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40
40화. 2막
세상 살아가는 모두는,
다르다.
설사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라 할지라도, 살아가는 환경과 경험은, 완벽히 같을 수 없고, 결국은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모두가 저마다의 ‘우주’를 갖고 있고,
그 ‘우주’의 중심은 자기 자신일 것이다.
그렇게,
‘다른’ 모두가,
단 하나도 빠짐없이 겪었던 경험.
‘탄생.’
지금 흘러가고 있는, 모든 것의 시작.
모두가 겪었지만,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험.
그 ‘경험’만큼은 모두가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모두는,
지금 울리는 이 둥둥거림이, 너무 익숙했다.
자신의 심장 소리를 알기 전부터,
가장 가까이에서 들어야만 했던 소리.
엄마의 심장 소리.
어둠 속,
그 포근함은,
가장 안전한 곳이기도 했다.
홀로 될 필요가 없는,
항상 함께일 수밖에 없었던 순간.
누군가는 축복받았을 시간이었고,
누군가는 저주받기도 했을 시간이었겠지만,
비록,
그 심장의 주인이 가진 감정은 모두가 다를지라도,
들려온 소리는,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는,
너무나도 안심되는 소리여서,
처음,
그 소리와 멀어져야만 했을 때,
그렇게 울어댔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아가며,
그 누구라도,
단 한 번밖에는 할 수 없었던 그 경험.
저 낮고 단조로운 울림에,
‘탄생’의 멜로디가 섞여왔다.
그 순간이, 감은 눈 안에서 펼쳐졌다.
낯선 환희, 생소한 처음.
하나의 ‘우주’가 생겨난,
그 기적의 순간.
모두는 축복받아 마땅했다.
그 ‘우주’가 모였기에,
세상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우린, 모두 소중해.”
토끼의 목소리에,
태어나 처음으로,
특별하게 다가온 자신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째서,
나의 ‘우주’를 잊고 지낸 것일까?
어째서,
다른 이의 ‘우주’를 탐하고, 부러워했던 것일까?
이렇게나 소중한 나만의‘우주’를, 부족하다고만 여겼을까.
감은 눈,
어둠 속,
그 안에 펼쳐진 첫 시작.
그 첫 ‘우주’를 마주하자,
“난 소중해.”
모두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멍한 눈의 제니스가 저 멀리 6층 옥상을 바라봤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낯익은 둥둥거림.
그 불쾌한 감정.
제니스는,
결국 인상을 찌푸렸다.
탯줄도 자르지 못한 채, 어미에게 목이 졸렸다고 했다.
주변 부랑자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때 삶을 마감했을 것이었다.
제니스가 태어난 지,
한 달째 되던 날,
마약에 취한 어미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전해 들었고,
그랬기에, 제니스의 ‘우주’는,
처음부터,
‘쓰레기 더미’ 그 자체였다.
‘뭐가 소중해?’
저 오만한 토끼가 전해오는 이 감정은, 제니스에게 있어서 ‘위선’일 뿐이었다.
소수의 저주받은 이들을 기만하고, 그들의 감정까지 물들여,
마치, 그 증오의 심장 소리를 ‘포근한 무엇’으로 포장한 가증스러운 거짓.
제니스는,
신을 원망했고, 증오했다.
그 결과물이,
전 세계의 신을 조롱하는, 이번 앨범이었으니까.
겉으로는, 세상 누구보다 뻔뻔하게 자신만만한 그였지만,
속은,
자기혐오로 점철된, 증오 덩어리로 가득했다.
그의 음악을 만들어준, 그 근간은,
어쩌면,
‘증오’였다.
지금 자신을 자꾸 흔드는 이 감정은,
위선이며 오만이었다.
네까짓 게 뭘 안다고.
들고 있던 기타를 집어 던지려던 제니스가 멈칫했다.
탄생의 순간을 알리는 기타 소리에,
이를 악물었다.
그 모성애라고는 쥐뿔도 없는 여자와 분리된 순간.
자신이 온전히 홀로 숨 쉬게 된 그때.
비록, 축복받지 않은 ‘우주’였지만,
그 모든 과정은,
지금 자신의 ‘우주’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증오하고, 원망하더라도,
그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저 음악은,
탄생을 무조건적 축복이라고, 주입 시키려 하지 않았다.
저 음악은,
자신을 자신으로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 기억을 꺼내 온 것뿐이었다.
근본.
제니스는 자신의 음악 저변에 깔린 증오, 조롱, 반항을 떠올렸다.
얼마 전,
종이봉투 밴드의 음악을 듣게 된 후,
멈춰버린 그만의 악상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기억조차 하기 싫었던, 뒷골목으로 향하게 했던 그 음악.
시계태엽이 고장 나 멈춰있던,
반항기 가득한, 절망의 소년을 방긋 웃게 만든 그 순간부터,
제니스의 우주는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아직도,
그 어미의 망령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절망’에 기대왔던,
어리석은 자신에게 분노하려 했지만,
저 음악은,
분노하지 말고,
위로하며 응원하라 말했다.
눈을 감자,
열일곱의 제니스가,
탯줄조차 자르지 못한 핏덩이를 안고,
방긋 웃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너야.’
제니스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
사람들은 살아오며 지우고 싶은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겪지 않아도 될 불운한 일들이지만,
이미 겪은 이상,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내 ‘우주’의 역사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미 지난 과거를 부정하면 할수록, 어쩌면, 지금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고,
그렇게, 과거를 탓하며 현재 내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자꾸만 질책하고, 깎아내리게 된다.
자기혐오의 시작은,
온전한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경험은,
현재 나를 만들어준 근간이다.
지우고 싶은 과거에, 얽매이는 것은,
지금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내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보듬어 위로할 수 있다면, 그 지우고 싶은 과거마저 소중히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바닥부터 쌓아 올려진 가운데, 그 삐뚠 돌이 있었기에, 지금도 자신을 쌓아 올리고 있는 거니까.
탄생.
그 순간부터 쌓아 올린 돌탑.
사람은, 기억과 경험을 쌓으며 자신을 만들어간다.
어디 하나 잘못된 곳이 있더라도,
절대 다시 내려가 그 돌을 바꿔 끼울 수는 없다.
단 하나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수평을 바로잡는 것뿐.
지금의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기울어진 수평계가 보일 것이다.
사람들이 눈을 떴다.
처음으로 만난,
‘우주’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다.
힘들겠지만,
어서 기울어진 수평을 맞춰야 했다.
그러기 위한 응원가가 울리고 있었다.
***
단조로운 리듬에 기타가 더해지자, 사람들은 탄생의 순간을 만났다.
그 시작을 받아들이자,
그때부터 쌓아 온, 세월의 돌탑을 알 수 있었다.
생명은,
그 존재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그간,
차곡차곡 쌓아온 세월을 온전히 받아들이자,
질책하고 채찍질하던,
현재의 나 자신이 보였다.
삶은,
그 자체로 훌륭한 것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내 삶은,
그 주체가 나여야 한다고,
나 자신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온전한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나 자신을 위한 응원가를 목청껏 불러댔다.
***
망치는,
명동에서 주먹 생활을 시작했다.
나름, 낭만이 있었기에,
돈은 없었어도,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시절,
하늘 같았던 존재가 둘이나 투입된 현장.
창조 공인중개사 최광엽의 명령을 들으며, 그때의 낭만을 떠올리자 뭔가 찜찜해졌었다.
하지만, 그 ‘전설’들도 투입되지 않았는가?
왠지 모를 찜찜함은, 그들의 존재에 의해 희석되고 있었다.
갑자기,
거리의 젊은이들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자신도 흥얼거리고 있었다.
이 열기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자신도 정신이 나간 것인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양구철’ 실무 팀장이 명령한 임무를 떠올렸다.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건물로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사거리에서, 사고가 터지지 않게 하는 것.
아마, 반대쪽에서 일을 벌이려는 모양이었다.
망치는 정신을 집중해,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어?’
뭔가,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과 얼굴을 한 남자가, 비척거리며 거리로 진입했다.
후줄근한 반바지에 슬리퍼도 짝짝이고, 며칠은 감지 않은 듯한, 떡진 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약을 했나?’
침이 말라붙은 듯 허연 입이, 계속해서 들썩였다.
거리 가득 퍼지는 노랫소리에,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입 모양으로 봤을 때,
‘시발, 다 죽일 거야.’
서둘러 그의 손을 확인했다.
축 늘어진 왼손,
그리고, 품에 감춰진 오른손은,
분명, 무언가 쥐고 있는 듯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수상한 인물이었다.
반대편에서 ‘전설’이 일을 벌이기 전에 이쪽에서 사고가 터지면 안 될 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그가 품에서 식칼을 꺼내 들었다.
이미 관중들과의 거리는 좁혀진 상태였다.
“씨발! 니들끼리 뭐가 그렇게 신났는데!”
그가 외치자, 가까이 있던 관중들이 뒤를 돌아보았고,
“다 죽어!”
그가 식칼을 허공에 휘둘렀다.
꺄아악!
비명이 울렸다.
‘전설’들의 대업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됐다.
이 일대에서 10년이나 대장행세를 하던 ‘망치’가, 몸을 날려 그를 덮쳤다.
옆구리가 좀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전설’이 맡긴 임무를 완수한 것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주변 젊은이들이,
환호와 걱정의 목소리를 보내왔다.
그 소리도, 왠지 뿌듯했다.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번질 뻔한 일이었지만, 약간의 소동으로 마무리된 순간이었다.
***
“뭐? 부상자?”
“네! 119로 먼저 신고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래. 얼른 현장에 있는 애들한테 진입···.”
“아. 서장님. 그···. 부상자가 한 명이고, 옆구리를 조금 베이기만 했다고···.”
“응?”
“대규모 소요 사태라던가 별다른 동요는 없었다고 합니다.”
“어···.”
“경찰들을 바로 투입하기에는···. 이미 상황이 깔끔하게 종료되어서···.”
“아니! 그래도 일반인이 칼에···.”
“그것도, 진행 요원이 조금 다쳤답니다. 범인도 안전하게 검거해서, 증거품과 함께 대기 중인 경찰에게 인도했다고···.”
서장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그 복잡한 현장에서 그렇게 빠른 대처라니···.
그 ‘창천’에서도,
또 ‘높으신’ 누군가에게도,
귀띔받은 돌발 상황이 분명 ‘이것’일 텐데.
미간을 잔뜩 좁힌 서장이 핸드폰을 들었다.
***
진혁은, 이 ‘탄생’을 편곡하며, 정말 많은 공을 들였었다.
처음부터 아가들과 산모를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노래였고,
어떤 면에서는, 이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랬기에,
단조로운 응원가에, 삶을 담았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축복받아야 마땅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서 그 당연한 권리를 앗아갔다.
그래서, 그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입을 다문 진혁이, 가득 펼쳐진 열기의 바다를 바라봤다.
저 존재 하나하나가 모여 만들어진, 광활한 바다.
진혁은 노래를 멈췄지만,
자기 자신을 향한 그들만의 응원은 계속되고 있었다.
‘생명의 시작’에,
그 ‘존재’를 더하자,
‘삶’이 완성되었다.
강남역에서도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이었기에, 진혁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들의 응원가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파도가 퍼져 나갔고,
이 물결이 어디까지 닿을지는 진혁도 알지 못했다.
다만,
이 감정의 크기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음악은 정말로 대단한 거구나.
곡을 만든,
진혁 자신도 놀랄 정도의 기적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응원에,
한없이,
후회만이 가득했던,
마흔셋의 진혁이 옅게 미소 지었다.
베이스와 드럼의 리듬만이 남아, 둥둥거렸고,
비어있는 멜로디 자리에는, 사람들의 응원가가 가득 찼다.
옆 건물을 바라보자,
가면이 벗겨진 밴드들의 모습이 보였다.
멍하니,
정신을 놓은 듯한 모습.
정신 못 차리네?
니들은 안 불러?
진혁이 그들을 향해, 기타 줄을 튕겼다.
호된 질책에 깜짝 놀란 그들이,
응원에 가세했다.
응수동.
자기 자신을 위한 응원가의 밀물이, 끝도 없이 차올랐다.
***
“제니스!”
“놔! 갈 거야!”
옥상 귀퉁이에 있던 사다리를, 옆 건물 옥상에 걸친 제니스를 종탁이 붙잡았다.
“야. 떨어지면 어쩌려고!”
“안 떨어져! 막지 마!”
둘의 실랑이를 가만 보고 있던 조얀이 천천히 걸어왔다.
“걱정 마라. 내가 따라갈 테니.”
“응?”
하나도 위험한데, 둘이라니.
조얀이 큰 덩치로 사다리의 아래를 잡았다.
“저렇게 눈 돌아간 제니스는 아무도 못 말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미 제니스는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다.
“나도, 저 동물 가면들과 함께하는 제니스가 기대되기도 하고.”
조얀이 방긋 웃었다.
종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전 건물들이라, 건물끼리의 간격이 좁기는 했다.
이런 식으로, 건물 다섯 개를 건널 수만 있다면, 저들에게 닿기는 할 터.
종탁이 아래를 바라봤다.
2층 높이였지만, 떨어진다는 상상을 하니 아찔했다.
하물며, 메인에 다가갈수록 건물의 높이는 더 높아질 터.
다시 고개를 드니,
어느새, 조얀까지 건너가 사다리를 회수하고 있었다.
그 옥상에 자리한 밴드가, 멍하니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에게,
태연히 인사한 조얀이, 발을 동동 구르는 제니스의 앞쪽에 사다리를 걸쳤다.
두 번째 건물을 오르는 미친놈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으려는데,
그 뒤로,
그 옥상의 밴드들이 따르기 시작했다.
옥상을 하나씩 건널 때마다,
미친놈들이 추가되고 있었다.
***
자신들을 위한 응원가가 멈췄고, 사람들은 환호 대신 감사의 눈빛을 보내왔다.
터질듯한 열기는 그대로였지만, 갑자기 조용해진 거리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던 토끼가,
양팔을 펼쳤다.
모두가 그 펼쳐진 품을 바라보며 아늑함을 느낀 순간,
토끼가,
펼쳐진 팔을 모으며 박수 치기 시작했다.
일정한 리듬.
사람들이 저마다 그 박수를 따라 하던 때,
거칠게 때려대는,
드럼 소리가 포효했다.
자신을 되찾은 이들을 위한,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