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35
35화. 재밌게 노는 세상
며칠이 지났고,
그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먼저,
신촌에서 버스킹하던 동물 가면들이 관중에게 붙들렸다.
원조와는 조금 달랐지만, 이들도 엄청난 공연을 펼쳤다.
사람들에게 반강제적으로 벗겨진 가면.
그 가면 속 얼굴은,
‘나비 계곡’이었다.
대형 밴드의 정체가 밝혀졌고, 홍대 인근, 대학로, 건대 입구, 한강 여기저기서 실력 좋은 동물 가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하나의 문화가 새로 생겨난 듯.
자신을 감추고 하는, 블라인드 공연이 여기저기서 출몰했다.
각양각색의 가면들이 등장했지만,
‘원조’에 대한 예의로, 토끼, 곰, 표범, 사자의 가면을 사용하는 밴드는 없었다.
이 현상이 지속되자,
공중파 뉴스에까지 나오게 되었고,
젊은 문화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알게 되었다.
마치, 서울 전역에서 열리는 락 페스티벌과도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노상 공연 문화에 익숙하지 않던 이들도, 심심치 않게 만나는 소규모 공연을 접하게 되었고,
간혹 대형 스타가 가면을 벗으며 등장하기도 했기에, 가면 공연이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다.
서울 전체가 떠들썩했지만,
그동안,
원조 동물 가면 밴드는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랬기에,
‘원조’의 가치는 나날이 높아져만 갔다.
***
하천 변,
배달 오토바이가 섰고,
치킨 상자가 담긴 비닐과 카드 단말기를 든 충기가 하천을 향해 내려갔다.
걷기 운동하는 무리가 지나갔고, 벤치에 앉아 하천을 바라보는 이에게 다가갔다.
“야. 어떻게 알았어?”
“현재 차 주인이 친절히 알려주던데요?”
“흠.”
아마도, 서준이 낚인 모양이었다.
“재밌어요?”
“응. 엄청 재밌어.”
“지금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일도, 다 계획한 거예요?”
“우리 리더가 제시했던 방향 중 하나기는 해. 설마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지만.”
“도대체 뭘 하려고 그러는 거죠?”
“가시적인 목적은 알겠는데, 그 이후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음원을 낸 것도 아니고, 저작권도 등록할 생각이 아닌 것 같으니, 돈을 벌 생각도 당장은 없어 보이고, 목표가 뭐예요?”
“목표라···.”
“뭐 유명해지고 싶기도 할 테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거고, 명성 같은, 뭐 그런 거 있지 않나요?”
“음. 난 있어.”
“네?”
“근데, 우리 리더가 좀 별나.”
헬멧 속 충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25년 전,
자신이 물었던 그 물음.
팀의 리더는,
아마도, 변하지 않은 답을 들려줄 것이다.
“다 같이 재밌게 노는 세상.”
테일이 고개를 갸웃하며 치킨 배달원을 바라봤다.
“세상은, 모두 함께 즐길 ‘재미’가 부족하대. 그래서 더 삭막해지는 거라고···. 우리 리더가 그랬어. 예전에.”
테일의 얼굴은, 전혀 이해된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여줬다.
“이해 안 되지? 솔직히, 나도 아직 이해 안 돼.”
충기가 헬멧을 긁적였다.
“좀 ‘똘끼’가 있어. 우리 리더가.”
웃고 있는듯한 음성이었다.
“근데, 난 재밌어.”
테일이 피식 웃었다.
둘은,
얕게, 천천히 흐르는 하천을 바라보았다.
***
“어. 그래. 알았어.”
전화를 끊은 주성돌 할아버지가,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는 노인들을 향해 미소 지어 보였다.
“뭐래? 해도 된대?”
“건축법상 아무 하자 없으니, 거 뭐냐···.”
“건축 설계사?”
“응. 거기. 거기서 설계 도면만 만들어서 보내면, 허가 내준단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 정씨 니는 잡부들 챙겨서 바로 공사 시작하고, 공씨는 그때 말한 그거 잘 설치해봐. 거 만중이는 그거 알지?”
노년.
어느 시점이 되면서부터, 더는 가슴 뛰는 일을 만나지 못했던 그들이었다.
그만큼 무뎌진 감정들.
그런 노인들의 주름진 눈에서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생애 마지막일 수도 있는, 큰 이벤트를 앞둔 이들은,
젊었을 적에나 가끔 보일 수 있었던 얼굴을 하고서,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거, 뭐 알아는 보겠지만, 큰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 왜 이러나. 자네랑 내가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그런 분이! 그렇게 날름 연습실을···. 뭐, 말해봐야 입만 아프니까···. 근데, 개발 들어오면 거기도 밀리는 거 확정 아닙니까?”
“그거 막으려고 지금 이러는 거 아닌가.”
“흠···. 막으려고요?”
창조 공인중개사 최광엽의 눈썹이 까딱였다.
얼마 전, 연습실 사태 이후로 조금 서먹해진 사이였다.
그 사이, 이 동네의 개발 정책이 확정됐고, 대략적인 상황을 전해 들었다.
거기다, 며칠 전에는 창천 건설사의 기획 실장이란 사람까지 찾아왔었다.
최광엽은 이번 개발에 있어서, 자신의 역할이 정해졌음을 확신했다.
우선,
만나기는 싫었지만,
앞에 있는 이 영감은 이 동네의 실세.
어떻게든 구워삶아야 할 존재였다.
‘개발을 막는다고? 어떻게?’
최광엽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되었건,
자신의 역할에는, 그 수작을 막아야만 하는 임무가 포함되어 있었다.
“자리는 우리가 만들 테니까, 그··· 음악 하는 애들만 좀 모아주게. 자네가 그쪽은 잘 알잖는가.”
그 꼬장꼬장한 양반이 저리 부탁하다니,
최광엽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저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절대로, 홍대에 소문이 돌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합정역에서 공연하던 가면 밴드가, 지하철역으로 도망치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어느새 생겨난 그들만의 놀이.
만족할만한 공연을 보였을 때,
사람들은 술래가 되어, 가면 밴드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
붙잡힌 밴드는, 게임의 규칙을 따라야만 했다.
밴드가 가면을 벗어 던지자,
“오! 대박! 임도유다!”
사람들이 자지러졌다.
대한민국 밴드들의 ‘큰 형님’까지 등장한 이 날.
사람들의 SNS를 타고, 한 장의 사진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원조’의 가면이 차례대로 놓여있었고, ‘재밌게 놀아볼까?’라는 문구가 쓰인 사진.
가장 아래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장소는, 나중에 공개.’
안 그래도 요새 붕 떠 있는, 사람들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알아들었어?”
“어··· 뭐, 일단은···.”
“아냐. 너 절대로 알아들은 표정이 아니야.”
“야. 알아들은 표정은 도대체 뭔데?”
“그런 표정이 있어.”
“후···.”
상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심, 진혁을 들었다 놨다 할 생각에 신났었는데,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했다.
“우선···. 곡의 완성도는 괜찮다. 맞지?”
“응.”
“다만, 조금 더 자신들의 경험에서 오는 감정을 넣었으면 좋겠다.”
“맞아.”
“그다음은, 아까 내가 연습한 거. 그거 들려주고?”
“잘! 잘 전달해야 해. 감정까지.”
“아! 알았다고.”
진혁이 전달해준 감정은, 상정도 잘 알아들었다.
“가서, 확실하게 교육 시키고 올게. 알겠지?”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못 믿는 눈빛으로···.
‘확. 씨. 때려치워 버릴까.’
상정이 툭 튀어나온 입을 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
“아. 그러니까, 조금 더 우리 또래에게 와닿는 걸로···.”
“응. 잘 알아들었네.”
“사실, 조금 어색하기는 했어요.”
현재 이 밴드의 리더 기수가 단번에 수긍했다.
“그래서···. 내가 어떤 느낌인지만 살짝 보여 줄 텐데.”
상정이,
키보드의 전원을 올렸다.
눈을 감고,
진혁이 알려준 감정을 떠올렸다.
곧, 고개를 끄덕이며, 건반에 손가락을 올렸다.
*
기수는, 사실 욕심을 내고 있었다.
그래도, 인디에서는 신동 소리까지 듣지 않았던가.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제법 잘 나가는 밴드의 베이스를 맡았었다.
비록, 동갑내기인 ‘박재경’이 홀로 에이전시에 들어가며 밴드가 해체되기는 했지만.
나름, 사람들의 환호를 받아봤다.
그랬기에, 겉멋이 들었는지도 몰랐다.
이 치킨집 아저씨는, 일부러 기수가 혼자 있을 때 왔다.
아마, 리더의 입장을 존중해 준 것 같았다.
부족함을 말함에 있어서, 멤버들이 없는 시간을 택했다. 그 배려를 느꼈기에, 그의 조언에 더 집중했다.
마치 똑딱거리는 듯한 멜로디.
계속되는 단조로운 멜로디는···.
마치, 학교 같았다.
단조롭고, 획일적인,
하지만,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전부인,
작은 세계.
어쩌면, 학교라는 곳을 거치며, 자꾸만 세상을 좁게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랬기에,
그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마치, 그 세계 안에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랬기에 그 안의 ‘위법’을 밖으로 내지 못했다.
어른들의 세계와 자신들의 세계는 단절되어 있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영악한 놈들은, 그 테두리 안에서 마음껏 군림했다.
잘못되었다 여겼지만,
거스를 수 없었다.
그 ‘세계’만이 아이들에게 허락된 곳이었으니까.
간혹, 용기 있는 몇몇을 빼고는,
그 ‘세계’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회성’이라는 단어로, 그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을 구분 짓기도 했기 때문이다.
교복, 교칙···.
어쩌면, 정당화된 통제에 길들어지는 과정인지도 몰랐다.
그 안에서, 서로를 비교하고 우위를 점하며, 세상을 더 좁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머리는 어설프게 커져만 갔다.
그래서,
학교라는 세상의 테두리 안에 갇힌 아이들은,
언뜻 자유로워 보이는,
‘어른’의 세상을 갈망했다.
기수는 낯 뜨거운 느낌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밴드에서 자신과 박재경을 제외하면, 모두가 성인이었다.
그랬기에, 마치 자신도 성인인 양 그들을 흉내 낸 것이다.
그래야, 어른들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은 너무나도 어설펐다.
지금,
치킨 아저씨는,
그렇게 기수를 질책하고 있었다.
*
“어땠어?”
“어···. 곡을 다시 써야겠네요.”
“멜로디도 좋고, 리듬도 신선해. 다만, 억지로 표현하지 말고, 조금 더 즐기면서···. 어···. 그러니까···.”
상정이 순간 멈칫했다.
‘이다음이 뭐였더라?’
“어···. 재밌게! 응?”
‘맞겠지. 뭐.’
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에 빠진 꼬맹이를 바라보며, 상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 재밌었다.
***
“문제는 돈이야.”
“지금까지는 적당히 때웠지만, 우리 지금 신디사이저 빼면, 악기도 엉망이야.”
“제대로 공연하려면 돈 들어가는 게 한두 푼이 아닌데···.”
아저씨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저거 팔자.”
진혁이 치킨집 앞의 롤스로이스를 가리켰고, 계산대 앞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서준이 발작하듯 깜짝 놀랐다.
“야! 너는! 애 놀라게.”
“저거 리스라 팔지도 못한댔어.”
“얼른 서준이한테 사과해라. 가뜩이나 심장도 약한 앤데.”
진혁이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준에게 향했다.
꼬맹이에게 쩔쩔매며 사과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충기가 탁자를 ‘탁’ 쳤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니들, 내 취미가 뭐였는지 알아?”
친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나, 둘, 셋···. 오케이. 따라 나와.”
머릿수를 세던 충기가, 자신만만하게 밖으로 나갔다.
친구들이 뒤늦게 뒤따라 나가자,
“타!”
그새 잡은, 택시 조수석에서 충기가 손짓했다.
뭔가 모를, 로열패밀리의 기백이 느껴졌다.
***
양주시,
산 밑자락 작은 창고의 문이 열렸고,
할리데이비슨 네 대가, 부다다당 소리를 내며 등장했다.
잠시 일렬로 멈춰선, 오토바이 위의 아저씨들이 서로 눈 마주치며 씩 웃었다.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야. 언젠가 우리 오토바이 하나씩 사서, 전국을 돌면서 공연해볼까?’
비록,
지금 공연가는 길은 아니지만,
그때를 떠올리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거 다 팔아도 괜찮겠어?”
“괜찮아. 이젠 이걸로 반항할 필요가 없으니까.”
충기가 부다다당 출발했다.
그 뒤를 나머지 셋이 차례대로 따랐다.
30분간의 짧은 라이딩.
경기도 북부 어딘가의 오토바이 대리점은 왜 그리도 가까운지.
네 명의 아저씨들이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남자의 로망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
“야. 너는 누가 후원해준다고 하면, 덥석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야지! 우리 쥐뿔도 없는데!”
“그러게, 월급쟁이 주제에···.”
“우리 앞으로는 수익도 생각해야 한다.”
친구들의 타박을 받으며, 진혁이 미간을 좁혔다.
“남의 돈으로 시작하면, 부담 생겨서 안 돼.”
아주 머릿속에 꽃밭만 가득한, 천진난만한 리더였다.
충기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진혁을 노려봤다.
“그럼 내 돈은!”
“넌 괜찮아. 충기니까.”
“아. 그건 맞네.”
“맞지. 충기지.”
부들거리는 충기가,
25년 전,
매번 멤버들의 밥값을 계산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그땐,
드럼 실력이 좋아서 끼워준 것이 아니라, 물주라서 끼워준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까지 했었다.
“야. 혹시 옛날에 나 끼워준 거···. 혹시 내가 돈이 많아서 그런 거였냐?”
“!···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분명히 대답이 늦었다.
확실히 더듬었다.
눈을 피하며 바쁘게 걸어가는, 친구들의 뒤통수를 노려보다가,
피식 웃었다.
아무렴 어떠랴.
지금 이렇게 재밌는데.
얼른 달려가 친구들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
SNS를 뜨겁게 달구던,
그 사진이 또 업데이트됐다.
토끼, 곰, 사자, 표범 가면.
‘재밌게 놀아볼까?’
그리고,
맨 아래,
드디어 장소가 적혔다.
그 옆에는,
‘날짜, 시간, 미정.’이란 글자만이,
매정하게 적혀있었다.
***
“근데, 너무 많이 모여도 문제지 않아? 동네도 좁은데?”
선하가 묻자, 진혁이 입꼬리를 올렸다.
“거긴 건물이 많아.”
또 아리송한 대답이었지만,
이미 얘기가 된 듯, 다른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최초일 거야.”
멤버들의 얼굴에 장난기가 묻어났고,
진혁이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