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전주
“그래서, 포맷은 그대로 간대?”
“너도 기획안, 본 거 아냐?”
“아. 몰라. 대충 보고 던졌지. 너 심사위원으로 나온다니까 오케이 한 거야.”
임도유는 황지선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너 재밌게 놀더라?”
“뭐?”
“합정역에서 잡힌 거 다 봤어. 다 늙어서 안 힘들디?”
“재밌었어.”
“뭐 재밌어 보이긴 하더라.”
“너도 놀아.”
“놀기는···, 이 나이에 무슨···. 끼워주지도 않고.”
“나이 먹고 놀려면, 누가 끼워주길 기다리면 안 돼. 눈치 보지 말고 들이밀어야지. 체면 차리다간 그대로 꼰대 되는 거고.”
“치. 그래서, 응수동 축제에도 끼게?”
황지선의 말에 임도유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 왜? 거긴 낄 데가 없어?”
“뭐, 막 껴도 되는데···. 좀 더 재밌게 놀고 싶어서···.”
“응?”
임도유는 테이블 위의 핸드폰을 노려봤다.
문자 해준다고 하더니, 벌써 하루가 넘게 묵묵부답이었다.
조금 짜증이 났지만, 지금으로선 직접 연락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은, 전처 밖에는 없었다.
그때,
핸드폰이 반짝였다.
화들짝 놀란 임도유가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입꼬리를 올렸다.
“왜? 뭔데?”
황지선이 잔뜩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야. 너도 끼워줄까?”
“응?”
임도유가 활짝 웃으며 턱을 세웠다.
***
“네? 네! 알았어요. 아저씨!”
신유정이 피아노 뚜껑을 닫으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컴퓨터로 달려가 메일을 클릭했다.
화면 가득 악보가 떴다.
‘와···. 진짜로 그걸 곡으로 만들었네.’
유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행님.”
“어. 제니스.”
“이 페스티벌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페스티벌인가?”
“음, 그런 건 아니고···.”
“전에도 이런 방식으로 열렸었나?”
“그거 이번에 처음 하는 걸걸? 그리고, 뭔가 주최사가 정해진 페스티벌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모인 거야.”
“한국은 참 멋지네.”
“뭐! 즐거운 나라지.”
종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메인이···.”
제니스가 핸드폰을 들어 김종탁에게 내밀었다.
강남역, 동물 가면 밴드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맞아. 그 밴드.”
제니스가 말하는 바를 알아들은 종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영등포역의 그 종이봉투 밴드를 찾지 못해, 애먹던 중이었다.
이런저런 변명거리를 준비하던 때, 때마침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동영상이 떴다.
종탁도,
그 영상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제니스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밴드가 확실했다.
그랬기에,
회사에서 몇 명 추려서 토요일에 그 밴드와 접촉할 생각이었다.
“우리도 가자 행님.”
“응? 구경?”
“거기 누구나 공연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요새는 밴드들이 몰려서 가려 받는다고···.”
제니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그들 기준에 미달인가?”
종탁이 ‘아차’하며, 입을 닫았다.
미쳤지, 세계 최고의 락 스타를 앞에 두고 가려 받는다는, 말을 하다니.
지금 한국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나비계곡’도, ‘임도유 밴드’도, 이들과는 체급 자체가 달랐다.
“아. 당연히 아니지. 근데···.”
종탁이 제니스의 뒤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조얀을 바라봤다.
사정상,
Box-43의 멤버들은 아직 전원이 입국하지는 못했다.
제니스와 조얀 단둘만으로도, 공연이 가능할까?
“난 재밌을 거 같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조얀이, 굵은 목소리로 시큰둥하게 말했다.
“행님, 너도 키보드는 치잖아?”
“응?”
“조얀, 나, 행님. 이렇게 셋이서 가도 충분해.”
제니스가 소파 옆의, 자기 기타를 툭툭 쳤고, 조얀도 고개를 끄덕였다.
“행님. 지금부터 연습한다.”
“응?”
“그가 날 알아보게 할 거야.”
“그게 무슨···.”
“최고의 공연을 할 거다.”
제니스가 기타를 꺼내 들자,
조얀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소파에 던지고 일어났다.
“우리 공연은 언제나 최고다.”
덩치가 산 만 한 조얀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가리키며, 낮게 으르렁댔다.
“행님도 최고여야 한다.”
종탁이,
키보드를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얼른 소속사에 연락해서, 어디가 되었건 건물 하나를 확보해야만 할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종탁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눈을 끔뻑이며, 키보드 앞으로 끌려갔다.
***
한국의 대표적인 밴드 전문 레이블 ‘드림캐쳐’ 메인 스튜디오에, 간판 밴드의 리더들이 모였다.
“우린 이미 자리 확보했다.”
레몬티 차일드의 ‘창명’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자, 나머지 리더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역시, 그 국밥집 맞은편 밴드 니들이었지?”
“비밀.”
“슈퍼마켓 건물은 우리 거다.”
또 다른 리더 하나가 손을 들어 말하자, 나머지들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야. 우리 릴레이로 가자.”
“싫은데?”
“아! 진짜! 같이 좀 놀자!”
“내가 왜?”
“진짜! 초딩도 아니고!”
나머지 리더들이, 얄미운 두 리더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아. 근데, 나비 계곡 그 꼬맹이들도 자리 잡았겠지?”
“당연히 잡았겠지? 그놈들이 이 재밌는 축제를 그냥 넘길 리가 없으니까.”
“와. 홍대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판이 어마어마하게 커졌네?”
“드디어 한국에도 밴드의 시대가 오는 건가?”
“누굴까?”
마지막, 창명의 말에 모두의 입이 멈췄다.
채, 한 달도 되지 않아서 한국을 들썩이게 한 장본인들.
아마,
지금 들떠있는 모두의 관심사는 그들의 정체일 것이다.
이 정도로 굉장한 존재감을 내뿜는 밴드가 대한민국 역사상 있었던가?
그 물음에 대부분은 고개를 저을 것이었다.
한순간 불타오른 신드롬이라 여기기엔, 엄청난 열기였다.
더군다나 그들이 등장한 것은, 단 두 번뿐이지 않은가?
이번 축제의 절정에서 그들을 직접 보고 판단하리라.
일반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름, 한국에서 음악 좀 한다는 이들은, 모두가 토요일이 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여기 모인 리더들의 눈동자도 반짝 빛났다.
***
“야! 왜?”
나비 계곡의 리더인 ‘제이’ 양장복이 황당한 듯 소리쳤다.
“도유형이래? 그럼?”
“그것도 아닌가 봐.”
자신들이 열정을 불태웠던 신인 시절, 그 연습실 건물의 옥상.
누가 봐도 메인 자리였고, 할아버지와의 친분으로 자신들이 확보하려 했던 차였다.
더군다나, 밴드로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자신들이지 않은가?
그런데,
단칼에 거절당했다.
“그럼···. 역시?”
“뭐 그런 거지.”
처음부터 주인은 정해져 있었던 듯했다.
“뭐, 그건 수긍해야지.”
“주인공이니까.”
“맞말.”
“그래도, 전파사 ‘공할배’네 앞 건물은 찜해놨어.”
멤버의 말에 장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넋 놓고 있다가 하마터면, 이 재밌는 축제에 끼지도 못할뻔했다.
주최사가 없는 페스티벌이라니···.
대한민국 공연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만일, 기획된 공연이었다면, 자신들의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이 가면 페스티벌은, 유명세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축제가 아니었다.
과연,
그들은 어떤 무대를 보여줄까?
전파사 공씨 할아버지의 건물을 떠올렸다.
그 맞은편에서 공연한다면, 분명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축제도 축제지만,
그 공연이 가장 기대되었다.
남의 공연을 이렇게 기다려본 적이 언제였던가.
장복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창천 그룹 본사 최상층 회장실에서는, 이번 ‘응수동 개발’관련 TF팀 실무자들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래서?”
“우선, 국회에 언질을 넣어 놨고, 구청장은 이미 사태를 파악해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관할경찰서에도 얘기해 놨으니 적절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김충석 회장이 잔뜩 구겨진 얼굴로, 직원들을 바라봤다.
“엎어질 가능성은?”
사업이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떠올릴 줄 알아야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떠올리기 싫었던, 그 ‘실패’라는 단어를 꺼내고야 말았다.
“이게, 아무리 그래도 정책을 뒤집을 만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 되며···.”
“너.”
“네?”
“잠깐 반짝하다 말 거라고 했던 놈이 너지?”
“아···.”
“넌 일단 닥쳐.”
“네.”
직원 하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김실장. 니가 말 해봐.”
“우선, 이번 축제가 성황리에 정착해 버리면, 정부에서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단 한 달도 되지 않아서, 홍대나 강남과 같은 문화적 거리가 만들어 진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 성격도 상징적인 부분이 강해서, 만에 하나라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성황리···. 만에 하나···.”
김충석이 중얼거리며 보고한 직원을 빤히 바라봤다.
“그래서?”
이미, 자신이 뱉은 말에 대책은 숨어있었다.
창천의 가장 똑똑한 이들이 모여있었고, 그들은 회장의 말이 뭘 뜻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만에 하나, 사고라도 터지거나 폭동에 가까운 소요가 일어나면···.”
“자네는 무슨 그런 끔찍한 말을 하는가?”
질책하듯 말하는 회장의 표정은, 아까보다 덜 구겨져 있었다.
“아···. 젊은이들이 좁은 곳에서 모여 흥분하다 보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어. 참 ‘걱정’되는 일이군.”
김충석 회장이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수동 개발 TF의 책임자들이 고개를 숙여, 회장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무엇에 동의했는지는, 그들만이 아는 일이었다.
***
창조 공인중개사 최광엽은 앞에 앉은 이를 노려봤다.
“야. 니들 이번에 확실하게 잘 할 수 있겠어?”
“와. 형님. 저 아시지 않습니까? 여기 이 구역에서 10년을 대가리로 있었습니다.”
“아무튼, 듣기로는 경찰들한테도 뭔가 딜이 있다니까, 좀 과격해도 될 거야.”
“흐흐. 뭐 애들 한 스무 명 난장 피면, 우르르 알아서 지들끼리 자빠지고, 생난리가 날 겁니다.”
“절대 직접 손 쓰면 안 된다. 알지?”
“일 한두 번 해봅니까?”
“그래. 내가 제대로 챙겨 줄게.”
“제가 또 형님, 그거 하난 믿지요.”
앞에 앉은 사내가 손바닥을 비비며 능글맞게 웃었다.
***
금요일 대낮.
응수동 상가 거리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 몇이 대치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서 풍기는 위험한 느낌은 사람들을 주춤하도록 만들었다.
각 무리의 대장인 듯한 두 사람이 마주 섰다.
“거, 강 건너에서 바쁘신 놈이 여기까진 웬일이지?”
“형님이야말로, 일수나 찍으러 다니시지, 나이도 드신 양반이 젊은이들 가득한 데를 기웃거리십니까?”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대던 그들이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그들의 뒤에 선 이들도, 잔뜩 긴장한 눈으로 상대편들을 살피고 있었다.
“니가 한참 못 봤다고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형님이 연락 늦게 줘서, 하마터면 장하 형님 중년 나이트로 갈 뻔한 건 아십니까?”
키가 큰 사내의 눈썹이 살짝 까딱였다.
“제가 강남 클럽 보안업계에서만 5년째입니다. 마냥 험악한 분위기로 될 일이 아닙니다.”
“뭐?”
“이것도 나름 서비스직이라 이 말입니다.”
“크흠.”
“책임자 자리는 제가 맡겠습니다.”
“야. 암만 그래도 위아래가 있지!”
“후···.”
양구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책임자는 형님이 하십쇼. 저는 실무팀장을 맡겠습니다.”
“응?”
뭔가, 아리송한 직책이었지만, 무덕은 자존심 때문에 묻지는 못했다.
“싫습니까?”
“아···. 그래. 내가 책임자 할게.”
무덕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양구철은 그런 무덕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사실, 장하는 이 둘이 함께 이곳에 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었다.
동대문의 무덕에게는 그다지 험악하지 않은 친구 몇을 추려달라고만 했고, 강남의 양구철에게는 보안에 관한 조언만을 얻을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충성심이 과했다.
자신들의 일까지 내 버려둔 채, 직접 움직일 줄은 몰랐다.
어쨌거나,
둘의 서열 정리는 일단락되었고,
실력에서만큼은 최고인 보안팀이 응수동 거리에 추가되었다.
***
대한민국 역사상, 도심지 한복판에서 락 페스티벌이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최사가 없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에, 자발적으로 모인 관객, 자발적으로 공연을 준비한 아티스트들.
각자,
원하는 목적은 있겠지만,
이렇게 모이게 한 원동력은 단 하나였다.
[재밌게 놀자.]밴드뿐만이 아니었다.
자신도 구경하러 가겠다는 연예인들이 속속 등장했고, 어쩌다 보니 관객들도 하나둘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방향 표지판도, 현수막도 하나 걸리지 않은, 홍보라고는 SNS에 뜬 사진 세 장이 전부인 축제.
그 어설픈 놀이마당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그간 열렸던 어떤 락 페스티벌도, 이렇게 대중적인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밴드 음악이란,
어디까지나 마니아적 성격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쌀쌀해지는 10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
응수동은 그 어느 곳보다 뜨거웠다.
그 열기의 한 가운데,
사거리의 6층 건물.
마주 보는 세 채의 건물 옥상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찬 상태였다.
누구도 공지하지 않았지만, 다들 알고는 있었다.
지금껏, 그 어떤 밴드도 공연하지 못했던,
가장 넓은,
그 옥상에 나타날 밴드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오전부터, 다른 옥상에서는 순서대로 공연들이 진행되었고, 저마다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열기가 최고조로 오른 해 질 무렵.
사거리 건물의 스피커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잠시, 모든 공연이 중단되었고,
불이 모두 꺼진 그 건물,
6층 통창이 갑자기 밝아졌다.
“아···. 아. 잘 들리세요?”
뜻밖의 목소리에,
잠시 멍해졌던 사람들이었지만,
곧,
“우와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진짜 축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