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69
69화 같이 놀자
“종탁아, 너도 밴드 쓰지?”
“응.”
“야. 그 밴드 나도 좀 빌리면 안 될까? 우리 세션들 다른 행사랑 겹쳐서…….”
“어… 쪼매 어려울 수 있는데.”
“에이… 내 노래 쉽잖아. 그 자리에서 악보만 봐도 탁 나오지 않나?”
“우리 세션이 쪼매 까다로워가…….”
“네가 얘기해 주면 되는 거 아냐?”
“내 얘기가 먹힐 아들이 아닌데…….”
“에이, 그러지 말고, 저번엔 같이 했잖아?”
“미안하다, 그때 걔들이 아니라…….”
“음. MR 써야 하나.”
친구 남태진이 눈을 흘기자.
종탁이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 바로 다음 순서에 한 타임이 잡혀 있어서, 사실 밴드야 바로 붙여 줘도 상관없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쓸 수 있는 세션이 아니었다.
지금쯤 태각시로 오고 있을 친구들을 떠올리며 종탁이 입꼬리를 올렸다.
* * *
축제 이틀 전.
워낙 대형 축제기도 했고, 통제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미리 올 수 있는 아티스트들은 각자 배정된 트레일러에 이미 짐을 푼 상황이었다.
어차피 하루 전, 동선 확인과 몇몇 리허설도 잡혀 있었기 때문에, 먼저 도착한 아티스트들의 수는 상당했다.
일반인은 아직 리조트로 진입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트레일러 주변은 연예인들과 그 관계자들만 모여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끼리 회포를 풀기도 했고, 서로가 팬인 아티스트들은 셀카를 찍기도 했다.
어쩌면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일반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저들끼리 즐기는 일은 드물었기에, 왠지 모르게 들떠 있는 상태였다.
“저 위쪽 사운드 테스트하나?”
고급 슬로프 방향, 가장 위쪽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늘 리허설 없지?”
“그럴걸?”
“와, 소리가 짱짱하네.”
얘기를 나누던 이들은 대화를 멈추고 저 위에서 들리는 음악에 집중했다.
거세게 포효하는 기타 소리가 산 전체를 울렸다.
곧 베이스와 드럼 소리가 그 위에 얹어졌고, 신디사이저가 기타의 멜로디를 받쳤다.
그리고.
하늘을 찢을 듯한 고음이 터져 나왔다.
꽤 멋진 사운드라 여기며 고개를 끄덕이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반쯤 벌린 입은 닫히질 않았고, 단 한 소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 강렬한 노랫소리만을 남긴 채 사방이 조용해졌다.
세 소절 정도 흐른 후, 모든 소리가 갑자기 멎었고, 멍한 표정의 아티스트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어… 이거 그, Hb… 인간 밴드 노래 맞지?”
“맞아.”
“와… 진짜 누구지?”
“어린 친구들은 아닌 거 같아. 앨범에 실린 노래 하나하나의 울림 자체가 다르잖아.”
“한번 올라가 볼까?”
아티스트들에게는 이미 공개된 장소였고 미리 동선들을 봐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상태였기에, 서둘러 올라간다면 그들을 볼 수도 있었다.
케이블카 승강장을 바라봤지만, 멈춰 선 상태였다.
몇몇 아티스트가 서둘러 무빙워크 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아직 무빙워크는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고.
아무리 완만하게 만들었다고는 해도, 본래 스키장 슬로프였던 곳이라 경사가 상당했다.
제법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저 위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테일이 형이네?”
“와, 진짜 목소리가 달라지긴 했다.”
테일의 환상적인 노래를 들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테일도 1절 정도까지만 부르고는 노래를 멈췄다.
혹시라도 반대쪽 무빙워크로 누군가 내려오지는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며 가파른 경사면을 계속해서 올랐다.
“어? J.H다. 이거 진훈이형이지?”
“맞네. 방송 안 하더니 연습만 했나? 뭐 이렇게 잘해?”
“와, 중간 톤 진짜 예술이다.”
“이번엔 추지훈이네.”
“오늘 귀 호강하네.”
추지훈의 노래가 끝났고.
곧, 심장을 저미는 여자 보컬의 애절한 음색이 들려왔다.
“누구지?”
“어… 황지선? 지선이 누나?”
“맞는 거 같은데?”
“뭐야. 신곡이야?”
“그 누나 앨범 들어간다는 소리 들었어?”
“아니. 금시초문인데.”
“와, 요새 SJ 장난 없네.”
무려 4년 만에 듣게 된 그녀의 목소리에는, 세월만이 줄 수 있는 그 깊은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운드 체크일 뿐인데도, 절절하게 전해지는 그녀의 음성은, 안 그래도 경사면을 오르느라 빨라진 심장을 더욱 두근거리도록 만들었다.
테일을 제외하면, 모두 SJ 엔터테인먼트의 뮤지션들이었다.
한물갔다며 기피하는 기획사 중 하나였는데, 한순간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최고의 기획사로 급부상한 상태였다.
지금 무빙워크를 걷는 이들 중에선, 예전 서동구 대표의 권유를 뿌리쳤던 이들도 몇 있었다.
이제 와 후회해서 무얼 하겠는가.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절절한 그녀의 목소리를 음미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축제의 스테이지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결국 메인은 저 위에 자리한 세 개의 스테이지였다.
그리고 그 무대를 채울 주축은 SJ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가수들이었다.
불만이 나올 만도 했지만, 주최 측의 농간으로 자기들의 아티스트만 메인에 넣었다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저 위에 있는 이들은, 누구라도 무조건 인정해야만 하는 엄청난 라인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정상에 올라 헉헉대는 숨을 고르자,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지금껏.
이렇게 넓은 하늘을 본 적이 있었던가?
정상에서 둘러본 풍경은 대부분이 발아래에 있었다.
중간에 안개 비슷한 것을 통과했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산을 통과하는 구름이었다.
그제야 이곳이 얼마나 높은 곳인지 알게 된 이들이 상쾌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갑자기 펼쳐진 청량한 풍경에 매료되었던 이들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메인무대로 향했다.
“어? 여긴 웬일이야?”
테일이 반갑게 맞이했다.
“형, 여기 그 밴드 있었죠? 그… 인간 밴드.”
“아. 그거 듣고 온 거야?”
땀을 훔치던 이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테일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홀로 고고히 하늘을 가르며 저 멀리 사라져 가는 케이블카가 보였다.
“저건…….”
“하이로원 쪽으로 가는 케이블카야.”
황망한 눈빛의 그들이 고개를 저었고.
“그날 직접 봐. 진짜 엄청날 거니까.”
테일이 입꼬리를 올렸다.
* * *
축제 전날.
각 스테이지에 오를 뮤지션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이 축제는 한 무대를 끝내고 스케줄이 마무리되는 게 아니라, 다른 스테이지에 올라야 하는 상황도 있었고, 또 같은 무대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려야 하기도 했다.
이는 쉬는 타임 없이 무대들을 꽉꽉 채우기 위함이기도 했고, 아티스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무대를 배정해 주려는 의미도 있었다.
미리 둘러본 스테이지들은 상당히 훌륭했다.
역시 대기업이 손을 대니, 무대의 완성도는 높았고, 길목마다 설치된 스크린의 크기도 엄청났다.
동선도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도록 여러 갈래로 만들어 놨고, 경사면에 설치된 무대는 모든 관객이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였다.
경사면은 이게 유리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객석은.
스탠딩이었지만, 마치 극장과도 같은 배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몰릴 곳에는 평탄화 작업이 되어 있었고, 피크닉 존에서는 앉은 상태로도 어떤 방해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각 스테이지를 직접 확인한 이들은 모두가 엄지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대규모 뮤직 페스티벌이 한국에서 열리다니, 음악인들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 * *
오후가 되자.
통제하느라 가로막고 있던 진입로 차단기가 올라갔고.
2박 3일권을 산 사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사실 태각시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찬 상태였다.
태각시뿐만 아니라, 근방의 소도시들도 사람들로 붐볐다.
그중 가장 인기가 좋은 데는 정선이었는데, 카지노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렇게 지나던 길에서 갑자기 음악이 들려왔다.
낮은 건물들이 늘어선 골목.
그곳에선 각양각색의 음악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곳에 라이브 카페 거리가?’
저 위의 카지노를 빼면 볼것이 없는 도시라고 여겼기에, 별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곳에서 음악을 만나자 상당히 반가웠다.
어딘가에선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왔고, 저쪽에선 섹소폰이 울렸다.
몇몇 간판에는 전당포라는 글씨가 보이기도 했지만, 그 건물 스피커에서도 끈적한 블루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먼저 그 거리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간단한 음료와 칵테일이 주메뉴인 듯 보였고, 한 가게에 머물러야 하지는 않은 듯했다.
다들 손에 잔을 든 채, 각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을 들으며 자유롭게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소시지를 사 먹기도 했고, 꼬치를 사기도 했다.
그리 길지 않은 거리였지만, 곳곳에 마련된 무대를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상당했다.
실제 공연하는 카페는 몇 되지 않았지만, 분위기 자체가 참 자유로웠다.
오래된 건물들이 주는 느낌은 굉장히 한국적이었으면서도.
거리의 분위기는 상당히 이국적이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고 떠들다가 끈적한 재즈에 취해 몸을 흐느적거리며 블루스 하모니에 들썩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즐거움이었다.
곳곳에 어설픈 연주들이 넘쳐 났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욱 자유로운 골목이었다.
특히 어두운 통창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초입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때론 묵직한 베이스가 삶을 돌아보게도 했고, 경쾌한 멜로디가 앞으로의 희망을 느끼게 해 주기도 했다. 뭣보다 툭툭 튀어나오는 트럼펫의 느낌이 너무나도 좋았다.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카지노’는 지워진 상태였다.
그렇게.
밤은 흘러갔고.
축제의 날이 밝았다.
* * *
“어라? 해원 쌤 오늘 오프 아니었어?”
“오프 맞아요.”
“그럼 태각시 안 가? 팬클럽 회장이라면서?”
“그 J.H느님께 특명을 받으셨답니다.”
“응?”
그 뮤직 스테이션 이후, 한국병원 중환자실의 간호사들은 모두 진혁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미 사인도 다 받은 상태였고, 돌아가며 사진도 함께 찍었었다.
그중 가장 기절할 것처럼 좋아했던 정해원 간호사였기에, 수간호사님이 특별히 주말에 오프를 잡아 줬었다.
그런 그녀가 병원에 등장한 것이다.
한 손에는 태블릿을 들고.
* * *
“자,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요? 남편분이 미리 설명했나?”
해원이 태블릿에 연결된 헤드폰을 환자에게 씌워 줬다.
“먼저 오전에는 따님이 무대에 오를 거예요. 첫 무대라는데, 제가 다 떨리네요.”
헤드폰 볼륨을 알맞게 조절하고.
“진짜 재밌을 거예요. 애들도 뛰어놀고, 젊은 사람들도 열광하고, 엄마 아빠도 즐기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덩실덩실.”
곧, 한숨을 쉬고는.
“나도 가고 싶다.”
하지만.
시무룩한 표정을 지우며,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신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거니까.
무려, 그 진혁느님께서 직접 부탁한 일이었다.
“제가 생생하게 보여 드릴게요. 아, 보이지는 않으시니까, 설명해 드릴게요. 듣기만 하세요.”
방긋 웃으며.
공연장을 비추는 화면들을 띄웠다.
공사가 끝난 후, 잠시 닫혔던 사이트가 다시 열렸다.
전에는 티켓을 산 사람들에게만 공개되었다면, 이번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물론, 영상 시청은 유료였고 축제에 오지 못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도록, 공사 때보다 채널은 더욱 다양해졌다.
진혁이 적어 준 공연 리스트를 살폈다.
“그러니까 처음은 광장 쪽…….”
해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채널 목록을 확인했다.
분명 앨범도 내지 않았는데, 축제 라인업에 끼어 있었다.
‘아빠 찬스’라고 하기에는 좀 큰 무대였다.
‘뭔가 있겠지.’
서둘러 광장 쪽 채널을 터치했다.
인형 탈을 쓴 진행 요원들이 아이들과 뛰어놀고 있었다.
아직 메인 무대는 시작되지 않은 것 같았다.
다른 무대에선, 새끼 상어가 뛰어다니며 동요를 부르는 중이었고, 그 앞에 엉덩이맨 가면을 쓴 연기자가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 이제 올라오나 봐요.”
청바지에 하얀 패딩을 입은 여자아이가 무대로 총총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 * *
“와. 옛날 생각나네.”
“그러게, 추억 돋네.”
“오랜만에 보니까 재미는…….”
“뭐, 좀 유치하긴 해도…….”
“사… 사진 찍을까?”
“뭐… 네가 찍을 거면…….”
초등학생 두 명이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 인형을 앞에 두고 서로의 눈치를 봤다.
아무래도 유치한 짓을 한다며 놀려 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대화와는 달리, 어느새 은근슬쩍 사진 찍는 줄에 서 있던 아이들이었다.
엉덩이맨 옆에는 사진을 찍어 주는 다람쥐 인형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또래 친구들이 꽤 많았다. 이런저런 인형 탈을 쓴 진행 요원들이 있었는데.
곰 인형과 뛰어다니는 친구도 보였고, 덩치 큰 사자 인형의 갈기를 붙잡고 늘어진 친구도 있었다.
저쪽 구석에선 팝콘을 나눠 주는 표범 인형과 여기저기 사방을 깡총거리던 토끼 인형은 지친 듯 주저앉은 모습이었다.
갑자기.
-와! 많이 왔네! 우리 친구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초등학생들의 눈이 동그래지며, 고개가 돌아갔다.
깜깜했던 메인 무대의 스크린에 익숙한 화면이 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서둘러 달렸다.
-동물 친구들 얼른 올라와요.
하얀 패딩을 입은 누나가 해맑게 웃으며 손짓하자.
아이들과 놀던 동물 인형들이 후다닥 무대를 향해 달렸다.
-같이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