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61
61화. 제치느님
소수였지만, 정예가 모인 J.H 임시 팬클럽.
해원은 다른 팬클럽보다 구석에 자리했음에 원통했지만, 갑자기 배정받은 것 치고는 그래도 스무 자리는 확보했음에 만족해야 했다.
그나마 소속사에서 준비해준 LED 봉은 꽤 만족스러웠고, 색도 변하는 꽤 고가의 제품이었다.
‘이제 시작인가?’
며칠 만에 보는 거지만, 너무나 기대되는 무대였기에 심장이 콩닥댔다.
그렇게 집중했기에,
어둠 속에 등장한 인물이 그날 만났던 J.H가 아니란 것을 가장 빨리 알 수 있었다.
“언니. 원래 저렇게 키가 작았었나?”
“아니. 다른 사람 같은데?”
확실히 다른 사람이었다.
조명이 무대를 향했고, 예상이 맞아떨어지자 응원봉을 흔들 타이밍을 놓쳤다.
어째서?
처음 보는 사람의 등장에,
해원과 팬클럽 회원들은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의 노래는 엄청난 몰입감과 감동을 주었고, 기다렸던 J.H만큼이나 굉장한 무대였다.
무반주로 부른 노래가 이렇게나 멋지다니.
어쩌면 악기가 없었기에 그의 목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째서 저 노래가 귀에 익은 거지?’
해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표절?’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노래였다.
그것도 최근에.
그의 무대가 끝났고, 뜬금없이 진훈이 등장했다.
‘와. 오늘 뭐지?’
예전에 진훈의 솔로 앨범을 한참 즐겨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 진훈이 내는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워졌는지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냥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발라드만을 평생 불러온 가수들을 씹어먹을 정도의 목소리였다.
높은 고음도 없었고, 가슴을 울려대는 낮은 저음대도 없었다.
그저 편안하게 흘러가는, 그래서 너무나 안심되고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랑.
세상 가장 익숙한, 가장 안전한 사랑.
끊임없게 흐르기만 하는,
너무 넓어서 물결조차 잘 느껴지지 않는,
그런 넓고 넓은 강이 펼쳐졌다.
절제되고 절제되었지만, 너무나도 아름답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가 객석을 가득 채웠다.
진훈의 노래는 너무나도 편안했다.
그리고, 분명히 이 노래도 들어봤다.
해원의 미간이 좁아졌다.
‘어디서 들었더라?’
분명히 이어폰을 통해서는 아니었다.
‘어딘가의 버스킹이었나?’
고개를 저었다.
최근에 번화가를 나간 적이 없었으니까.
머릿속에서 의문이 떠나질 않자, 지금 펼쳐지는 엄청난 무대에 집중하질 못했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때.
그녀가 알던 J.H가 무대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 전해졌다.
지난주 토요일.
중환자실에 울려 퍼진, 작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노래들이 떠올랐다.
‘그냥 닮은 사람이 아니었어?’
“꺅!”
해원이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
무대 위 진훈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가짜 웃음이 아닌, 정말 참을 수가 없어서 터져 나온 웃음이었다.
그는 언제나 주목받아야 했고, 모든 이슈의 중심에 서 있어야만 했다.
항상 밝아야 했고, 명랑해야만 했다.
가창력이 ‘적당히’ 괜찮았기에, 솔로 앨범도 낼 수 있었다.
적당한 고음과 적당한 기교의 음악들.
박재경과 같은 폭발적인 고음은 낼 수 없었고, 테일과 같은 맛깔나는 기교는 더더욱 무리였다.
그랬기에, 적당히 흉내 냈었다.
그게, 무대 위 그에게 주어진 ‘캐릭터’였으니까.
그렇게 연예계는 ‘익숙해’져 있었다.
더 이상 심장이 뛰지도 않았고, 매번 반복되는 사랑은 너무나도 무료했다.
그랬기에 은퇴를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당히 모나지 않게 흘러온, 익숙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번 앨범을 녹음하며 알게 되었다.
‘악마 같은 미친 천재’는 적당히 흉내 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대신, 진훈이 가진 목소리에 집중했다.
‘이 노래는 네 목소리가 아니면 아무도 부를 수 없는 노래로 만들 거야.’
뜬금없는 말에 머릿속에는 물음표만 가득했었다.
자신은 박재경도, 테일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적당한 무료함을 버텨온 자신만이 낼 수 있는 음역.
지금 흐르는 잔잔한 이 영역은, 자신만의 영역이었다.
‘편안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자,
얼굴에서 웃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연습생 시절부터 시작해,
가수로 20년을 살아왔는데,
이제야 처음으로 ‘음악’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진훈이었다.
그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때요?’
진훈이 고개를 돌리자 무대로 걸어 나오는 ‘악마’가 보였다.
함께 작업한 이후, 처음으로 세워준 엄지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사람들이 원래 J.H로 알고 있었던 남자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드디어 나타난 주인공의 모습에 객석이 술렁였다.
J.H의 무대에서 처음으로 반주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
관객들은 모두가 멍한 상태였다.
도대체가 박수를 칠 타이밍을 잡지 못해서였다.
아이돌의 정교하고 파워풀한 댄스도 아니었고, 요새 화제가 되는 록밴드의 거친 무대도 아니었다.
하물며,
정신을 차리자 알게 된 것인데,
반주는 이제야 처음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돌에 푹 빠져있던 그들이었기에, 지금 이 무대가 이제까지 봐 왔던 무대들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만들어진 ‘캐릭터’가 정해진 배역에 따라 움직이는 무대가 아닌, 진솔한 감정이 묻어나는 진짜 무대.
이들의 무대에선, 생김새도, 나이도, 커리어도, 그 어떤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것이 음악이었구나.
아기 사과들은 서로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봤다.
차일드 애플의 순서를 잡아먹고 있는 ‘신인 트리오’의 노래가 더 듣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 흘러나오는 저 반주가 너무나도 반가웠던 것은.
몇몇은 이미 듣기도 했었던, ‘당당한 짝사랑’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진행된 무대는, ‘가족’이 생겨나는 역순이었다는 것을.
모든 시작은,
너무나도 당당해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건방진 짝사랑에서부터였다.
‘짝사랑’이란 ‘괴로운’것에 속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듣고 있자면,
이만큼 속 편한 사랑도 없었다.
고백하지 않았으니,
차일 염려도 없었으며,
마음껏 상대를 바꿔도 됐다.
이별 날짜도 내 맘대로 정할 수 있었고,
마음 정리도 일방적으로 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상대가 눈치챌 만한 떡밥을 던져 놓고, 입질을 기다리는 설렘도 있었다.
관객들이 술렁였다.
무대 위를 끝에서 끝까지 움직이며, 관객들에게 떡밥을 던져댄 그가 턱을 세웠다.
“뭐, 아니면 말고.”
아니 생각할 시간은 줘야지!
아기 사과를 위시한, 각 아이돌의 팬클럽들이 파닥대며 벌떡 일어났다.
저마다 머리 위로 손을 들어 흔들어대기 시작했고,
각양각색의 풍선들과 야광봉이 동시에 파도를 쳤다.
경쟁 아이돌에 특히 냉랭한 뮤직 스테이션에서 최초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
10대에서 20대까지의 젊음으로 채워진 관객석.
진혁은 아슬하게 채워진 공연 순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한 곡 빠듯하게 부르고, 마지막에 순위를 발표하고, 무대 위에 모두 모여 인사를 하기까지.
어디 하나 재미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한국 사람들은 등수 매기는 것을 참 좋아한다.
매주, 수많은 음악방송에서는 아이들의 땀과 노력을 숫자로 환산하는 작업을 했다.
결국, 냉정한 등수만이 남았었다.
‘차일드 애플’
진혁도 알고 있는 아이돌이었다.
뭐, 오늘 하루쯤 무대를 뺏겼다고 인기가 꺾일 아이들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다른 아이돌들이 가장 피했던 세계적 아이돌의 바로 전 차례를 선택했었다.
무대를 뺏었음에 죄책감이 없었으니까.
이번 무대로 진혁이 전달하고 싶었던 감정은 잘 전달 된 것 같았다.
먼저, 추지훈의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부모를 떠올리게 했고, 진훈이 편안하고 안전한 가족 구성원들의 사랑을 표현했다.
세상에서 가장 유치하지 않은 사랑은,
어쩌면 가족 간의 사랑이었다.
그저 당연하고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이미 완성된 사랑.
진혁이 방긋 웃었다.
유치함은 자신의 몫이었으니까.
이 가족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정말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순간이 필요했다.
사랑은,
동시에 시작되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언제나 먼저 시작하는 쪽은 있기 마련이었고, 그렇기에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랑은 짝사랑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모든 사랑의 시작이라는 가장 고귀한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왜 움츠러들고 자신 없어 했어야만 하는지.
어째서 먼저 좋아하는 것이 그토록 부끄러운 것이 되어야 했는지.
진혁을 통해 세상에 퍼진 짝사랑은, 모든 사랑의 시작이었기에 더욱 떳떳했고, 더욱 당당했고, 더욱 강했다.
그리고,
가장 감성적이었기에,
가장 유치했다.
진혁이 객석을 살폈다.
그러니까 모두 지금 느낀 사랑에 집중하자.
해맑은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었다.
객석 가득, 다채로운 색의 물결이 넘실댔다.
***
“와. 진짜 장난 아니다.”
“세 명이 무대 위를 꽉 채우네.”
“근데, 우리 이대로면 그냥 집에 가야 하나?”
“그러게, 시간 끝나는 거 아냐?”
튀어나온 말과는 달리,
차일드 애플 멤버들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그럴 수는 없지.”
지금껏,
초대된 무대를 오르지 못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나가자.”
리더 티안이 아직 끝나지 않은 무대를 향해 걸었다.
“원래 아까부터 우리 무대였어.”
나머지 멤버들이 눈을 마주치고는,
머쓱한 듯 어깨를 으쓱했다.
“가자.”
“콜!”
“재밌네. 오늘.”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기획된 세계적 아이돌이, 그 누구도 기획하지 않은 미지의 무대로 뛰어 올라갔다.
그들은,
아이돌이면서도,
누구보다 재밌게 놀고 싶어 했던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정상급 아이돌이었다.
***
원래는 시간 순서상, 마지막 무대가 끝나고 출연진들이 모두 나와 순위를 확인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랬기에 사회를 맡은 ‘핑크케이스’의 지야는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총연출자님에게서 온 메시지는 ‘대기’가 마지막이었다.
‘어쩌지?’
그녀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그녀의 머리를 헝클이며 누군가 지나갔다.
“어? 티안 오빠?”
“오늘 순위 발표 없다.”
“응?”
“너도 심심하면 나와.”
“뭐?”
차일드 애플 멤버들이 그녀를 지나쳐 무대로 올랐다.
저마다 자신의 헤드 마이크를 체크하며 잔뜩 신난 얼굴이었다.
지야의 눈이 동그래졌다.
***
관객석에서 쏟아지는 환호를 마음껏 만끽하던 진혁이 옆을 바라봤다.
제법 즐거운 얼굴을 한 아이들이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K-Pop을 선두에서 이끄는 세계적 아이돌.
‘제법 표정이 좋네.’
재밌는 놀이를 앞에 두고,
잔뜩 들떠서 신난 표정들을 마주하자 진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짝사랑의 반주가 끝났고,
무반주 속에 그들의 랩이 시작됐다.
지금 빌보드 1위를 달리고 있는 ‘Keep up’이 시작된 것이다.
‘와. 비트 좋네.’
MR이 나오지 않았기에 티안은 마음껏 박자를 비틀어댔고, 기획이 빠진 즉흥적인 무대가 펼쳐졌다.
세찬 소나기가 계속됐고, 거센 눈보라가 계속됐다.
멤버들은 자신의 파트가 아님에도 티안의 신호에 랩을 주고받았다.
MR이 없다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매일 똑같이 연습했던 정해진 박자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다지도 즐거웠을 줄이야.
서로 경쟁하듯 꼬아댄 템포는 이미 사람들이 알던 ‘Keep up’이 아니었다.
‘아. 잠깐, 훅은 누가 들어가지?’
이번 앨범은 세계적 보컬인 ‘빌리 세일리’와의 콜라보였다.
그랬기에 MR에서는 그녀의 목소리가 따로 녹음되어 있었다.
지금은 아무런 반주도 나오지 않는 상태.
지금 몰아치는 날씨들을 한순간에 잠재워줄, 그녀의 소름 돋는 가성이 필요했다.
‘어쩌지? 그냥 동우가 보컬 쳐야 하나?’
티안이 고민하며 보컬 파트를 맡은 동우를 바라봤고, 그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기에, 그저 흥얼거린 적은 있었어도 연습은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망설이는 바람에, 티안의 랩이 느려졌고,
순간 무언가 따뜻한 음성이 툭 툭 끼어들었다.
마치, ‘이런 느낌이야?’라는 듯 묻는 해맑은 표정이 보였다.
티안의 눈이 동그래졌다.
빌리 세일리가 부른 훅과는 전혀 다른, 따스한 무언가가 험악해진 날씨들을 잠재우기 시작했다.
‘이게 훨씬 더 좋잖아?’
이미 지금 흐르는 무반주 ‘Keep up’은 전혀 다른 노래가 되고 있었다.
본래 영어여야 했던 훅이 한국어로 바뀌어 버렸고, 멤버들과 눈을 마주친 티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애초에 세계를 공략하기 위한 노래였고, 그랬기에 영어로만 불렸던 곡이었다.
티안이 헤드 마이크를 잡고, 자신만의 랩을 시작했다.
한국어로 바뀐 ‘계속되는 날씨’는 그들의 모국어였기에, 더 쉽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었다.
휘몰아치는 변화무쌍한 자연과 그를 다스리는 강렬한 햇빛의 어울림이 시작되었다.
티안은 오늘 처음 만난 J.H와 눈을 맞추며 그의 호흡을 따라갔다.
지금껏 어떤 콘서트에서도 맛보지 못한, 완벽히 자유로운 날씨였다.
***
진훈의 눈이 동그래졌다.
현재 세계 최고의 아이돌이 무대에 난입했고, 갑자기 진혁과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하도 요새 같이 지내다 보니 깜빡했었는데···.
‘아···. 맞다. 저 양반 토끼였지.’
어차피 처음부터 정상적인 무대는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이건 엄청났다.
같이 지내서인가?
진훈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어차피 단체로 인사할 타이밍 아닌가?’
무대 밖에서 지금 벌어진 상황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후배 아이돌들을 바라봤다.
원래라면 저 아이들도 무대로 올라와 순위를 발표해야 할 시간이었다.
진훈이 방긋 웃으며 아이들에게 손짓했다.
‘니들도 같이 놀자.’
잠시 망설이던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깽판이 된 무대에 발을 올렸다.
무대 위에 몰아치는 거칠고도 따스한 날씨를 마주하자, 그제야 아이들은 지금 뭘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딱딱했던 뮤직 스테이션의 투명 아크릴은, 마치 구름 위처럼 폭신하게 느껴졌다.
반주가 없었기에, 또한 정해진 순서가 없었기에, 저마다 그 구름 위를 뛰어놀기 시작했다.
진훈이 손짓하자 아이들의 입이 그의 마이크에 모였고, 티안이 한국어로 개사한 후렴구를 따라 했다.
그곳에 끼지 못한 아이들은 추지훈에게 달렸고, 그마저 늦은 아이들은 생목으로 외쳤다.
“오늘 만난 날씨. 다신 못 볼 구름. 그래서 맞아. 거센 비. 단지 오늘뿐이니까. 마음껏 놀자. 흠뻑 젖자.”
오늘 처음으로 불린 한국어판 즉흥 ‘Keep up’은 역대 최고였다.
***
“와···.”
“어떠냐.”
“선배···님.”
“오냐.”
“대박이네요.”
“앞으로, 각 나오지?”
뮤직 스테이션의 장창 PD가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 안 나오는데요? 이런 무대를 어떻게 만들어요?”
“같이 하자.”
백민부 PD가 입꼬리를 올렸다.
사실 자신도 감이 온 것은 아니었지만, 계획해서 만들어질 무대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계획 없이 판을 깔아주면 될 터.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재밌게 노는 방법을 떠올릴 테니까.
과거 ‘가요톱텐’을 능가하는 무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
[와. 이건 미쳤다.]┗뮤스 대박.
┗역대급임.
┗저거 연출 아님. 절대 억지로 만들어서 될 게 아님.
┗뭔데 원곡보다 좋음?
┗한국어 음원 다시 내라.
┗근데 저거 녹음으로 가능?
┗막 무대 위에 눕고 난리도아니네.
┗진심 대박임.
┗앞으로 음방 저런 식이면 매번 본방사수 할 듯.
┗나도임.
┗아 너도?
┗뭣보다, 처음 깽판 친 거는 J.H아재들 아님?
┗미친! 너 J.H한테 아재라고 했다.
┗저 새끼 차단임.
┗감히 우리 제치느님들께!
┗세상은 제치느님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노노, 갓끼님 돌아오면 다들 아닥임.
┗갑자기 갓끼는 너무 갔지.
┗갓끼님은 위에 초식 갤러리로 꺼지셈.
┗아무튼, 난 오늘 엄빠한테 감사합니다. 할거임.
┗당연한 거 아님?
┗제치 막내 노래 너무 감동.
┗진훈도 목소리 완전 녹음.
┗테일급임.
┗엉엉. 진훈이 형. 드디어 인생 제 2막 열렸다.
┗진심 멋졌음.
┗니들 그거 암? 제치 막내랑 진훈이랑 그 리더가 다 가르친 거?
┗레알?
┗우리 누나가 SJ 홍보팀임.
┗저말 맞음. 우리 아빠도 SJ 프로듀서임.
┗까고 있네. 인증 가능?
┗울아빠 충들 또 등장하네.
┗먹이 금지.
┗진짜임!
┗게시판 따로 파서 파딱 한테 사진 보내기? 콜?
┗콜!
[아. 진짜 맞네. 미안.]┗빠른 인정 추천.
┗남자네. 바로 인정?
┗훈훈하네.
┗오. 그럼 그 말이 사실임?
┗레전설은 리더□□임?
┗와, 게시판 금지어로 ㅇㅏㅈㅐ 건 거임?
┗ㅇㅏㅈㅓㅅㅅㅣ도 안됨.
┗미친.
갓 만들어진 J.H 갤러리는 단 하루 만에 엄청나게 불타올랐고,
부동의 1위인 토끼 갤러리 바로 아래에 자리 잡았다.
‘갓끼’와 ‘제치느님’으로 양분된 한국 음악계였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자마자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라온, J.H의 새로운 곡들은 그대로 순위권을 뚫었고, 이미 3위에 자리한 ‘당당한’ 의 바로 아래에 줄지어서 안착했다.
1위. Keep up – 차일드 애플
2위. 응수동 블루스 – 나비계곡
3위. 당당한 – J.H
4위. 편안한 – J.H
5위. 맹목적 – J.H
무려, 단 하루 만에 5위 안에 나란히 자리한 이니셜은, 사람들이 얼마나 그들에게 열광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
“뮤직 페스티벌?”
“네.”
“이제 슬슬 추워지는데 갑자기?”
“모이면 안 추워요.”
해맑게 웃는 표정에 동구가 할 말을 잃었다.
“장소는?”
“강원도 ‘태각시’ 요.”
“응?”
“거기 죽여주는 장소가 있대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추운 도시 아니냐?”
“그래요?”
“이제 겨울인데···.”
“모이면 안 춥다니까요?”
아, 이 새끼. 한결같네.
동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기획팀에 물어보고 예산 뽑아볼게.”
방금 갑작스럽게 나온 ‘뮤직 페스티벌’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봐도 감이 오질 않았다.
경기도권도 아니고, 강원도, 그것도 그 산골짜기라니.
고속도로도 연결되지 않은 그 고원의 도시에 사람들이 모일 리가 만무했다.
“재밌겠죠?”
고민하던 동구의 눈이 멍해졌다.
마치 마법과도 같은 말이었다.
“까짓거 해보지 뭐. 손해나봐야 얼마나 나겠어.”
진혁이 방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