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6
6화. 아내
임도유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사이, 그녀는 잊고 지냈던 과거를 떠올렸다.
199X년.
당시 그녀는 댄스가수로 이미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상태.
하지만, 언제나 그녀는 자신만의 밴드를 만드는 것을 꿈꿨다.
앨범 활동이 끝나고 휴식기에 접어들면 어김없이 홍대를 찾았고, 그러던 중 한 데모 테이프를 듣게 되었다.
‘꼭 한번 라이브로 듣고 싶었는데···.’
그날 하필이면 소속사 공동대표가 그 클럽에 방문하는 바람에, 마주치기 싫어서 발길을 돌렸는데,
그 무대가 그 밴드의 마지막이었다.
한참 만에 떠오른 카세트테이프 속 그들의 곡이 머릿속을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이미,
임도유의 열정적인 노래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
“꼴통!”
대기실로 들어가는 복도.
황지선이 날카롭게 외쳤다.
“야! 적당히 끊었어야지.”
“아. 쏘리.”
“나이 먹고 주책이냐? 옛날 일이나 들먹이고.”
“지도 끄덕였으면서?”
“암튼! 신호를 주면 적당히···.”
임도유가 핸드폰을 들어 황지선의 앞에 내밀었다.
까톡 대화창.
-난 이제 자유임 : 오빠. HB 활동 시작한대. 천재가 돌아왔음.
당시, 안타까운 사고는 황지선도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소속사 공동대표 윤석준은 그 조진혁을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3년을 매달렸었다.
한국 최고라 불리던 프로듀서가 그렇게 공들이는 경우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결국 실패했고,
보통 그렇듯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기는 했지만···.
그런 대단한 천재가 돌아왔다니, 믿을 수 없었다.
“이거 정확한 정보야?”
까톡 프로필의 사진.
유명 음악 평론가인 임도유 전 부인의 사진이다.
이혼하고도 친구처럼 지낸다더니···.
“안가네 치킨집 사모님이 말한 거래.”
Heart Breakers 키보디스트였던 안상정이 떠올랐다.
그녀가 댄스가수로서의 활동을 접고, 진정으로 하고 싶던 음악을 시도하던 당시, 밴드의 키보드를 담당했던 그의 여자친구였기 때문에 종종 본 적은 있었다.
“어때? 기대되지?”
“야. 그래도, 마흔이 넘었잖아?”
“너는 마흔일곱이야.”
“닥치고.”
“나 역시 마흔여덟이고.”
“우리야 계속 활동했던 거고, 얘네는 이제 데뷔잖아.”
그녀의 말에 임도유가 활짝 웃었다.
“내기하자.”
“응?”
“만일, 앨범 수준이 상상 이상이면, 니가 배를 째고 누워서라도 여기 출연시키는 걸로.”
“뭐···.”
“그때 돼서, 이런데 나올 시간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만만하게 턱을 치켜든 임도유가 성큼성큼 대기실로 향했다.
황지선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25년이나 지났다.
그 긴 세월 손을 놨던 그들이다.
음악이란 섬세한 분야의 감을 찾을 수 있을까?
뭣보다,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꾸준히 활동해온 자신만 해도 이젠 라이브 공연이 벅차지 않은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황지선은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라이브가 어땠길래···.’
데모 테이프의 완성도는 엄청났지만, 자신은 저 정도로 자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연을 직접 본 사람들은 저렇게 신이라도 되는 양 치켜세운다.
모든 부정적인 조건을 고려하더라도,
자꾸만 기대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Heart Breakers. 드디어 나도 라이브를 볼 수 있는 건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
금요일 자정이 넘은 시각.
누군가 SNS에 올린 짧은 영상은 밤새도록 퍼지며 화제가 되고 있었다.
허름한 피아노 앞 두 남녀의 피아노 연주는 귀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울려댔다.
비록 초반이 빠진 하이라이트 부분의 편집 영상이었고, 멀리서 찍혀 음질이 엉망이었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분명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 보였다.
영상의 주인공 중 한 명이 유명 피아니스트 신유정임이 밝혀지자, 그녀의 유투브 채널에는 풀 영상을 올려달라는 댓글이 밤새도록 달렸다.
그리고, 그런 댓글 사이사이에 직접 그 공간에 머물렀던 사람의 글이 눈에 띄었다.
-뭔가 꽉 막혔던 게 막 튀어나와 화나게 하더니 모든 게 한순간에 치유되는 기분이었음. 진짜로 사람의 감정을 만져주는 음악임.
-나도 그 자리 있었는데 막 눈물이 나고 그랬음. 저건 진짜 리얼임.
-이건 영상으로는 절대 못 느껴요. 여러분 얼른 유정님께 공연 잡아달라고 압박 넣어야 합니다.
도시 괴담 급의 댓글은 밤새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뭐임. 신유정 공연계획 있음? 알바 푼 듯.
-딱 봐도 연출 맞구만. 관객도 전부 연기자네.
-감정 과잉임. 연기가 확실함.
물론, 달갑지 않은 시선도 꽤 있었다.
***
다음날.
화제 속 주인공인 진혁은,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딸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나온 진혁이 향한 곳은, 한국병원.
딸아이와의 감정에 집중되어있던 진혁은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진혁의 아내.
그녀를 떠올린 후, 진혁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새 눈물을 흘렸고, 꽉 막힌 가슴은 풀어지질 않았다.
정신없이 도착한 한국병원 중환자실 앞.
면회 시간이 되려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마흔셋의 진혁이 가진 괴로움과 슬픔은, 고스란히 전달되어 열아홉 진혁의 감정을 흔들었다.
딸이 무한한 사랑이었다면, 그녀는 너무나도 아픈 사랑이었다.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진혁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마음으로 위로해줬던 단 한 사람.
그런 그녀에게 모든 울분과 쓰레기 같은 감정을 쏟아댔던 진혁.
진혁에게 시달린 이유로 쓰러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를 더욱 아프게 했다.
바로 어제,
의사에게 회생 가능성에 대한 상담을 받았었다.
진혁이 이를 악물었다.
“면회 시작합니다.”
빨개진 눈으로 간호사를 바라봤다.
이제, 직접 그녀를 마주해야 할 때다.
멸균복을 입고, 일회용 장갑을 꼈다.
부들거리는 손가락은 자꾸만 장갑을 놓쳐, 그마저도 시간이 걸렸다.
다른 면회객들과 함께 좁은 복도를 걸어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매주 해온 일련의 과정은 진혁을 익숙하게 이끌었다.
집중 치료실.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요새는 바이탈이 튀는 경우도 적고, 영양상태도 나쁘지 않네요. 저번에 생긴 욕창은 많이 나아졌어요.”
“네. 감사합니다.”
간호사가 설명을 끝내고 다른 보호자에게 이동했다. 애써 희망 가득한 부분만을 알려줬지만, 바로 어제 의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점점 상태가 나빠지고 있습니다. 더는 유의미한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조심히 문을 열고, 그녀의 옆에 섰다.
공연장 가장 앞줄에서 방긋 웃어주던 열일곱 소녀가 천장을 향해 누워있었다.
굳게 닫힌 눈꺼풀.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눈망울이 가려져 있었다.
차가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난 언제든 오빠가 다시 노래할 수 있을 거라 믿어. 그 공연 맨 앞자리 예약하는 거야. 결혼하자.’
자살소동으로 병원에 누워있던 진혁에게 그녀가 했던 말.
진혁의 입이 달싹였다.
죄책감. 좌절. 슬픔. 감사. 미안함.
바람 소리 같은 희미한 노래가 아주 작게 흘러나왔다.
잠시,
숨을 골랐다. 고개를 들어 심장 신호를 알려주는 기계를 바라봤다.
‘아직 멈춘 게 아니야.’
어둡게 가라앉았던 진혁의 얼굴이 환해졌다.
‘충분히 다시 일어날 수 있어. 나도 이제야 깨어났으니까.’
희망.
어지럽게 자리한 여러 갈래의 심정을,
단 하나의 감정으로 일축했다.
부드럽게 울리는 비음이 집중 치료실에 퍼졌다.
바로 옆방에서도 들리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어느 순간 중환자실 전체를 꽉 채우는 듯, 멈춰있던 공기에 희망찬 떨림을 만들었다.
진혁은 그녀의 귀가 열려있음을 확신했다.
굳게 닫힌 눈꺼풀 아래 자리한 눈동자는 아직도 빛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깨어난 것은 이를 위한 것이 아닐까?
마흔셋의 진혁이 간절히 원했던 것.
또다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는 없었다.
진혁은 활짝 웃으며 그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
‘당장 벌떡 일어나고 싶을 만큼 놀라운 세상을 만들어 놓을게.’
그녀의 나이 마흔하나.
‘여전히 예쁘네.’
야윈 그녀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봤다.
‘그때까지 힘내.’
그녀의 볼을 감싸 안고, 호흡기를 사이에 두고 입을 맞췄다.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었다.
“와. 오늘은 표정 좋으시네요. 맞아요. 보호자가 힘을 내야 환자도 힘이 나죠!”
간호사가 방긋 웃으며 진혁에게 주먹을 쥐어 보였다.
세상 모든 절망이 모여있는 이 공간에, 가장 큰 희망으로 빛을 내는 고마운 백의 여인에게 깊이 고개 숙였다.
더 이상,
열아홉의 진혁은 고집 피우지 않기로 했다.
마흔셋의 진혁을 온전하게 받아들여 존중하기로 했다.
그가 살아온 모든 감정, 모든 경험은 실로 위대한 것이었다.
젊은 날의 반항, 광기, 즐거움, 기득권에 대한 저항, 투쟁, 자유로움.
어린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감정들에, 나이를 먹어야만 알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더해졌다.
내딛는 발걸음에 무게가 실렸다.
그녀는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겠어.’
진혁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
진혁이 떠난 후.
집중 치료실을 정리하던 간호사가 환자의 눈가를 닦아줬다.
“오늘은 눈물이 좀 많네요. 좋았어요? 남편분 표정 보니까 밝던데요? 파이팅!”
매번 절망만이 가득했던 보호자의 표정이 오늘만큼은 뭔가가 달랐다. 자신도 덩달아 힘이 날 만큼 희망찬 얼굴.
간호사는 꿈쩍하지 않는 눈꺼풀을 바라보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있다가 또 올게요.”
간호사가 나가고,
그녀의 손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떨리던 손가락이 조금씩 굽혀지더니, 어설프게 모였다.
곧 힘이 다해 풀어졌고, 본래 손 모양으로 돌아갔다.
*
옆 병실로 이동한 간호사가 환자의 동공을 살폈다. 오토바이 사고로 입원한 안타까운 가장.
긴급 수술 후,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브리핑 때 부정적인 예후를 들었기에, 반쯤 포기한 상태.
그런 그의 동공이 빛에 반응했다.
“어? 얼른 담당 선생님 호출하세요!”
그녀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힘내요! 알겠죠?”
간호사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미세하지만, 그의 손가락에도 힘이 들어갔다.
곧,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선생님! 여기 환자 바이탈 올라갔어요!”
“어? 이분 손가락 움직여요! 이쪽도 호출이요! 당직!”
집중 치료실 여기저기서 간호사들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
벨 소리가 울렸고,
“여··· 여보?”
상정은 진혁의 이름이 찍힌 핸드폰을 선하에게 보여줬다.
“받아.”
“어? 어···.”
상정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어? 지금? 장하? 어딨는지는 알아. 어···. 잠깐만···.”
선하의 눈치를 봤다.
“갔다가 와. 허락했잖아.”
상정의 눈이 동그래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일단 준비하고 바로 전화할게.”
서둘러 종료 버튼을 누르고 선하를 바라봤다.
“후···. 알바도 아직 못 구했는데···.”
“엄마! 나 있잖아!”
“넌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고.”
상정이 머뭇거리자 선하가 손가락을 펴 주방 옆 쪽방을 가리켰다.
“빨리 옷 갈아입고 나가. 생각 바뀌기 전에.”
“어! 어. 알았어. 여보!”
상정이 후다닥 쪽방으로 들어갔다.
쾅 하고 닫힌 쪽방 문을 바라보던 선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신났네.’
***
“야! 조은서! 또 틀렸어. 연습 안 해?”
“아! 쏘리! 오라버니.”
“쉬었다 하자. 얘 정신 못 차린다.”
합주 중인 멤버들이 악기를 내려놓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쪼! 너 아직도 집에서 기타연습 못해?”
“아. 어···. 미안.”
중학교 1학년 때, 친구 따라 처음으로 본 밴드 공연.
동네 성당에서 하는 자선공연이었는데, 그날 느낀 감정이 은서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무작정 밴드 동아리 고등학생 오빠들을 찾아갔고, 조르고 졸라 기타에 입문했다.
생각보다 재능이 있었는지, 요즘은 합주에도 끼워주곤 했다.
“너 이렇게 연습량 안 채우면, 다음 공연 서브에 못 넣는다.”
“응···.”
“야! 쟤 아빠 때문에 그런 거잖아.”
“그럼 연습실에 와서 연습하던가!”
“오늘 준호 막 나가네? 얘가 너처럼 공부 포기한 애냐?”
“나 아직 포기 안 했다!”
“오! 그런데 뒤에서 3등?”
“에이씨!”
멤버들이 다투기 시작하자 은서의 어깨는 더 움츠러들었다.
“다들 그만! 쪼 사정 알면서 끼워 준 것도 우리고, 얘 아직 중학교 2학년이다. 니들 중에 중2 때 쪼 만큼 한 놈 있어?”
리더 이한이 툴툴거리던 준호의 허벅지를 발로 찼다.
“은서야. 신경 쓰지 마. 니가 잘하니까 더 욕심내는 거야.”
은서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쪼! 미안!”
준호가 얼른 일어나 은서를 향해 손을 모았다.
“준호 요새 유진이랑 헤어져서 예민해. 니가 이해해.”
“아직 안 헤어졌거든?”
“그렇다고 치자.”
“아오씨!”
이한과 준호가 티격태격하자 은서가 벌떡 일어났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오냐.”
“파이팅.”
멤버들이 저마다 은서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아자아자! 파이팅!”
멤버들이 머리를 팍 누르자 은서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므르는 근드리지 믈르그···.”
은서의 싸늘한 음성에 다들 꺄르륵 대며 후다닥 흩어졌다.
“야! 근데 그거 봤냐?”
“뭐?”
“어제 디코에서 기수형이 말한 거.”
“그거 편집 안 끝났잖아?”
“벌써 스타그램에 떴어.”
“응?”
“구경하던 사람이 찍었나 보더라.”
“오···.”
준호가 태블릿을 꺼내자 모두의 머리가 모였다.
이들에게 이 연습실을 물려준, 전 밴드 리더 신기수 선배.
그 선배의 사촌 누나가 무려 신유정이다.
한국 클레식계를 물 먹인 세기의 천재라 불리는 피아니스트.
어젯밤 함께 게임 하느라 들어간 디코에서 대박 영상에 대해 얘기했었다.
그는 요새 사촌 누나의 유투브 촬영을 도와주고 있었다.
“짧기는 한데, 뭔가 멋있어. 얼른 풀 영상 떠야 하는데.”
곧, 태블릿에서 쾅쾅거리는 피아노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