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생명의 시작
‘아니, 강남역이라고만 말해주면 어떻게 찾으라고···. 전화라도 받던가.’
장하는 투덜거리며, 언제나 북적이는 강남역 입구로 향했다.
사람들의 틈에 섞여 밖으로 나오자,
굳이 두리번거리지 않더라도,
친구가 어디에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벌써 시작했네.’
역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
구름떼처럼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
뭔가 바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강남은 홍대와는 달랐다.
홍대는 뭔가 풋풋하며, 풀어진 느낌이라면, 강남은 질서가 있는 자유로움이라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홍대를 찾는 부류와 강남의 부류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홍대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그 자유로움을 만끽하려는 이들이 모인 느낌이었고,
강남은 애초에 사회인들이 주축이 되어 그 문화가 형성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사회인도 홍대를 가고, 학생들도 강남을 가지만, 오랜 시간 구축되어온 문화적 특색은 그 온도가 달랐다.
진혁은 지하철역 근방, 문 닫은 은행 앞에 앉아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영등포역의 그들과는, 정반대로 보이는 분위기.
이들은,
시계를 너무 빨리 돌리고 있었다.
정확한 시간에,
정확하게 색이 바뀌는 신호등은 메트로놈 같았고,
붉은 선율에서 푸른 선율로 바뀌자,
수많은 사람이 불협화음을 내며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한 번의 연주가 끝나고,
붉은 선율로 바뀌자, 다음 음파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치,
안전이라는 명목하에,
단 두 개의 음표를 갖고,
지휘하는 지휘봉과 같았다.
사람들은, 강제된 악보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너무 앞서 나간, 궤변적인 상념을 지우려 머리를 털고, 기타를 꺼냈다.
강남은,
홍대와 달랐다.
밴드 문화 역시 강남에서는 왠지 생소했다. 버스킹의 거리는, 대학로가 형성된 강북에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어른, 또는 어른이 되려고 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목에 걸린 멀티스카프를 코까지 올리고, 토끼 가면을 꺼내어 얼굴에 뒤집어썼다.
어쩌면,
이 바쁜 거리에서,
꽤 생소한 풍경일지 모르겠지만,
제 갈 길이 바쁜 사람들은,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그들의 시간이 어지러울 정도로 팽글팽글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가면 속 진혁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렇게, 매일 빠르게 돌리면, 힘들지 않아?’
오늘 하루만,
그 시계의 톱니바퀴 하나씩을 압수할 생각이었다.
***
“야! 벌써 10분 지났어. 언제 오는데? 지하철도 막히냐?”
신경질적으로 통화하던 남자가, 씩씩거리며 끊어진 핸드폰을 노려봤다.
“얼른 한 잔해야, 차 끊기기 전에 가는데···.”
목표에 얽매여,
시간에 쫓기며 사는 삶이었다.
고등학교까지는 대학이 목표였다.
군대에서는 전역이 목표였고,
대학을 졸업 할 때쯤엔 취업이 목표였다.
그래도, 꽤 괜찮은 중견기업에 입사했고,
목표는 정규직으로 바뀌었었다.
오늘 정규직으로 발령이 났고,
그 목표를 이뤘음에 친구에게 한턱내는 날이었다.
풀어질 만도 한데,
이젠 괜찮은 인사평가가 목표가 되었다.
남자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다음 목표는 승진이겠지.
아마, 이렇게 갱신되는 목표는, 평생토록 멈추지 않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에이씨. 얼른 술이나 퍼야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출근, 퇴근, 집, 출근, 야근, 퇴근, 집, 출근, 퇴근······.
그게 지겨워,
잠시 짬이 나는 저녁이면, 술을 찾았다.
기왕이면 강남.
같은 다람쥐들이, 쳇바퀴에서 나와 쉬어가는 곳.
다람쥐들을 둘러보려 고개를 들었는데,
웬 토끼가 바쁜 거리 가운데 멈춰있었다.
아니, 멈춰있는 사람은 간간이 있었지만,
여기저기 반짝거리는 틈새, 문 닫은 깜깜한 은행 앞에 앉아있어, 더욱 그렇게 보인 것도 같았다.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저 분위기만이 아니었다.
정말로,
저 공간은 멈춰있는 것만 같았다.
방금, 정신을 아득하게 했던 목표들이 떠올랐다.
술이 아니면, 놓지 못하는 욕심들.
아니, 술에 취하면 더 또렷해지기도 했다.
저 공간에 발을 들이면,
잠시 잊을 수 있을까?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강남과 어울리지 않는 통기타.
그 아날로그적 선율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강남을 찾은 자신은,
쳇바퀴에서 내려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출근, 퇴근, 술, 집, 출근, 야근, 퇴근, 집, 출근, 퇴근, 술, 집, 출근, 퇴근, 술·········.
강남도, 술자리도,
사실은,
쳇바퀴 위에서 뛰는 중이었다.
이 엄청난 깨달음에,
머릿속의 뭔가가 툭 하고 빠졌다.
멍한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자,
자신과 같은 다람쥐들이,
토끼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자신들의 쳇바퀴를 정확하게 인지한 순간,
마치, 새로운 눈을 뜬 듯.
세상이 달라 보였다.
지금, 이 순간,
태어나,
처음으로 쳇바퀴를 벗어난 느낌이었다.
오늘은,
술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
강남대로 옆의 인도는 꽤 넓다.
그 넓은 인도는 주말이면 사람으로 꽉 차곤 했다.
다만, 평일에는 그래도 별 어려움 없이 걸을 만한 길이었는데,
그 길이 꽉 막혀있었다.
건너편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대편을 바라봤다.
분명,
자신들과 마주하고 있어야 할,
맞은편 신호등 아래의 사람들이,
모두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예인이라도 왔나?’
그것도, 조금 의아했다.
물론 연예인이 왔다면, 모이기는 할 테지만, 저 정도의 인파라니···.
‘설마···. 차일드 애플?’
세계적인 아이돌,
그들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런 궁금증으로 내달려,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갔지만,
불 꺼진 은행 앞,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토끼만이 있을 뿐이었다.
‘뭐야···.’
고개를 돌리려던 그때,
토끼의 노랫소리가 들렸고,
‘너도 잠깐 쉬어.’
머릿속 무언가가 툭 빠졌다.
강남역.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건너는 신호등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아마도, 이 건널목이 생긴 이래 최초일 것이다.
붉은 선율이, 푸른 선율로 바뀌었는데도,
평소라면 불협화음이 섞이듯, 마주 보며 걸었어야 할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만 움직였다.
***
원곡은 분명 느리지도, 잔잔하지도 않은 곡인데,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그들의 시계를 건드렸다.
본래 알고 있던 리듬이 아니어서, 더욱 크게 느껴진···.
‘오늘만은 천천히.’
어느새,
사자 가면을 쓴, 덩치 큰 남자의 기타가 추가되었고, 그들을 고장 내고 있던 드라이버가 두 개로 늘어났다.
그 곡이 끝날 때쯤, 키보드와 작은북이 끼어들었다.
곡이 끝났지만, 그 누구도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분명 바쁘게 가야 할 곳이 있었던 것 같은데···.
토끼가 옆에 선, 동물들을 돌아봤다.
가면과 멀티스카프 때문에,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느낌상,
방긋 웃는 것 같았다.
***
거리를 걷던 경찰들이,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을 감지했다.
“어? 뭐지?”
“연예인이라도 왔나 봅니다.”
“그래? 확인해보자.”
“네.”
두 경찰이 서둘러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겨우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발견한 것은, 동물 가면 밴드였다.
“어···. 이거 허가가 난 건가?”
이 거리에서는 꽤 생소한 광경에 선임 경찰이 갸우뚱했다.
“제 기억으로는 없습니다.”
“뭐···. 돈을 받는 건 아닌 것 같고···.”
“그, 길거리에서 대가 없이 연주만 해도 위법입니까?”
선임 경찰이 미간을 찌푸렸다.
길거리 공연에 관한 것은, 지역 공공기관과 관할 경찰서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때 마포구에서는, 거리공연 자체를 일시적으로 금지 시키고, 단속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그런 명령이 내려온 기억이 나질 않았다.
뭐, 고성방가나, 소음 발생으로 민원이 들어왔다면 모르겠지만, 통행 방해를 근거로 단속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통행을 방해한 이들은,
저 연주하고 있는 동물 밴드들이 아니라,
모여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 사람이 모였으니까, 혹시 모를 사고는 대비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자신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 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둘러보며 긴장이 풀리자, 그들의 노래가 들려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시달리던, 감각 어딘가가 살짝 어긋났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의 안전을 살피려는데,
후임 경찰의 얼굴이 보였다.
언제나, 긴장한 표정으로 각이 딱 잡힌 녀석이었는데,
멍하니 풀어진 얼굴.
후임의 시선을 따라, 조용한 선율에 집중하자,
‘아···.’
이 공간의 의미를 깨달았다.
여기 모인 이들은,
강제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는,
시민의 안전을 핑계로,
꽉 잡고 있던 머릿속 부품 하나를,
놓아 버렸다.
‘잠깐쯤은···.’
그의 시계도, 느리게 돌기 시작했다.
***
“어? 혹시 테일님 아니세요?”
“아···.”
젊은 여성 셋이 마스크를 쓴 남자를 둘러쌌다.
‘모자도 쓰고 나올걸.’
테일이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몸을 돌린 채, 싸인을 해줬다.
“저기 사진도···.”
“아···. 네···.”
단체 사진 하나, 세 번의 셀카.
네 번의 촬영 후, 겨우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야. 난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던데.”
그 광경을 쿡쿡대며 바라보던, ‘늙은’아이돌 ‘비투스’의 리더 진훈이 다가왔다.
그도 검은 마스크를 쓴 채였다.
“왜 길에서 보자고···.”
“가끔 좋잖아. 걷기도 하고.”
“얼른 어디라도 들어가자.”
테일이 툴툴거리며 걸음을 빨리했다.
오랜만에 거리를 걷는 것은 좋았지만,
조금만 눈이 마주쳐도 알아보는 이가 또 있을 것이었다.
어느 때부터,
사람이 많은 거리는 부담스러웠다.
진훈이 빠르게 움직이는 테일을 졸졸 쫓았다.
바쁘게 걷던 테일이 갑자기 멈춰 섰다.
“왜? 차 바꾸게? 너 얼마 전에 페라리 샀잖아?”
“잠깐만···.”
“야. 이건 니 취향도 아니지 않나?”
불법 정차된 롤스로이스를 노려보던 테일이, 앞 유리에 걸린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왜? 아는 차야?”
테일이 핸드폰을 귀에 가져가며, 손을 들어 진훈을 조용히 시켰다.
-네. 여보세요?
여자? 아니. 아이?
어쨌거나, 테일이 예상했던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 죄송합니다. 전화 잘못 걸었네요.”
-네. 알겠습니다.
테일이 고개를 갸웃하며 통화를 마쳤다.
롤스로이스의 내장재는, 고객이 원하는 것으로 맞춤 제작이 가능했다.
지금 안쪽 시트 색은, 짙은 회색. 롤스로이스의 가죽색치고는 흔하지 않은 색깔이었다.
주문 당시, 콘크리트 색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뭐. 왜?”
“아냐. 내가 착각했나 봐.”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응? 뭐지?”
진훈이 테일의 옷을 잡아당겼다.
“연예인 왔나 봐?”
‘지도 연예인이면서.’
테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강남역을 점거하고 있었다.
문득,
대한민국 대표 발라드 가수인 자신이 마스크를 벗고 활보한대도, 저 정도의 사람을 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 누군지 보러 가자.”
친구가 그의 옷깃을 잡고, 그 방향으로 끌었다.
은퇴가 확정된 날부터, 저렇게 일반인 행세를 했다.
테일이 피식 웃었다.
한때는 아이돌 댄스그룹으로서, 정상의 위치에 있었던 친구였다.
그런 이가 한순간에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지금 하는 저 행동 모두,
어쩌면,
그 허탈함을 조금이라도 잊으려는 행동일 것이다.
못이기는 척 주변을 살피며, 친구의 걸음을 따랐다.
다행히, 시선은 모두 저 중심을 향해 있었고, 자신들을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뭐지? 공연하나 본데?”
시큰둥하던 테일이 친구의 말에 까치발을 하고, 이 사태의 주인공들을 바라봤다.
목까지 가리는 복면에,
우스꽝스러운 동물 가면?
테일도 잘 알고 있는 그 가면이었다.
킹덤 오브 스타 클럽, VIP플로어에 걸려있는 그 가면.
사람들을 비집고,
중앙을 향해 움직였다.
***
진혁은,
오늘 무언가를 실험해 볼 생각이었다.
홍대와 달리, 계획되지 않은 공연을 먼저 시작해버린 바람에,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모였다.
그들의 시계태엽을 늘어날 대로 늘려놓은 상태.
이들에게,
탄생하기 전, 아직 뱃속에 자리했을 때의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세상에 처음 나온,
그때의 느낌을 전할 수 있을까?
지난주 토요일,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탄생의 순간을 기다리는 그 감정을 노래했었다.
이번, 산모들을 대하며 이해할 수 있었던, 뱃속 아가들의 감정.
생명의 시작점인 그 감정이, 그녀를 깨울 수 있을지도 몰랐기에,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이듯,
노래했었다.
만일 자신의 노래가 기적을 불러오는 것이라면, 가장 간절한 자신의 심정이 전달되어야 할 텐데···.
굳게 닫힌 그녀의 눈꺼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감정은 정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혁은 실망하지 않았다.
앞으로, 자신이 이해하게 될 감정은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그래서, 오늘 해보고 싶었던 것은,
군중들의 목소리가 모인다면,
얼마만큼 그 감정이 커질지 궁금했다.
진혁이 신호하자,
친구들의 악기가 멈췄고,
그의 통기타만이 울리기 시작했다.
둥둥.
가장 굵은, 단 두 줄로 내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진혁이 고개를 들어 관중을 바라봤다.
단지,
무언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살아온, 그들.
가족에게서, 직장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가치를 끝없이 높여야만 했던 이들.
지쳐있는 영혼들.
진혁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생명은,
태어난 자체만으로 그 가치는 이미 증명된 것을.
세상이,
그 가치를 온전히 받아 들여주지 않았기에,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둥둥.
생명의 시작.
누구나 겪었을,
하지만,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그 시작을 노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