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65
65화. 정규앨범
“예 형님! 가고 있습니다.”
-거참 우리끼리 해도 된다니까.
“그냥 쉬고 계십시오! 저희가 다 하겠습니다.”
-사람 많으면 부산스럽다고.
“아닙니다. 형님! 업소 오픈은 원래 머릿수로 해야 하는 겁니다.”
-그냥 라이브 카페라니까 무슨 업소야.
“다 비슷한 거 아니겠습니까!”
-후···. 일단 운전 조심히 하고.
“네! 가서 뵙겠습니다.”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무덕이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응수동이 문을 닫는 바람에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강원도에 잠시 간다던 형님에게 연락이 왔던 것이었다.
갑자기 주류업체에 관해 물어왔고, 강원도에 라이브카페를 차린다는 말을 듣게 된 무덕은, 바로 놀고 있는 아우들을 모아서 강원도로 달리는 중이었다.
그냥 업체에 맡긴 것이 아니라, 그 밴드 형님들이 직접 공사하는 중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형님의 업장이라면 서툰 손이라도 보태는 것이 옳았다.
“야. 좀 밟아라!”
“네. 형님!”
무덕이 탄 승용차의 뒤로 검은 승합차들이 줄지어 따랐다.
***
“아들 다 왔나?”
“뭐 배추 뽑으러 간 애들이 있어가지고, 똘이는 고배이가 아프다고 빠졌고, 마카 다 온 거 같은데요?”
“보자. 그래도 열 명은 채웠네?”
“우리는 사생결단을 낼 준비가···.”
“지랄하지 말고, 그냥 뒤에서 인상만 쓰고 있으면 돼 새끼야.”
쓸데없이 비장한 표정의 밤톨이었다.
그 가게 앞에만 가면, 바짝 얼어버릴 거면서···.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전당포 거리의 실세 최대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에는 대충 문짝만 떼어놓고 있었기에 조금 하다가 추워지면 그만두겠지 싶었는데, 사람이 둘이나 늘더니, 악기 소리가 더 커져 버렸고,
그래도 간간이는 왔던 손님들이 뚝 끊겨버린 것이었다.
그러더니, 아예 자리를 잡을 생각인지 언젠가부터 자기들끼리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이는, 자신들의 밥줄이 걸린 문제기도 했기에, 이대로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동네 건장한 애들을 모아서 조금 겁박을 줄 생각이었다.
그 무서운 덩치 큰 양반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 머릿수면 지도 사람인데 움찔하지 않겠는가.
“후···. 절대 싸우면 안 된다. 비폭력 새끼야. 니 알재?”
“네.”
이 전당포 거리는 굉장히 불법이 난무할 것 같지만, 준법정신은 투철했다.
언제나 언론에 좋지 않은 모습만을 보였기에, 경찰에게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자신들끼리 자정작용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게 힘든 이들은 떠났고, 지금 남은 사람들은 그래도 정직하게 담보 대출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마카 가자.”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최대금이 휘적휘적 걸었다.
눈에는 힘을 빡 주고, 한창 자기들끼리 페인트를 칠하고 있는 그들의 업장으로···.
“어? 잠깐 스탑.”
최대금이 멈칫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심상치 않은 승합차들이 그 건물 앞에 멈춰 섰기 때문이었다.
차 문들이 일사불란하게 열렸고, 우루루 내리는 사내들이 보였다.
너무 가까웠기에 뒤로 돌기도 늦었다.
가장 앞에 선 승용차에서 내린 사내가 그 덩치 큰 남자에게 인사한 뒤 주변을 둘러봤다. 참 겁나는 인상이었다.
아차,
눈이 마주쳐 버렸다.
“어? 뭐야. 당신들?”
분명 이상해 보였을 것이었다.
건장한 남자들 열한 명이 우르르 대로변을 막고 있었으니까.
“그···.”
최대금이 우물쭈물하는데,
“어? 최사장님?”
“아시는 분이십니까. 형님?”
“어. 이 거리 토박이셔. 우리한테 친절하시고. 아! 주짓수!”
“아이고 사장님!”
“그런데 무슨 일로 그렇게 모여서···.”
“아! 뭔 공사를 하시는 거 같아서···. 그러니까네, 뭐 도와 드릴 거가 없을까···.”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최대금은, 태세전환이 정말로 환상적으로 빠른 밤톨을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거 세멘을 그래 바르면 안 되지. 이래 했다간 다 뭉치잖소.”
얼른 최대금이 한 숟가락 올렸다.
“아···. 역시 강원도는 참 정겹습니다. 형님.”
“그치. 전부 친절하셔. 우리 때문에 장사도 잘 안되실 텐데.”
얼른 달려가 시멘트 포대를 집어 들던 최대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야! 니들도 얼른 도와드려!”
“예! 형님!”
서둘러 표정을 푼 전당포 거리의 실세가, 활짝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시골 인심이란, 참 정겨운 것이었다.
***
도박이란 그랬다.
적당히 즐겁게 놀고만 가는 사람과 그 적당함을 넘어선 사람으로 나뉘었다.
가져온 돈을 모두 쓰고 빈털터리가 되어, 더 놀기를 포기한 채, 터덜터덜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하지만, 중독에 빠진 이들은, 어김없이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에 손을 대고는 했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집문서 괴담’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지만,
이들은, 몸에 지닌 물건은 뭐든 돈으로 바꾸려 했고, 타고 온 차를 맡기는 일은 예사였다.
몇 시간 후면, 몇 배의 돈을 따 다시 찾아갈 셈이었겠지만, 맡긴 물건을 되찾아가는 사람은 채 10%가 되지 않았다.
아, 진짜 딴 돈으로 찾아가는 사람은 그중에서도 2%에 불과했다.
카지노를 즐겨 찾는 이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하나 돌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 전당포 거리의 괴담이었다.
길게 얘기할 것 없이, 모든 경험담의 결과는 같았다.
‘도박 중독을 치료하려면, 전당포 거리 초입의 라이브 카페를 찾아라.’
뭐, 중간중간 C2K가 있다느니, J.H라는 신인가수가 있다던가, 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도 끼어 있었기에, 괴담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는 했다.
이 괴담은,
어디까지나 도박 중독자들이 모인 폐쇄적인 게시판에서 퍼졌기에,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
네 명의 중년 사내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도움을 조금 받기는 했지만- 만들어진 카페에 모여 앉았다.
‘야. 우리 나중에 우리 이름으로 카페나 하나 만들까?’
열아홉 살 아이들은 이런저런 미래를 꿈꾸기 마련이었다.
‘우리만 공연하는 거야. 심심하면 기타치고, 그러다 힘들면 쉬고. 또 사람이 오면 전부 일어나서 공연하고···.’
‘재밌겠다.’
‘막 인테리어도 우리가 하자. 페인트 잔뜩 묻히면서.’
‘건물은 충기가 사면 되는 거지?’
‘야. 니들 나 돈 많다고 끼워 준 거냐?’
‘어···. 그게···.’
‘와! 또 대답 안 하네?’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키득댔던 홍대 편의점 앞이 기억났다.
“돌고 돌아서 진짜로 카페를 열었네?”
다들 흡족한 얼굴로 내부를 둘러봤다.
사실, 전당포 사람들이 간혹 들린 것 외에 지금까지 손님은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곳은 마흔셋 남자들의 로망인 ‘아지트’였으니까.
친구들과 마음껏 모일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
악기도 있었고, 잘 칠 줄도 모르는 포켓볼 당구대도 있었다. 구석에 있는 다트 기계는 다트핀을 사지 않은 바람에 그저 장식용일 뿐이었고, 턴테이블 역시 LP판이 없어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냉장고에는 맥주가 가득 차 있었고, 포대로 된 과자는 종류별로 쌓여 있었다.
어설프게 칠해진 벽 곳곳에 시멘트색이 비쳤지만, 나름 멋졌다.
무엇보다,
밖을 향해 세팅된 그들만의 전용 무대가 가장 예술이었다.
진혁이 일어나 기타를 잡자, 친구들도 그를 따라 무대에 올랐다.
정해진 시간도 없었고, 순서도 없었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연주하다가, 뭔가 끊기면 그대로 멈춰 틀린 친구를 노려봤다.
어떨 때는 상정이 마이크를 들고 노래했고, 장하가 코러스를 넣었다.
충기가 스틱을 던지고 춤을 추기도 했다.
댄스 앨범도 냈다면서, 참 엉망이었다.
그렇게 놀다 목이 마르면 냉장고로 달려가 맥주를 하나씩 꺼냈다.
저마다 맘에 드는 과자를 품에 안고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았다.
마흔셋의 남자들에게는 꿈속에서나 떠올릴만한 동화 같은 카페였다.
***
그들의 등장으로,
전당포 거리는 더욱 우중충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초입의 카페만은 언제나 흥겹고 밝았다.
그곳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말이다.
평생 물건의 가치를 정하는 일을 해온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에게 가장 적은 리스크를 계산하며 희망을 빌려줬다.
다들 정확히 알고는 있었다.
그 희망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쩌면 자신들은 거짓 장사를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물건을 받고, 그걸 담보로 절망을 빌려주고 있었으니까.
나름 법을 지키며 살아왔다는 생각으로 정당화 시킨 죄책감이었다.
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다 보니,
법 뒤에 숨어 외면했던 진실이 발가벗겨졌다.
자신들은 법을 지켰다 뿐이지,
인간적으로는 희대의 사기꾼들이었다.
‘대박 나실 겁니다.’
‘이걸로 열 배 튀겨서 오시죠!’
‘보통 반지 맡기신 분들은 한 번 제대로 터집니다.’
이 골목은, 절망에 빠진 이들을 더욱 깊은 절망으로 내모는 곳이었다.
어느 날부터, 트럼펫이 추가되었다.
“밤톨이 저 시키는 언제부터···.”
허구한 날 산꼭대기에서 불어대던 그 구성진 울림은 제법 저 카페의 음악에 어울렸다.
“허어. 많이 늘었네···.”
최대금은 문득 전당포 구석, 먼지 쌓인 캐비닛의 섹소폰을 떠올렸다.
“업종을 바꿔야 하나···.”
지금껏 절망임을 뻔히 알면서도, 희망으로 포장해 벌어온 돈이었다.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결심을 굳히자,
그간 이유도 알 수 없이 무거웠던 가슴이 한결 편해졌다.
***
일명 밤톨.
박태용은 내내 물어보고 싶었던 황당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타이밍을 잡고 있었다.
30대 중반이었던 그는 유명 재즈팀들의 연주만을 즐겨 보곤 했었다.
다만, 최근 화제가 된 ‘동물 가면 밴드’는 어쩌다 보게 되었고, 그 이후로 몇 번이나 돌려 보긴 했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추종자가 된 상태였다.
게시판 같은 걸 둘러보는 취미도 없었는데, 그들 덕에 토끼라는 커뮤니티에는 자주 들어가곤 했었다.
최근 한국 가수를 향한 관심은 그게 끝이었다.
사실, 대중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동네 동생들과 술 먹다가 간혹 들린 소식이 전부였었다.
‘형님. 거기 카페에 있는 사람들 말인데요.’
후배가 꺼낸 얘기는 얼토당토않은 말이었고, 그랬기에 피식 웃으며 흘려버렸었다.
말이 되는가.
이 강원도 구석에 그런 엄청난 스타가 둘이나 있다니.
뭣보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직접 페인트를 발라가며 카페를 연다고?
그것도 저렇게 작게?
다 맞다 쳐도, 그런 사람들이 연 카페에 이렇게 파리가 날릴 수는 없지 않은가.
팬도 어마어마할 텐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며칠 이들과 함께하며 알게 된 사실은,
이렇게 엄청난 실력의 사람들이 왜 이곳에? 라는 물음이었고,
결국 바로 오늘 후배가 얘기했던 영상들을 찾아본 것이다.
C2K?
확실히 닮았다.
하도 여기저기서 나왔기에 자신도 몇 번 들어봤던 곡들이 떠올랐다.
수수한 차림에 꾸미지 않은 모습이어서 뭔가 아리송했지만, 닮긴 닮았다.
J.H?
TV 출연 영상은 딱 두 개였다.
하지만, 그가 노래하는 그 두 개의 영상만으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저 해맑게 웃는 미소는 절대 흉내 낸다고 나올 표정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찾아보며 알게 된 사실은, C2K는 한물갔다고 해도, J.H는 지금 최고의 인기를 달리고 있는 그룹이었다.
자신이 그런 유명한 연예인들과 함께 공연하는 중이라고?
“저기 사장님들? 그러니까네···.”
강원도 순박한 청년이 거품을 물고 쓰러지기 2분 전의 일이었다.
***
SJ 엔터테인먼트의 직원들은 요즘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기획팀과 홍보팀에는 매일같이 지옥이 펼쳐졌고, 그와는 반대로 음반과 관련된 이들은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말이 평화로운 나날이지 조금 무료하기는 했다.
지금 회사는 J.H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중이었고, 방송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2위부터 나란히 줄지어 있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아직 세계적 아이돌인 차일드 애플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세 곡이 한 그룹이라고 치면 이미 넘어선 지 오래였다.
데뷔를 앞둔 아이돌의 작업도 어느 정도 끝났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구상 중이었지만 지금은 온 회사가 ‘축제’로 인해 바빠진 상태였다.
프로듀서들에게는 괜찮은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리키는 밤새 마우스로 노트를 찍고 있었다.
진혁의 등장은 세월에 무뎌졌던 그의 창작욕을 불타오르도록 만들었고, 마치 20대의 그 꿈 많은 청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누구보다 치열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적당히 타협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었다.
그 누구도 리키 본인이 원하는 감정과 느낌을 완벽히 소화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으니까.
‘이쯤이면 뭐···.’
앨범 작업의 마지막이면 여지없이 들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 추지훈과 진훈을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과정을 직접 지켜봤었다.
자신이 평소 바랐던 것 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완성도 있는 음원을 만들어냈다.
천재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말이다.
지금껏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이, 너무나도 쉽게 현실로 벌어진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간 다른 이는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 여기며 눌러뒀던 자신만의 감정을 마음껏 뿜어내는 중이었다.
마흔여덟에 다시 불타오르는 열정이라니.
요새는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가슴 떨리고 즐거웠다.
‘어?’
마우스 옆에서 느껴진 진동에 고개를 돌린 리키가 해맑게 웃었다.
이름이 뜬 것만으로도 그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사람.
언제나 재미난 일을 떠올리는 친구였다.
지금도 엄청난 일을 벌이고 있었으니까.
“어. 잘 지내냐?”
핸드폰 너머 목소리를 듣던 리키의 눈이 점점 커졌다.
“뭐··· 뭐? 여··· 열두 곡? 어······ 당장? 아니, 재미는 있겠다만···. 그래 알았어. 어 잘 지내고···.”
리키가 멍하니 끊어진 핸드폰을 바라봤다.
태각시로 간 지 얼마나 됐다고···.
꽉꽉 채운 정규 앨범이라니.
서둘러 메일을 열었다.
‘Human being?’
‘인간’이라는 타이틀이 보였다.
각각 감정을 뜻하는 타이틀이 늘어서 있었고, 헤드셋을 낀 리키는 첫 곡부터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한 시간이 넘는 플레이 타임 동안 그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미쳤다.’
태평하던 음반 제작팀에 불똥, 아니 불타오르는 운석이 떨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