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26
26화. 카세트테이프
“사장님. 차 키 여기 올려두겠습니다.”
소파에 앉아있던 장하가 부하직원이 올려놓은 키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거, 이제 니가 써라.”
“예?”
“그···. 장부 정리도 얼추 끝나가지?”
“아···. 거의 다 끝났습니다.”
“그거도, 니가 맡아.”
부하직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장하 만큼이나 덩치가 커다란 그가, 천천히 맞은편에 앉았다.
“형님.”
“응.”
“떠나실 겁니까?”
“뭐···. 눈치채고 있지 않았어?”
“뭐 하실 겁니까?”
“글쎄다.”
“저도 데려가십시오. 여기 일은 영필이한테 맡기겠습니다.”
장하가, 앞에 앉은 직원을 지긋이 바라봤다.
벌써, 10년이 넘게 자신의 곁을 지키는 충직한 부하였다.
“무덕아.”
“네.”
“나 신부님 될 거야.”
“나이 때문에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에이. 씨부럴. 개나 소나 다 아네.”
장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후···. 내가 너 아니면, 마음 놓고 여길 뜰 수 있겠냐?”
“저 아니어도 유능한 놈 많습니다.”
“아니. 너밖에 없어.”
장하의 단호한 눈빛에, 강무덕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너까지 뜨면, 여기 동대문 사채시장, 전처럼 개판 된다.”
“형님.”
“여긴, 압도적으로 누를 수 있는 존재가 꼭 필요한 곳이야.”
무덕은,
장하가 이곳을 평정하기 전의 광경을 떠올렸다.
제법 세력이 있는, 사채꾼들만도 여섯이 넘었다.
그 밑에 자잘한 놈들이 빌붙었고, 그야말로 전쟁통이었다.
지금이야,
장하가 대표로 있는 ‘희망 파이낸셜’이 모두를 침묵시켰기에, 다들 눈치를 보고 있지만, 만일 지금 이 세력이 모두 빠진다면, 명동까지 가세해 바로 전쟁이 터질 것이었다.
“무덕아.”
“네. 형님.”
“내가 빠지고도, 여기 꽉 누를 놈, 너밖에 없다.”
“···.”
“나 때문에, 성질 많이 죽였지? 앞으로는 맘대로 날뛰면서 살아라.”
어쩌다 보니,
빚진 사람들을 도우다가 여기까지 흘러왔다.
살인적인 불법 금리를 손봐야 했고, 불법적으로 이뤄지는 추심을 멈춰야 했다.
말장난 치지 못하게 만들었고, 불법적인 협박이나 각서 따위를 하지 못하게 했다.
순전히,
때마다 밑반찬을 챙겨주신, 옆집 아주머니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힘’으로 설득하다 보니,
어느새 한강 북쪽에서는 알아주는 세력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보니,
견제하는 세력도 많았고,
시기하는 세력도 많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표출하지는 못했다.
제법 회사처럼 꾸린 대부업체였지만, 아래 있는 직원들은 대부분 알아주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장하의 남자다운 매력에 끌려, 스스로 자신의 세력을 편입시켰었다.
그들도,
주먹으로 살아온 이상,
더 으스대고 싶었을 테고, 더 폼나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장하는,
의미 없는 폭력을 허락하지 않았다.
세력을 넓힐 생각도 없었고,
조직화 시킬 마음도 없었다.
그저,
회사로서 운영했을 뿐.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거 할게.”
“형님···.”
“다만, 나와 지냈던, 그동안 뭔가 느낀 것이 있다면···. 낭만은 남겨둬라.”
무덕이 이를 악물었다.
며칠 전부터 느끼고는 있었지만, 직접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평생을 따르리라 마음먹었었는데,
이렇게 내쳐지다니.
“네···. 알겠습니다.”
더 매달리고 싶었지만,
저렇게 단호한 표정의 형님은, 절대로 말을 바꾸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남은 것은,
형님이 떠난 이곳을 자신이 지키는 것.
“전국에서도 넘볼 수 없도록, 더 강하게 만들어 놓겠습니다.”
뭔가 모르게,
잔뜩 힘이 들어간 부하의 목소리에, 조금 뜨끔했지만,
장하는 굳은 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어허. 오냐오냐했더니, 어딜 넘보려고···.”
“조건만 맞추면 다들 참여할 수 있는 것 아니었나요? 제가 건물주님께 여쭤볼까요?”
“아니. 몇 년 전부터 내가 해오던 일인데 말이야!”
“그거야, 사장님이 다른 부동산에 들어간 의뢰까지 다 긁어가서 그런 거죠.”
“허. 이 여자가 말이면 단 줄···.”
“건물주님도 아시나요? 사장님이 그 상가 대리인 행세하고 다니시는 거?”
“뭐? 뭐? 지금 협박하는 거야?”
“그러니까! 공정하게 하자고요!”
“어디서 개뼉다구 같은 딴따라를 잡았는지는 몰라도, 그 영감 눈에 들기는 어려울걸?”
“아. 네···. 그럼 저는 저 나름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인사도 하지 않고, 몸을 홱 돌린 미연은 심장이 마구 뛰었다.
드디어,
저 능구렁이한테 한 방 먹였다.
‘후우.’
중개인들에게서도, 나름 그 지하 연습실은 의미가 컸다.
건물주 맘에 쏙 드는 음악인을 들이기만 한다면, 그 이후 그 할아버지가 가진 상가들의 계약에 있어서 꽤 많은 편의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다른 중개인들이 덤벼들지 못한 것은,
창조 공인중개사 최광엽 대표가 가진 인맥 때문이었다.
홍대 소극장들에 뒷돈까지 줘가며, 확보한 뮤지션들의 네트워크.
홍대에서는,
어느새, 그 지하에 들어가려면 무조건 ‘창조’를 통해야 한다는 소문까지 나버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창조에 연락이 들어간 것뿐.
진미연은,
어제 통화했던 사람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기억났다.
‘우리 정말 잘해요. 거기 아저씨 자지러질걸요?’
목소리가 참 좋았다.
분명 노래를 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들뜬 기분으로,
고객이 찍어준 주소로 움직였다.
*
“어···.”
“아. 음원···. 음원은 만들어야 하고요. 아직 우리가 모인지 얼마 안 돼서···.”
미연이 미간을 좁혔다.
‘분명, 맞는 거 같은데···.’
“그냥 라이브로 하면 어찌 될 거 같기도 한데···.”
“그러니까···. 사장님들이···. 어···. 밴드를 하신다고요?”
아무리 봐도,
그 ‘C2K’가 맞는 거 같은데,
저 배달 조끼 하며, 부스스한 머리, 까슬한 수염.
마치, 비교하자면,
’왕자와 거지?‘
세상엔 닮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너무 닮았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창조’를 이겨 먹겠다고 큰소리 빵빵 치고, 부푼 가슴을 안고 달려왔는데,
이런 중년 아저씨들일 줄이야.
거기다,
치킨집?
취미 생활하는 아저씨들이, 쟁쟁한 아티스트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미연이 얼른 마음을 다잡았다.
하마터면 고객 앞에서 한숨을 쉴 뻔했다.
“아! 누나! 카운터에 있던 그 테이프!”
“응?”
주방에서 나온 여자 사장이, 카운터로 가더니 무언갈 들고 왔다.
그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미연이, 참고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인터넷에서 간혹, 옛날 사람들이 음악을 들을 때 썼다던,
카세트테이프.
초등학교 다니던 당시, 아버지가 쓰시던 걸 본 적이 있기는 했다.
그 이후,
실물을 본 것은 지금이 처음.
“어···.”
멍한 표정으로 그 물건을 바라보자,
초롱초롱한 눈빛의 중년 아저씨들이 모여들었다.
“와. 이거 우리 데모 테이프네?”
“이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
“야. 집에 다섯 개 더 있어. 나 HB부회장 이었던 거 잊었냐?”
“늘어지지 않았을까?”
“그러게···.”
중년들이,
자신들만 아는 이야기를 나눴다.
어이가 없는 미연이었지만,
그들이 그 테이프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나 아련해서, 감히 끼어들지는 못했다.
“근데, 요즘 이거 돌릴 플레이기가 있나?”
“어···. 그러고 보니, 나도 없다.”
“뭐, 그 아저씨는 있지 않을까?”
“음. 그럴 수도 있겠다.”
“야. 그냥 아저씨한테 가서 우리 다시 음악 한다고 하면 안 돼?”
“나름 규칙이라고 하잖아. 재미도 있을 거 같고.”
“하여튼, 여전히 재밌게 사시네.”
자기들끼리 정신없이 떠들더니,
“이거 갖다줘 봐요.”
미연의 손에 그 ’물건‘이 들려있었다.
‘미치겠다. 진짜.’
멍한 표정의 미연이,
나이에 맞지 않게 해맑은,
세 명의 중년인을 바라봤다.
뭐가 그리 자신만만한지,
팔짱까지 끼고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속은 타들어 갔지만,
저들의 기운이 뭔가 이상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해맑은 저 표정 때문인가?
걱정 가득한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혹시 모르니까, 조금 있다가 영상도 조금 찍어 가세요. 오늘 공연하는 날이니까.”
“예?”
“들을 만할 거예요.”
방긋 웃는 그의 표정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딸랑.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들어왔다.
“오. 장하 왔어?”
“응. 준비하자.”
미연의 입술이 떨렸다.
‘맙소사. 조폭까지···.’
***
오늘은,
안가네 치킨 라이브 공연이 있는 날.
첫 공연을 마무리하며 약속했던 두 번째 공연이었다.
충기가, 뒤쪽 창고로 가서 드럼세트를 들고 와, 설치하기 시작했다.
베이스드럼과 스네어, 탐탐, 하이헷과 크래쉬 하나씩. 너무나도 조촐한 구성이었지만, 첫날 튀김 젓가락 보다는 너무나도 황송한 세트였다.
장하와 진혁이 소형앰프의 자리를 잡았고, 상정이 신디사이저를 만지며, 전체적인 볼륨을 조율했다.
그리고,
선하는 이미 주문이 밀리기 시작한 치킨을 튀겼다.
제대로 악기를 구성한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싸구려 앰프에 저가형 중고 악기들이었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테이블은 모두 치워졌고,
홀은 꽉 찼다.
25평 치킨집의 스탠드 공연.
바깥도, 전보다 사람이 더 늘어있었다.
선하가,
주방 메모판에 적힌 치킨 개수를 확인했다.
통닭을 평소보다 두 배나 더 받아놨지만,
아무래도,
오늘도 부족할 것이 뻔했다.
악기를 조율하는 잡음이 들려오자, 눈을 감았다.
마치,
20대, 그 클럽의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
동영상을 찍기 위해, 가장 앞에 자리한 미연의 입이 벌어졌다.
90년대생인 자신에게도 익숙한 명곡들의 향연.
그간 여러 가수들이 다시 불렀던 곡들.
애초에 좋은 곡들이었다.
누가 불러도 가슴을 울릴 수 있는 그런 곡들.
하지만,
지금 가슴을 울리는 이 공연은, 그간 들어왔던 곡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저 동네 아저씨들의 취미생활이 이 정도로 명품수준이라니.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나름 유명한 밴드들의 라이브 공연을, 빼먹지 않고 봐왔던 미연이었기에, 지금 이들의 공연 수준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어디 하나 삐끗하는 부분이 없었고, 너무나도 여유롭게 흘러가는 레퍼토리.
뭣보다,
그때그때 외쳐지는, 갑작스러운 신청곡들도 완벽하게 소화했다.
방금 그 곡은,
여자들도 부르기 어려운, 고음 영역의 향연이지 않은가?
가수들도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불러야 할 곡을, 저리도 자연스럽게 소화하다니.
밀려드는 감정의 덩어리가 너무나도 묵직해서, 저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초췌하게만 보인,
중년인들의 무대에서,
있지도 않은 조명이 비추는 것만 같았다.
눈을 떼기 싫었지만,
이 공간의 분위기가 너무 궁금했다.
몸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니.
저마다 40대 이상의 중년인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제 갓 30대가 된 자신의 또래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물빛 가득한 눈망울로,
나지막이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내며,
동네 치킨집의 콘서트를 만끽하고 있었다.
곧,
가슴을 울리는 기타와 함께 시작된,
감미로운 목소리에, 다시 무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마치, 자신에게,
다정하게 말 걸듯,
너무나도 따뜻한 그 목소리에,
참고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걱정하지 마.
흘러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훌륭한 거니까.’
기타를 잡은 아저씨가 방긋 웃으며, 자신을 바라봤다.
저런, 해맑은 얼굴이라니.
그렇게, 강한 척을 하며 바득바득 버텨왔지만, 어느새 한계에 부닥친 그녀였다.
또래와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선택했기에, 더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닳고 닳은 선배들과 달리, 아직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었던 그녀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그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비열한 프로는 되기 싫었고, 떳떳한 아마추어는 너무 힘들었다.
아직 ‘어른’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나이.
그녀는 뒤늦은 방황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전해지는,
따스한 응원.
너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잘못은,
비열함에 길들어져 양심에 무감각해진, 가짜’프로’들에게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고개를 들고,
그 맑고 떳떳한 눈동자를, 그들에게 선사하라고.
반칙으로 쌓아 올린 가짜’프로’들의 과정을, 자신들이 부끄럽게 여길 때까지,
그 선명한 눈으로 노려봐 주라며, 응원해 주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삶에 있어서,
실패는 그들이 한 것이지,
미연이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응원이 너무 다정해서,
저도 모르게 꽉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
진혁은,
오랜만에 잡은 기타가 너무 반가웠다.
선하가 어느 교회에서 헐값에 사 온, 드럼셋과 기타.
돈의 가치로 봤을 때.
너무 조촐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모인 이상, 이보다 더 호화로울 수 없었다.
어린 시절 결코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을 마주하자,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얼마 전,
생명의 시작을 이해했다.
살아있는 것들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
깊게 이해하면 할수록,
음악이 전하는 감정의 밀도는 더욱 높아졌다.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이렇게, 세상의 모든 감정을 이해해 나가다 보면,
결국,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이들의 감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삶에 대한 열망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노래로,
그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이 보였다.
***
“어허. 결국 나랑 한 판 뜨자는 거네?”
“아뇨. 공정한 경쟁을 하자는 거죠.”
“이 동네에서 장사하기 싫어?”
“이미 엄청 힘들게 하시지 않았나요?”
“와. 뭐 몸에 좋은 거라도 먹었나? 기세가 아주···.”
상가 관리실 문이 열렸고, 최광엽은 서둘러 표정을 바꿨다.
“아이고! 사장님 오셨습니까?”
주성돌 할아버지가 손바닥을 비비는 최광엽을 힐끗 본 뒤, 낯이 익은 여자 중개사에게 눈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 들어본 애들은 그래도 들을 만하던데? 뭐, 직접 봐야 알겠지만···.”
“아주. 실력이 좋은 친구들입니다. 이번은 도장 찍으실 겁니다.”
“뭐, 봐야 알 일이고. 근데, 그쪽은?”
최광엽이 교묘하게 미연을 가리고 있었기에, 그녀가 광엽을 밀치며 앞으로 나섰다.
“지하 연습실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밴드가 있어서 왔습니다.”
“응? ‘창조’말고 다른 부동산에서 온 거는 오랜만이네?”
“네. 그간, ‘창조’부동산에서 독점하고 있었죠.”
‘독점?’
미연의 말에 뼈가 있음을 느낀 주성돌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뭔가가 있었기에 저런 말이 나온 것일 터. 알아보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우선, 아직 음원은 따로 만들지 못해서, 공연하는 영상을 찍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거···.”
미연이 봉투에 담긴 물건을 꺼내자,
슬쩍 훔쳐보던 최광엽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와. 저게 아직도 돌아다니네? 요새 같은 시대에···.”
이죽거리던 최광엽이,
그 물건을 바라보는 건물주의 눈빛에 말끝을 흐렸다.
아련하게,
세상에서 지워진 물건을 바라보는 주성돌의 눈빛이 떨려왔다.
한때,
백만 장이니, 이백만 장이니,
음악이 실물로 돌아다니던 최고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물건.
CD에는 근근이 버텼지만,
MP3의 등장으로,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물건.
천천히 손을 뻗어,
사각, 투박한 물건을 들었다.
“에이. 그거 지금 틀어보지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최광엽이 끼어들었지만, 주성돌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영상도 있다고 했나?”
“네. 사장님!”
미연이 힘차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