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54
54화. 넌 살려줄게
진혁의 무대가 시작되자, 관객석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관객들의 표정을 살피던 총연출이, 팔을 마구 흔들었다.
황지선이 시선을 맞추자, 그가 손가락을 쫙 펴서 위를 향해 마구 찔렀다.
그의 몸짓을 확인한 지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저 행동은, 멘트 할 시간을 5분 더 주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었다.
후에 편집될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어쨌든 ‘시간’은 벌었다.
방송국으로 출발하기 전, 계획했던 ‘난장’을 필 수 있는 시간.
‘무조건 시간이 늘어날 거예요. 그럼, 우리 재밌게 놀죠.’
방송을 몰라서 하는, 건방진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자신도 몇 가지 억지를 부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지선이 흐뭇한 표정으로 관객석을 둘러보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고, 지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쩌면, 시간을 더 벌 수도 있었다.
서둘러 총연출을 향해 손을 흔들어, 객석을 가리켰다.
관객석을 비추는 카메라 한 대가 움직여 그 방향을 비췄고, 모니터로 확인한 총연출이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적당한 때에, 멘트를 주고받아도 된다는 뜻이었고, 지선이 다시 그곳을 바라봤다.
‘와, 이런 우연이?’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걸친 채,
진혁의 무대를 바라보며 입을 쩍 벌린,
오랜 친구의 ‘빙구’같은 모습이었다.
지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멍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인이,
이런 냉랭한 분위기에서,
저런 여유로운 얼굴과,
한없이 맑은 목소리로,
심장을 마구 할퀴었기 때문이었다.
저 해맑고 당당한 구애를, 어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가.
모두가 망설이던 때,
반주가 끝났고,
“아니면 말고.”
그가, ‘마지막 기회’를 던졌다.
앞으로 잔뜩 쏠려 있던 몸들이 벌떡 일어나기 시작했다.
‘황지선의 캔버스’ 사상 처음으로, 신인을 소개하는 오프닝무대에서 기립박수가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
“와! 내가 살다 살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지금 제가 등장했다고, 환영의 기립박수?”
황지선이 손을 흔들며 등장했다.
“이번에 신곡을 발표한다는! 참, 제가 말하고도 이상하네요. 오늘 여러분은, 아직 발표도 되지 않은 신곡을, 전 세계에서 처음 듣게 되는 행운을 누리셨습니다.”
황지선이 진혁을 가리켰다.
“신인 가수 JH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JH 입니다!”
진혁이 방긋 웃었고,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신인을 반겼다.
첫 등장 때의 냉랭한 분위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원래는 한 곡 끝나면, 소개만 간단히 하고 보내야 하는데···.”
“노래 더해주세요!”
“한 곡 더!”
“두 곡 더!”
지선이 계산하고 늘어뜨린 말꼬리에, 관객들의 외침이 이어졌다.
“뭐, 그렇다는데요?”
황지선이 진혁을 바라보며 말하자, 그가 방긋 웃었다.
“오늘 밤새도록도 가능합니다.”
지선이 속으로 살짝 놀랐다.
목소리 톤까지 완벽했으며, 여유롭게 관객을 돌아보는 몸짓까지, 타고난 무대 체질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와. 그래도 되나요? PD님? 밤새는 건 무리더라도, 한 곡만 더?”
지선이 손을 뻗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 방향을 향했고, 총연출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 속으로는 욕을 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뭐, 허락이 없네요. 이 부분은 편집될 게 확실합니다.”
황지선이 고개를 젓자 사람들이 깔깔댔다.
“방금 그 곡이, 이번에 나올 신곡이죠?”
“아마, 지금쯤 음원으로 등록이 됐을 겁니다.”
“와, 진짜 따끈따끈하네요? 아 뜨거!”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아이고! 예의도 바르셔라.”
진혁이 깍듯하게 인사했고, 지선이 손사래를 쳤다.
“참 어떤 후배와는 다르게 예의가 참 바르네요. 너무 아쉽지만, 작별 인사를···. 어? 저기!”
황지선이 황급히 손으로 가리키자, 사람들의 시선이 움직였고, 관객석을 비추는 카메라가 한 부분을 클로즈업했다.
그곳에는 민망한 듯 살짝 얼굴을 가린, 누군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쓴 그의 얼굴이, 대형 스크린에 비치자, 사람들이 또다시 환호했다.
“오. 임도유 후배님 아니십니까?”
지선이 방긋 웃으며 말하자, 관객석에 대기하던 스텝이, 마이크를 들고 후다닥 달려갔다.
“와. 저도 깜짝 놀랐어요! 여러분 연출 아닙니다. 진짜로! 맞죠? 후배님?”
“어···. 몰래 보고 가려고 했는데···.”
“몰래 보고 가려고 했다기엔, 선글라스가 너무 튄다. 아마 선글라스 벗으면, 눈꼽도 있을 거 같은데? 머리까지 푸석한 거 보면···, 연출은 아니죠? 여러분?”
“““네!”””
관객들이 손뼉 치며, 임도유의 등장을 반겼다.
“오늘, 후배 밴드들 나온다고, 염탐 나오셨나요?”
“뭐···. 겸사겸사.”
사람들이 깔깔댔다.
“그럼, 오늘 가장 기대되는 후배는 박재경씨일까요? 테일씨일까요?”
황지선이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고, 질문의 의도를 파악한 임도유가,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말씀하시기 불편하신가 보다.”
“아뇨. 대답할게요.”
“네? 이미지 관리 안 하시나요? 아, 관리할 이미지가 없던가?”
누굴 선택하던 마이너스가 될 게 뻔했다. 분명 구설수가 돌 테고, 선택받지 못한 밴드의 팬들에게는 뭇매를 맞게 될 것이었다.
임도유가 작게 한숨 내쉰 뒤, 고개를 들었다.
“저 오늘 JH 보러 왔습니다.”
“네? 밴드들 보러 오신 게 아니고요?”
“급조해서 적당히 만든 애들 음악이야 뻔하죠. 뭐 들어 봐야 거기서 거기···.”
임도유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지만, 마이크가 꺼져버렸다.
아마 당황한 총연출이 스위치를 내려 버린 듯했다.
황지선이 황당한 표정으로 임도유를 바라보자, 그가 이빨을 보이며 씨익 웃었다.
‘와, 진짜 미친 새끼.’
관객석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관객석에 앉은 사람들 대부분은, 테일이나 박재경의 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메인 카메라 옆의 총연출은 이마에 땀이 날 정도로 팔을 흔들어, X자를 만들어 대고 있었다.
“어···. 이거 통편집이네요. 제 후배지만 정말로···. 어. 어차피 편집될 거니까. 정신 나간 거 맞죠?”
군데군데서 피식 웃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쟤 오늘 집에 어떻게 가려고 저러냐.”
분위기가 조금 풀어지는 것도 같았다.
“어···. 여러분. 살려는 주세요. 그래도 우리나라 록밴드의 기둥 아닙니까?”
황지선이 땀을 뻘뻘 흘리며, 농담을 던지자, 얼어붙었던 관객석이 확실히 녹기 시작했다.
임도유가 양손을 번쩍 들며 일어나, 뒤로 돌아 허리를 숙여 사죄의 표현을 하자, 그제야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나왔다.
초유의 사태가 조금 진정되는 것 같기는 했다.
“아. 아까 작별 인사를 하다가···.”
관객들을 살핀 지선이 진혁을 바라봤다.
“네. 저, 언제 가야 하나, 걱정 중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못난 후배 때문에···.”
“아, 그래도 저 보려고 오셨다는데···. 살려는 주세요. 여러분.”
새파란 후배가, 호랑이같은 대 선배를 재료 삼아 농담을 건네자,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제법?’
황지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 그래도 임도유씨가, JH 씨께는 대선배기는 하죠? 그런데, 직접 보러오시기까지 하셔서···. 한 곡으론 뭔가 아쉽다. 그렇죠? 여러분?”
“““네!”””
객석에서 바로 반응이 나왔다.
총연출이 팔로 만들어내는 X자를 가볍게 무시한 황지선이, 미소 지으며 진혁을 바라봤다.
“어때요? 뭐 더 보여주실 게 있으신가요?”
“어, 그래도 되나요?”
진혁이 능글맞게도 총연출을 바라봤다.
관객들이 고개를 돌렸고,
X자를 만들던 팔이 슬그머니 내려갔다.
“뭐, 허락은 못 받았는데, 하지 말라는 소리도 없으니···. 여러분, 노래 듣고 싶으시죠?”
황지선이 마치 지금에서야 총연출을 확인했다는 듯 능청을 떨자, 관객들이 환호했다.
“그럼, 오늘 이 무대를 빛내주실, 존경하는 선배님들의 곡을, 한 소절씩만 해봐도 될까요?”
“모창?”
“어···. 모창은 소질이 없고, 그냥 제 느낌대로?”
“어려울 텐데요?”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게 이렇게 흘러가네?’
황지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계획대로였다면 조금 억지스럽게 흘러갔을 수도 있었는데, 임도유의 등장이 뜬금없는 개연성을 챙겨줬다.
“먼저, 박재경 선배님의 1집 타이틀곡 ‘홀로 떠난.’을 불러보겠습니다.”
“반주 없이요?”
“네.”
“와. 저 자신감!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진혁이 입꼬리를 올리며, 마이크를 세웠다.
박수를 보내던 관객들이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자, 그의 나지막한 숨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박재경 1집의 타이틀곡인 ‘홀로 떠난.’은, 클라이맥스에 엄청난 고음이 존재하는 록발라드이며,
일명 ‘박재경만 제대로 부를 수 있는 곡’이었다.
시원하게 치고 올라가는 그 고음 영역은, 그만의 전매특허였다.
반주도 요구하지 않았고,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는 것을 보니,
분명, 초반부만 맛깔나게 부르고, 너스레를 떨 듯 보였다.
“후···.”
갑자기 내뱉은 한숨이, 순간 객석을 확 가라앉혔다.
그리고,
뜬금없는 클라이맥스가 터져 나왔다.
‘어?’
황지선의 눈이 동그래졌고,
‘한 키 높은데?’
온몸에서 소름이 올라왔다.
***
박재경의 팬들은, 재경의 나이가 한참 더 어림에도, 꼬박꼬박 선배 대접해주는, 나이 든 신인이 그리 밉지 않았다.
실제로 보니,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도 않았고, 방긋 웃는 그 표정은 너무나도 해맑았다.
멘트들도 꽤 감각이 있어 보였고, 뭣보다 공손한 태도가 좋았다.
그런 그가, 박재경의 노래를 부른다고 말하자,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뭐가 되었건, ‘존경하는 선배님’이라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박재경의 노래는, 어설프게 흉내 낼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가끔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적당히 부르다가 손사래를 치거나, 고음에서 ‘삑사리’를 내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미친 고음은 뭐지?
그것도, 의자에 앉은 채로 저렇게 편안하게?
귀가 예민한 몇몇은, 뭔가 음역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설마, 더 높게 불렀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고개를 젓고 말았다.
어쨌든,
지금 저 신인이 부른 한 소절은,
완벽하다 못해, 원곡 보다도 더 시원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의 입이 쩍 벌어졌고,
“어···. 기대에 미치지 못했나 봅니다. 격려의 박수는 나올 줄 알았는데···.”
신인이 머리를 긁적였다.
뒤늦게 정신 차린 관객들이, 또다시 벌떡 일어났다.
두 번째 기립박수.
오늘의 ‘캔버스’는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
무대 뒤에서, 신인의 모습을 훔쳐보던 두 선배는,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박재경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안정되게 부를 수 있는, 그 영역을 확실하게 넘어섰다는 것을···.
그것도, 의자에 앉아서.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테일 선배의 얼굴이 보였다.
그도 엄청나게 놀란 것 같았다.
그래도, 연륜이 있어서인지 조금 침착해 보이기는 했다.
“이제, 선배님 차례네요.”
“어···. 저기, 나 도망갈까?”
“그···. 저도 같이···.”
테일 선배가 목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목은 왜 풀지?’
“후···. 떨리네.”
‘응?’
박재경이 고개를 갸웃했고, 반주도 없건만, 무대를 꽉 채우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정말 고운 음색이었고, 부드럽게 울리는 한 소절 한 소절은, MR 따위는 필요도 없다는 듯, 완벽했다.
자신의 곡은 클라이맥스만을 불렀으면서, 테일 선배의 곡은, 첫 부분부터 시작했다.
재경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테일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 토닥거렸다.
“자연재해 알지?”
“네?”
“인간이 절대 이길 수 없는 거.”
“무슨···.”
“그냥 순응해야 하는 거야.”
“어···.”
“그러니까, 풀 죽지 말자.”
테일이 무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 이거 나한테 한 말이야.”
무선 마이크 충전기에, ‘ON’이 찍혀있는 마이크 하나를 손에 들고,
“난, 생명 연장하러 간다.”
테일이, 무대에 올랐다.
***
“만약, 계획대로 흘러가면, 제가 선배님들의 곡을 부를 수도 있는데요.”
“계획이요?”
“뭐, 황지선 선배님이 억지로라도 그렇게 만든다고 하긴 했는데···.”
“어···.”
“테일씨랑 같이 부르면 어떨까 싶어서요.”
방긋 웃는 그의 얼굴에 홀린 것도 같았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무반주로, 듀엣이라.
원래 그는, 계획에서 벗어난 무대는, 절대적으로 사양이었다.
대기실에 있는 내내, 그때 거절했었어야 했는지 계속해서 고민했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 자연재해는,
자신에게 기회를 준 것이었다.
그래도, 목숨은 건질 수 있는 기회.
만일, 저 신인 혼자 끝까지 불렀다면, 그 노래는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었을 테니까.
사람들의 뇌리에는,
저 ‘자연재해’의 ‘하얀 봄날’만이 맴돌게 될 것이었다.
자신의 최고 히트곡을, 그대로 빼앗길 뻔했다.
그나마, 함께 할 수 있으니, 자신의 목소리도 기억되기는 하겠지.
테일이 후렴구에 끼어들며, JH 와 눈을 맞췄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이크에서 입을 떼며, 스피커를 양보한 그가 방긋 웃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애절한 심정과는 달리,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노래를 이어받은 테일이었다.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이거 원래 제 노래예요.’
열심히 자신을 각인시켰다.
*
‘아···. 다 때려치울까?’
테일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메인 카메라 옆의 총연출이 풀썩 주저앉았다.
‘다행이다. 주식은 다시 사서···.’
이미 구겨져 엉망이 된, ‘촬영 동선’이 표시된 ‘대본’, 그리고, ‘공연 순서’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