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7
7화. 베이시스트
“어. 지금 통화했는데, 오늘은 영등포 쪽에 있다나 봐. 우선 합정에서 만나자.”
상정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선하를 바라봤다.
“신났네?”
“아···.”
“장하는 가능성이 있어 보이긴 해도···. 충기는 어쩔 거야?”
상정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진혁이가 돌아왔어. 어떻게든 될 거야.”
“그랬으면 좋겠지만···.”
“갔다 올게. 기름은 새 걸로 갈아놨으니까 그냥 튀기면 되고, 오늘 토요일이라 주문 많을 텐데···.”
“얼른 움직이시지? 혼자 일해야 하는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선하가 상정의 정강이를 발로 톡톡 찼다.
“어···. 어. 알았어. 여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파이팅해라.”
선하가 주먹을 쥐어 보였다.
활짝 웃는 그녀의 얼굴에 상정의 심장이 두근댔다.
“어··· 누나. 사··· 사랑···.”
“아. 왜 이래!”
상정이 그녀를 꼭 안았다.
“오! 아빠 엄마 권태기 끝난 거야?”
그들의 행태를 가만히 바라보던 서준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혀를 내둘렀다.
둘이 화들짝 놀라 서로를 밀쳐냈다.
***
“와.”
“피아노가 이런 소리도 내네?”
“이거 락 아냐?”
“진짜 멋지다.”
태블릿의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아이들이 감탄했다.
“근데, 이게 즉흥이라고?”
“음···. 조금 애매하다.”
준호의 말에 이한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연출이야. 이거.”
밴드의 키보디스트이자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쳐온 현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겠지?”
“처음 만난 사람이랑 이렇게 맞출 수가 없어. 몇 번 연습은 해 봤을 거야.”
“근데 또, 기수형이 그런 걸로 구라 칠 형도 아니고···.”
“흠.”
“뭐 나중에 풀 영상 뜨면 확실해지겠지.”
태블릿 화면을 끈 준호가 벌떡 일어났다.
“연습 시작! 쪼! 잘하자!”
“넵!”
멤버들이 각자 자리로 갔고, 은서도 기타를 어깨에 걸쳤다.
화질도 좋지 않았고, 멀리서 찍혀 음질 상태도 최악이었다.
그런데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강렬한 분위기.
은서는 손에 쥔 피크를 바라봤다.
‘나도 저런 음악을 할 수 있을까?’
고개를 돌려 소파 위에 덩그러니 놓인 태블릿을 바라봤다.
뒷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영상 속 주인공이지만, 왠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졌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피아노 치는 사람이 있었던가?’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드럼이 쿵쿵대며 연주를 시작했고, 서둘러 악보를 바라보자, 머릿속을 떠돌던 의문은 곧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
영등포역.
백화점 옆으로 난 골목에서는 노숙인들의 만찬이 한창이었다.
[행복한 한 끼]지하철에서 나오는 출구에 걸린 배너.
그리고, 테이블 위에 준비된 밥과 반찬들.
식판을 들고 줄을 선 노숙인들이 보였다.
외국인 신부님이 유창한 한국말과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노숙인들을 안내했고,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서울역과 용산, 그리고 영등포역을 돌며 ‘행복한 밥차’를 운영하는 ‘강 요셉’ 신부님은 골목에 옹기종기 모인 노숙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자! 자! 얼추 다 돌린 거 같으니까 정리들 합시다.”
신부님의 말에 자원봉사자들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등포역사 측에서 이들에게 장소 사용을 허가한 시간은 정확히 세 시간.
어서 테이블을 정리해야 삼십 분이라도 자선공연을 펼칠 수 있었다.
오늘은 성당의 밴드가 오기로 한 날.
몇 분이라도 더 확보해야 했다.
“아저씨 이거요!”
“에이 씨부럴.”
여대생이 소리치자, 유난히 큰 덩치의 중년인이 툴툴대며 움직였다.
남은 음식을 가득 채운 양동이는 딱 봐도 엄청나게 무거워 보였다.
“에이씨. 더럽게 무겁네.”
눈 옆에 길게 자리한 상처를 꿈틀거리며 인상을 썼지만, 주변에 있는 여대생들은 겁을 먹기는커녕 생글거리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중년인이 드럼통 만 한 양동이를 번쩍 들었다.
“와! 진짜 장사다.”
“아저씨! 멋있어요!”
“오빠! 최고!”
“시끄러! 이년들아!”
중년인이 소리치자 여대생들이 꺄르륵대며 흩어졌다.
“어이! 영감! 힘도 못 쓰는 계집애들 말고, 남자애들 좀 데리고 오라니까.”
“분위기 칙칙해서 안 돼.”
“아! 힘쓰는 거, 내가 다 해야 하잖아!”
“덩치 뒀다 뭐해. 이렇게라도 써야지.”
“에이! 니미럴.”
신부님과 설전을 벌인 남자가 낑낑대며 역사 뒤쪽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신부님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 골목이 소란스러워졌다.
“에이! 씨발! 이 거지새끼들 뭐야!”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클러치백을 휘두르며, 노숙인들을 위협하는 무리가 보였다.
“아니! 사람 다니는 길목에서 처먹고 지랄이야! 확! 저리 안 꺼져?”
급기야 한 노숙인의 식판을 발로 차 엎어버린 남자가 위협하듯 주변을 노려봤다.
“에이씨 드럽게!”
바지에 국물이라도 튄 건지 손으로 탈탈 털던 남자가 노숙인을 재차 위협했다.
“하지 마세요!”
얼굴을 가리고 몸을 웅크린 노숙인 앞을 여대생이 막아섰다.
“이건 또 뭐야.”
“반반한데?”
양아치들이 비릿하게 웃으며 그녀를 둘러쌌다.
상황을 지켜보던 자원봉사자 하나가 발을 동동 굴렀다.
“야. 어떡해.”
“그러게···. 어떡하냐.”
“저 사람들 이제 큰일 났네.”
“응?”
걱정하듯 말했던 여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친구들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다.
“아. 지민이 너는 오늘 처음 나온 거지?”
“응.”
“저기 깡패들 이제 큰일 났다.”
“응?”
지민이라는 여자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 자원봉사자들이 고개를 저었다.
“신부님 가신다. 우리도 가까이 가서 구경하자.”
“구···구경?”
뭔가 기대하는 표정의 여자들이,
양아치들에게 다가가는 신부님의 뒤를 따랐다.
“형제님들. 곧 정리할 테니 가시던 길 가시지요.”
신부님이 다가서며 말했다.
“오! 외국인인데 한국말 존나 잘해!”
“저 옷 뭐였더라? 목사던가? 머리카락이 있으니 스님은 아니지?”
“등신아! 신부님이잖아.”
“우리도 밥이나 좀 주시지?”
“갑자기 배가 막 고프네?”
양아치들이 신부님을 놀리며 깔깔댔다.
강 요셉 신부님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 쉬었다.
뒤를 돌아보자, 자원봉사자들의 기대감 가득한 표정이 보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밥은 드리겠습니다. 다만, 소란은 여기까지 해 주시지요. 다치실 수도 있습니다.”
신부님이 나지막이 말하자, 양아치들이 배를 잡고 낄낄거렸다.
“뭐여. 협박이여? 응? 다 늙어 빠져서.”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신부님을 위협했지만, 나이 많은 외국인 신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순간 양아치들은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이런 식으로 겁박할 때, 보통의 여자들이 보이는 반응이 노숙자 앞에 선 여대생에게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한술 더 떠서 신부라는 인간의 뒤쪽에 보이는 여자들은 뭔가 기대하는 표정이지 않은가?
“뭐야. 이 분위기 씨발.”
적당히 겁만 주고 빠지려고 했는데, 반응이 이러니 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저씨! 밥 드릴게요. 이리 오세요.”
여자 하나가 방긋 웃으며 밥주걱을 흔들었고,
“오늘은 세 명이나 하느님의 품으로 가겠네.”
“아멘.”
급기야, 놀려대기까지.
“이런 씨불 년들이!”
양아치 하나가 여자들에게 성큼성큼 걸었다.
“뭐야? 밥 먹는대?”
갑자기 들려온 묵직한 음성에 양아치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자신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사내가 철로 된 양동이를 들고 있었다.
“밥 달래요! 여기 이분들이.”
사내의 눈썹이 살짝 까딱였다.
커다란 덩치에서 오는 위압감에 움찔한 양아치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뭣보다, 그 사내의 눈가에 있는 상처는 아무리 봐도 칼에 의한 상처인 듯 보였다.
아무리 봐도 일반인은 아니었다.
“음···.”
사내가 양아치들을 내려봤다.
“니들 행패 부렸냐?”
호랑이가 으르렁대며 앞에 서 있는 느낌.
양아치들은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소름에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여기 이분 식판 발로 찼어요.”
날카로운 고자질에 사내의 고개가 돌아갔다.
엎어진 식판과 노숙인을 발견한 그가 양동이를 내려놨다.
“이 새끼들이···.”
이를 부드득 갈던 그가 잠시 숨을 가다듬고, 신부님을 돌아봤다.
강 요셉 신부님이 고개를 저었다.
“넌 사람 때리면 안 돼.”
단호한 말에, 사내가 입을 쩝쩝거리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후···. 안 때릴 테니까 일루와.”
양아치들이 주변을 둘러봤다. 도망치려면 지금 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얼른 앞을 막아선 신부님을 밀치며···.
‘어라? 노인네 표정이 뭐가 이렇게···.’
아주 잠깐이었지만, 야차처럼 일그러진 그의 표정에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덩치 큰 사내가 호랑이였다면, 이 외국인 신부님은 마치 사자 같았다.
뒤늦게 몸을 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신부님과 엉킨 양아치의 몸이 붕 떴다.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한 그가 머리부터 땅으로 떨어졌다.
“아차.”
서둘러 그의 머리에 발을 대고, 등을 감싸 충격을 막은 신부님이 머리를 긁적였다.
“거, 바닥에 그렇게 꽂으면 사람 죽어요. 영감!”
“아. 나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형제님.”
신부님이 머쓱한 표정으로 사과했고,
바닥에 누운 양아치가 멍한 눈으로 올려봤다.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단번에 자신을 바닥에 꽂아버리다니···.
신부님도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니들 잘못하면 죽겠다. 얼른 이리 와. 저기 발로 찼던 놈은 바닥 치우고 밥 새로 갖다 드리고!”
덩치 큰 사내가 손짓하자 양아치들이 움찔했다.
확연하게 풍기는 아우라.
절대 거스를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잠시 눈알을 굴리기는 했지만,
앞에는 성인 남자를 가볍게 집어 던지는 외국인 신부님이 있고, 그 조금 뒤에는 호랑이 같은 사내가 밥주걱을 들고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밥 달라며? 밥 줄게. 이리 와.”
“네? 네!”
바닥에 엎어진 양아치가 후다닥 일어났고, 나머지 두 명이 달려왔다.
식판 한가득 밥을 푼 사내가 방긋 웃었다.
‘오늘 설거지는 쉴 수 있겠군.’
“남기지 말고, 많이 먹어!”
양아치들이 식판에 얼굴을 묻고 반찬 하나 없는 맨밥을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와. 오늘은 그냥 넘어갔네.”
“그러게, 요한 아저씨가 나타나는 바람에 그래.”
“오랜만에 신부님 날뛰는 거 볼 수 있었는데···.”
여대생들의 수군거림에 양아치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
“그···. 장하가 말이야. 지금 보호관찰 중이라서···.”
“응?”
“뭐, 딱히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폭행 사건이 좀 있었거든.”
진혁은 덩치 큰 다혈질 베이시스트를 떠올렸다.
다혈질이긴 해도,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거친 겉모습과는 달리 깊게 생각할 줄 아는 녀석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장하를 봤던 때가 15년 전.
그때 흥신소를 차렸다고 했던가?
“그래서 지금 밥 푸고 있다고?”
“응. 사회봉사명령 때문에, 신부님 한 분을 따라다녔는데, 봉사 기간 끝났는데도 계속 따라다니는 거 같더라.”
진혁이 방긋 웃었다.
그 큰 덩치로 밥을 푸고 있는 장면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도 가끔 연락만 주고받았지, 얼굴 본 지는 오래됐거든. 뭔가 피하는 거 같기도 하고···. 오늘도 찾아간다고는 말 안 했어.”
“괜찮아.”
“응?”
“같이 할 거야. 우리끼리 신나는 꼴은 절대로 못 볼 놈이니까.”
“아···. 하긴.”
창밖을 바라보는 진혁을 보며 상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덩치에 맞지 않게, 누구보다 외로움을 탔던 녀석이었다.
어쩌다가 자신을 빼고 멤버들끼리 움직이기라도 하면 난리가 났었다.
소외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친구였다.
‘그건 그렇고···, 문제는···.’
상정이 자기 손을 바라봤다.
‘적당히 기대하자.’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했지만, 옛날 일들이 떠오르자 자꾸만 심장이 벌컥거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상정의 손이 부들거리며 떨려왔다.
건반을 눌러본 지 이미 십 년이 넘었다.
얼마 전, 마트에서 잠시 만졌던 전자 피아노가 너무나도 생소했던 기억이 났다.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모처럼 다시 온 기회.
자신이 멤버들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었다.
눈을 감고,
허벅지 위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
“아! 영감! 성가는 성당에서나 들으시고!”
“야! 이놈아. 암만 그래도 트로트가 뭐냐?”
“거! 사람들 다 재울 일 있어?”
“성가도 흥겨운 거 많아. 이놈아!”
“그래서. 서울역에서 모인 성금이 얼마여. 응?”
“에잉.”
강 요셉 신부님이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어이! 트로트!”
두 사람의 말싸움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민희가 스피커 위 노트북에 손을 댔다.
“신부님! 트로트 틀어요?”
“몰라!”
“이 양반이 삶에 애환을 몰라요. 결혼을 안 해봤으니 알 수가 있나.”
“시끄러! 지도, 못 해봤으면서.”
“여자는 많이 만나 봤습니다.”
“에잉!”
곧, 싸구려 스피커에서 자글거리는 노이즈가 섞인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쿵짝. 쿵짝.
흥겨운 음악이 시작되자 노숙인들이 제멋대로 몸을 흔들었고, 장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지.’
성가로는 절대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장면.
“야. 니들도 흥 좀 내라.”
장하가 양아치들을 슬쩍 노려보며 말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양아치들이 서둘러 일어나, 노숙인들과 어우러져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흐뭇하게 웃는 장하의 눈에 작게 마련된 무대가 보였다.
스피커 옆, 세팅된 악기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장하가 눈 옆에 난 상처를 손가락으로 긁었다.
오늘은 성당 밴드가 연주하기로 한 날이었다.
벼르고 별러 마련한 자리였는데, 그들이 탄 승합차가 접촉사고가 나는 바람에 늦어졌다.
이 자리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30분밖에는 남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이렇게라도 놀아야 했다.
비스듬히 세워진 기타, 간소하게 세팅된 드럼, 스피커 뒤에 놓인 키보드.
그리고,
키보드에 기대어 있는 흰색 베이스 기타.
커다란 손이 자꾸만 움찔거렸다.
‘애들 연주하면 한 곡만 슬쩍 끼려고 했는데···.’
오늘 상정의 전화를 받아서인지 조금 싱숭생숭했다.
눈을 감자,
찬란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신나게 발광했던 기억.
25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선명한 그 광경이 떠오르자 가슴은 더욱 공허해졌다.
무대 가장 앞에서 자신들을 이끌던 천재는 사라진 지 오래다.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음을 알기에 더 아쉬운 날들.
장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너무나 그리웠던 두 친구가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