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43
43화. 축제의 끝, 그리고 시작
별은,
과거에 내뿜은 빛을,
현재의 우리에게 보여준다.
직녀성의 경우, 25광년의 거리에 있으니,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빛은, 25년 전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되찾은 ‘우주’에 가득 들어찬 그 별들도, 모두 과거였다.
그렇기에,
현재에서 바라보면, 모두 아름다울 수 있었다.
지우고 싶은, 추악한 순간도, 부끄러운 순간도, 바보 같았던 순간도, 지나고 보면 어느 하나의 교훈은 남기는 법.
그렇기에, 모두의 과거는 하나같이 각각의 의미가 있었다.
그,
과거들을 인정해야 비로소 나 자신을 아낄 수 있게 된다.
진혁이 만들어낸 태양이,
어둠 속에 숨어있던,
그들의 과거를 더욱 환하게 비췄다.
사람들이,
과거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고,
이제,
과거에 얽매이지 않도록,
현재를 인식할 수 있는,
시계를 선물해줄 차례였다.
진혁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
제니스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지금껏,
자신에게 이런 존재가 있었던가?
이것은, 실력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치 만져질 듯. 이렇게 확연하게 전달되는 감정이라니.
직접,
그들의 공연을 보고서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영상이나 음원 따위로는 절대로 이들의 모든 감정을, 담을 수 없을 것이었다.
‘이게 음악이라고?’
제니스가 끓어오르는 흥분을 애써 억눌렀다.
음악을 시작한 이후, 언제나 리더의 자리에 있었다.
누군가의 공연을 서포트 해본 적도 없었고, 서브 기타를 맡아본 경험도 없었다.
저, 완벽한 멜로디를 듣고 있자니, 본인의 역할을 망각하고, 자꾸만 메인 멜로디에 끼어들고 싶어졌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어,
악마의 속삭임을 밀어냈다.
자신이 없었어도 완벽했을 무대에, 흠집을 내서는 안 됐다.
흥분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제니스는,
비록 베네딕토 신부님에 의해 새 삶을 살게 되기는 했지만,
신은 믿지 않았다.
만일, 진짜로 신이 있다면, 원망하고 저주했을 것이다.
그는,
신을 믿는 자들을 어리석게 여겼다.
그랬던 그가,
눈앞에서 진짜‘신’을 만난 것이다.
지금 저 가면 속 인물은, 그렇게밖에는 설명되지 않았다.
잠시뿐인 감동이나, 감정의 울림 따위가 아니었다.
진짜로,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었다.
물론, 사람들은 워낙 제각각이어서, 치유되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정말로 저 토끼를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은, 내일부터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었다.
제니스 자신만 해도 그럴 테니까.
그의 노랫말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아직 그의 한국어 실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곡이 뭘 하려는지 잘 알고 있는, 제니스였기에, 그가 지금 부르는 노래가 가진 의미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코드 진행도 그대로였고, 리듬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망가진 시계의 톱니바퀴를 선물했던, 그때의 노래와는 또 다른 감정이 넘실댔다.
제니스는,
관중들을 바라봤다.
새로운 ‘우주’의 주권을 가지게 된,
엄청나게 운 좋은 이들.
철망에 매달린 사람들이 마구 소리쳤다.
그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존경한다던가, 우러러본 적이 없었다.
베네딕토 신부님께는, 정말로 감사한 마음은 있었지만, 이토록 완연한 존경과 공경은 아니었다.
제니스는,
오늘 처음으로 ‘신’을 믿게 되었고,
오늘 처음으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우러르게 되었다.
저 토끼는,
그마저도 부족할 정도였다.
***
사람들이 자신의 우주를 되찾고, 열광했다.
이것은 그냥 공연이 아니었다.
머릿속 무언가가 새롭게 깨어났고, 상처 입은 마음 곳곳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더 크게 노래를 따라 하면, 그만큼 치유되는 느낌은 더 강해졌다.
그들의 공연을 먼저 접했던 이들은, 한 번 느꼈던 것이지만, 오늘 처음 그들을 만난 이들에게는, 정말 엄청난 경험이었다.
이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의 삶은,
이제 완전하게 달라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들에게 선물 받은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이기 시작했다.
***
마지막 소절을 끝낸 진혁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관중을 바라봤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줄 알게 된, 눈빛들.
오늘 공연 레퍼토리는 순전히, 그걸 위한 것이었다.
여기 모였던 이들은, 더 이상 편을 가르지 않을 테고, 이유 없이 남을 배척하지 않을 것이다.
틀렸다 하지 않고, 다른 것이라 여기며 상대를 이해할 것이다.
이견을 그냥 피하지 않고, 어울림의 중요성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게, 사람끼리의 관계를 개선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결국,
모두가 어우러져, 재밌는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복면 속 진혁이 방긋 웃었다.
세상이,
엄청나게 재밌어지면,
그녀도 깨어나고 싶어질 것이다.
재밌는 건, 절대로 그냥 넘기지 못했던 소녀였으니까.
맑아진 호수를 바라보며, 희망을 떠올렸다.
진혁의 옆으로, 멤버들이 자리했다.
가면 속, 그들도 활짝 웃고 있을 것이었다.
“와···. 엄청나네.”
다른 멤버들은 이미 봤던 광경이었지만,
공연이 끝나고서, 그제야 열기의 호수를 처음 보게 된 충기가, 탄성을 내질렀다.
“인사하자.”
진혁의 말에,
토끼, 사자, 곰, 표범이 양팔을 힘차게 흔들었다.
“감사합니다.”
토끼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다음에, 또 같이 놀아요!”
그 말을 끝으로,
머리 위 팔을 흔드는 동물들의 모습이, 난간의 장막 뒤로 조금씩 사라졌다.
잠깐, 가면은?
그제야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지만, 그 누구도 소리칠 수 없었다.
오늘 이곳에서 저들의 정체를 짐작한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저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의 가면을 벗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오늘 이 깨달음은, 어쩌면 저들의 정체를 몰랐고, 저들의 배경을 알지 못했기에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을.
얼굴을 확인하고,
무대 밖의 그들의 삶을 알게 된다면,
이 몰입감은 깨어져 버릴 수도 있었다.
다음을 위해서라도,
저들의 진짜 정체는 남겨두는 것이 옳았다.
목이 터질 정도로 함성을 지르던 이들이,
모두가 사라진, 건물 옥상을 바라봤다.
누구 하나 ‘앵콜!’을 외칠 만한데도,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만일, 준비된 곡이 또 있었다면, 굳이 앵콜을 외치지 않아도, 더 불러 줬을 테니까.
오늘 저들의 무대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너무나도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헤어져야 했다.
또 놀자고 했으니,
분명, 돌아올 것이다.
응수동 전체에, 서로의 감정을 공유한 이들의 박수가 울려 퍼졌다.
누구 하나 불만을 내지 않았다.
***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막의 뒤,
옆 건물에서만 보이는 자리에, 토끼가 나타났다.
“도와줘서 고마워.”
진혁이 한국어로 말했다.
“내가 감사한다.”
제니스가 한국어로 대답했다.
“니가 더 잘했어. 그 리버풀.”
“어···.”
진혁의 말에, 제니스가 입을 열다 말았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계속해서 연습했던 말.
종이봉투 밴드를 만나면 꼭 전하려 했던 말이 있었다.
‘내가 더 잘했다.’
이들의 공연을 보고서도, 그 말을 뱉을 수는 없었지만.
그런데,
그 말을 자신의 ‘신’이 건네 왔다.
황망한 눈으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아는 게 얼마 되지 않는 한국어를 고르는데,
“그 리버풀의 곡은 네 거야.”
“뭐?”
“오늘 이곳의 곡은 내 거고.”
제니스가 미간을 찌푸리자, 뒤에 서서 눈치를 보던 창명이 제니스의 귀에 속삭였다.
아마도, 통역을 해주는 모양이었다.
“또 보자.”
토끼가 몸을 돌렸다.
멍하니 바라보던 제니스가, 정신을 차리고 옥상의 난간까지 달렸다.
‘기다려. 아직 할 말이 너무···.’
그대로 두면 뛰어넘을 기세였기에, 조얀이 제니스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제니스! 얼른 내려가면 만날 수도 있어!”
황망한 눈을 한 제니스가 옥상 입구를 바라봤다.
조얀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는지, 다른 밴드 멤버들이 먼저 달리고 있었다.
“가자.”
제니스와 조얀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
서둘러 1층까지 내려온 이들이, 옆 건물의 뒷문 입구를 바라봤다.
그들과 같은 경로로 무대에 올랐다면, 분명히 이 문으로 나올 것이다.
정문은 관객들이 가득할 테니까.
험상궂게 생긴 진행요원들이 막아서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그들의 목적은, 난입이 아니었으니까.
이대로 기다리고 있다 보면, 분명히 나올 것이었다.
그렇게 기다리길 몇 분.
진행 요원들보다 훨씬 더 무서워 보이는, 덩치 큰 중년인이 나왔다.
눈가에 난 상처가 위압적이었다.
그가 진행요원들과 대화를 나누더니, 기다리는 이들에게 눈길을 한 번 준 뒤, 하천 변으로 걸어갔다.
아마도, 진행요원들의 윗사람인 듯했다.
조금 더 기다리자,
치킨집 조끼를 입은 중년인 둘이,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앞을 지나갔다.
아마, 이 안에서 축제를 진행하던 사람들이, 치킨을 시킨 듯했다.
기다림이 조금 지루해질 즘,
면바지에 점퍼를 걸친 중년인이, 뒷문을 열고 나왔다.
축제를 진행하던 사람 중 하나인가?
모였던 시선이, 다시 흩어졌다.
시간이 더 지나자,
조금씩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하나둘, 바닥에 주저앉았다.
모두가 끝까지 기다릴 태세였다.
뒷문 입구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들은, 제니스와 조얀이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제니스와 조얀이, 중년인의 뒤를 쫓았다.
다른 이들은 몰라봤겠지만,
제니스는 처음 그가 등장했을 때부터,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체격이나 자세, 눈으로 보이는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제니스도 반신반의했지만,
그의 감정을 이해하며, 그의 곡을 연주했기 때문일까?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었지만, 저 앞의 남자가 지나쳐갈 때, 풍긴 감정의 깊이가 익숙했다.
이렇게, 몰래 자리를 뜬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터.
‘신’의 입장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제니스가 뒤를 돌아봤다.
공연장과 충분히 멀어진 것 같았다.
제니스가 멈춰서서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종탁이 알려준 ‘가장 확실하게’ 상대의 시선을 사로잡는 단어를 외쳤다.
“마!”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역시, 눈치챘구나.’
하천 변을 걷던 진혁이 멈춰 섰다.
“누구한테 한국어를 배웠는지는 몰라도, 한국에서는 예의를···.”
“행님!”
돌아서서 제니스를 바라본, 진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 영어 못하는데···.”
“내는 한국어 공부 중이다.”
“누군진 몰라도, 선생님 바꿔야겠네.”
진혁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니스가 미간을 좁혔다.
이렇게 만날 줄 알았으면,
한국어를 제대로 공부했을 텐데.
통역도 없이, 너무 갑작스럽게 만나버렸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데···.
“제니스?”
“맞아.”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제니스가 진혁을 빤히 바라봤다.
“네가 리버풀에서 했던 공연 정말 멋있었어.”
리버풀이라는 단어가 들어갔고, 종탁이 때때로 외쳤던 ‘멋있어.’라는 단어가 함께 나왔다.
분명히 칭찬일 것이다.
“고맙다.”
“어···. 이해될지는 모르겠는데, 네 실력은 정말 엄청나. 목소리도 훌륭하고, 연주도 잘해. 게다가 음악이 주는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지.”
진혁이, 오프닝 때 들었던, Box-43의 오리지널 곡의 느낌을 떠올렸다.
분노와 반항의 울부짖음.
“앞으로는, 그렇게 울부짖지 않아도 돼.”
알아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니스가 진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세상은, 훨씬 더 즐거운 게 많아. 이젠 너도 알게 됐을 거야.”
손을 내밀자,
제니스가 두 손으로 덥석 잡았다.
“곡을 만들 거다. 들어줬으면 한다.”
“응. 알았어.”
“내 한국어 선생님은 종탁이다.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라고 했다.”
아마도, 그를 통해 연락하라는 듯했다.
“당신이 최고다.”
“너도 최고야.”
진혁이 방긋 웃었다.
제니스가 진혁을 흉내 내듯, 방긋 웃었다.
“다음에 또 신나게 놀자.”
진혁이 몸을 돌렸고,
제니스가 고개를 숙였다.
진혁의 모습이 너무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제니스는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바빠지겠다.”
제니스가 말하자, 옆의 벤치에 앉아있던 조얀이 일어나, 제니스의 곁에 섰다.
“새 앨범을 만들겠어.”
제니스가 방긋 웃었다.
잠시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조얀이, 피식 웃었다.
알고 지낸 지 5년.
저런 환한 웃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
축제는 막을 내렸고, 임도유와 황지선이 마지막까지 축제를 진행하며, 모두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유도했다.
경찰들도 사람들의 귀갓길을 도왔고, 진행요원들도 바삐 움직였다.
사실,
사람들을 통제하던 이들은 모두 느꼈을 것이다.
지금 거리를 빠져나오는 인파는, 굳이 자신들의 통제가 없었어도,
그리 위험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먼저 가려 서로를 밀치지도 않았으며,
약자를 배려했고,
꽉 막혀 느려진 구간에서 짜증 부리지 않았다.
축제를 통솔해본 경험이 있었던, 경찰 몇몇은, 저절로 정돈된 현장을 황당하게 느끼기까지 했다.
본래,
잔뜩 흥분한 뒤,
아쉬움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풀어졌고,
사고는 그때 터지기 마련이었으니까.
오늘의 축제는,
마지막까지 완벽했다.
모두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축제였다.
그렇게,
막이 내려간 줄 알았는데,
세상의 축제는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