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64
64화. 현실
“어! 일단 전에 슈퍼 콘서트 무대 맡았던 회사 있지? 걔네 일정부터 알아보고! 아냐. 최대한 맞춰 준다고 해. 당장 기획팀이랑 다 튀어오고!”
석준이 정상에 서서 펼쳐진 자연을 바라봤다.
사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탁 트인 시선 한가득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가득 찼다.
석준은 지금껏 한국에 있었던 대형 페스티벌들을 떠올렸다.
대부분이 록 페스티벌이었고,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대형 기획사를 주축으로 한 소규모였을 뿐이었다.
SJ 엔터테인먼트도 한때 ‘SJ 파티’를 연말마다 개최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축제라기보다는, 소속사 뮤지션들의 합동 콘서트라고 봐야 옳았다.
오늘, 도착하자마자 끌려온 이 망해버린 스키장에는, 모든 장르가 어울려 함께 노는 진짜‘축제’가 보였다.
진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여지없이 무대가 올라갔고,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내리막을 걸었다.
정신없이 그 축제의 공간을 지나다 돌아보니, 어느새 케이블카 승강장까지 내려온 후였다.
아래 평평한 곳에는 아이들이 뛰어다녔고,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음악들을 쫓아다닐 것이다.
초급코스를 천천히 오르다가 만난 무대 앞에는 의자가 놓였다. 그곳에는 노년이 좋아할 만한 트로트 가수들이 저마다의 구성진 삶을 노래할 것이다.
완만한 중급 코스에 등장한 아이돌들은, 짧은 방송에서는 보이지 못한 무대들을 선보일 것이고, 어림과 젊음은 열광할 것이다.
그렇게 가파르게 오르다 고급코스에 진입하면, 강렬한 록 사운드가 울리는 무대를 만나게 된다.
거친 경사로를 끝까지 오른 젊음이 마음껏 열기를 발산할 것이다.
이 넓은 슬로프 모든 곳에 음악과 사람들이 가득 찼다.
곳곳에서 간식거리를 팔고, 풍선이 날고,
세대를 초월한 모든 사람이 모인 곳.
‘그래. 이런 게 축제지.’
진혁의 막연했던 상상이 석준의 머릿속에서 구체화 되기 시작했다.
***
KSB 방송국의 입장문은 잔뜩 들떠있던 사람들을 양분했다.
[사실 다 뻥 아님?]-관심 좀 끌어보겠다고 지들 끼리 짜고 친 거 아님?
┗Box-43도 누가 사칭한 거 같은데?
┗사실 음원 듣기 전에는 저거 누가 믿음?
┗결국 비공개니까 이거 이대로 묻힐 듯.
┗법적으로 뭐 엮을 거 없나?
┗이건 시청자 기만임.
┗근데, 방송국이 직접 말한 건 없지 않음?
┗아무튼 기만임.
[만일 이거 진짜면 방송국이 대단한 거]-무조건 대박칠 라인업인데 아마추어들을 위해 그걸 포기했다는 말이지 않음?
┗하긴 나비계곡은 자기들이 음원 넣었었다고 인정했음.
┗거기서 Box-43은 너무 갔지. 그건 뻥인 듯.
┗어쨌든, 경연이 아니라 공연이 될 뻔했는데 원래 취지를 살린 건 맞음.
┗나 진자로 음원 너어따. 나 제니스임.
┗와 컨셉충 꾸준하네.
┗먹이 금지.
┗아무튼 어떤 면에서는 방송국도 잘한 거 맞음.
┗그 쟁쟁한 밴드들 심사를 어떻게 봄?
┗KSB 이번은 확실히 잘한 거임.
┗맞음. 로또 맞았는데, 그거 버리고 신념 찾은 거잖아.
┗비유 적절하네.
┗거기도 뭐 있음?
┗태각시에서 뭔가 벌어질 거 같은데?
┗태각? 태각산 있는데?
┗거기 탄광 아님?
┗노노 광산 몇 개 안 남음. 일단 거기 공사 중인 건 맞음. 바이크타고 구경 갔는데 무대 공사 같음.
┗좀 뜬금없네? 갑자기 강원도? 이 추운데?
┗무대가 한두 개가 아님. 뭐가 됐건 어마어마 할거임.
┗근데 라인업 떠봐야 알 듯. 요새 락페도 여기저기 문 닫았음.
┗아무튼 이것도 기대되기는 하네.
┗곧 홍보 뜨겠지.
┗페스티벌임?
┗주최사만 뜨면 각 나옴.
┗SJ 사원증 목에 건 사람들 있었음.
┗대박! 제치느님들임?
┗방송 안 하던데 공연 준비 중이었음?
┗근데 SJ 주최면 제치느님들 빼면 황지선이나 아이돌들 아님?
┗뭐 SJ 파티 부활하는 건가?
┗그건 좀.
┗뭔소리임. 제치느님들만 있어도 난 갈거임.
┗나도 감.
KSB의 코리아 탑 밴드로 몰렸던 사람들의 열기가 그대로 옮겨 간 곳은, 도시 이름보다 산 이름이 더 유명한 고원의 도시였다.
사실, 토끼가 등장하기 전, 올해 여름 록페스티벌들은 흥행이 저조했었다. 한국에서만큼은 록은 대중 보다는 마니아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년간 꾸준히 발전하던 그 문화는 어쩌면 너무 젊었고, 너무 과격했기에 새로운 유입을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성장은 정체되었고, 젊음은 당연하게도 나이 들어갔다.
록을 들으며 꿈꾸던 미래가 점점 다가올수록, 그 희망찬 떨림들이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허상임을 알게 되며 점점 멀어져 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점점 꿈의 범위를 조금씩 좁혀가는 일인지도 몰랐다.
점점 좁아진 꿈의 길은,
곧 막다른 골목에 멈춰 서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 좁은 골목에 적응해갔다.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록의 메시지보다는,
당장 눈앞의 막막한 삶에, 더욱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올해 가장 성공적인 페스티벌은, 압도적으로 ‘응수동’이 유일했다.
축제 때뿐만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사람들은 막다른 골목의 담장 너머를 보기 위해, 계속해서 응수동을 찾았었다.
다만, 얼마 전부터 도로의 지하화 공사가 시작되었고, 응수동 무대는 내년까지 휴업이었다.
느끼지 못했을 때는 몰랐는데, 막다른 골목의 담장은 그리 높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너머 넓은 놀이터를 보게 된 이들은 더 넓은 놀이터를 꿈꾸게 되었다.
그게, 록이든 아니든.
그랬기에, 태각시의 소식은,
‘축제’에 목말라 있던 사람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기도 했다.
***
“제니스?”
매니저 윌큰이 제니스의 눈치를 보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니스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그 한국의 방송사에서 온 메일을 보여준 후였다.
사실 윌큰도 당황스러웠다.
감히 Box-43이 친히 출연해주겠다는데 그걸 거절하다니.
처음엔 자신도 화를 주체할 수 없었지 않았던가?
“내용 보니까 이해되네.”
이해?
제니스가 이해?
윌큰이 화들짝 놀랐다.
“한국은 ‘나’보다는 ‘우리’를 중시하지. 그들의 정서상 프로그램의 성공 보다는 취지를 더 살리고 싶었을 거야. 경연은 말 그대로 없는 이들이 가져야 할 것을 앞에 두고 경쟁하는 것이니까.”
제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윌큰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내가 거기 끼어들면, 그들이 가져야 할 것을 빼앗는 것이 되는 거지. 나에게는 별 필요도 없는 건데 말이야.”
확실히, 나사가 빠진 것이 맞았다.
아무래도 한국에 그 나사를 두고 온 듯했다.
“그럼 앨범은 예정대로?”
“뭐···.”
대답하던 제니스가 갑자기 핸드폰을 바라봤다.
그의 한국어 선생님의 이름이 떠 있었다.
***
“빠듯하게 가면 눈 오기 전에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동네가 5월에도 눈이 오는 동네라···.”
“후···. 괜히 급하게 삽을 떴나?”
“그래도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버스들은?”
“모니터 큰 걸로 다 설치했습니다.”
“K2리조트 숙박 가능 인원 체크하고, 그 골프장에 들어갈 글램핑 견적도 뽑고, 또 뭐가 있지?”
“안전휀스랑 사람들 오르내리는 보행로도 확보해야 하고, 곳곳에 입점할 각종 업체도 컨택해야 합니다.”
“후아. 산 넘어 산이구나.”
“라인업은···.”
“아···. 그게 제일 문제구나.”
석준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의 노래와 설명을 들으며 스키장을 둘러봤을 때는, 그저 그 풍경에 취해있었는데···.
서울로 돌아와 현실적인 문제들을 마주하자 해결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무대야 원래 함께 일했던 업체들이 있었기에 총동원해서 설치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들어질 스테이지는 총 14개였다.
문득, 마흔을 넘긴 무렵 만났던 광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진혁이 스테이지가 올라갈 장소를 짚어줄 때 떠올랐던 그 엄청난 축제.
세계에서 가장 큰 록 페스티벌을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당시 그 축제의 스테이션은 총 17개에 소규모 버스킹 장소가 2개였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인 세계 유명 뮤지션들이 뿜어댔던 열기가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절대 한국에서는 볼 수 없을 광경이라 여겼었다.
그래서 욕심을 냈더니, 스테이지가 열네 개로 늘어 있었다.
그 스테이지를 이틀간 꽉 채울 라인업이 필요했다.
“야. 우리 다 털면 얼마나 긁을 수 있지?”
“예? 뭘 털고 긁어요?”
세계 최고의 축제가 될 발판을 만들 것이었다.
만일 그런 축제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현실적인 문제들은 결국, 대부분 돈이 해결해 주곤 했다.
“내 마지막 열정이다. 난 올인.”
석준이 해맑게 웃었다.
***
장하와 충기의 연주가 끝났고, 진혁이 방긋 웃었다.
“우리 둘로는 여기까지가 한계더라.”
결국, 두 박자쟁이들은 진혁에게 도움을 청했다.
뭣보다, 금방 다시 서울로 올라갈 줄 알았던 진혁과 상정이 리조트에 머물게 되었다.
진혁은 매일같이 산을 만나고, 하늘을 보며 곡을 만들었다.
그 때문에 며칠이나 ‘음악’가게에 출근하지 못하게 되었고, 한참을 고민한 둘은 알량한 자존심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재밌는 거 하고 있었네?”
진혁이 기타를 들었다.
장하와 충기가 침을 꼴깍 삼켰다. 진혁에게 있어서 최고의 찬사가 나온 것이었다.
“잘 만들었어. 진짜. 이건 리듬 파트여서 만들 수 있었던 곡이야.”
두 박자쟁이들은 그 한마디에, 자신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하릴없는 것이었는지 충분히 깨닫게 되었다.
밴드는, 결국 자신들의 역할이 있었고, 서로가 더 돋보이려고 하는 순간 망가지는 법이었다.
“심장을 울리는 건, 결국 베이스니까.”
진혁이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멜로디는 사람들의 귀와 머리를 자극하고.”
방금 연주했던 곡과는 전혀 다른, 밝고 행복한 멜로디가 흐르기 시작했다.
“심장 가득 절망을 맛봤으면, 돌아갈 곳을 알려줘야지.”
장하가 서둘러 베이스기타를 고쳐잡았다.
밝고, 행복하고, 너무나도 포근한 멜로디 위에, 절망의 리듬이 얹어졌다.
극과 극을 달리는 감정은 서로 어울리기 시작했다.
절망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부분을 앞으로의 희망이 채워줬다.
그리고, 일확천금보다 더 중요한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을 일깨워줬다.
충기의 드럼이 조심스럽게 절망에 가담했고, 상정의 키보드 멜로디가 희망을 더했다.
지금 자신이 빠진 늪의 의미를 알게 된 사람들은, 본래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게 될 테고, 서둘러 일상을 향해 달려가게 될 것이었다.
“가자. 절망의 도시로.”
진혁이 해맑게 웃었다.
***
“너 요즘 자꾸 쓸데없는 짓을 하네?”
창천 그룹 회장 김충석이 막냇동생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거 못 살려. 이미 처분해야 했을 곳이었어. 보고서 볼 필요도 없어.”
딱 잘라 말하는 큰 오빠의 말에, 우희가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난 엄마를 가장 적게 봤어.”
그녀의 말에, 충석의 미간이 조금 좁아졌다.
막내 나이 일곱 살에 지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당시 자신은 유학을 가 있었던 상황이었고, 서둘러 귀국했던 기억이 났다.
“어머니?”
“엄마가 요양하셨던 곳이 어딘지 알아?”
충석이 아주 작게 고개를 저었다.
병세를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은 미국에 있었으니까.
“그 산꼭대기에 있는 별장이었어.”
“아···.”
충석의 눈가 주름이 살짝 떨렸다.
회사 일이 아닌 가족으로서의 대화가 얼마 만인지 가물거렸다.
아니, 이런 대화를 해본 적이 있었던가?
문득, 툭하면 울어대서 너무나도 귀찮았던 여자아이가 떠올랐다.
충석이 기억하는 우희는 그게 다였다.
미국에서 바로 경영에 참여하는 바람에 체류 기간이 길어졌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막내는 스무 살이었으니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서툴렀을 뿐이지, 열다섯이나 어린 동생은 제법 귀엽고 예쁘기는 했었다.
‘막내는 가장 늦게 만난 거라서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짧을 수밖에 없어.’
그 여자아이를 떠올리자,
재벌 집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성격이었던 어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자신들이 배워가는 ‘재벌’가의 삶과는 동떨어졌던 분.
그랬기에, 간혹 내비친 감성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웠었다.
당시, 어머니의 나이를 훌쩍 넘긴 지금에도,
사실, 이해되지는 않았다.
감성은, 경영에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까.
귀찮은 포옹보다는, 숫자 하나라도 더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맞았으니까.
다만, 방금 우희의 말을 듣고 아주 조금 그분의 감성이 스며들었다.
그 작은아이에게 가장 소중했을 7년을 떠올렸다.
“너는 어머니를 닮았지.”
그 어린 나이에,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아이의 감정을 헤아려보려고 노력해 봤다.
“그래서 사업에는 맞지 않는지도 몰라.”
노력했지만, 역시 느껴지지는 않았다.
충석은 그런 감정들을 멀리한 지 너무 오래되었으니까.
“난 그 감정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어차피 그 리조트를 살릴 방안은 없을 터.
확인해보지도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가능성이라는 것은 언제나 열어두는 법이니까.
혹시라도 모를 수익성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보고서를 들여다보기는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에는,
감성적인 그 어떤 것도 절대 끼어들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보고서는 두고 가. SJ의 현 상황도 보고 올리고.”
우희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리고, 충기 그놈 도박은 안 된다고 전해라.”
“어···?”
“자꾸 정선에 들락거리면, 취미생활이고 뭐고 당장 잡아들일 테니까.”
“아··· 알고 있었어?”
“어차피 그른 놈이라···, 노는 건 괜찮아. 하지만, 창천의 이름에 먹칠은 하지 말아야지.”
우희가 멍한 눈으로 큰 오빠를 바라봤다.
“나는 회사에 득이 되지 않는 일만 반복하는 놈이 너무나도 한심한 것뿐이다. 뭐, 이것도 충기가 계획한 거겠지.”
손가락으로 탁자 위의 보고서를 톡톡 두드렸다.
“그놈도 어머니를 많이 닮았으니까.”
우희는, 절대 그럴 일이 벌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큰오빠의 입술 끝이 살짝 움직인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가봐. 이건 검토해 볼 테니까. 하지만, 결과는 9할 이상 정해져 있다는 것만 알고.”
충석이 무심한 듯 보고서를 들며, 나가 보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
회장실을 나온 우희의 심장이 벌렁거렸다.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구체적인 것들까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 리조트 페스티벌이 규모가 커졌고, SJ의 윤석준은 자신의 거의 전 재산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걸로도 그 거대한 축제를 개최하기는 무리였다.
SJ가 아무리 큰 회사라지만, 이미 단독으로 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애초에, 우희는 공연에 들어가는 비용을 일부 투자할 생각이었다.
회사에 보고가 올라가지 않아도 될 정도의 수준이었고, 그 정도는 개인적으로도 가능했다.
다만, 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
이 정도로 막대한 자금을 협찬으로 유치하려면 그룹 차원의 지원이 필요했다.
결국, 회장인 큰 오빠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후···.”
사실, 수익에 관한 보고서를 올리기는 했지만, 창천 그룹의 회장인 큰 오빠는 거기 쓰인 숫자만 봐도, 수익이 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 뻔했다.
자신의 개인적 후원을 법무팀과 상담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난 그 감정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문득,
큰오빠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직접 얘기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봤다.
‘그놈도 어머니를 많이 닮았으니까.’
그때 그 표정은···.
‘설마···. 아니겠지.’
곧 고개를 젓고는 굳게 닫힌 회장실 문에서 점점 멀어졌다.
***
전당포 거리에 울리던 둥둥에 새로운 멜로디가 얹어졌다.
무언가에 홀린 듯 전당포를 향하던 이들은, 그 허름한 건물 앞에서 하염없이 그들의 공연을 바라봤다.
그리곤 곧 발걸음을 돌렸다.
“와. 여기 진짜 좋다.”
“그래? 뭐, 문짝만 떼어내고 임시로 만든 거라서···.”
“여기다 카페 차리면 진짜 재밌겠다.”
“어···우리 어릴 때 말했던 그 카페?”
“오. 재밌겠네.”
“우리가 만들자.”
“그래!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 보지 뭐.”
마흔셋 아저씨들이 아이처럼 웃어대며 흥분했다.
“아, 그리고 이따 악보 줄 테니까 좀 봐봐. 우리 앨범 만들자.”
“오! 드디어?”
“좋아!”
“와, 진짜 시작하는 거네?”
그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돌고 돌아, 25년 만에 처음 내게 된 정규앨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