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51
51화. 음모
SJ 엔터테인먼트 대표실에서는, 바로 오늘 녹음을 끝낸 따끈따끈한 신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 곡이 모두 끝나자, 대표석에 앉아 눈을 감은 윤석준이 검지를 치켜들어 까딱였다.
오디오 옆에 서 있던 서동구가 후다닥 달려왔다.
“왜 발라드냐?”
“어···. 진혁이가···.”
“오케이.”
이미 녹음을 끝내고, 자리를 뜬 진혁이었기에 직접 대면하지는 못했다.
첫 만남을 고대했던 석준이었기에 아쉽기는 했지만, 급할 필요는 없었다.
뭣보다 급했던 건, 이 굉장한 곡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릴지, 그게 문제였다.
세곡으로 이루어진 미니앨범은, 그 자체로만 던져놔도 절대 묻힐 물건이 아니었다.
음원만으로 정상에 오르는 경우는 흔한 일은 아니더라도, 간혹 일어나기도 했고, 이 앨범은 그 ‘간혹’에 충분히 속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다만, 그렇게 뜬 음원은, 언젠가 가수가 직접 등판하며 ‘스타성’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신비주의’란, 휘발성이 너무 강했다.
“후···. 일단, 용케도 안 망했다?”
책상 위에 쌓인 서류들을 대충 확인하며, 윤석준이 인상을 구겼다.
“엉망진창이네.”
“헤헤.”
“웃어?”
“망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자랑이다.”
“헤헤.”
“에에?”
동구가 머리를 긁적이며 방긋대자, 석준이 서류뭉치 하나를 들어 던질 듯 휘둘렀다.
실없이 웃기만 하는 멧돼지가 마치, 얼른 던져 달라는 듯 얼굴을 내밀었다.
“허어.”
석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서류철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그간 나사 하나가 빠진 모양이었다.
“오면서 살펴보니까 주가는 바닥에서 살짝 올라갔던데?”
“그, 박재경이 나가고 쫙 내려갔었는데, 진혁이 유투부 뜨고 살짝 올라갔죠.”
“그래서, 그 박재경인가 뭔가는 그냥 놔 줬어?”
“에이. 어린 애가 뭘 몰라서 그런 거···.”
“에이 썅! 너한테 회사를 맡긴 내가 죄인이지 죄인!”
“잘 아시네요.”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대는 동구의 얼굴을 바라보던 석준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간,
살도 참 많이 쪘고,
얼굴색도 어두워졌다.
예전엔 그래도 귀여운 맛이 있었는데,
저 실없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왜 이리 짠하고 안쓰러운지.
‘야. 형이 회사 하나 차릴 건데, 같이 할래?’
갑자기,
뭣도 모르는 군대 후임을 끌어들였던, 30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이쪽 업계의 일이라고는 하나도 몰랐던 순박한 청년은, 참 우직하게도 자신의 곁을 지켜왔었다.
이 회사를 물려주는 것으로, 그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줬다고 여겼는데···.
그 보상이, 이 순박한 인간에게는 어쩌면 무거운 짐이었던 것일까?
하도 울어대서,
눈까지 퉁퉁 부어버린 멧돼지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떠나질 않았다.
그리 힘든데도, 회사로 부르지 않았던 건, 또다시 좌절하며 힘들어할 자신을 염려해서였을 것이었다.
“회사 상황도 개판이고, 연습생들 수준은 뭐 이따위야. 그나마 버틴 건, 늙다리들 고혈 짜면서 버틴 거네.”
“헤헤. 비투스랑 황지선 아니었으면, 벌써 망했죠.”
자랑이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가 멈칫했다.
“후···.”
그간의 회사 운영 성적은 개판이었지만, 그래도, 곳곳에 녀석의 노력이 보였다.
우직하게, 방송국들을 뛰어다니며 예능 하나라도 더 따내려 했을 것이고, 신인을 알려야 할 때는, 본인이 먼저 고개를 조아렸을 터였다.
각종 부대 비용들을 대충 살펴보니, 연습생들의 생활비는 물론이고, 본가의 빚까지 대신 갚아준 자료도 보였다.
회사 자료에 보인 것이, 저 정도의 금액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본인 돈으로 도운 게 더 많을 것은 뻔했다.
정에 약하고, 너무나 착해빠진 놈.
그에게 이 험한 세계의 회사를 떠넘겼다니···.
석준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10년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꾸역꾸역 껴입고 있던,
순박한 멧돼지의 앞에 섰다.
“새끼가. 진짜···. 나이 처먹고 울기나 하고···.”
투실투실한 입꼬리는 잔뜩 올라가 있는데, 아직도 눈에는 물기가 어려있었다.
“고생했다.”
석준이 전에 비해 훨씬 투실해진 동구의 몸을 꼭 안아주었다.
“고생했어.”
그의 등을 토닥여,
그 꽉 끼는 옷을 천천히 벗겨 주었다.
“고맙다.”
석준의 감은 눈에도 물기가 살짝 비쳤다.
동구에게 너무나도 꽉 끼던 그 ‘옷’을 되돌려 받자,
이 옷이 터지지 않도록, 얼마나 숨을 죽였는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그 세월이 흘렀건만,
되돌려 받은 옷은,
어디 하나 늘어나거나 망가진 곳 없이,
석준의 몸에 꼭 맞았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두 남자는,
말없이 서로의 등을 토닥였다.
***
“와···.”
조수석의 진혁이 핸드폰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신호에 걸리자 상정이 고개를 돌려 진혁을 바라봤다.
“석준이 아저씨 왔다네?”
“오. 진짜?”
“응. 애들이랑 카지노에서 만났대.”
“이것들이, 카지노를?”
“엇갈렸네. 녹음할 때 왔으면 좋았을 텐데.”
“차 돌릴까?”
“아니야. 앞으로 계속 볼 건데 뭐.”
진혁이 방긋 웃었다.
아마, 오늘은 동구 아저씨와 감동적인 재회를 나누고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자신과 엇갈린 것이 더 나았을 터.
“공사 끝났대?”
“응. 지금 거기로 갈 거야.”
“어··· 또 이러네.”
파란 불로 바뀌어 출발하려던 차가, 덜컹거리더니 시동이 꺼졌다.
상정이 키를 뽑았다가 다시 꼽고 돌리자, 힘겹게 엔진이 움직였고,
주변의 따가운 경적에 쫓겨 서둘러 출발했다.
“음, 차도 얼른 바꿔야겠다.”
“오! 좋지!”
다 큰 남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장난감.
두 중년인이 세상 신난 얼굴로 활짝 웃었다.
***
응수동 옆 동네에는 고갯길이 있었는데, 주택가가 늘어서 있었다.
오래된 단독 주택 하나가 두 달 동안의 공사를 끝마치고, 공사 폐기물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한동안 동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리모델링이 이제 끝난 것이었다.
“누가 들어오는 거지?”
“몰라. 돈 많은가 보다. 빌라 올리는가 했더니 그냥 주택이네?”
보통은, 오래된 주택을 밀고, 5층짜리 빌라를 지어 분양하곤 했었다.
응수동 쪽과는 달리, 재개발이 이뤄지기는 애매한 동네였고, 그렇기에 땅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부를 축적해 왔었다.
“그, 엄청 비싼 차도 와서 주차하고 그랬잖아. 롤스로이스였나? 누군지는 몰라도 부자여 부자.”
“거, 좋은 동네 가서 살지, 이런 구석탱이에 뭐 하러 왔지?”
“모르지, 돈 많은 양반들 뭔 생각하는지 알게 뭐여.”
“으···. 춥다. 얼른 들어가자고.”
골목 어귀에서 담배를 나눠 피던 동네 아저씨들이, 옷깃을 여미며 자신들의 집으로 들어갔다.
곧, 그 골목으로 소형 승합차 한 대가 진입했다.
그리곤, 폐기물을 싣는 트럭 옆에 주차했다.
***
‘오빠. 우리 나중에 돈 많이 생기면, 꼭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하자.’
‘마당?’
‘응. 큰 나무도 있고, 잔디도 깔려 있어서 풀 냄새 가득한 마당.’
‘풀! 풀! 나무!’
등에 업혀있던 은서가 손가락으로 마구 가리켰던 곳.
‘저런 데?’
‘와. 이 동네에 저런 집이 다 있었네?’
높은 담장 너머 2층 주택이 보였었다.
‘마당에는 흔들의자도 놓고,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우고, 1층 거실에서 은서가 피아노도 치고, 오빠는 통기타···. 아. 아니다. 미안.’
‘피아노! 피아노!’
잠시 멈춰 바라봤었던,
그 집 마당의 감나무는 그때보다 훨씬 더 커 있었다.
“아빠!”
“응.”
“와! 겁나 넓어!”
“너 여기 기억나?”
“아니? 여기 와본 적 있어?”
진혁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누나! 다락방도 있어!”
“오! 기다려!”
2층에서 서준이가 소리쳤고, 은서가 후다닥 달려갔다.
“와, 공사 끝나니까 멋지네.”
“그치?”
“선하는 가구 몇 개 더 본다고 고양에 갔대.”
“치킨집은?”
“대충 그 동네 형님한테 넘겼어. 얼마 전에 실직했다길래···.”
작업실이 있는 2층집.
어릴 적에 꿈꿨던 그 ‘로망’이 눈앞에 있었다.
그간 쌓인 수익은 꽤 많았고, 현재도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지만, 아직 목돈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수익은 정확히 4등분으로 나눴지만, 친구들은 진혁의 작업실을 먼저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았었다.
집주인에게 꽤 많은 웃돈을 얹어주며 매입했고, 상정이 치킨집을 처분하고 대출을 얹어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앞으로 들어올 유투부 수입만으로도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는 선하의 판단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작업실 겸 보금자리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아빠! 내 흰둥이는?”
2층보다 조금 더 높은 곳, 동그란 창문에서 서준이가 소리쳤다.
아마도, 저 공간이 다락방인 듯했다.
“마당에 올려줄게!”
“오! 감사합니다!”
마당 한가운데 놓일 롤스로이스를 떠올리며, 진혁과 상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집 안에서,
계단을 오르는 ‘우다다’소리가 들려왔다.
진혁이 고개를 들어 감나무잎 사이로, 빨갛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봤다.
그녀가 바랐던 그 집.
한 계단씩,
돌아오고 싶어서 미칠만한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왁자지껄했으면 좋겠어. 정신이 하나도 없게 놀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어느새 물들어 있는 노을을 감상하고···.’
너무나도 예쁜 색으로 칠해진 하늘을 바라보던 진혁이 방긋 웃었다.
은서는 피아노를 치고,
자신은 통기타를 튕기며,
그녀를 맞이할,
그날을,
가만히 떠올렸다.
동그래진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어때?’라고,
지금처럼 웃어주리라.
그녀가 짓게 될 표정을 상상하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
“야.”
“넵!”
“우선 유투부는 잘했어.”
“헤헤.”
“음···.”
최근,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던 주가가 유투부로 인해 잠시 소강상태였다.
“지금 지분이 어떻게 되지?”
“거기 서류 보시면···.”
“흠, 투자자가 많이 빠졌네?”
“헤헤.”
“웃어?”
“지금 이거 반에 반토막이지?”
“뭐 보시는 대로.”
“새끼가···.”
“헤헤.”
윤석준이 미간을 좁혔다.
잠시 멈추기는 했지만, 현재 SJ의 주가는 바닥을 찍기 일보 직전이었다.
“진혁이 나이랑 정보 몇 개, 언론사에 흘려서 대충 공개해.”
“네?”
그저 ‘네네’만 하며 실실대던, 서동구가 화들짝 놀랐다.
“엄청난 마이너스 아닌가요?”
“맞지.”
최대한 정체를 숨기려 했던 것은, 투자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한 것도 있었다.
노래가 아무리 좋더라도, 지속적인‘스타성’이 없다면, 투자자들에게는 미래가 보이지 않을 테니까.
물론 진혁이 직접 등판해서 각종 매체에 등장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저 정보만을 밝히는 것은 마이너스가 될 것이 뻔했다.
“그럼 토끼라는 걸···.”
“그건 감춰.”
“네?”
진혁이 지금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밴드의 리더라는 것은 가장 큰 무기였다.
“토끼는, 지금 밴드 음악의 상징이야.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상으로 숭배받고 있지. 아직은 묵혀둬야 해.”
“저기···. 나이를 그냥 밝히면, 주가가 바로 곤두박질···.”
지금 바닥으로 내려가던 주가가 멈칫한 것은, ‘대형 신인’에 대한 기대감이 가져온 일말의 망설임이었다.
만일 나이가 공개된다면, 그들은 즉시 ‘손절’을 외치며 던져댈 것이 뻔했다.
그만큼, 지금 SJ 엔터테인먼트에는 ‘호재’가 남아있질 않았으니까.
“나도 그 타이밍에 지분을 던질 거야. 바로 공시도 할 거고.”
“어···. 그럼 우리 망하는데요?”
“당연히 망하겠지.”
“저 욕 해도 돼요?”
“진혁이가 없었다면···.”
“어···.”
동구가 욕할 타이밍을 놓쳤고, 석준이 입꼬리를 올렸다.
“야. 에이스 포카드를 잡았어.”
“에?”
“빚이라도 내서 배팅해야 하는 게 당연하겠지?”
“뭐···.”
“주가는 반드시 올라.”
동구가 고개를 갸웃했다.
“진혁이가 사람들 앞에서 라이브를 하기 시작하면, 전국이 들썩일 거야.”
“어···. 아!”
석준이 이제 이해했냐는 듯이 피식 웃었다.
“나까지 던지면, 다들 던지겠지?”
“주가는 바닥을 칠 테고요?”
“그럼 니가 그걸 사서 진혁이 계약금으로 줘.”
“오.”
“우리를 마지막까지 믿는 자만이,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을 거야.”
동구의 입이 벌어졌다.
사실, 돈이 걸려있는데 마지막까지 믿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뭔가, ‘음모’ 같은 느낌이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저 사악한 미소는,
마음 한구석의 죄책감 비슷한 것을 싹 날려주는, 어떠한 힘이 있었다.
“뭐. 왜?”
“아니···. 그···. 오랜만이라 그런지, 대표님이 참···. 뭐랄까, 이런 인간이었지 싶어서요.”
“새끼가···. 그리고, 연습생들 계약서 싹 챙겨와. 어디 이런 세상에서 이따위로 계약해?”
“넵.”
“뭐, 땅 파서 장사해?”
“아니죠.”
“진훈이 이 새끼는 왜 계약 연장 안 했어?”
“그··· 오랫동안 함께 했기도 하고, 걔가 배신 때릴 놈도 아니고···.”
“이 바닥에서 ‘믿음’으로 장사하는 거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얘기해. 무조건 이걸 믿어야지!”
석준이 서류를 팔랑거리며 흔들었다.
“소속된 애들이랑 각 부서 팀장들, 전부 다 면담 일정 잡아.”
“넵.”
10년간 잠잠했던, SJ 엔터테인먼트에 칼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
“네. 어···. 확실한 겁니까?”
몇몇 연예부 기자들 사이에서 ‘소스’가 돌기 시작했다.
어쩌면, ‘SJ’의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를 그 대형 신인이 평범한 회사원이었다니,
그것도, 나이가 마흔셋?
얼마 전까지 일했던 회사의 정보까지 뜬 상태였다.
이미, 하원 메디컬까지 찾아온 기자도 있었다.
“어···. 그··· 제 사수셨습니다. 얼마 전에 퇴사하셨는데···.”
“이곳에서 15년 근무하신 거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 노래를 엄청나게 잘하셨다던데···.”
“엄청나죠.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아···. 그럼 몇 가지만 더···.”
점심시간,
밥도 챙겨 먹지 못한 채 기자들에게 시달린 민석이였지만,
‘오! 과장님이 드디어!’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신나게 떠들어 댔다.
그날, 인터넷에는 SJ 엔터테인먼트의 ‘나이 든 신인’에 대한 기사들이 마구 쏟아지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다만, 주가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