갑작스럽게 변화한 것이다.
개발되기 전부터, 나름 저 평가구역이어서, 모든 기업이 군침을 흘렸던 동네.
하지만,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서 재개발 순위가 밀려났고, 한참이 지나서야 드디어 삽을 찔러 넣게 된 것이다.
이번 재개발에 있어서,
창천의 계열사인 창천 건설은, 확실한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중심부를 배정받기 위해, 주변부에 다른 건설사들이 몰릴 때, 발을 뺐었다.
현재, 이 구역에 배정 지분이 남은 건설사는 창천이 유일했다.
그렇게 기다리길,
10년.
드디어 국회가, 도시 정비 대책이라는 명분을 내어준 것이다.
다른 재개발 구역에서는,
언제나 다른 건설사에 밀려, 몇 구역 되지 않는 곳에 ‘Blue sky’를 올렸었다.
이번만큼은 정 중앙에 창천의 왕국을 올릴 셈이었다.
가장 높게.
그 광경을 상상한,
김충석 회장이 활짝 웃었다.
***
공인중개사의 하루는 참 고되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소개만 해 주고, 꽤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것에,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곤 했다.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너도나도 공인중개업에 뛰어들었고, 이제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같은 매물을 여러 공인중개사에서 경쟁하는 일도 빈번했고, 여기저기서 다툼이 일어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서는 깡이 좋은, 악바리들만 살아남는 업종이 되어버렸다.
정직하게만, 움직여서는 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어허. 젊은 여자가 어디 눈을 똑바로 뜨고···.”
“사장님. 방금 계약서에 도장 찍으신 분을 빼가시면 어쩌십니까?”
“계약금도 안 넣었다는데, 뭔 계약은 계약이야?”
“아니. 그래도···.”
“거보라니까. 젊은 여자가 얼렁뚱땅 신뢰를 줄 수 있는 업종이 아니에요. 이 업종이. 아직 창창한데 왜 여기서 고생이야.”
진미연은,
방금,
꽤 엄청난 반칙을 저질렀음에도, 능글맞게 회피하는 ‘창조 공인중개사’ 대표 최광엽을 노려봤다.
속이 탔지만,
더 얘기를 나눠봤자, 더 타들어 갈 것이 뻔했다.
조만간 성희롱에 근접한 아슬아슬한 말이 튀어나올 것이기에,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렸다.
나름 건물도 볼 줄 알았고, 사람 상대하는 것도 재미있어 시작한 일이었는데,
여기저기서 억지가 판치는 업종이었다.
얼마 전, 주상복합 상가 입찰에는 건달들까지 동원되지 않았던가?
그때 놀란 가슴이 아직도 두근거렸다.
얼마 만에 만난 전세 계약이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에이. 소주나 한잔할까?’
가방을 뒤져 핸드폰을 들었는데,
때마침 진동이 울렸다.
“네. 행복 공인중개사 진미연입니다.”
속은 상했지만, 고객에게만큼은 밝은 목소리를 내는 자신이 참 대견했다.
“어···. 그 건물 지하요? 그게···.”
미연도 알고 있는 유명한 건물.
자신이 최고로 사랑하는 나비 계곡도, 그 건물의 지하 연습실 출신이지 않은가?
입주가 까다롭기로 유명했지만,
그 건물의 건물주는 나름 공정했다.
전에 상가 하나를 계약할 때도, 뒤늦게 고객을 빼가려던 중개인이 있었는데,
그 건물주가 물을 뿌려 쫓아냈었다.
‘시끼가. 반칙하고 지랄이여. 확! 디질라고.’
그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그 연습실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요······.”
세상 어느 매물보다 특이한 조건을 가진,
음악인들의 ‘성지’에 대한 설명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