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56
56화. 가정 방문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커뮤니티 포털.
이 공간에는 취미, 스타, 애완동물, 장난감 등, 조금이라도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면, 여지없이 ‘갤러리’가 만들어지곤 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새로운 글이 올라오는 개수가 많아질수록 순위가 매겨지는 구조였는데,
최근 가장 ‘핫’한 곳은 누가 뭐래도 록밴드들의 갤러리들이었다.
하지만, 부동의 탑을 차지 한 곳은 의외의 갤러리였는데,
그곳은 애완동물 갤러리도 될 수 없었던 ‘토끼’갤러리였다.
본래 ‘야생’과 ‘애완’이 따로 만들어졌었으나, 워낙 사람들의 관심이 저조하여 그냥 ‘토끼’로 통합될 수밖에 없었던, 최하위 갤러리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롭이어 토끼 귀 청소 어느 정도 주기로 하면 되나요?]- 조회수 15회. [갓끼님 응수동 영상 하나 더 떴음.]- 조회수 12890회.응수동 축제 이후 몰려든 사람들에 의해, 본래의 의미는 상실된 지 오래였다
[이거 앙고라 토끼 맞나요?]┗앙고라는 모르겠고, 털은 참 보송보송하네.
┗갤러리 잘못 찾아오신 듯.
┗여긴 그런 거 아는 사람들 사라진 지 오래임.
┗내가 지금 이전 게시물 확인해본 결과 그냥 토끼가 털 뻗친 거임. 확실함.
┗자꾸 보니까, 토끼 키우고 싶음. 개귀엽.
┗갓끼님 보고 싶다.
┗님. 앙고라토끼 맞음. 그리고, 나도 갓끼님 팬이기는 한데, 니들 좀 다른 갤러리 파서 꺼졌으면 좋겠음.
┗아. 여기 좋음. 사람들도 순하고 그럼.
┗욕도 없고, 사람들도 착하고, 우리 갓끼님 갤러리로 딱임!
┗우선 애완 토끼 갤러리 다시 팔 테니, 그쪽으로 넘어오셈.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짜로 토끼의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떠나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모두가 ‘응수동 동물 가면 밴드’의 팬들이었고, 그들을 다시 볼 수 없음에 가장 목말라 있는 사람들이었다.
더 이상 그들의 음악은 나오지 않았기에, 그들을 칭송하면서도 음악계의 새로운 이슈들을 주고받곤 했다.
‘갓끼’를 외치며, 다른 밴드와 음악인들에 대한 정보 교류가 가장 활발한 갤러리가 된 것이었다.
그런 갤러리에,
[이번 황지선의 캔버스 직관한 사람 있음?]이라는 제목의 글이 하나 떴다.
┗오, JH 얘기임?
┗나 직관했음. 그대로 지렸음.
┗박재경 울면서 노래 불렀다고 했음.
┗무대에서 주저앉았다던데?
┗위에 둘 다 구라임. 다리는 후들거렸음.
┗그럼 퍼진 소문이 대충 반은 사실이란 말임?
┗테일 무대가 역대급이었다던데?
┗그것도, JH가 끌어 준거임.
┗도대체 그 신인 뭐지? 여기저기서 언급되네?
┗이번 데뷔 노래 장난 아님.
┗아재 아님?
┗아재 아니라던데? 엄청 동안임.
┗노래부터 들어 보셈.
┗노래도 아재 감성 아님?
┗노노. 일단 들어 보셈. 나 요즘 그 노래에 푹 빠졌음.
┗님 아재 아님?
┗스무 살임.
┗인증 고고.
┗미쳤다고 여기다 인증함?
시시껄렁한 글로 시작한 JH에 대한 관심은, 그의 노래를 듣거나 다른 커뮤니티에서 퍼지는 소문을 읽은 사람들에 의해 폭발하기 시작했다.
[갓끼님에 버금가는 레전설급 신인임.]┗어디다 갖다 붙임?
┗갤러리 잘못 찾아온 거 아님?
┗완장 저놈 자르셈.
┗여기 완장 아직 원래 ‘토끼’완장임.
┗지랄하다가 우리부터 잘림.
┗근데, 노래 좋긴 하더라.
┗공개홀 갔던 사람들은 다들 찬양하던데?
┗나도 그런 글 몇 개 봤음.
┗난, 직접 봤음. 개 지림.
┗나도! JH는 레알 신이 내린 목소리임.
┗발라드계의 갓끼님임.
┗어디다 감히 아재를 갖다 붙임.
┗이단들 쫓아내자.
이 갤러리만큼은 ‘동물 가면 밴드’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했을 뿐이지, 실상은 다른 가수나 밴드들의 팬들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자신이 어떤 누군가의 팬이더라도, 이곳에서만큼은 감히 ‘토끼’와 비교하며 언급하는 일은 없었다.
이곳은 ‘동물 가면 밴드’의 성역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갓 데뷔한 신인을 ‘버금가는’이라는 말로 동급 취급하자, 안 그래도 ‘글 리젠’이 빠른 갤러리가 더욱 불타올랐다.
그렇게 ‘J.H’라는 알파벳은,
적개심이든, 팬심이든 간에 순식간에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록밴드 붐에 대항하는 발라드의 반란]지금 상황을 한 방에 정리하는, 게시물 제목이었다.
***
성산대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박재경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강에 연결된 하천 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와! 너 진짜 노래 잘한다.’
‘대박. 밴드 어때? 너랑 동갑내기 친구도 있어.’
‘고음 진짜 지린다. 천재야 천재.’
‘너 진짜 최고야!’
마스크에 가려진 그의 턱이 살짝 떨렸다.
‘야. 어차피 밴드로 데뷔해도, 결국에는 세션일 뿐이야. 금방 실력 좋은 사람들로 교체될걸? 너 혼자 가는 게 맞아.’
‘그래. 전에 선배들 보니까, 앨범 하나 겨우 내고 찢어지더라. 그때 가서 서로 돈 때문에 얼굴 붉히지 말고, 그냥 처음부터 솔로로 가.’
사실, 자신도 내심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도 같았다.
그랬기에, 끝까지 우기지 못하고 못 이기는 척 혼자서 계약했겠지.
어차피 자신이 노래를 잘해서 밴드가 뜨지 않았던가?
밴드 없이 MR로만 버스킹을 했을 때도, 사람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왜? 결국 내가 노래 잘해서 픽업 된 거 아냐? 그냥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자신은 장밋빛 미래로 잔뜩 들떠있는데, 부정적인 잔소리만 늘어놓는 친구에게, 해선 안 될 말을 해버렸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은 순간이었다.
1집을 녹음하는 과정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었다.
프로듀서 ‘리키’는 단 한 번도 ‘잘한다.’라는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그저, ‘다시’만을 반복할 뿐.
그리고, 자신이 낼 수 있는 고음의 영역을 제한했었다.
‘어쩔 수 없지. 아쉽지만 이렇게 가자.’
음원 발매일이 다급하지 않았다면 결코, 끝나지 않았을 녹음과정이었다.
왜?
이 정도면 엄청나게 잘한 거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젓던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거 봐. 당신이 미심쩍어하던 내 노래를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하잖아.’
1위를 했지만, 의례적인 축하 외에는, 그토록 원했던 칭찬을 듣지 못했었다.
그랬기에, 자신을 떠받드는 TOD의 그 프로듀서에게 끌렸던 것 같았다.
SJ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이사님은 너무나도 좋은 분이셨지만, 자신을 더 잘 알아주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계약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에, 상의도 하지 않고 그대로 소속사를 옮겨버렸었다.
예전 밴드 생활했을 때처럼, ‘잘한다.’만을 들으며 녹음하자, 다시 자존감이 올라갔었다.
이 고음의 영역은 자신만의 것이었다.
이번 앨범은 훨씬 더 높은 음을 냈고, 그 영역도 훨씬 넓어졌었다.
이렇게 잘 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날 억눌렀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날은,
보란 듯이,
성공적인 첫 무대를 선보여, 그의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알려 줬어야 했는데.
그랬는데···.
되찾았다고 생각했던 ‘자존감’은, 사실‘오만’이었던 걸 깨닫게 된 날이었다.
‘후···.’
잠시 멈춰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자, 어느새 익숙한 동네에 멈춰 있었다.
거리는 익숙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라진,
활기찬 사람들과 환한 빛이 가득한,
오래전, 즐겁게 음악을 했었던 ‘응수동’이었다.
그렇게 물끄러미, 번쩍거리는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응? 박재경? 너 여기 웬일이야?”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목소리였지만,
그래서 이 동네까지 온 것이지만,
직접 만나게 되면, 어떤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기에, 고개를 떨궜다.
“뭐야! 무슨 일이야?”
변함없는 친구의 목소리에, 갑자기 울컥하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열아홉 소년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감정들이 마구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몸은 다 큰 듯해도,
아직,
세상에 미숙한 아이일 뿐이었다.
*
“아···. 오프닝에서 ‘J.H’가 클라이맥스를···.”
기수가 침을 꼴깍 삼켰다. 아직 방송을 타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그 장면이 상상됐다.
“그···. 어···. 저기···.”
기수가 머리를 마구 헝클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펑펑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박재경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걸 말해도 될까?’
친구의 의문스러운 표정에, 기수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아···. 맞다. 그날 일, 사과부터 했어야···.”
친구의 사과에 기수가 고개를 저었다.
“야. 사과는 무슨···. 나도 그때 배 아파서 말을 막 하긴 했지.”
“응?”
“부럽기도 하고, 짜증도 나고···. 그래서, 안 좋은 말만 튀어나오더라. 그날 일 미안했다.”
“아니야. 나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됐어.”
“후···.”
기수가, 이제는 대 스타가 되어 버린 친구를 가만히 바라봤다.
아직 미숙한 아이들이었기에,
사과 한마디로 훨훨 날아가 버릴 만큼,
순간순간 자신을 괴롭혔던 ‘응어리’라는 감정은, 너무나도 가벼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전화할걸.’
둘은 동시에 같은 말을 떠올렸다.
이렇게 직접 보니, 함께 음악을 하던 때와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피식하고 서로 웃어줬다.
“그···. 내가 요즘 유투부 편집 일을 하나 하고 있는데···.”
“응?”
“비밀 꼭 지킬 수 있어?”
“뭔데 그래?”
기수가 또다시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에라 모르겠다. 잘리면 잘리는 거고.”
이맘때 아이들은, 이것저것 계산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무엇보다 친구가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벌떡 일어나더니,
“따라와. 같이 가자.”
“어딜?”
“내 직장.”
재경의 소매를 끌고, 기수가 걷기 시작했다.
***
경혜는 한국의 교육과정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아니, 사실 지금도 고민 중이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세계에 내놨을 때, 그렇게까지 부끄러운 성적은 아니었다.
기본적인 의무 교육이 탄탄했기에 문맹률도 낮았다.
다만, ‘주입식 교육’이라는 오명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고, ‘창의력’에서도 그리 높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성장과 꿈’보다는 ‘좋은 대학 입학’에 목적이 있었고, 그 결과로 ‘교육’적 성공을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인성’이 만들어져야 하는 시기에,
남과 비교당하며, 시기, 질투, 겪지 않아도 될 좌절, 무한 경쟁으로 인한 탈진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먼저 배울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도 교육자시고, 자신도 그런 부모님을 존경해 이 길을 선택했지만, 아직도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현 교육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는 그 누구도 명확하게 답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자신 역시도, 알게 모르게 아이들의 성적을 우선시하고 있지 않았던가.
언제나, 스승과 교원 사이에서 갈등하던 경혜에게 있어서, 오늘의 가정 방문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조은서.
이 아이에게 가지게 된 감정은, 그 자체로 모순덩어리였다.
사회가 인정하는 기준으로 봤을 때, 그 아이의 성적과 인성 정도면 최상위에 속했다.
교육적 시스템의 가장 좋은 예시였다.
반면에, 아이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다른 걸 배우기 위해, ‘사회에서 인정하는 교육’을 벗어나려고 하는 중이었다.
‘교원’으로서는 무조건 학교에 다니도록 해야 했고,
‘스승’으로서는 아이의 꿈을 이해하며, 응원해 줘야 했다.
단, ‘스승’으로서의 행동에 있어서는 전제가 붙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아이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인가?
그랬기에, 경혜는 아이의 부모를 만나야만 했다.
언덕 아래 주차하고 걸어가는 동안, 머릿속에 들어있던 부정적인 짐작을 먼저 걷어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대화를 나누며,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리라.
절대, 환경으로 인한 편견을 갖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도 앱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어?”
이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저택’이 눈앞에 나타났다.
“주소는 맞는데···.”
대문 옆 기둥에, 누군가 낙서처럼 적어놓은 알파벳이 보였다.
J.J.H
J.E.S
H.S.H
A.S.J X 2
다른 글자는 잘 모르겠지만, 두 번째만큼은 은서의 이니셜로 짐작되었다.
순간, 은서 아버지의 이름이 떠올랐다.
‘조진혁?’
첫 번째 이니셜과 일치했다.
초인종을 눌렀고,
-네! 선생님! 얼른 나갈게요!
은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경혜는 침을 꼴깍 삼켰다.
대문이 열렸고,
“선생님! 거기 계단 조심하세요.”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한 단씩 오르자 잘 정돈된 마당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롤스로이스?’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차의 트렁크에 앉아있던 초등학생 아이가 폴짝 뛰어내렸다.
“안녕하세요.”
깍듯하게 인사한 아이가 자연스럽게 운전석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잠시만요. 아빠 손님이 갑자기 오셔서···.”
은서의 말에,
정원 구석 야외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 얘기 중이시라···.”
등을 보이고 앉은 누군가가 보였고,
그 앞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하던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분명히 아는 얼굴이었다.
‘박재경?’
며칠 전, 객석에서 바라봤던 얼굴이 확실했다.
비록 갈아타기는 했지만, 자신이 너무나도 좋아했던 가수였다.
“아빠! 선생님 오셨어!”
등을 보이고 있던 남자가 일어났다.
그리고,
방긋 웃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서둘러 대문 옆 기둥의 첫 번째 이니셜을 떠올렸다.
‘J···.J.H?’
그녀의 다리 힘이 풀려버렸고,
‘꿈인가?’
풀썩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