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53
53화. 첫 무대
“야. 오늘 누구 나온댔지?”
“박재경! 이번 신곡!”
“아. 맞다. 박재경 말고는 정보 안 떴나?”
“대형 가수 하나 있다던데, 엊그제 테일 신곡 나왔으니까, 테일 아닐까?”
“오. 오늘 대박이네.”
“아무튼 오늘 맨 앞자리 예약이다!”
신난 표정으로 친구에게 대답하던 경혜가, 손에 꼭 쥐고 있던 번호표를 바라봤다.
박재경이 ‘황지선의 캔버스’에 나온다는 소식에, 온 가족과 친척들의 명의까지 빌려, 결국 방청 신청에 당첨되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오전 6시부터 기다려서, 43번 번호표를 받아내는 비교적 준수한 성적까지 거뒀다.
100번 대까지 비교적 앞쪽을 차지할 수 있었기에, 눈치싸움만 잘하면 가운데도 노려볼 만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었다.
코앞에서 박재경을 볼 수 있다니.
상상만 해도 흐뭇했다.
“번호표대로 줄 서세요!”
진행요원의 외침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서로 번호를 물어보며 질서정연하게 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오늘 테일 진짜 기대된다. 그 목소리로 락 발라드라니···.”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경혜는 옆에 친구를 툭툭 쳤다.
“테일 맞네. 뒤쪽 사람들, ‘테사랑’에서 왔나 봐.”
“어. 나도 들었어. 박재경에 테일까지···. 오늘 역대급이다. 진짜.”
‘황지선의 캔버스’는 출연진이 미리 공개되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공식 팬클럽 사이에 퍼지는 소문으로, 짐작하는 것이었다.
그 소문은, 일부러 소속사에서 뿌리는 것이었기에, 대부분 확실한 정보였다.
우선, 메인이 ‘박재경’과 ‘테일’이니, 못해도 서너 곡씩은 부를 테고, 그렇다면 오프닝에 신인 하나 정도는 소개될 것 같았다.
라인업을 확인하고 나니, 벌써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야. 가자. 줄 움직인다.”
경혜가 핸드폰을 보는 친구를 툭 치며 앞으로 나섰다.
“넌 여기까지 와서 그걸 보냐?”
“니가 라이브를 못 봐서 그래. 이 정화되는 기분 절대 모를 거다.”
“눼눼. 어련하시겠습니까.”
“지금 이렇게 밴드들이 살판 난 게, 다 누구 덕인데!”
“아. 알았다고.”
“우리 갓끼님의 록은 영원한 것이야. 이년아.”
“갓끼고 토끼고 간에, 오늘은 눈앞에 있는 무대에 집중 좀 하자?”
“뭐. 우리 재경이랑 테일이라면, 집중하긴 집중해야겠지.”
친구가 싱긋 웃으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를 ‘토끼’보다는,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오늘의 출연진이 더 중요하기는 했다.
‘오늘만, 잠시 접을게요. 갓끼님.’
앞서 걷는 경혜를 따라 서둘러 움직였다.
***
“선배님 안녕하세요!”
“어. 오랜만.”
“이번 신곡 정말 예술이십니다!”
“어. 땡큐.”
“오늘 라이브 기대 하겠습니다.”
“기대하지 마. 신경 쓰이니까.”
“에이. 그래도···.”
“너. 말이 좀 많아졌다?”
“네?”
“후···. 아니다. 지금 내가 생각 좀 할 게 있어서 그러는데, 니네 대기실로 좀 가주면 안 될까?”
생글거리며 아양을 떨던 박재경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곧 표정을 풀고, 활짝 웃으며 허리를 굽혔다.
“그럼 있다가 무대에서 뵙겠습니다.”
“어. 그러던가.”
바닥을 향한 재경의 얼굴이 다시 한번 굳었다.
이번에는 표정을 풀기가 어려울 것 같았기에, 서둘러 대기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발라드 계의 톱스타였기에, 친분은 유지해야 했다.
저번 앨범 활동할 때만 해도, 그렇게 살갑게 대해주던 사람이 돌변해 버렸다.
SJ 엔터테인먼트의 진훈과 친분이 있다더니, 그 때문인 것 같았다.
“후···.”
얼굴을 쓸어내린 재경이, 자신의 대기실로 향했다.
‘오늘 오프닝에 들어갈 신인?’
5분 정도가 배정된 오프닝.
미리 받은 대본에는 그저 ‘신인’이라고만 적혀있었다.
최근 앨범을 발표한 몇몇이 떠올랐고, 테일도 그렇고, 자신도 밴드였기에 아마 솔로 가수일 가능성이 컸다.
이름이 적히지 않은 대기실을 바라본 재경은, 새로 데뷔한 솔로 가수들을 떠올리며, 본인의 대기실 문을 열었다.
***
재경이 떠나자,
테일은 방금 자신이 들렀던 대기실을 떠올렸다.
진훈을 통해, 오늘 함께 출연할 베일에 싸인 신인이 누구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조금 일찍 방송국에 와서 그를 기다렸었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몇 번 마주쳤지만, 항상 가면을 쓴 상태였고, 대화를 나눠보지도 못했다.
김충기 이사에게 들은 단편적인 이야기가 다였고, 그런 정보들은 더더욱 그에 대한 이미지를 뿌옇게 만들었다.
대기실 문이 열렸고,
처음 대면한 그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테일은, 대한민국 가요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대선배들을 마주할 기회가 많았다.
그렇기에, 기나긴 세월 동안 한 분야에 통달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들만의 연륜을 느낄 수 있었다.
절대 흉내로는 나오지 못할, 오랜 기간 켜켜이 쌓아온 음악적 깊이가 여실히 묻어나는, 여유로움 가득한 기운이었다.
오늘 처음 마주했던 이 대형 신인은, 그런 여유로움과는 결이 달랐다.
마치, 순백의 어린아이 같은 미소와 함께 등장한 그는, 그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당당함을 지니고 있었다.
‘테일씨죠?’
멍하니 바라보다가, 인사하는 타이밍도 놓쳤었다.
어떤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때, 거절하지 못할 부탁을 해왔었다.
‘재밌겠죠?’
글쎄,
당신만 재밌는 거 아냐?
첫 만남부터 그런 부탁이라니?
그렇게, 해맑은 표정으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 버렸었다.
‘후···.’
테일이 살짝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국민 꿀 성대 자리나 반납할 준비 해라.
친구의 농담이 떠올랐다.
각오는 했었는데···,
‘젠장, 엊그저께 새 앨범 나왔다고.’
물러날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이런 강제적인 계승식이라니.
문득,
몇 달 전,
[홍대에 몰아친 자연재해]라는 기사 타이틀이 기억났다.테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몰빵 했으니까. 돈은 벌겠네.’
인간이 어찌 대항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테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찌 됐든,
‘재미’는 있을 것 같았다.
***
“와! 오늘! 무슨 소문들을 듣고 오셨길래! 이렇게 열기가 넘치죠?”
황지선이 나오기 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MC둠칫’이,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등장했다.
“꽉꽉 들어찼네요! 어! 거기 뛰지 말고! 이건 뭐 유치원생들도 아니고.”
실없는 농담을 던지던 그가, 손에 있는 공연 순서가 적힌 종이를 바라봤다.
“오늘은, 처음에!”
사람들이 집중하자,
“황지선씨가 나옵니다.”
“우우우우.”
“어허. 황지선씨 나왔을 때 그러면 안 돼요. 삐져서 그냥 갑니다. 아시죠? 노···. 히스테리?”
사람들이 깔깔댔고, 충분히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 걸 확인한 MC둠칫이, 손가락을 들었다.
“자, 첫 번째는! 박···재경은 아니고, 테···일도 아니고.”
사람들의 야유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가,
“원래 맛있는 거는 나중에 먹지 않나요?”
“맞아요!”
“아, 저는 먼저 먹습니다. 뺏길까 봐. 위로 형이 셋이거든요.”
여기저기서 키득댔다.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메인 카메라 옆의 총연출을 힐끗 바라봤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첫 번째는, 가볍게 먹어야 체하질 않고, 마지막까지 맛있게 먹는 법이죠. 맞죠? 여러분?”
“네에!”
“아주 따끈따끈한 신인이 나옵니다. 다들 아시죠? 비틀즈 아윌?”
사람들이 웅성댔다.
오프닝이 신인이라는 건 대충 예상했지만, 그 ‘SJ’신인은 좀 뜬금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노래는 잘했지만, 나이와 각종 정보가 다 떠버리며 금세 식어버렸었고,
뭣보다,
아직 앨범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화제 속의 신인 ‘JH’가 드디어 베일을 벗습니다!”
다들 곰곰이 과거를 떠올렸지만,
앨범도 발매하지 않은 상태로 ‘황지선의 캔버스’에 나왔던 뮤지션은 기억에 없었다.
별다른 호응이 나오지 않자, MC둠칫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오늘 빡세다.’
무대를 쾅 하고 밟고는,
“어···. 신인이라 많이 떨고 있을 텐데, 그렇게 웅성거리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방청석 사이사이 끼어있는 바람잡이들이 소리쳤지만, 호응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박수, 치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신인 등장 장면만 수십 번 할 수도 있어요!”
“우우우우우.”
“그러니까 후딱 넘겨야지! 박수! 아셨죠? 그래야 그다음!”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모였다.
“박재경씨가 나옵니다!”
“와아아아아!”
“그리고! 테일씨도 나오고요!”
“오오오오.”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뜬금없는 신인에 대한 것은 사라진 후였다.
아낌없이 손뼉을 쳐서, 얼른 오프닝을 넘기겠다는 의지가 마구 샘솟았다.
카메라 옆의 총연출이 손을 크게 흔들었고,
“아시죠?”
MC둠칫이 과장된 몸짓으로 손뼉치는 시늉을 하며 퇴장했다.
사람들이 환호하며 그의 퇴장을 반겼다.
그리고,
객석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왁자지껄하던 관객석이 조용해졌다.
‘뭐야, 황지선이 먼저 나온다더니, 소개도 없이 바로 신인 무대인가?’
어두운 무대 위,
누군가가 걸어 나왔고,
전주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손뼉을 칠 타이밍도 잊은 채, 멍하니 그 전주를 듣고 있었다.
박재경도, 테일도, 강렬한 록 사운드를 바탕으로 한 신곡들이었고, 관객들은 밴드들의 열기를 느끼러 왔기 때문에 당황하기도 했다.
오늘 이 공개홀을 찾은 사람 중,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잔잔한 음악이었기 때문이었다.
관객의 분위기에,
미간을 좁히던 총연출이, 끊어야 하는지 고민하던 때,
무대 정중앙을 향해 스포트라이트가 비쳤다.
그리고,
나지막이, 당당한 짝사랑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야. 5분이라도 뺀 게 어디야.’
‘아니! 최소 8분은 줘야, 소개라도 하지! 노래만 하고 그냥 가라고?’
‘나 국장님한테 죽어라 깨졌다. 알지? 국장님 TOD 쪽인 거.’
‘후···. 그럼 내 오프닝멘트 줄이고, 바로 무대 들어가자.’
‘뭐? 그럼 분위기 개판 될 텐데? 분위기 싸해지면 어쩌려고? 신인이잖아. 방송 경험도 없는 사람이, 그런 분위기에서 제대로 서 있기나 하겠어?’
‘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고요.’
‘아무튼, 국장님도 보고 계시니까, 상황 안 좋으면 바로 끊는다?’
‘아! 몰라!’
무대 옆, 토크를 위해 마련된 ‘바 체어’에 앉아, 입술을 질끈 씹은 황지선이 무대를 바라봤다.
저런 냉랭한 반응 속에서, 자신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노래할 수 있을까?
그냥 오프닝멘트를 짧게 치더라도, 억지로 반응을 끌어냈어야 했나?
자신이 저 무대에 선 것도 아닌데, 자꾸만 어깨가 움츠러들며 심장이 쿵쾅댔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확보하려던 판단이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마이너스가 되다니···.
순전히, 본인의 책임이었다.
스포트라이트가 내려왔고, 제법 잘 꾸며진 그가 걸어 나왔다.
‘와, 동안은 동안이네.’
회사 스타일리스트 전원이 달라붙어 만들어낸 작품은, 확실히 성공적이기는 했다.
‘응?’
조명을 받은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것만 같아 보였다.
저 여유로운 미소를 바라보고 있으니, 아까부터 쿵쾅대던 심장이 점점 편안해졌다.
‘저게 무슨 마흔셋이야.’
방긋 웃는 그가,
관객을 향한 짝사랑을 보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당당한,
그래서,
거부할 수 없는,
자연재해 같은 짝사랑.
첫 소절이 시작되자마자,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아버렸다.
황지선의 심장이,
다른 의미로 두근대기 시작했다.
‘라이브가 제대로라더니···.’
녹음된 곡은 이미 몇 번이고 들었었다.
완벽한 편곡이었고, 거기 얹어진 목소리는 예술이었다.
그랬기에 기대하기는 했지만,
이건, ‘기대 이상’이란 표현으로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다음 공연을 위해 무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박재경과 테일의 멍한 표정이 보였다.
‘니들 이제 큰일 났다.’
황지선이 입꼬리를 올렸다.
***
갑작스러운 신인의 등장으로, 손뼉을 칠 타이밍을 놓친 경혜가 미간을 좁혔다.
이런 분위기라면 신인의 등장을 재촬영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얼른 박재경 보고 싶은데···.’
옆을 보니 친구의 표정도 비슷해 보였다.
마치, 경연대회의 심사위원이라도 된 양, 팔짱을 끼고 있는 관객들도 있었다.
밴드음악이 대세인데, 저 무슨 시대착오적인 MR이란 말인가.
전주가 흐르는 동안, 다들 음악이 끊길 거라 예상했다.
분명, 방송 경험이 전혀 없는, 신인이라고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제대로 노래할 신인이 어디 있겠는가.
아마, 중간에 끊길 테고, 당황한 신인이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잠시 가져야 할 테고, MC둠칫이 그 시간을 벌기 위해 다시 등장하겠지.
무대 위를 향하는 스포트라이트가 켜졌음에도, 사람들은 냉정한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곳곳에서 박수와 환호가 조금 나오기는 했지만, 이 차가운 온도를 덥히기에는 무리였다.
‘어? 마흔셋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이미 알고 있던 정보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 여유롭게 미소 짓고 있었다.
많이 쳐도, 서른 초반대로 보이는 얼굴, 이런 분위기에도 초연한 몸짓과 표정은, 사람들을 술렁이게 하기 충분했다.
그가 마이크를 입에 가져가자,
팔짱 끼고 있던 팔들이 풀어지며,
모두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은 반쯤 열린 채, 동그랗게 커진 눈은 깜빡일 틈도 없었다.
당당하고도,
뻔뻔한 일방적인 구애에,
사람들의 심장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