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42
42화. 피날레
진혁의 기억이 깨어난 이후, 처음으로 만났던 이 ‘세대’의 감정은 정말 신기했다.
창기를 데리러 간 날, 클럽에서 느낀 그 열기는, 너무나 엄청났지만, ‘같음’을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즐거움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진혁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그래서, 그날 ‘자유’를 선물했고, 그 경험은 실로 대단했다.
첫 출근 때, 사무실에 심었던 ‘혁명’과 그날의 ‘자유’는 서로 닮아있었다.
어째서 그럴까?
마흔셋 진혁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자, 너무 빠르게 발전해버린, 사회의 이면이 드러났다.
서로의 ‘우주’는 너무 좁아져, ‘교집합’을 이루기 어려웠다.
만나는 접점도 없는데, 일률적인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다 보니,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에는 평행선만이 가득했고, 어쩌다 남의 선을 침범하는 이에게는 틀렸다며 손가락질했다.
세상은 점점 ‘개인화’되어 가고 있었다.
진혁은,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니까.
다만, 분명한 것은,
사람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회적 동물이란 사실이다.
아무리 삶의 질이 나아지더라도, 혼자보단 함께해야 더 재밌는 법이니까.
발전된 사회 속에서,
‘함께’일 수 있으면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다름’과 ‘함께’를 온전히 느끼게 해줄 곡을 만들었다.
적어도, 오늘 이 무대를 접한 사람들은, 교집합이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좁은 ‘우주’를 쾅 터뜨려줄 ‘혁명’의 신호탄이었다.
제멋대로 흐르는 리듬과 멜로디에,
제멋대로 흔들어대다가,
결국 동시에 발을 구르고 뛰어오르는 이들을 바라보며,
진혁이 방긋 웃었다.
그래,
그렇게 노는 거야.
과거를 통틀어,
가장 많은 관객을 앞에 뒀지만,
부담되거나 떨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모이자, 훨씬 더 재밌을 뿐.
그들의 감정이 하나 되어 뿜어지는 광경은, 실로 엄청났다.
흐뭇하게 관중을 바라보던 진혁이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 건물 옥상에 모여있는 밴드 멤버들을 내려보며, 손을 흔들어줬다.
니들도 같이 놀자.
***
창천 그룹 본사 회장실은 여러 명이 모여있었지만, 고요했다.
방금, 경찰 인원이 현장에 투입되어, 해산에 대비하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어온 후였다.
아마,
돌발 상황의 실패로 인해,
경찰 서장이 노선을 바꾼 듯했다.
“형님.”
이번 ‘응수동 개발’이, 김충석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는지 잘 알고 있는,
부회장 김충호가 입을 열었지만,
더 말을 잇지는 못했다.
‘만에 하나.’
최악으로 상정했던 상황을 맞이했다.
그곳의 ‘축제’는 유례없는 성과를 올리는 중이었고,
이제는 어떤 일이 터지더라도, 상황을 되돌리지는 못할 듯했다.
응수동 주변부는 개발하게 될 테지만, 이번 사업의 핵심인 중심 상업지구는,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10년을 웅크린 채 기다렸지만,
주변부를 모두 합쳐 봐도, 주상복합 다섯 개 동이 전부일 것이다.
한 회사의 건설사 단일로는, 꽤 괜찮은 성과일지 몰라도,
기대했던 청사진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적이었다.
“후···. 이만 퇴근들 하지.”
창밖을 바라보던 충석이 나지막이 말하자, 눈치를 보던 직원들이 하나둘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창천 그룹의 부회장 김충호가, 오늘따라 조금 좁아 보이는, 형님의 어깨를 바라봤다.
“형님. 또 기회가 있겠지요. 접어야 할 때는, 미련 두지 맙시다.”
“뭐, 하늘의 뜻이겠지. 그래. 충기는?”
“그···. 응수동 근방에 있는 치킨집에서 지내는 모양입니다.”
“응수동···. 치킨집?”
또 ‘응수동’이 등장하자, 충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친구가 운영하는 치킨집이라고 합니다.”
“그놈이 그런 친구도 있었나?”
“음···. 저도 한 번, 슬쩍 보러 갔었는데, 밝더군요. 그놈. 배달도 합니다.”
“배달?”
“네. 스쿠터를 타더군요.”
“허···. 그래?”
“그놈은 애초에 형님과 저와는, 다르지 않았습니까.”
“그···. 치킨집은···.”
“약 삼십 평 규모에, 제법 장사는 되는 모양입니다. 전해 듣기로, 가게 내부에 있는 쪽방에서 지낸다고 합니다.”
“그따위로 지낼 거면, 얼른 들어오라고 해.”
“이번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같습니다. 섣불리 접근했다가 더 숨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음···.”
김충호의 대답에, 충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한 손해를 입은 날,
굳이 동생의 안부를 물어온 이유는 알 듯했다.
둘째 충호가 알아서 잘 보고 있겠거니 하고, 애써 외면해 왔을 것이다.
비어버린 가슴에, 집 나간 동생의 소식이라도 채워 넣고 싶은 심정일 터.
축 처졌던 어깨가 조금 펴진 것도 같았다.
“그, 밴드 놈들 말이야.”
“응수동 말씀이십니까?”
“그래. 좀 알아봐.”
“워낙 관심이 커져서, 건드리기가···.”
“나도 알아. 그래도, 우리 사업을 방해했는데, 그냥 놔둘 수는 없지.”
“네. 형님.”
충호가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충석이 직접 언급한 이상,
만일 그 밴드가 데뷔하거나, 대중들에게 직접 나서게 된다면,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게 될 것이다.
그간, 충기를 케어하며, 언론을 어찌 다루면 되는지 잘 알게 된, ‘창천 그룹’이었으니, 앞으로의 상황은 불 보듯 뻔했다.
“우리도 이만 퇴근하자.”
“네. 형님.”
고개 숙인 충호가 혀로 입술을 축였다.
***
‘나비계곡’이 있던 건물의 높이는 4층.
메인무대와 두 개 층이나 차이가 났다.
사다리를 모두 펼쳐도, 건물끼리 떨어진 거리 때문에 닿지 않았다.
제니스가 망연자실한 눈으로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토끼가 팔을 흔들었다.
지금의 곡은 막바지였고,
다음에 이어질 곡이 무엇일지,
제니스는 알고 있었다.
빅뱅을 일으켜, 갑자기 엄청나게 커진, 저들의 우주에 맞는 시계를 선물하겠지.
자신이 아까 공연한 ‘시계태엽’과는, 또 다른 곡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오느라, 본인의 악기를 두고 왔다.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이 옥상의 주인공이었던 이들이 보였다.
얼른 달려가 손을 내밀었다.
“기타. 필요.”
제니스가 내민 손을 다급히 흔들어대자, 나비계곡의 리더 장복이 움찔했다.
“야. 줘라. 제니스잖아.”
어느새, 다가온 창명이 어깨를 툭 쳤다.
“나도···.”
장복이 아쉬운 듯 입을 열었지만, 지금 이 옥상에 있는 뮤지션 중, 감히 저 메인무대에 끼어들 수 있는 인물은, ‘제니스’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제니스가,
저런 애절한 눈빛이라니.
그간 보아왔던 그의 성격이라면, 막무가내로 빼앗았을 수도 있는데.
뭐,
저정도 눈빛이라면.
장복이 자신의 기타를, 제니스에게 건넸다.
“조심히 다뤄주세요. 이름은 나의 ‘빨간 짜짜’입니다.”
장복이 애장품 1호인, 붉은색 깁슨 레스폴 ‘빨간 짜짜’를 건넸다.
“빨간 짜짜?”
제니스의 눈썹이 살짝 꿈틀댔다.
“이거 이름?”
장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니스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장복을 노려봤다.
‘니가 진짜 제니스면, 한국으로 와봐! 내 레스폴 [빨간 짜짜]를 X꼬에 꽂고 흔들어 줄게!’
종탁이 정확하게 해석해줬던 그 댓글.
얼마 전, 게시판에서 설전을 펼쳤던 ‘짱뽀’라는 발음도 어려운 닉네임이 기억났다.
“쭈앙뽀?”
“응?”
“너. 봐줬다.”
“뭐?”
제니스가 감사의 인사를 하지도 않은 채, 몸을 돌렸다.
장복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역시, 또라이는 또라이인가 보다.
어디서 한국말도 이상하게 배워와서는···.
X꼬가 멀쩡함에 감사를 표해야 할, 장복이 제니스의 뒤통수에 대고 주먹 감자를 날렸다.
***
사람들은,
갑자기 넓어진 자신들의 ‘우주’에 어리둥절했다.
지금껏 걸어왔던 길이 잘못되었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이 넓어진 ‘우주’를 마주하자, 그간의 삶 자체가 너무나도 후회되고, 부끄러워졌다.
틀렸다며 부정했던 모든 것들이, ‘다른’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편협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해졌다.
새롭게 알게 된 ‘세계’는, 그 대단함을 채 알기도 전에 자괴감을 먼저 선사했다.
갑작스러운 ‘빅뱅’의 후폭풍은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이 넓은 ‘우주’를 알려준 토끼에게 감사의 함성을 보내는 것도 잊은 채,
사람들은 혼돈에 빠졌다.
그때,
토끼의 음성이 들렸다.
“괜찮아. 니들이 잘못한 건 아니니까.”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니,
어느새, 그 옆 옥상에도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전혀 몰랐는데,
모든 밴드가 그 옥상에 모여있었다.
그 한 가운데,
빨간 기타를 든 제니스가 팔을 흔들었다.
“원래 이 곡은 저 친구가 제대로 완성했는데, 내가 다시 만들기도 해서, 또 들려줄게.”
무슨 말이지?
사람들이 웅성댔다.
“고개 들어. 새로운 시계를 선물할 테니까.”
토끼가 주먹을 쥐어 하늘을 향했고, 그 옆에 신디사이저가 자리했다.
어느새 등장한 사자도 아래를 내려다봤다.
토끼가 고개를 돌려, 제니스를 바라보자,
눈을 맞춘 제니스가 끄덕였다.
방금 토끼의 멘트를 되씹던,
사람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토끼가 말했던,
‘내가 –다시- 만들기도 해서.’
라는 말의 의미를 짐작하자,
사람들의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다시?’
이 곡도,
동물 가면 밴드의 곡이었어?
토끼를 우러러보는,
제니스의 눈빛이, 그 답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제니스의 주변에 있던 밴드 멤버들도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고,
그 광경은 사람들의 짐작에 확신을 더해줬다.
정말, 동물 가면 밴드는 엄청났다.
“자신만의 시계태엽을 감자!”
토끼가 소리치자,
사람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
남자는,
취직을 빌미로,
음악을 끊어냈다.
그간 만들었던 음악을 모두 지웠고,
아끼던 신디사이저를 팔았다.
일부러, 음악과 관련된 것을 멀리했다.
비겁하게,
도망쳤다는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멀리하고 멀리할 작정이었다.
그날,
신디사이저를 사간 치킨집 아저씨가 했던 말이 자꾸만 맴돌아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렇게 합리화 한 건가요?’
‘어정쩡한 재능’이란 말은,
어쩌면, 도망치기 위한 구실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할 만큼 해봤고, 일반인보다는 나은 수준이고, ‘프로’ 근처 맛은 봤으니, 폼 정도는 재도 되지 않나?
문득,
과연 내가 ‘최선’을 다한 것이었나 되물었고, 갑자기 소주가 당겼다.
그날,
또, 세 병을 마셨었다.
끊어낸 줄만 알았는데,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음을 다시 확인했고,
자신의 비겁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과거의 열정 가득했던 자신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하필이면,
집 가까운 곳에서 이런 축제라니.
몰려온 친구들에게 떠밀려서 억지로 올라온 옥상 관람석은, 그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늘,
최고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맙소사. 제니스라니,
오프닝부터 굉장했는데,
그간 음악을 멀리하는 바람에 소문으로만 들었던,
‘동물 가면 밴드’의 무대는 더욱 엄청났다.
비록, 각 곡의 주인공이었던,
토끼와 게스트만이 보이는 무대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한 세션들의 실력도 대단했다.
‘와, 피날레인가?’
오프닝 밴드들이, 어느새 메인무대의 옆 옥상에 다 모였다.
저것도 연출인지 헷갈릴 정도로, 이번 공연은 예측할 수 없었다.
나비계곡의 기타를 받아든 것을 보니,
마지막 곡에는, 제니스가 게스트로 들어가는 듯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메인무대를 바라보자,
드럼을 제외한,
나머지 세션들이 난간에 자리했다.
사자는 아까 봤고, 그 옆의 곰?
어?
저 문양은?
신디사이저 전면 가득,
선명한 하얀 문양.
저건 분명,
자신이 직접 디자인했던, 파도와 구름의 형상이었다.
‘안가네 치킨’
그 ‘재능’따위는 없다던 치킨 아저씨가,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신디사이저와 함께 등장한 것이다.
가로막은 철망에, 저도 모르게 얼굴을 파묻었다.
***
신디사이저에서 웅장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모두가 경건해질 정도로 성스러운 소리.
파이프 오르간의 그 음색이, 잔뜩 달아오른 공기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하늘은 뚫려있었지만,
마치, 천장에 닿았다가 다시 퍼지듯,
사방을 울려댔다.
차분한 그 음색 위로, 더 무거운 베이스가 내려왔다.
그 뒤를 드럼의 스네어가, 조용하게 받쳤고, 순간순간 맑은 종소리와 같은 심벌이 울렸다.
사람들은 이 곡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한참 혼란스러웠던 그들은,
이런 조용한 울림에, 자기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차분히,
너무나 커져 버린 자신의 ‘우주’를 마주하게 되었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너무나도 막막할 정도로 광활해진 공간.
내 것임에도,
결코, 감이 오지 않는,
거대한 어둠.
도대체,
무얼 어떻게 채워야 하지?
사람들은 처음 만난 세계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때,
잔잔하고 웅장한 신디사이저가 만들어낸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찢어발기듯,
날카로운 기타 소리가 내리꽂혔다.
그러자,
사람들의 어두운 우주에,
강렬한 태양이 내리비쳤다.
단 하나의 빛이었지만,
너무나도 거대한 빛이어서,
반사된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별들은,
그간 그들이 살아오며 쌓아온 수많은 이야기.
너무나도 아름다운 별들이었다.
그 ‘태양’을 필두로,
웅장하고 장엄했던 사운드가 변화했다.
드럼의 터치가 강렬해졌고, 신디사이저의 음색이 높아졌으며, 묵직한 베이스는 그들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기타 치던 토끼가 제니스를 힐끔 내려다봤다.
따라올 수 있겠어?
제니스가 피식 웃으며 기타를 고쳐잡았다.
이미 수없이 연습했던 곡,
리듬조차 따라가지 못할 리 없었다.
코드를 잡고,
‘지이잉.’
동물 가면 밴드에,
세계에서 가장 모시기 힘든,
게스트가 더해졌다.
Box_43의 그것과 비슷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시계태엽이 만들어졌다.
멍하니 자신의 ‘우주’를 감상하던,
사람들이,
날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