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5
5화. 딸
-까톡!
늦은 밤.
블로그 초고를 작성하던 민정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야?’
작성하던 글의 흐름이 깨지지 않도록 핸드폰을 엎어둔 뒤,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번 달 데뷔하는 여자 아이돌 그룹의 홍보에 사용될 평론을 내일까지 작성해야 했다.
한시가 급했다.
-까톡! 까톡! 까톡!
간격 없이 울리는 알림소리.
‘응? 단체 채팅? 누구지?’
무음으로 해 놓을 생각에 핸드폰을 들었다가, 알림에 뜬 이름들을 보고 서둘러 모니터 구석 까톡 아이콘을 눌렀다.
비밀번호를 적고, 대화창에 들어서자 너무나도 반가운 이름들이 펼쳐졌다.
-연필 부회장 : 야! 일단 안 자는 애들 손.
-아영엄마 : 저요!
-희진 언니 : 나.
-쌍둥이맘 : 언니 갑자기 웬일이야?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키보드를 두드리려던 민정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 조합은?’
몇십 년 만에 본 이름도 있고, 지난주 통화했던 이름도 있었다.
일단 초대된 참여자를 확인하니, 스무 명이 넘었다.
가물거리는 이름도 있지만, 다들 아는 이름이었다.
서로 사는 환경이 달라지며, 연락이 뜸하거나 각자 친한 사람이 생겨 따로 소식을 주고받지 않는 사람도 보였다.
스마트폰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의 인연들.
아련한 기억이 스쳐 갔다.
-난 이제 자유임 : 저도 있습니다.
그 잠시 스친 기억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까톡창 뒤에 있는 문서를 잊게 하기 충분했다.
잠시 문서 편집창을 최소화했다.
-연필 부회장 : 오! 쏘민정! 살아있네!
-아영엄마 : 쏘! 어때? 돌싱 생활은?
-쌍둥이맘 : 와! 진짜 오랜만이다.
-희진 언니 : 너 담주에 그 오빠한테 연락처 준다!
-난 이제 자유임 : 응! 뚜쟁이는 꺼지시고. 아무튼 이 조합 뭐지?
이미 이 조합이 뭘 의미하는지 눈치는 챘지만,
‘굳이 이렇게 모을 만한 일이 있나?’
-연필 부회장 : 다들 지금 덕질하는 좌표 찍어봐.
-쌍둥이맘 : 저는 비투스요!
-아영엄마 : 뭐니 뭐니해도 감미로운 테일이지요.
-희진 언니 : 다들 타락했군. 락 정신 다 어디 갔어? 난! 나비계곡!
‘다들 여전히 열심이네.’
이들은 처음부터 음악으로 맺어진 인연들.
세월은 흘렀지만, 여전했다.
-연필 부회장 : 쏘는?
민정은 까톡창 뒤에 있는 바탕화면을 바라봤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국내 최고의 아이돌.
아니,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최정상인 그룹.
활짝 웃는 차일드 애플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이들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은 이 그룹의 세계적 신드롬에 대한 논문도 쓰지 않았던가.
‘타락이라···.’
너무나도 대중적인 아이돌이라, 왠지 마지막 희진 언니의 말이 살짝 걸렸다.
-희진 언니 : 야! 저년도 타락했어. 무려 지금 아기 사과 부회장님이시다.
-연필 부회장 : 오. 차일드 애플? 나도 아기 사과임! 잘 부탁드림!
-난 이제 자유임 : 오! 언니도?
-쌍둥이맘 : 나도 아기 사과이긴 한데.
-연필 부회장 : 양다리는 꺼지시고!
진짜 오랜만에 모였지만 여전했다.
채팅창만 봐서는 아줌마들로는 보이지 않는 텐션.
민정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난 이제 자유임 : 언니 근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뭔 일이래?
-쌍둥이맘 : 그러게? 갑자기 이 조합 뭐지?
-희진 언니 : 오랜만에 이렇게 모이니까 홍대 생각난다. ㅋㅋㅋ
‘아··· 홍대.’
아까부터 심장을 간질이던 그 장소를 언급하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댔다.
아무 생각 없이 뿜어댈 수 있는 열정이 가득했던 그 시절.
젊음이 재산이고, 미래는 희망뿐이었던 파릇했던 그 날.
책임질 것이 없었기에 너무나도 자유로웠던 영혼들.
-연필 부회장 : HB 컴백한다.
-아영엄마 : 뭔 연필 컴백도 아니고, 이 조합 뭐래?
거의 동시에 올라온 메시지.
멈추지 않던 채팅창에 순간 정적이 일었다.
민정도, 입을 쩍 벌렸다.
-아영엄마 : 악! 악! 뭐? 언니?
-아영엄마 : 뻥 아니지?
-아영엄마 : 지금 전ㅇ횜 ㅇ러ᅟᅵᆽㄷ
막내 희연의 발작이 멈췄다.
모두가 멍한 상태인가?
민정도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민정의 직업은 음악 평론가.
수도 없이 많은 음악을 들어왔다.
가창력이 너무나도 뛰어난 가수도 만났고, 연주 수준이 정상급인 밴드도 있었다. 조각 같은 얼굴에 댄스가 일품인 아이돌도 요샌 다들 대단한 실력이었다.
그녀의 일은 세계 모든 음악을 듣는 일.
하지만,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일탈하는 기분으로 들어섰던 홍대 앞, 그 클럽에서 느꼈던 감정만큼은 어쩌면 자신만의 성역이었을까?
세계적으로 대단한 그 어떤 뮤지션도 그 성역에 발을 들이지는 못했다.
까톡 대화창은 아직도 멈춰 있었다.
‘아차.’
까톡을 두드릴 정신이 어딨다고,
얼른 핸드폰을 들어 ‘연필 부회장’ 언니의 번호를 찾았다.
서둘러 통화 버튼을 터치했지만···.
아, 한발 늦었다.
늦은 밤.
마흔이 훌쩍 넘은 여자들은, 이십 대 그 설레던 순간을 떠올리며 마구 통화 버튼을 터치해댔다.
‘아! 적당히 하고 좀 끊으라고!’
***
-삐삐삐삐 삐릭-
진혁은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었다.
“어? 일찍 왔네?”
딸.
이름은 조은서.
나이 열다섯.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 조금 예민한 상태.
최근 비밀이 많아져서 진혁의 마음을 애태우는 중.
엊그제 교복 치마 길이로 실랑이를 벌였음.
여느 때와 같이 하루 만에 화해했지만, 결국 치마 길이를 어쩌지는 못했음.
최근의 기억이 순식간에 떠올랐고, 점차 그 기억이 가진 감정의 밀도가 높아졌다.
산부인과,
급하게 달려간 분만실에서 서툰 가위질로 탯줄을 자르던 그 순간.
작고 소중한 생명을 처음으로 두 손에 올렸던 짜릿한 감정.
배변의 냄새까지도 사랑스럽던 그 아기.
낑낑대다 뒤집기에 성공해 환호를 질렀던 날.
가슴 먹먹한 돌잔치 동영상.
처음 들었던 ‘아빠’라는 말.
유치원 재롱잔치.
결혼할 거라며 데려온 남자친구.
초등학교 입학식.
졸업.
중학교 입학.
긴 시간 쌓아왔던 감정들이 물밀듯 밀려오자, 진혁의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열아홉 천재는 가지지 못했던 경험과 감정.
‘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아빠?”
딸아이가 다가왔다.
“어디 아파?”
손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지자,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심장이 폭발했다.
진혁이 서둘러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
무한한 사랑.
이런 감정이구나.
“아! 왜 이래!”
품에서 바둥대는 아이가 소리쳤다.
곧, 꿈틀거림이 멈췄고, 아이의 가녀린 팔이 진혁의 허리를 안았다.
“무슨 일 있어? 또 의사쌤들이 괴롭혀?”
아이를 안은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술을 얼마나 먹었길래···.”
고개를 든 아이가 진혁의 얼굴에 핏자국을 발견했다.
“와! 이 썅! 누가 이랬어?”
서둘러 진혁의 품에서 벗어난 아이가 진혁의 이마를 살폈다.
“빨리 들어와!”
안방으로 달려간 딸이 구급함을 들고 왔다.
“누가 이랬어? 응? 의사 쌤?”
“아냐···.”
본인이 가진 목소리 중 이렇게 먹먹한 목소리도 있었던가?
진혁은 힘겹게 연 입을 서둘러 닫았다.
이런 생소한 목소리는 너무나도 어색했다.
“다행히 찢어지지는 않았네.”
딸이 정성스레 치료하는 동안 가만히 눈을 감았다.
천재적인 음악을 잃었던 삶이었지만, 이토록 소중한 보물을 얻었다.
인격이 돌아온 후.
처음으로 마흔셋의 진혁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렇게라도 버틸 수 있었던 삶.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았다.
“얼른 자 아빠.”
“응.”
딸이 자기 방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겨우 심장이 진정되었다.
그제야 지금 지내는 집의 내부를 둘러봤다.
19평 빌라.
조금 더 큰 안방은 딸이 지내는 방이고, 비슷한 크기지만 다용도실 탓에 조금 더 작은 방은 진혁의 방이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방문에 기대어 스르륵 흘러내렸다.
마흔셋의 기억은 이런 면에서 조금 불친절했다.
선택적 기억개방.
상황에 닥치고서야 확연히 보여주는 기억과 감정.
고작 19년 살았던 천재 조진혁은 절대로 알지 못했던 경험들.
단 하나는 확실했다.
열아홉 천재가 만들었던 음악보다,
지금 진혁이 만들어낼 음악이 훨씬 더 엄청날 것이다.
다른 의미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기대감.
방긋 웃으며 일어나려는데, 미약하게 들려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비틀즈?’
최고의 음악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같은 감정을 선사하는 법.
오랜만의 선율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
-Hey Jude.
반주곡이었고, 딸아이의 약한 허밍이 간간이 들려왔다.
‘제법 하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흔셋의 기억에는 그 어떤 음악도 없었다.
‘아, 아이가 음악을 한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구나.’
이전에도, 이 아주 작은 소리를 들었던 기억은 있다.
다만, 알 수 없는 소음과 기계음으로 들렸었다. 마치 핸드폰을 만지는 효과음 정도였다.
그게 음악이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바로 근처의 방인데도, 아주 작게 들리는 소리.
‘이불속?’
딸아이의 심정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아빠는 음악을 들을 수 없는 병에 걸렸다.
음악 자체를 소음으로 받아들이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런 아빠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저렇게 작게, 자기 음악을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야 딸의 음악을 알게 된,
마흔셋의 감정이 밀려왔다.
슬픔. 미안함. 괴로움. 대견함. 뿌듯함.
마지막으로,
열아홉 진혁의 감정이 더해졌다.
음악으로 딸과 대화할 수 있게 된,
앞으로의 기대감.
벅차오르는 감정에 눈가가 촉촉해진 진혁이 눈을 떴다.
그리고 입꼬리를 올렸다.
앞으로 기대되는 것이 하나씩 늘고 있었다.
***
음악전문 토크쇼 황지선의 캔버스.
오늘은 한국 락밴드 최초로 빌보드 싱글 TOP100에 진입한 임도유 밴드가 출연했다.
마지막 곡을 남겨둔 채 음악계의 선배인 황지선이 임도유에게 음료를 권했다.
“와! 아직도 열정이 대단하시네요. 올해 나이가···.”
“거기까지 하시죠. 선배님.”
“네! 하하하.”
단호한 임도유의 표정에 황지선이 멋쩍은 듯 특유의 화통한 웃음을 뿜었다.
“빌보드 싱글은 우리나라 락밴드 최초죠?”
“맞죠. 뭔가 후배들한테 업혀 간 느낌이기는 합니다.”
“에이. 그것도 능력이 있어야 업혀 가는 거죠.”
“어. 그렇게 말하면 업혀 간 거는 맞는 게 되잖아요!”
“하하하하.”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인정합니다.”
실제, K-Pop의 위상은 대단했다.
몇몇 아이돌은 음반을 발매하자마자 빌보드에 오르기도 했고, 리스트 최정상에선 국내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심심찮게 발견하곤 했다.
다만, 락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밴드로 이루어진 그룹의 빌보드 진입은 이번이 최초였다.
비록, 97위라는 애매한 순위였지만 그 의미는 특별했다.
홍대 인디씬으로 출발하여 데뷔 28년 차 밴드.
그가 해맑게 웃었다.
빌보드 차트에 오른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평생의 숙원을 이룬 것일 테니.
“이제 후배 밴드들도 차근차근 진입해야겠네요. 도유씨가 업어줄 거잖아요?”
“하하. 제가 나이가···. 무릎이 좀 안 좋습니다.”
“아! 아까 그래서 점프도 낮게?”
“에이···.”
20년째 알고 지내는 선후배답게 장난스럽게 선배의 어깨를 치는 임도유.
관객이 웃어댔다.
“이렇게 오랫동안 음악 생활하다 보면 뭔가 아쉬운 것도 좀 있을 것 같은데요.”
“음···.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갑자기 진중해진 그의 표정에 황지선이 마이크를 내렸다.
“제가 홍대에서 밴드 생활을 시작했을 때, 최고의 밴드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계속 음악을 했다면, 빌보드? 세계 대중음악? 이미 그들이 점령했을 겁니다.”
황지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렸던 마이크를 입에 가져갔다.
“당시에 저도 소문은 들었죠.”
“그때 유투브나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세상 사람 모두가 한국을 향해 엄지를 세웠을 겁니다.”
“어···.”
메인 카메라 앞의 PD가 서둘러 팔을 휘두르다 X자를 그렸다.
관객들이 호응할 수 없는 토크가 조금 길어졌다. 녹화로 진행했던 평소라면 잘라내면 그만이지만, 오늘은 특집으로 진행되는 라이브.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뭐, 지난 일이죠. 그들도 이제 애 아빠 아저씨들일걸요? 그보다 오랜 기간 꾸준하게 한국 락큰롤을 이끌어주신 임도유 밴드 같은 존재가 훨씬 더 위대하죠.”
황지선이 서둘러 대화의 맥을 끊었다.
“아닙니다. 그들이 있었으면 저는 명함도 못 내밀어요.”
“아···. 하하.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밴드는 임도유 밴드죠. 하하하.”
황지선이 조금 세게 임도유의 팔을 치며 과장되게 웃었다.
“아뇨! 다시 돌아올 거예요. 그들은 기적이거든요. 기억하세요. Heart Breakers.”
관중에게서 고개를 돌린 황지선이 임도유만 보이는 각도에서 인상을 팍 썼다.
‘이게 미쳤나? 생방송인 거 잊었어?’
임도유가 놀리듯 입꼬리를 올렸다.
“네! 기억할게요. 일단은 지금 최고의 밴드인 임도유 밴드의 빌보드 수록곡을 마지막으로 만나보죠! keep-off. 듣겠습니다!”
황지선이 서둘러 표정을 바꾸며 그에게서 마이크를 뺏어 들었다.
아쉬운 듯 쩝쩝대던 임도유가 눈을 흘기며 무대로 나갔다.
곧 세션들이 연주를 시작했고, 아껴둔 체력을 마음껏 쏟아냈다. 임도유 밴드의 열정적인 마지막 곡이 홀 가득히 울려 퍼졌다.
바로 옆이라 귀가 먹먹한데도, 그녀는 갑자기 떠오른 밴드 때문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황지선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그때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