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3
3화. 피아노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듣던 피아니스트 신유정은 이상하게도 콩클과 인연이 없었다.
한국 클래식계에서는 정도에서 벗어난 그녀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선택했던 것은 조기 유학.
유학에서 돌아온 후, 우연히 호텔 로비에 있는 피아노를 치게 되었고, 그 영상이 업로드되며 일약 유투브 스타가 되었다.
그 이후, 길거리 연주 컨셉으로 유투브를 찍게 되었다.
그녀의 영상은,
눈에 보이는 정확함과 흔들리지 않는 오리지널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음악계에 작지 않은 파장을 남겼고,
어느새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한국의 연주음악계에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비록 대회 수상 경력은 없었지만, 유투버로서의 유명세 하나만으로 이탈리아 볼로냐 피아노 연주회에 초청될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그녀의 인기는 엄청났다.
“어?”
“저 아저씨 뭐야?”
홍대에서 버려진 피아노를 치는 장면을 만들어볼 요량으로 세팅된 장소, 그 장소에 누군가가 다가갔다.
카메라 배터리를 근처 카페에서 충전해오는 사이에 등장한 불청객.
“야. 술 먹었나 봐.”
“에이 씨. 내가 가서 얘기할까?”
“놔둬. 괜히 시비 붙지 말고. 좀 눌러보다 가겠지.”
“그럼 다행이고.”
촬영을 도와주는 사촌 동생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 저. 앉는데?”
“야. 일단 카메라 돌려. 혹시라도 피아노 망가트리면 증거라도 있어야 하니까.”
간혹 세팅된 피아노에 누군가 난입하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대부분 유투브 촬영 중임을 얘기하면 알아서 비켜주곤 했지만, 저 나이대면 조금 애매했다.
나이가 조금 있는 사람 중에는 유투버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을 몰라볼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마에 약간의 핏기도 보였고, 술에 취한 것처럼 넋이 나가 보였다.
“누나가 카메라 들고 있어. 내가 가서···?”
갑자기 울리는 피아노 소리에 유정이 동생의 팔을 잡았다.
‘조율 확인?’
그가 가장 왼쪽의 건반부터 오른쪽으로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확한 박자와 세기로, 하나씩 울리는 음.
그의 손가락은 마치 기계와도 같았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쳤던 건반을 확인한 순간 유정은 입이 떡 벌어졌다.
그가 멈칫한 건반은 현을 두드리는 헤머가 조금 무뎌져, 다른 건반에 비해 아주 미세하게 소리가 작은 구간이었다.
조만간 고치려고 생각 중이었던 그 건반을 정확히 잡아낸 것이다.
유정의 눈이 더욱 커졌는데,
두 번째 쳤을 때, 다른 건반의 소리와 같은 크기의 소리가 울린 것이다.
조율 기계도 없이, 터치의 강약만으로 본래 그 건반이 내야 할 소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조율을 맞춘 게 두 번.
한 번은 어쩌다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두 번은 말이 되질 않았다.
‘절대로 우연이 아니야.’
저 피아노의 주인인 자신도 매일같이 쳤기에 미세하게 알 수 있는 것을, 단번에 잡아낸 것이다.
조율이 끝나자,
그가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너무나도 해맑아서, 그의 나이를 짐작하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처음 그를 봤을 때는 삼십 대 중 후반으로 보였는데, 방금 그 미소만큼은 장난기 많은 십 대 소년의 그것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건반 위에 부드럽게 올라간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쇼팽 에튀드?’
유려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반쯤 감은 눈.
간혹 자신도 치곤 하는 그 곡이었지만, 그의 터치는 뭔가가 달랐다.
‘미스 터치?’
실제로 미스 터치가 많은 곡이기는 했다.
하지만, 실수라고 하기엔 뭔가 의도적인 느낌이 강했다.
터치 자체가 달랐기에 그렇게 느껴진 것인가?
강해야 할 부분을 잔잔하게 흘리질 않나, 부드럽게 가야 할 곳은 강렬한 터치로 눌러버렸다.
이 곡을 정확히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어떤 감정이 느껴졌다.
바로 자신이 이 나라의 클래식 시장에 대해 느꼈던 감정.
‘반항.’
일률적인 잣대에 대한 반항.
그 감정이 그의 손가락에서 표현되고 있었다.
마치, ‘이게 더 낫지 않아?’라는 듯.
더 놀라운 것은, ‘반항’을 떠올리자, 더욱 완벽한 곡으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200년이 넘게 검증된 곡을 이렇게 바꿔놓다니···.
“누나?”
“쉿.”
사촌 동생은 누나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피아노 전공이 아닌 그가 봐도 엄청나게 잘 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뭣보다 저 여유롭고 도도한 표정.
‘아재 주제에···’
뭔가 재수 없으면서도 멋있었다.
사촌 동생과는 달리, 연주 자체에 심장이 뛰던 유정은 곡이 끝나감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점점 느려지며 약한 터치로 마무리를 지어야 할 순간.
갑자기 그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더욱 강렬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이 건반을 누른 채 멈췄다.
남자의 표정이 조금 구겨져 있었다.
‘뭐지?’
마치 화난 듯한 그의 표정에 유정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의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숨을 죽였다.
유정의 심장이 마구 두근대기 시작했다.
에튀드는 그렇게 화를 내며 끝나는 곡이 아니었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 씹었다.
사촌 동생은 그런 누나를 바라보다 주변을 둘러봤다.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있다.
피아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누나를 보니, 뭣도 모르는 자신만 놀란 건 아닌 모양이었다.
누나가 연주할 때도 이렇게까지 모이지는 않았었는데···, 들고 있던 카메라로 그들을 한 번 훑었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아마도 이 연주는 자신들만 독점할 장면은 아닌 것 같았다.
연주가 끝난 것 같은데도 사람들이 핸드폰을 내리지 않는다.
‘아.’
생각해보니 자신도 아직 카메라를 내리지 않았다.
저 남자의 연주가 끝나지 않았음을 모두가 본능적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누나의 표정을 살폈다.
아랫입술을 잘근 씹은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분노?”
누나의 입이 달싹였다.
곧.
쾅쾅 울리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피아노가 내는 소리일 뿐, 피아노곡은 아니었다.
뭔가 심장을 때리는 듯한.
마치 타악기에서나 느껴질 만한 격정.
유정이 동생을 잡고 있던 손을 툭 떨어뜨렸다.
뭔가에 홀린 듯,
피아노를 향해 걸었다.
강렬하게 내려치는 그의 손이 닿지 않은 영역에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이 잠시 올라갔다.
한음.
쾅쾅대는 천둥소리 사이로, 작은 새의 지저귐이 섞여 들어갔다.
또 한음.
천둥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누른 작은 음은,
이슬비가 처마를 적시듯, 티 나지 않게 그의 분노에 스며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누르는 건반의 개수가 조금씩 늘어나자 천둥소리의 간격이 조금씩 벌어졌다.
작은 새에게 영역을 양보했고, 어느새 그의 옆에 앉은 그녀의 지저귐이 맑게 울렸다.
그리고,
먹구름이 걷히며, 작은 새의 지저귐에 어우러지는 시원한 바람 소리만 남았다.
그 바람 소리가 너무나도 슬퍼서 저도 모르게 유정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지저귐이 멈추자,
바람 소리도 잦아들었다.
손가락을 멈춘 남자가 유정을 돌아봤다.
그리고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모여든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고, 저마다 손뼉을 쳐 댔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눈가는 하나같이 젖어있었다.
환호와 함께한 박수가 계속해서 이어졌고, 벌떡 일어난 그가 상체를 숙여 그들에게 답례했다.
“저기···”
남자가 돌아서 걷자 유정이 그를 불러 세웠다.
“센스 좋던데요? 즉흥적으로 올라온 감정이었는데, 그걸 진정시키다니···”
방긋 웃어주는 그의 얼굴은 정말로 소년의 그것과 같았다.
염색이 덜 되어 곳곳이 하얀 머리와 미세하게 보이는 눈가의 주름이 아니었다면, 또래라고 해도 믿을 정도.
“피아노 잘 빌렸어요.”
그가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정이 황급히 사촌 동생을 바라봤다.
“다 찍었습니다.”
유정의 눈빛을 이해한 사촌 동생이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그녀를 안심시켰다.
유정이 아직도 떨리는 손을 바라봤다.
방금의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가슴이 먹먹했다.
***
진혁은,
처음 피아노를 배웠던 때가 생각났다.
어린 시절 생활했던 바닷가 작은 성당.
그 성당에 계셨던 수녀님이 기억났다.
처음 음악을 알려주신 분.
진혁이 쇼팽의 에튀드를 처음 쳤던, 그날 먹었던 돈까스도 기억났다.
‘넌 세상을 치유할 능력을 받았어. 이건 기적이야.’
진혁에게 음악의 길을 가도록 인도해주신 고마운 분.
그리고,
그녀를 떠올리자, 마흔셋의 진혁이 현재의 기억을 쏟아냈다.
나이 드신 수녀님들이 모여 생활하는 요양원.
치매로 많은 것을 잊은 채, 아이가 되어 자신이 모시는 분에게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반항기 가득한 에튀드를 연주하던 중 갑작스럽게 떠오른 기억이 그를 분노하게 했다.
그런 그녀를 찾은 진혁은 그 곡을 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잃은 상태였으니까.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진혁을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 진혁이 보고 싶은데···’
그를 바로 앞에 두고도, 에튀드를 칠 수 있는 진혁을 찾으며 눈물을 흘렸었다.
궁여지책으로 음원을 재생해 주었지만, 그녀가 원하는 에튀드가 아니었다.
그녀가 듣고 싶어 했던 것은, 반항기 넘치는 진혁만이 칠 수 있는 에튀드.
그는 그녀가 그렇게 듣고 싶어 하는 그 곡을 연주해 줄 수가 없었다.
‘젠장.’
그녀는 결국,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진혁을 만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어쩔 수 없었음을 알지만, 끓어오른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분노로 끝낸 에튀드는 그 감정을 모두 쏟아내지 못했다.
건반에서 손가락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직 부족해.’
그렇게 시작된 절제되지 않은 분노.
지금 자신이 느끼는 분노와 스물일곱의 진혁이 느낀 괴로움이 섞여, 감정이 격해졌다.
오랜만에 만난 음악으로 표출된, 제어되지 않는 감정이 손끝에서 마구 쏟아져 나왔다.
순간,
엉망으로 뿜어댄 울분에 무언가 다가왔다.
그 작은 지저귐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한음 한음.
그의 분노에 스며들었다.
스물일곱의 진혁도 어쩔 수 없었고, 지금 깨어난 이 인격 역시 잘못이 없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정신이 들었고,
바들바들 떨면서도, 태풍 한가운데 날아든 작은 새를 더 이상 공포에 떨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분노의 먹구름이 걷히자, 끝내 그녀에게 에튀드를 선물하지 못한 진혁의 슬픔만이 바람처럼 남았다.
작은 새는 그런 바람의 슬픔마저 마지막까지 달래 주었다.
‘음악.’
진혁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인파에 가려 피아노는 보이지도 않았다.
방금 그 연주로,
음악을 잃고, 힘겹게 아등바등 살아왔던 ‘마흔셋의 진혁’을, 이해하게 되었다.
작은 새의 지저귐을 가슴에 담았다.
세상은 넓고, 재능이 넘치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더욱 재밌는 세상이다.
오늘 자신을 보듬어준 작은 새를 기억하며 이 곡을 다듬으리라.
‘분노, 진정, 슬픔, 치유의 지저귐.’
진혁이 미소 지었다.
이제 세상을 재밌게 만들어줄 것이다.
혼자보다는 함께.
열아홉 가장 꿈 많던 당시의 맴버들을 떠올렸다.
지금 변화한 그들이 기억으로 흘러들어왔고, 진혁은 허탈하게 웃었다.
‘나이 먹었네?’
핸드폰.
당시에는 없었던 물건이지만 꺼내자마자 그 사용법은 알 수 있었다.
연락처를 뒤졌고,
가장 먼저,
가장 더뎠지만,
가장 성실했던 키보디스트를 찾았다.
***
안가네 치킨집.
“치킨 세 마리 나갔어?”
“응. 방금 배달 기사님 드렸어!”
“여보! 맥주 넣었지?”
“응?”
“아! 내가 맥주 하나 넣으랬잖아!”
“어··· 얼른 갈게. 요 앞이라서 뛰어가면 돼!”
“휴. 또 저번처럼 맥주 흔들려서 욕먹지 말고, 걸어가라.”
“네! 알겠습니다.”
“담배 피지 말고 곧장 와!”
“넵!”
안상정이 서둘러 생맥주 한 통을 받아 비닐에 넣자, 주방 구석 쪽문이 살짝 열리며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으이구. 또 실수했어?”
“쉿!”
“아빠! 올 때 꿈틀이!”
“알았어. 근데 너 학습지 했어?”
“쉿!”
아들이 쏙 들어갔다.
상정이 외투를 입고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최근 눈여겨보는 아이돌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
상큼한 그녀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흥얼거리며 걷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응?’
핸드폰에 찍힌 이름에 상정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