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58
58화. 미친 천재
경기도에서 주짓수 도복 사업을 하는, 작은 업체의 대표 박영식은, 지금 눈앞에 뵈는 것이 없었다.
분명, 오후에 잭팟을 터뜨렸고, 400만 원이 넘는 돈을 벌었었다.
물론, 그 이전에 600만 원을 들고 왔었으니, 본전을 찾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치 크게 ‘딴’것이나 다름없는 기분이었다.
슬롯머신이란 그랬다.
5만 원씩 꼬박꼬박 열 번을 배팅하고, 30만 원이 뜨면, 엄청나게 신나 했다.
실제로는 잃은 것인데도···.
그렇게, 몇 시간이면 수백만 원이 사라지곤 했다.
분명, 400만 원이나 땄었는데,
지금은, 빈털터리가 되어 멍하니 거리를 걷고 있는 그의 모습은, 이곳에서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보통, 그들의 발길은 같은 곳으로 움직이곤 했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 회색 도시의 가장 암울한,
전당포 거리로 향했다.
그가, 결혼할 때 장인어른에게 선물 받았던,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렸다.
결혼반지는 이미 저곳에 맡긴지 오래였다.
‘한 번만 뜨면 돼.’
오늘 유난히 터지지 않은 자리 몇 곳을 봐뒀고, 어쩌면 밤사이에 슈퍼 잭팟이 터질 수도 있었다.
슬롯머신들 위 전광판에 번쩍이던, 지금까지 쌓인 상금이 떠올랐다.
무려, 24억이나 쌓여있었다.
반년이 넘도록 터지지 않았으니, 조만간 터질 것이고,
그 주인공은 자신이 될 것이었다.
초췌한 그의 눈빛이 번득였다.
그렇게, 전당포 거리로 진입하는데,
둥둥.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왔다.
분명, 전당포에서 값이 매겨질 이 시계의 가치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는데,
바삐 걷던 발이 멈춰버렸다.
고개를 돌리자 전당포 거리 초입에 있는 오픈된 상가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상가는 아니었다.
텅텅 비어있는 건물 안에서, 드럼과 베이스를 연주하는 밴드가 보였다.
그리고, 번뜩이는 눈빛이 흐려지더니, 곧 멍하게 풀려버렸다.
‘아···.’
지금 자신이 늪에 빠진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너무나도 찐득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발을 묶어두고 있음이 느껴졌다.
한없이 바닥으로 내리꽂는 아찔한 삶이 눈앞에 펼쳐졌다.
손에 들린 손목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남자가 응? 시계 하나는 좋은 걸 차야 하는 거야.’
본인은, 싸구려 전자시계를 차고 있었으면서···.
문득 떠오른 장인어른의 검소한 차림새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전당포 거리를 등지고 돌아서자, 무릎까지 차올랐던 끈적한 늪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얼른 버스정류장을 향해 달려갔다.
앞으로는,
이쪽을 향해 소변도 보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방금 들었던 그 음악이 준 느낌은,
너무나도 절망적이었고,
너무나도 무서웠다.
한참을 달리다 고개를 들어 산등선을 바라보자, 거대한 마굴이 손짓하는 듯 보였다.
고개를 젓고,
이를 악물었다.
다시는 도박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서둘러 의정부행 버스표를 끊었고, 그 ‘둥둥’거리는 공포의 소리를 되새겼다.
몇 달 만에 빠져버린 도박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박영식이, 그 절망의 늪에서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
“음···. 반타작인가?”
“그러게.”
방금 전당포 거리로 들어가려는 중년인 하나를, 늪에서 건져낸 장하와 충기가 고개를 저었다.
둘은 뭔가 불만족스러운 얼굴이었지만, 첫날에 비하면 꽤 준수한 성적이었다.
첫날에는 서른 명에게 시도해서, 단 다섯 명밖에는 건져내지 못했었으니까.
이 감정을 증폭시킬 가사도 있었으면 좋겠고, 멜로디를 더해 마음을 동요시키고도 싶었다.
하지만,
두 ‘박자 쟁이’에게는 조금 어려운 것들이었다.
괜히 어설프게 시도했다가는, 기껏 잡은 이 감정이 흩어질 수도 있었다.
“뭐, 조금씩 더 늘겠지.”
“그래. 반타작이 어디냐.”
“야. 또 온다.”
눈빛을 번뜩이는 누군가가 골목으로 접근했고, 장하는 서둘러 베이스를 들었다.
***
“공 선생님!”
“으이.”
“이건 방향을 이쪽으로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마스터 볼륨이랑 섞이지. 좀 더 위로 올리면 괜찮겠네.”
“아. 그렇겠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KSB 방송국.
새로 제작되고 있는 ‘밴드 전용 무대’ 주위로, 스탭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무대를 바라보는 정 가운데엔 푹신한 소파가 있었고, 그 소파에는 일명 ‘응수동 전파사 할아버지.’인 공문현 할아버지가 팔짱을 끼고 앉아있었다.
음악감독인 추본철이 소파를 향해 달려왔다.
“선생님. 회전 무대 반대쪽 스피커가 세팅이 끝났는데, 한 번 봐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 빠르네. 가보지.”
공 할아버지가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났고, 그 옆을 추본철이 공손하게 따랐다.
KSB 방송국 대표 음악 방송인 ‘뮤직 스테이션’은 회전 무대를 설치하기로 결정을 내렸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는데,
방송으로 송출되는 음향은 그렇다 쳐도, 관객석으로 울리는 소리를 잡는 것에 상당한 애를 먹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촬영팀 막내의 할아버지를 모셔 왔고, 평생을 ‘소리’와 함께해온 추본철이 진정한 소리의 ‘고수’를 만난 순간이었다.
언젠가부터, 컴퓨터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고, 그 정확한 수치를 바탕으로 계산된 결과물을 믿을 수밖에는 없었다.
사람이 컴퓨터의 계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공 선생님’의 등장으로, 그 당연했던 상식은 무참히 깨져 버렸다.
직접 소리를 듣고, 직접 본인의 손으로 스피커를 움직여 만들어낸 음향은, 절대 컴퓨터의 계산으로는 나오지 않을 결과를 들려줬다.
장창 총연출은 서둘러 ‘공 선생님’을 특별 음향 고문으로 계약했고, 이는 KSB 방송국을 통틀어서 정말로 이례적인 대우였다.
“음, 저 위에 저거, 각도를 요렇게 좀 틀어서 올리고······.”
‘공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더해질 때마다 추본철이 스탭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스피커의 위치가 제자리를 찾자, 공 할아버지가 방긋 웃었다.
“그려. 이래 해야지 천장에 닿은 소리가 안 깨지고 쫙 퍼지는 거여.”
“감사합니다. 선생님.”
추본철 음악감독은, 존경하는 눈빛으로 ‘응수동 전파사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공 선생님’의 주먹구구식 세팅은,
컴퓨터의 가상 시뮬레이션으로는 절대 나오지 않을 방법들이었다.
“아. 선생님. 내일 ‘뮤직 스테이션’ 공개 방송이 있는 날인데, 무대 몇 개 지휘해보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제가 연출자한테 말해서 자리를 만들어 드릴까요?”
“그래도 돼?”
“무대도 고정이라 큰 어려움은 없으실 겁니다. 그··· MR 트는 것과··· 전체적인 사운드 컨트롤도 경험 삼아서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나야 좋지.”
이제, 이 무대 공사가 마무리된다면, 공 선생님의 지휘가 필요할 것이었다.
그때 의사소통이 원활 하려면, 직접 생방송을 경험해보는 것이 필요했다.
현재 파악된 공 선생님의 실력이라면, 무대 몇 개 정도는 손쉽게 지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총연출한테 얘기해 놓겠습니다.”
“으이.”
전파사, 공 할아버지가 다시 소파에 파묻혀 팔짱을 꼈다.
78세에,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 공씨 할아버지였다.
***
“요즘 바쁜가 보다?”
“뭐···.”
“앨범 들어갔냐? 목소리가···.”
“뭐···.”
“어, 뭐지? 이 찜찜한 대답은?”
테일이 진훈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분명히 뭔가 숨기는 것이 있었다.
심심하면 찾아오던 발걸음이 뜸해진 건 바빠져서 그랬다고 쳐도, 오랜만의 솔로 앨범일 텐데도 들떠서 자랑하질 않았다.
“리키 형이 많이 갈구냐?”
“···.”
진훈의 턱이 살짝 떨려왔다.
“야. 우냐? 와···. 진짜 그렇게 살벌해?”
“···.”
많이 이상했다.
분명 ‘리키 이 악마 새끼.’ 이러면서 한바탕 욕을 시전 해야 할 타이밍인데, 입을 꾹 닫고 저리 침울한 얼굴이라니.
“나, 갈게···.”
“야.”
“오늘도··· 녹음···이야.”
“그래···. 힘내라···.”
칠흑같이 어두운 기운이 마구 뿜어져 나오자, 더는 붙잡을 수가 없었다.
‘리키’가 녹음에 돌입했을 때의 악명은,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전에 테일도 한 번 경험해보지 않았던가?
그 지옥 같았던 녹음과정이 떠오르자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진훈은 워낙 성격 좋기로 유명한 친구였다. 아무리 밟히고 줘 뜯겨도, 절대로 멘탈만큼은 유지하는 놈이었다.
그런 친구가 저렇게 무너지다니.
테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 진훈의 노래가 대박일 가능성이 커졌다.
저리 애를 잡다니,
얼마나 완벽한 앨범을 만들겠다고···.
앨범은 대박 나겠지만,
친구는 망가지게 생겼다.
“내 코가 석 자지.”
테일도 외투를 챙겨 들었다.
새로운 경지에 눈을 뜨자, 이전의 앨범들이 성에 차지 않았고, 소속사에 얘기해서 몇몇 곡들을 리마스터링하기로 했다.
요즘, 음악에 대해 새로운 감정을 배우는 중이었다.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고 여겼는데, 그 위에는 하늘이 있었고, 그 위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가 펼쳐졌다.
다시 신인이 된 듯한 기분에, 설레는 나날들을 맞이한 테일이었다.
***
진혁은, 이번 박재경과의 만남으로 새로운 재미를 찾았다.
재밌는 것은 질릴 때까지 해봐야 했다.
“방금 그건 좀 괜찮았는데···. 맹목적인 느낌이 약하네. 그게···. 안 되나?”
-다시 해보겠습니다.
“아냐. 무작정 다시 해본다고 되는 거면, 집에 안 보냈겠지. 거기 앉아서, 눈 감고 떠올려. 세상에서 절대로 떼어낼 수 없는 사랑을.”
-네···.
녹음실 안의 추지훈이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렇게 집중한다고 밖에서 방긋 웃고 있는 ‘괴물’이 말한 감정이 떠오를 리 없었다.
이미 너무나도 지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노래를 할 수 있고, 앨범까지 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에 들떴던 것도 잠시.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래’에게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
진훈이 터덜터덜 로비를 걸었다.
오늘은 또 얼마나 깨지게 될 것인가.
“어? 진훈씨!”
“아···. 팀장님···.”
홍보팀장 유지은이 측은한 눈빛을 보냈다.
“그···. 아직 추지훈씨 녹음 중이래요.”
“아··· 아직도요?”
“그러니까, 잠깐 어디 짱박혔다가 가요.”
“후···.”
“이게 뭔 난리야.”
“그러게요.”
유지은이 들고 있는 홍보팀 자료를 힐끗 바라본 진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명, J.H 프로젝트.
원래 진혁이 녹음했던 세 곡을, 같은 이니셜을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나눠 부른다는, 뭔가 획기적인 프로젝트였다.
그 엄청난 천재와 함께 작업하게 된다니,
추지훈과 진훈은 엄청나게 설렜었다.
녹음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 ‘악마 새끼’ 리키조차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철저함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방긋 웃으며,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폐부를 찔러댔다.
뭐라 대꾸할 수도 없었던 것은, 그가 이미 녹음을 마쳤던 곡이 워낙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의 시도로 끝낸 그 곡들은, 자신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아득한 경지였고,
이 ‘미친 천재’는 그 이상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었다.
“미친···.”
“천재 새끼···. 맞죠?”
“어···. 새끼는 빼고···.”
유지은이 입술을 질끈 물고 진훈을 토닥거렸다.
“아주 얼굴이 반쪽이 됐네···.”
“몸무게는 그대로입니다.”
“아···.”
차라리, 쓰러지고 싶은데···.
그는, 체력 관리도 철저했다.
리키처럼 밤을 새우지도 않았고, 끼니도 그때그때 챙겨 먹였다.
운동 시간을 정해 함께 운동했고, 수면 시간도 체크했다.
절대, 체력이 달려 쓰러지게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역력했다.
그랬기에 녹음 땐, 망설임 하나 없이 극한까지 몰아붙였다.
리키보다 더한 ‘악마’였다.
***
추지훈이 눈을 감고, 감정을 떠올리려 노력하고 있을 때, 진혁은 지금까지의 과정을 떠올렸다.
먼저 ‘추지훈’은 상당한 실력자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다만, 오랜 시간 남을 가르치는 일을 해와서인지, 자신의 음악적 범위가 많이 좁아져 있었다.
이전의 실패가 두려움으로 남아,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내뿜는 것을 억누르는 듯했다.
일단은, 곡을 완벽히 소화 시키고 나면, 그 감정을 마음껏 깨워줄 예정이었다.
전 아이돌 리더 ‘진훈’은 성격이 참 좋았다.
그게 가장 큰 마이너스였다.
성격이 좋았기에, 욕심이 없었다.
그의 주변에는 굉장한 가수들이 많았고, 자신의 위치를 이미 정해버린 듯했다.
적당히 잘 부르는 정도로도 ‘연예인’이라는 위치는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목소리도 참 좋았고, 오랜 기간 톱스타의 자리에 있었던 만큼 여유도 넘쳤다.
첫 녹음에서도, ‘적당히’ 잘 불렀다.
진혁의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적당함’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는, 노래에 미련이 없었다.
어차피 당시의 ‘아이돌’은 가창력을 우선시하지 않았었고, 그랬기에 ‘아이돌’치고는 잘 부른다는 평가 정도면 됐었다.
어디까지나, 그때는 그랬었다.
하지만, 진혁이 함께 하기로 한 이상 ‘적당히’는 어림도 없었다.
어디서 ‘J.H’라는 이름을 가진 가수를 당장 데려올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진혁은 그가 마음에 들었다.
이번 작업으로, ‘테일’에 버금가는 ‘가수’로 만들 생각이었다.
혼자보단 둘이, 둘보단 셋이 함께하면 더 재밌는 법이니까.
“안녕하세요. 저··· 왔습니다.”
“어. 왔어?”
진혁이 방긋 웃었다.
진훈은 그 해맑은 미소에 몸서리를 쳤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리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보다 더한 인간이 있었을 줄이야.
아마도, ‘악마 새끼’타이틀은 저 신인에게로 넘어갈 듯했다.
***
금요일 밤 열 한시.
‘황지선의 캔버스’가 방영될 시간.
소문만 무성했던 ‘J.H’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한 사람들이, TV 앞, 또는 핸드폰으로 실시간 스트리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까만 화면, 전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며,
그의 목소리가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