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59
59화. JH트리오
황지선의 캔버스.
국내 유일의 심야 음악 전문 토크쇼.
심야 시간임에도 꽤 높은 시청률을 유지했고, 매주 최정상의 가수들이 메인을 장식했기에 이 프로그램의 오프닝은 ‘실력’ 있는 신인들의 등용문이기도 했다.
그만큼, 신인에게는 이 프로그램에 섭외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실력에 대한 검증은 끝났다고 봐도 좋았다.
한때, 비틀즈 ‘I Will’의 커버영상으로 화제가 되었던, J.H의 출연은 사실 그리 뜬금없지는 않았다. 그는 ‘실력’이 있는 측에 속했으니까.
다만, 신인치고는 나이가 많았고,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배경은, 대중들의 관심을 주춤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까지나,
‘나이’란 사람들에게 있어서 큰 편견을 갖게 만드는 법이었으니까.
잘 나가는 컨텐츠, 주인공들의 평균 나이가 28.9세라는 것만 보더라도 대중이 선호하는 나이대는 정해져 있었다.
어떤 웹툰이나, 드라마, 또는 웹소설에서, 망할 것이 뻔한데, 그 누가 마흔셋의 주인공을 넣겠는가.
이는 굉장히 실험적인 몇몇 작품에서나 시도할 법한 나이였다.
심지어, 외모가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수’라는 영역에서, 마흔셋 신인이라니.
대중들은 그 커버 영상은 인정했으면서도, 대중적인 ‘가수’로서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오늘 방송되는 ‘캔버스’의 오프닝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관심을 끌지 못했어야 옳았다.
그런데, 오프닝이 시작되기 직전 집계된 동시 시청률이 솟구쳤다.
이는, 그날 녹화 현장에 모였던 관객들의 소셜파워를 여실히 드러낸 수치였다.
그들은, 본방송 며칠 전부터 생생한 현장을 전달했고,
무려, 그들의 정체가 박재경과 테일의 팬들이었기에 그 입김은 더 강하게 작용했다.
그날, 양쪽 팬클럽의 회장들이 둘 다 그 관객석에 있었고,
신인의 무대를 본 이후,
동시에 각각 회장 직함을 내려놓은 사건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집중시켰었다.
며칠 후, 공식 팬클럽 카페가 지정되었는데, 그들이 J.H 카페의 회장과 부회장으로 나란히 등장하자, 사람들은 경악했었다.
‘덕질’의 세계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사건 5위에, 타이틀을 올릴 정도였다.
뭐, 아직도 [올해의 충격적인 사건] 부동의 1위는 ‘Box-43’과 ‘종탁’의 콜라보였지만.
돌아다니는 ‘찌라시’ 같은 소문들도 관심을 끌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직관’했다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느낌에 불과했다.
하지만, ‘덕질’의 최선봉에 선 두 인물이, 같은 가수를 지지하는 팬클럽에서 손을 잡았고, 이는 그간 퍼졌던 소문의 신빙성에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
그렇게 궁금해진 사람들은, 전주가 흘러나오는 까만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포트라이트가 중앙에 비쳤다.
그 베일에 싸인 신인이 미소 지으며 등장했고,
그 감미로운 목소리는 그대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마흔셋 맞아?’
모두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떴다.
그들이 상상했던 외모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남자가, 세대를 아우르는 당당한 짝사랑을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맑은 미소는 너무나도 파릇했고, 여유로운 몸짓은 신인답지 않은 편안함을 주었다.
화면 속, 그에게서는 더 이상 ‘나이’가 보이지 않았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울리는, 거절할 수 없는 짝사랑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니면 말고.
전국이 들썩였다.
***
-팬클럽 명 제보받습니다. : 언니! 신곡 빼고 다 잘렸어!
-J.H 회장 : 그럴 거 같더라. 워낙 충격적이었으니까. 그래도, 반응 장난 아닌데?
-팬클럽 명 제보받습니다. : 너무 몰려서 카페 가입 승인 창이 안 열려.
-J.H 회장 : 내일 뮤직 스테이션 뜬다더라.
-팬클럽 명 제보받습니다. : 뭐? 진짜?
-J.H 회장 : SJ 홍보팀에서 문자 왔음.
-팬클럽 명 제보받습니다. : 오. 어떻게 급한 대로 풍선이라도 만들어?
-J.H 회장 : 회사에서 야광봉 지급한대.
-팬클럽 명 제보받습니다. : 와, 제대로 밀어줄 건가 보네. 아무튼, 공지 띄웁니다.
-J.H 회장 : 응. 내일 보자.
-팬클럽 명 제보받습니다. : 넵!
모니터 까톡 창을 바라보던 해원이 입꼬리를 올렸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능력 있는 아랫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다.
그것도, 무려 박재경 팬클럽의 전 회장이라니.
큰 의사소통 없이도, 그녀들끼리는 뭘 먼저 해야 하는지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급하게 만들어진 팬클럽이었지만, 꽤 체계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간 쌓인 ‘덕력 만랩’들이 뭉쳤기 때문이었다.
해원은 그간 자신이 응원해왔던 가수들을 떠올렸다.
지금껏, 이렇게 망설일 새도 없이 단번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던가?
몇몇 가수를 거쳐오며, 실망한 일도 많았고,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채 은퇴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덕질’의 대상을 고를 때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르고 골랐던,
그나마 가장 오래 정착했던 곳이 ‘테사랑’이었고, 그간의 덕력으로 당당히 회장 자리까지 꿰차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J.H를 띄워야 했고, 그의 노래를 더 많은 사람이 듣고 싶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야, 그가 더 빨리 무대에 올라 줄 테니까.
그 환상적인 공연을 얼른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해는 하는데, 좀 서운하다.
며칠 전까지 그녀에게 있어서 ‘태양’과도 같았던, 테일이 직접 보내온 문자가 떠올랐다.
‘서운’보다는 ‘이해’에 더 집중했다.
그 발라드의 왕자 ‘테일’도 ‘이해’할 정도로 인정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이 생애 ‘덕질’의 종착역을 찾은 것일지도 몰랐다.
해원의 눈이 모니터를 향했다.
영상 클립을 따고, 움짤도 몇 개 만들고, 저 해맑은 미소를 모아 시그니처 이모티콘도 제작해야 했다.
내일은 ‘오프’였기에, 밤새버릴 작정이었다.
하필이면 이번 주가 ‘토요일 오프’라 기분이 좋지 않았었는데, 때마침 J.H가 뮤직 스테이션에 뜬다니···.
토요일마다 매번 면회를 오는, 그의 목소리도 너무 좋았지만, 그 엄청난 J.H의 무대와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해원이 캔 커피를 따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그렇고, 진짜 닮긴 닮았단 말이야.’
그녀가 마우스를 움직여 그의 얼굴을 캡쳐하기 시작했다.
***
대형병원 간호사라는 직업은 상당한 중노동에 속했다.
들어가기도 어려웠지만, 첫 출근부터 엄청난 부담감과 압박에 시달리곤 했다.
쉴 새 없이 환자들과 보호자에게 시달리며, 갖은 수모와 고생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들을 하나씩 모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했다.
연차가 높은 간호사들의 성격이 조금 모나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했다.
가장 밑바닥에서 온갖 수모란 수모는 다 겪다 보니, 환자들에게는 보이지 못한 억눌린 감정은, 훗날 신규 간호사가 들어왔을 때, 소위 ‘태움’으로 표출되곤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힘든 곳은, ‘응급 의학과’와 ‘중환자실’을 꼽을 수 있었는데, 이곳은 종일 뛰어다녀야만 했고, 앉을 시간조차 없었다.
특성상, ‘죽음’을 가장 많이 겪는 공간이기도 했다.
가득 찬, 부정의 감정과 절망들.
정신이 피폐해지기 가장 좋은 곳이었다.
다만, 이곳 한국병원 중환자실의 간호사들은, 최근 들어서 왠지 모르게 밝고 활기차 보였는데, 그 이유는 바로 토요일마다 면회를 오는 한 남자 때문이었다.
3년간 단 한주도 빠짐없이 면회를 챙겼던 그는, 최근 들어 표정과 행동도 그렇고 말투까지도 많이 바뀌어있었다.
뭣보다,
그가 집중 치료실에 들어가 작게 부르는 노랫소리는 너무나도 밝고 희망차서, 그 공간 가득했던 절망적인 감정들을 싹 씻어내곤 했다.
중환자실은 극과 극의 감정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교차 되곤 했는데, 바로 ‘회생’과 ‘죽음’이었다.
‘정신병자 되기 딱 좋은 직업이야.’
가장 오래 버텼던 수간호사가 퇴사 마지막에 후배들에게 해 줬던 말이었다.
매일같이 회생에 대한 희망과 생명의 끝을 전했다.
그렇게, 무너져가는 그녀들이었다.
다만,
토요일만은 달랐다.
그가 노래를 부르고 난 후, 중환자실은 ‘회생’이라는 감정을 품고, 가장 바빠지고는 했다.
중증 환자들은 별 차도가 보이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였던 사람들은 여지없이 병세가 호전되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었다.
어느 때부터, 간호사들은 그를 ‘기적의 남자’로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 그의 노래와 환자들의 병세를 엮기에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어서, 그저 우연이 겹치는 것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우연이라 해도 그가 방문한 날의 긍정적인 공기는, 지치고 지친 그녀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달콤한 감정이었다.
간호사들은 주말에 ‘오프’가 걸리는 것을 고대하곤 했었다. 그래야만 ‘일반적인’ 사람들과 ‘주말의 일상’을 공유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이 한국병원 중환자실에서만큼은 –그 희망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토요일 ‘오프’는 최악의 근무표가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만큼, 그가 방문하는 토요일은 너무나도 기다려졌다.
가장 ‘태움’이 심했던 곳에서,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라지자 간호사들의 얼굴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요 몇 달간, 한국 4대 대형병원 중 가장 근무하기 편한 ‘중환자실’이 된 것이었다.
“오늘은 노래를 좀 오래 하네요?”
“그러게. 근데 이 노래···.”
“어? 그 노랜가? 해원샘이 말하던.”
“와. 맞지? 이번에 나왔다는 J.H라는 가수 노래?”
“네. 맞는 거 같아요. 좀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간호사들이 집중 치료실 근처에 모여서 귀를 기울였다.
반주 하나 없어도, 저 작은 목소리는 이 공간을 꽉 채우곤 했다.
“어제 황지선의 캔버스에 나왔다던데?”
“그 왜···. 정 샘이 극찬했잖아요. 대박이라고 하면서···.”
“아. 해원이 걔 테일 팬클럽도 그만뒀다면서?”
“그렇다니까요? 이제는 J.H 팬클럽 회장님이랍니다.”
“하여튼 걔도 열심이다.”
“어? 노래 끝났나 봐요.”
“얼른 준비하자.”
간호사들이 환자들의 차트를 살피며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집중 치료실을 나서면, 분명 차도를 보이는 환자들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담당 간호사와 인사한 후 중환자실을 떠났고,
“여기 얼른 담당 선생님 호출하세요!”
“이 환자분도 바이탈 올라가요!”
“선생님! 이분 염증 수치 좀 재확인해 주세요!”
여지없이, 상태가 좋아진 환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희망의 감정이 이곳저곳에서 피어났다.
***
“선배님 안녕하세요!”
“어. 왔어? 이번에 니들 음원 점수 잘 나왔더라?”
“감사합니다.”
“이번 주는 니들이 1위 먹겠네.”
“그···, 오늘 차일드 애플 선배님들이 나오신다고···.”
“아···. 어쩐지, 녹색 풍선들이 보이더라니···.”
대기실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아이돌계의 거대한 벽.
리허설 때 비어있는 차례가 있었는데, 아마도 그들의 순서였던 것 같았다.
빌보드 1위까지 했으면서, 해외 투어나 하지 뭐 하러 국내 방송까지 나와서···.
‘AXIS’의 리더 민결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 라이브로 방송되는 뮤직 스테이션은, 한 주간의 음원 재생수와 당일 시청자 전화투표로 순위가 결정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보통 15팀에서 20팀이 나왔고, 매주 그날 무대에 서는 팀들끼리만 경쟁했었다.
어중간한 B급 아이돌이 절반이었고, 나머지 절반의 반은 신인들이었다.
많은 팀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상위 5팀 정도가 1위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곤 했었다.
신곡이 나오면 사이좋게 그들끼리 나눠 먹곤 했던 1위 자리였는데, 갑자기 거물이 등장한 것이다.
K-POP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그 차일드 애플이 하필이면 이번 주에 출연하다니.
민결이 대기실을 둘러봤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 있는 아이돌들의 모든 점수를 합쳐야 겨우 비빌 수준일 듯했다.
“아. 선배님. 그 아저씨도 나온다던데요?”
“응?”
“그, SJ엔터에서 밀어준다던···.”
“아. J.H?”
리허설에서 잠깐 보긴 했었다.
소리 체크와 동선만 확인하고는 들어가지 않았던가.
신인들은 대부분 긴장하기 마련이었고, 리허설 조차 뭘 해야 하는지 헤매곤 했었다.
아까 본 모습은 상당히 여유로워 보였지만, 분명 속으로는 엄청나게 떨고 있었을 것이었다.
“너네는 노래 들어봤냐?”
“아뇨. 어제 TV를 못 봐서···.”
“오늘 라이브겠지?”
“그, 안무도 없고···. 발라든데 당연히 라이브겠죠?”
“그 나이에 ‘뮤스’는 좀 에반데···.”
민결이 미간을 좁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들이 출연하는 ‘뮤직 스테이션’은 청소년과 20대 층을 공략하는, 아이돌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었다.
간혹, 선배 가수들이 출연하고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계속해서 활동해온 가수들이었다. 황지선의 캔버스는 이해가 갔지만, 이런 프로그램에 ‘나이 든 신인’이라니···.
최근 화제를 모았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어제 겨우 첫 방송이 나갔을 뿐이었다.
아무리 신인이라고 해도, 인사할 무대가 따로 있지, 그 나이에 하필이면 뮤직 스테이션이라니···.
“선배님. 그 신인 차일드 애플 바로 전 무대래요.”
“아···.”
민결이 안타까운 한숨을 내뱉었다.
첫 무대라 떨리기도 더 떨릴 텐데, 하필이면 그 거대한 벽의 바로 전이라니.
차일드 애플을 빨리 보고 싶은 팬들의 노골적인 냉랭함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소름이 올라왔다.
내심, AXIS가 그 차례가 아니었음에 안도하기도 했다.
“그···. 아까 진훈 선배님도 보였어요.”
“어?”
“그 아저씨랑 같이 가던데요? 아마 그래서 대기실을 따로 준 것 같아요.”
“아. 그 선배님이 왔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SJ에서 대놓고 민다더니, 첫 무대라 진훈을 붙여준 듯했다.
아무리 은퇴를 선언했다지만, 진훈 선배급이면 대기실 하나쯤 따로 마련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아무튼, 사과 애들 왔다고 기죽지 말고, 우린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하자.”
“네. 선배님!”
대기실에 모인 아이돌들이, 이 공간에서만큼은 가장 오래된 대선배인, AXIS의 민결에게 고개를 숙였다.
***
“와··· 오늘 차일드 애플 나온다는데요?”
진훈이 무대 순서를 보며 말했다.
“그게 왜?”
‘미친 천재’가 해맑게 웃었다.
“뭐, 객석 절반 이상은 그 애들 팬이라고 봐야 하거든요.”
“걱정돼?”
진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걱정은요.”
“너는?”
“재밌겠는데요?”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추지훈이, ‘악마’의 물음에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지? 재밌을 거야.”
평균 연령 38.6세의 J.H 트리오가,
서로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