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44
44화. 태동
“야! 얘 어디 갔어?”
“몰라. 너랑 같이 있지 않았나?”
이한과 준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조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은서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애도 아니고, 알아서 집에 갔겠지.”
“그래도, 같이 왔는데···.”
이한이 걱정스럽게 주변을 둘러봤다.
준호의 말대로 애는 아니었지만, 아까 봤던 은서의 표정이 조금 걸렸다.
마지막, 토끼가 멘트를 했을 때, 입을 가리고 탄성을 지르던 아이의 얼굴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멍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물론, 공연이 준 감정에, 너무 몰입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표정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었다.
“야! 애 누가 잡아가면 어떡해! 빨리 찾자.”
“아! 전화해보면 되지!”
“안 받으니까 그러지!”
준호의 엉덩이를 걷어찬 이한이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
공연 거리에서 빠져나온 은서는, 대로변을 따라 걷고 있었다.
방금까지의 전력 질주로 숨이 찼지만, 걸음걸이는 더욱 빨라졌다.
토끼가 노래할 때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빠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중간에 잠깐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도, 그냥 비슷하다는 정도로만 여겼다.
그 토끼의 음성보다 아빠의 목소리는 톤이 더 낮았었으니까.
다만, 최근 아빠의 목소리 톤이, 좀 올라간 느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차였다.
그래도, 고개를 저었었다.
하지만,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한, ‘다음에 또 같이 놀아요.’를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아빠다.’
라고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같이 놀자.’
은서가, 어릴 적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말수도 적고, 자신 없는 목소리였지만, 은서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활기찼었다.
그랬기에,
저 목소리를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금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토끼가 우리 아빠라니.
확실히 아빠가 맞았지만,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문득,
엄마가 쓰러지기 전에 가끔 해줬던 얘기가 기억났다.
아마도, 아빠의 상태에 대해 어린 은서에게 설명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어···. 은서야. 노래하고, 노래를 즐기는 아빠는 지금 잠들어있는 상태야. 그래서 지금 아빠는 그걸 하지도, 듣지도 못해. 잘하지 못하는 거 자꾸만 시키면 은서도 화나지? 그래서 그런 거야.’
초등학교 때, ‘아빠와 함께 노래하기’라는 방학 숙제 때문에 고민하던 은서에게, 엄마는 그렇게 말해줬었다.
‘잠들어있는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데. 언젠가 깨어나면 은서 깜짝 놀랄걸?’
‘치. 그런 게 어딨어.’
‘진짜거든? 아빠가 노래를 얼마나 잘했는데!’
‘거짓말!’
‘아! 진짜라고!’
순간, 엄마가 그때 굉장히 발끈했던 기억이 났다.
그냥, 은서를 달래려고 만들어낸 말이라고 치기에는, 정말로 화가 난 것 같았었다.
마치, 엄청나게 좋아하는 아이돌을 누가 무시했을 때 보이는, ‘발끈함’ 같은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그냥 혀를 내밀고 넘겼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날 내내 저기압이었던 엄마였었다.
은서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토록 바라던 ‘노래하는 아빠’가 깨어났는데,
엄마는 잠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가 떠올랐다.
사춘기를 맞이했고, 어느 날부터 병원으로 가는 아빠를, 따라가는 횟수가 줄기 시작했었다.
보고는 싶었지만, 눈 감고 항상 같은 모습으로 누워있는 엄마를 만나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그런 은서를 이해했기에,
은서가 아빠 앞에서 ‘음악’ 얘기를 꺼내지 않았듯,
은서 앞에서 ‘엄마’ 얘기를 꺼내지 않았었다.
그런 상황이 1년 가까이 되자, 문득 떠오를 때 빼고는, 예전처럼은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게 되었다.
한창 예민한 시기의 아이에게 생긴, 방어기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의 공연을 통해, 꽁꽁 숨겨 뒀던 엄마와의 추억들이 마구 반짝거렸다.
그와 동시에,
애써 외면하던 ‘죄책감’도 함께 빛났다.
잠시 멈춰 씩씩대던 은서가 눈물을 훔쳤다.
어서, 아빠를 만나야만 했다.
예상대로라면 어디에 있을지는 빤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갈피도 잡히지 않았지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은서의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
치킨집에 모인 네 명의 중년인이 상기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진혁은 그런 친구들에게 방긋 웃어 보였다.
“이제, 마음 정했어?”
친구의 말에 중년인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살아온 삶,
달라진 주변 관계,
책임져야 할 것.
함께하겠다고 말했던 그들이었지만,
아직 일말의 망설임은 남았던 듯했다.
답을 정한, 지금에서야 이렇게 후련한 것을 보면 말이다.
리더는, 그들이 확실하게 결정지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진혁의 성격상,
가면을 벗어 던지고, 완연히 얼굴을 드러내고,
가려져 있던, 자신의 상기된 표정을 직접 보여주며, 그 열기와 함께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기에 그러지 않았다.
25년간의 세월을 건너뛴 채,
진혁과 여정을 함께 할 것인지,
아직,
정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번 공연을 통해 마음을 잡을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다.
그들에게,
진혁과 함께하는 음악이란,
이다지도 엄청난 것이었음을.
25년이라는 세월이 준, 일말의 망설임을 단번에 날려버린 공연이었다.
“재밌었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놀 수 있겠어?”
모두가 방긋 웃었다.
***
불 꺼진 치킨집 간판이 보였다.
쉬는 날도 아니고, 아직 문 닫을 시간도 아닌데, 간판의 불이 꺼져 있었다.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치킨집 내부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키보디스트는 아마도, 상정이 삼촌일 것이다.
아빠 친구라고는 그 삼촌이 유일했으니까.
치킨집 앞에 서서 숨을 가다듬는데,
“오! 은서 누나! 오랜만!”
“왁! 깜짝이야!”
치킨집 앞, 뭔가 엄청 비싸 보이는 차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잔뜩 잡아놓았던 감정이 다 깨져버렸다.
열린 창문 틈으로 서준이가 보였다.
못 본 사이에 제법 큰 듯했다.
“너···. 그거 뭐야!”
“멋지지? 옆에 태워줘?”
“뭐?”
“누나가 내 차 조수석에 타는, 첫 번째 여자가 되는 영광을···.”
“닥치고. 우리 아빠 저 안에 있지?”
“어···? 아···니?”
“있구나.”
“응? 아니라니까?”
“오랜만이라 반갑기는 한데, 있다 보자.”
손바닥으로 차 트렁크를 통통 친 은서가 치킨집 문을 확 밀며···.
‘아. 당기는 거였지.’
콰당 박치기했다.
***
“어. 오늘 장사 안 하는···.”
‘딸랑’ 소리에 고개를 돌린 상정이, 놀란 눈을 했다.
이마가 벌겋게 달아오른 여중생이, 퉁퉁 부은 눈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등을 보이고 있었기에, 뒤쪽을 보지 못한 진혁을 제외하고, 나머지 친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상정이, 진혁의 옆구리를 찔렀다.
“응? 왜?”
고개를 돌린 진혁이 화들짝 놀랐다.
“어···. 은서?”
이름을 들은 나머지 친구들이 화들짝 놀랐다.
세상에서,
가장 오만한 천재를 떨게 만드는 단 하나의 존재.
그 존재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
“나 기타 쳐.”
상정이 삼촌,
그리고, 나머지 처음 보는 삼촌들과 인사를 나눈 은서가,
아빠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
그다지 놀라지 않는 아빠의 얼굴을 보던 은서가, 고개를 홱 돌려 상정을 바라봤다.
슬그머니 눈을 피하는 삼촌을 보니, 이미 다 말한 것 같았다.
‘비밀이라고 했는데···.’
입술을 질끈 문, 은서가 다시 아빠를 빤히 바라봤다.
“아빠는 할 말 없어?”
“어?”
“내 비밀 말했잖아.”
은서와 눈을 마주치던 진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친구들이 그렇게 극구 말렸지만, 이미 들통난 듯했다.
“아빠는 가면 쓰고 공연했어.”
“왁! 그럼! 저 삼촌! 저 삼촌! 저 삼촌! 다?”
예상하고 온 것이었지만, 직접 듣자 심장이 쾅쾅거렸다.
“어. 상정이가 곰이고, 저기 인상 험악한 삼촌이 사자고, 저 유명한 삼촌이 표범이야.”
유명한 삼촌?
은서가 마지막으로 지목된 삼촌을 다시 바라봤다.
“왁! C2K?”
굳이 고개를 숙이며, 다시 인사하는 것을 보니, 정말인 듯했다.
하도 후줄근해서 그저 비슷한 사람인가 했는데, 진짜 C2K였다.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할 말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왁!’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하지?
당연히 당황할 줄 알았는데, 너무도 태연한 아빠의 얼굴에 은서가 멈칫했다.
심지어 웃기까지 했다.
자기가 기타를 치고 있다는, 말을 했을 때부터 놀랬어야 했는데···.
은서가 또 상정을 노려봤다.
부녀의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던 상정이,
또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나 기타 가르쳐줘.”
“응.”
“노래도!”
“응.”
“앞으로 학원 안 가.”
“응?”
진혁이 움찔했다.
한 번은 당황하게 한 것 같았다.
은서가 방긋 웃었다.
아이의 웃는 얼굴을 바라본 친구들은, 그 표정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응수동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걸리는 지하철역에는 사람들이 붐볐다.
평소에는 워낙 한산한 역사였기에, 더욱 왁자지껄해 보였다.
지하철 승강장으로 향하는 계단까지 줄을 서야 할 정도였지만, 사람들은 지루해하지 않았다.
저마다, 핸드폰을 터치하며 소식을 전하기 바빴기 때문이었다.
SNS와 유투부에는 ‘응수동 축제’ 소식으로 도배 되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바라보던 사람 중 몇이 탄성을 질렀다.
‘DJ다온’의 계정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옥상의 전체 사진.
동물 가면이, 드럼과 거기 기대어 있는 기타, 그리고, 베이스, 신디사이저에 차례대로 걸려있었다.
어두워서 조금 흔들린 사진이었지만, 그래서 더 분위기가 살았다.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그 아래 댓글이 수십 개씩 늘어났다.
┗대박! 가면 두고 갔네?
┗오늘 너무 좋았어요!
┗와, 다온은 그럼 그 밴드 공연을 바로 옆에서 직관한 거임?
┗다온님. 세상 부럽네.
┗그럼 다온은 정체 아는 거잖아?
┗우리 그건 건들지 말자.
┗맞아. 알아서 알려 주겠지.
┗아무튼, 오늘 최고였음.
┗세상 이런 라인업의 락페는 없을 듯.
┗다온 언니 사랑해요.
┗오늘 직관 못한 애들 진짜 안됐다.
┗난 집에서 망원경으로 직관했음. 떠나기 전에 제니스랑 얘기도 나눴음.
┗오! 응수동 조망권 아파트임?
┗세상 제일 부러운 동네다.
┗여의도 조망권보다 더 먹어줄 듯.
┗거긴 일 년에 한 번 불꽃놀이 할 때만 먹어주지 않음? 응수동은 아마 매일 먹어줄 예정임.
┗진짜. 앞으로 계속하면 좋겠다.
┗나 구청에 민원 넣을 거임.
┗다온 누나 나 죽어.
┗오늘 다온도 진짜 대단했음.
┗맞아. 클럽 안 다녀서 몰랐는데, 엄청 유명하다던데?
┗우리 여신님 모름? 너 차단.
남의 피드에서 사람들이 채팅을 나누고 있었다.
그 이야기들은 밤새 이어졌고,
다온의 스타그램에 있는 그 게시물은, 그날 공연을 본 이들에게 성지가 되었다.
그리고,
가면 쓴 관중들 사이에 숨어있었던, 유명인들의 피드가 여기저기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테일도 있었고, 비투스 멤버들이 있었으며, 세계적인 영화배우 정성욱도 있었다.
의외의 사람도 있었는데, 대한 음대 학회장 이성철과 청강 그룹의 실질적 오너인 진봉구이사장의 SNS에도 사진이 올라왔다.
그 외에 수많은 사람이, 공연 현장 인증사진을 계속해서 올렸다.
응수동의 축제는 막을 내렸지만,
그들의 축제는 몇 날 며칠이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
그들이 사라진 그 옥상에는 동물 가면 네 개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가면을 남겨두고 떠났으니,
아마도, 다시 그들이 나타날 때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리라.
최고조로 달했던 열기였기에, 금방 식어 버릴 수도 있었지만,
축제는 계속되었다.
그날 이후로도,
응수동에는 무대를 차지하려는 밴드들이 줄을 섰고, 매주 주말이면 메인무대에 대형 스타들이 등장하곤 했다.
업계에서 제법 잔뼈가 굵은 행사 기획팀이 합류했고, 상인 조합을 위시한 법인이 설립되었다.
동시에,
거리 자체를 ‘문화의 거리’로 지정하려는 물밑작업도 진행되었다.
뮤지션들에게만 암암리에 알려졌던, 사거리 ‘성지’는,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진짜‘성지’가 되었다.
그날,
그 기적을 맛본 사람들에게는,
이 거리를 찾은 것만으로도 그날의 느낌을 되살릴 수 있었고,
그날,
이곳을 찾지 못했던 이들도,
여타 거리와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즐기게 되었다.
중심 상업지구 개발에, ‘청강 건설’이 참여하게 되었고, 이 거리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지하로 도로를 넓히는 계획안을 내놓았다.
늙어가는 것만이 전부였던 거리에,
매일같이 젊음이 가득 찼다.
허름한 건물 가득한, 이 지역의 흉물이라 일축하곤 했던 신축 아파트의 주민들도, ‘응수동 거리조망권’이라는 특권을 거머쥐자, 모두가 이 거리를 응원하게 되었다.
주말이면,
그들은 그들의 베란다에서, 이 거리의 열기를 만끽하곤 했다.
예상 밖의 일도 있었는데,
흉기를 든 괴한을 온몸으로 제압한, ‘망치’ 풍순철은 전과 2범임에도 불구하고, ‘용감한 시민’ 표창장을 받았다.
내부에서 말이 좀 있었는데, 경찰서장이 밀어붙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현재 그는, 응수동 독거노인들을 돕는 자원봉사 센터로 출근하고 있었다.
‘개과천선’의 표본으로 관할경찰서에서 홍보물을 제작한다는 말도 돌았다.
그리고, 현장을 통솔하는 경호 업체가 생겨났는데, 그 이름은 ‘희망 씨큐리티’였다.
그 회사 사이트에 적힌 ‘임직원 소개’를 살펴보면,
대표이사 자리에 ‘강무덕’, 부사장에는 ‘양구철’이라는 이름과
고문이자, 사외 이사 자리도 있었는데, 사진란은 비워둔 채, ‘유장하’라는 이름만 적혀있었다.
신생 업체였지만, 야외 단체 공연이라는 굉장히 특수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작은 사고조차 용납하지 않았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시간은 흘렀지만,
밴드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동물 가면 밴드’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쩌면,
그들의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기에, 더 잊히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수많은 영상이 업로드되었고, 조회 수는 쉬지 않고 올라갔다.
음원이 나오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영상을 통해서만 그들의 음악을 들어야 했고, 필연적으로 현장의 모습까지 함께 볼 수 있었다.
당시 공연의 느낌을 온전히 알 수는 없었지만, 음악이 주는 메시지는 확연했고, 사람들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노래를 흥얼거리자, 음악에 담긴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못했다.
세상은 ‘다른’사람들 천지였으니까.
이후로 ‘동물 가면 밴드’가 다시 나타나지 않음에 분개하는 이들도 있었고, 말도 안 되는 루머를 만들어내는 이들도 있었다.
당시 가면을 벗지 않았음을 비아냥대는 글들도 넘쳐났으며, ‘역겨운 신비주의 컨셉’이라는 평을 내놓은 유투버도 있었다.
음악에 관련된 커뮤니티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들을 찬양하는 글과 비판하는 글이 서로 부딪치곤 했다.
어쨌거나, 정체조차 알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까지 모든 이의 관심을 한곳에 모은 음악인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간, 엄청난 일이 하나 더 일어났는데,
종탁의 새 앨범이,
대한민국 트로트 역사상 처음으로 빌보드에 올라간 것이다.
물론, ‘제니스’라는 이름의 덕을 본 것이지만, 어쨌거나 엄청난 일이었다.
대표적인 1인 미디 음악, ‘트로트’에서, 라이브 세션의 도입을 시도하는 일들이 빈번해졌고,
다른 장르 또한,
MR을 전제로 한 음원을 만들어내던 환경에서, ‘세션 직접 녹음’과 ‘라이브’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음악계에 밴드 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재밌게 놀기 시작했다.
***
“어이 정PD! 요새 바쁘겠어?”
식판을 들고 걷던 정태강PD가 고개를 돌렸다.
“아주! 타이밍 좋아!”
“놀리냐?”
“부러워서 그러지. 이렇게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프로그램이라니. 난 언제 그런 거 한 번 해보나.”
동료PD의 말에 태강의 눈썹이 꿈틀댔다.
머리는 푸석해져 있었고, 면도하지 못한 수염은 제멋대로 자라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퇴근이란 걸 해본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동료의 저 말속에서는, 아주 약간의 부러움과 절반 이상의 고소함에, 조금의 시기와 질투가 섞여 있었다.
“이빨 적당히 털어라. 확, B팀으로 너 지목하는 수가 있다.”
이죽거리던 동료의 표정이 싹 굳었다.
“아. 죄송합니다. 정PD님!”
몸을 홱 돌리더니, 멀리 떨어진 식탁에 앉아 버렸다.
한숨을 푹 내쉰 태강이, 퀭한 눈으로 식판을 바라봤다.
본래, 경연 프로그램치고는, 짜투리에 끼워 넣은 ‘작은 기획’일 뿐이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아마추어적 감성으로 아기자기한 무대를 꾸며보려 했었다.
그래서, 타이틀도 ‘고등 밴드’였지 않은가.
그런데,
그 ‘응수동 축제’가 터졌다.
갑자기 밴드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로 올랐고, 위에서 판을 키워버렸다.
밴드라면, 프로든 아마추어든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상금도, 총 3억 원에 달했다. 편성 시간까지, 황금시간대인 ‘금요일 10’시로 배정되었다.
독립 영화 수준으로 준비하던 것이, 갑자기 블록버스터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일이 확 늘어버린 만큼, 정태강은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더 문제는,
기획안을 끝낸 지금까지의 고생은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이었다.
오늘,
예심을 봐줄 전문가들과의 미팅이 잡혔고, 다음 주 광고가 뜨게 되면,
수천에 달하는 음원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지옥이 펼쳐질 것이었다.
자신이 키운 판도 아니었고, 사람들의 관심까지 최고조에 다다랐다.
웬만해서는 무조건 되는 프로그램.
잘해도 본전.
망하면 쪽박이었다.
“에이 씨!”
밥맛이 싹 사라진 태강이, 수저를 집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