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73
73화 첫날 마지막 무대
“축하드립니다. 엄청나네요.”
“감사합니다.”
“흠. 이 정도면 이후의 사업도 구상이 다 끝나셨겠습니다.”
“대충 머릿속에는 그려 뒀는데, 아시잖습니까? 항상 계획대로는 되지 않는다는 거. 일단 수익을 봐야죠.”
리조트의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진봉구 이사장이 김충석 회장의 얼굴을 슬쩍 바라봤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예전에는 절대 보이지 않았던 그 눈빛이 슬쩍 비쳤기 때문이었다.
“하신 말씀과 눈빛이 서로 좀 다릅니다.”
“그렇습니까?”
김충석이 진봉구를 바라봤다.
직접 눈을 마주하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치열하리만큼 수익에 집착했고, 완벽한 성공이 예상되지 않으면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던 차가웠던 눈빛에, ‘꿈’의 색이 살짝 어려 있었다.
진봉구가 고개를 저었다.
“이거, 저희도 긴장해야겠습니다.”
“네?”
“계산만큼은 철저하던 분이 꿈까지 꾸게 되면 꽤 괜찮은 전략들이 나오기 시작하죠.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업가들은 대부분 몽상가이지 않습니까.”
“아… 제 눈빛이 그렇습니까?”
“확실히 변하셨군요.”
“변했다라… 글쎄요. 원래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제가 미뤄 뒀을 뿐.”
“미뤄 뒀다?”
“저는 오지 오스본을 좋아했습니다.”
“저는 스키드로우 팬이었습니다.”
“의외로군요.”
“뭐 그 당시엔 다들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세바스찬 바흐를 원망하셨겠군요.”
“얼굴만 잘생긴 쓰레기죠.”
두 재계의 거물이 피식하고 웃었다.
“제가 세상을 너무 팍팍하게 살았나 봅니다.”
“지금이라도 아셨으니 다행입니다.”
진봉구는 김충석의 눈가에 잡힌 주름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도 저리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던가.
앞으로 창천과의 관계에 대해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사업은 일단 접어 두고, 즐기시지요.”
“저는 이미 즐기고 있습니다. 창천이 손댄 축제이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셋째 아우분은…….”
“충기는 가장 꼭대기 무대에서 등장할 겁니다.”
“기대되는군요.”
“감사합니다.”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까딱하는 김충석의 모습에, 진봉구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나 언급을 피하던 그가 저리 아들 자랑하는 듯한 표정이라니.
아무래도 앞으로 그 밴드를 지원할 재벌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은 기정사실인 듯했다.
* * *
“이쪽으로!”
“네.”
세계적 다큐멘터리 감독 앨런 무어는, 아직 제니스가 남아 있는 무대를 포기하고, 동물 인형들을 쫓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자신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목격했던 기적을 Box-43이 일으킨 것은 맞지만, 그 시작만큼은 아까 무대에 올랐던 그 토끼였다.
이 다큐멘터리의 방향은 ‘기적’에 있었지, 제니스가 주인공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간과하고, 눈앞에 보이는 제니스의 행적만을 쫓았다니…….
자신이 포착해야 할 목표는 처음부터 한국에 있었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죄다 똑같은 인형들인데 어떻게 찾죠?”
“내가 아프리카에서 3년 만에 만난 기린도 알아보는 놈이야. 그 움직임, 자세, 풍기는 분위기, 모두 내 눈에 입력됐어.”
앨런은 한데 뭉쳤다가 흩어진 토끼 인형들을 하나씩 살폈다.
어쩌면.
자신의 최대 걸작은, 그렇게나 무시했던 ‘인간’에게서 나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 * *
무빙워크가 열렸고, 사람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세계적 아이돌 차일드 애플이 바로 이 타임이었기 때문이었다.
트로트 무대 앞에 있던 젊은이들이 반대쪽 슬로프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몇몇은 그대로 바로 앞의 무빙워크에 오르기도 했다.
이쪽도 – 국내 한정이었지만 – 그 세계적 스타 못지않은 밴드가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박재경’ 솔로가 아닌, ‘박재경 밴드’였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홍대 시절의 박재경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기에, 밴드 쪽 방향도 사람들은 꽤 많았다.
중급이 열리며 광장의 무대들은 잠시 소강상태를 맞았고,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가수들이 무대를 이어 가고 있었다.
무빙워크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그들의 무대를 맘껏 즐기며, 응원의 함성을 보내 주었기에 외롭지는 않았다.
의외인 부분은 트로트 무대였다.
분명 마지막까지도 자리에 앉아 있는 노인들이 꽤 될 줄 알았는데, 상당 부분 비어 있는 걸 보니 중급으로 이동한 수가 제법 되는 것 같았다.
곳곳에서는 노인과 젊음이 함께 어우러져 이동하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 * *
해원이 미간을 좁혔다.
터치하여 들어간 게시글들은 모두 내용 없이 비어 있었고, 그 아래 비밀 댓글들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일기장인가?’
혼자 쓰던 게시판이면 이해가 갔지만, 그래도 팬이 몇 존재한 것 같은데…….
‘아차. 시간이…….’
서둘러 태블릿의 화면을 살폈다.
‘어라? 트로트 화면으로 해 놨었네? 어? 저거 제니스 아냐? 뭔가 굉장한 걸 놓친 거 같은데?’
화면을 넘기려던 해원이 헤드폰의 볼륨을 확인하려고 환자의 얼굴을 본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입술의 모양이 살짝 변한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산소호흡기에 가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미소를 지으려 한 것 같기도 했다.
‘착각인가? 어? 차일드 애플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텅텅 비어 있던 중급 무대들 앞에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제 축제의 본 무대가 시작되는 듯했다.
* * *
[차일드 애플 무대에 저기 머리 흔들면서 서 있는 사람 칼리 맞지?]└오! 젠장! 진짜 안 어울려!
└쟤는 언제 저기에 꼈냐?
└제니스 보고 따라 한 듯.
└뭐 재미는 있네.
└근데, 요새 차일드 애플 무대 폼 제대로 오르지 않았나?
└얘네 한국어로 된 Keep up이 다시 핫 100에 들어왔던데?
└느낌 좋더라. 완전 다른 곡이야.
└아까 보니까 한국 아이돌들 뭔가 다 달라진 듯했어.
└나도 그렇게 느꼈는데, 뭐랄까 여유도 있고, 퍼포먼스도 뭔가 즉흥적인 느낌이 좋았어.
└오! 칼리가 훅 들어간다.
└이건 또 이거 나름대로 좋네.
└제법 어울리는데? 저 긁는 목소리?
└칼리도 잘 노네.
└와. 여러모로 볼 게 많다.
└반대쪽 8번 영상 밴드 봐 봐. 노래 엄청나게 잘해.
└박재경이네. 나 쟤 노래 해석본 있어. 근데 다른 노래네?
└차일드 애플을 상대로 비등한데? 관객 수가?
└오. 노래 좋다. 이거 박재경 노래야?
└한국인 친구 말로는 데뷔 전에 클럽에서 불렀던 거래.
└오, 한국 밴드 수준도 상당하네.
└난 곳곳에 있는 저 동물 머리들이 너무 귀여워.
└아까 토끼 때문에 관객석에서 토끼 귀만 보이면 깜짝깜짝 놀라.
└나도.
└어? 순차적으로 상급도 열리나 본데?
└사람들 움직인다.
└와, 축제 동선 잘 짰다. 줄 서면서 무대를 즐기는 거잖아?
└저긴 노인들도 되게 많아.
└애들도 있어.
└진짜 축제 환상적이네.
* * *
이쪽에선 박재경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반대쪽에선 차일드 애플의 퍼포먼스에 사람들이 환호를 질렀다.
가운데 난 오솔길을 따라 반대편의 무대로 향하는 이도 있었고, 지금 막 열린 상급 슬로프의 무대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이들도 있었다.
“와, 박재경 목소리가 좀 달라졌는데?”
“맞아. 뭔가 성숙해졌다고 해야 하나?”
“원래도 노래는 잘했는데, 지금은 깊이가 좀 다른 느낌이야.”
사람들 틈에서 박재경의 노래를 듣던 리키가 미간을 좁혔다.
지금 흘러나오는 ‘홀로 떠난’은 자신이 프로듀싱했던 그 노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 능력이 거기까지밖에 안 됐던 건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만들어 내고 싶었던 바로 그 ‘홀로 떠난’이, 지금 저 무대에서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TOD 기획사의 그 능글맞은 프로듀서 낙준이 떠올랐다.
‘역시 편견은 가져선 안 된다더니, 그 머저리 같던 놈이…….’
사실.
진혁의 작품인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해 버린 리키였다.
* * *
‘오, 느낌 좋은데?’
살짝 걱정했었는데, 갑자기 등장한 객원 싱어는 제법 자신들의 무대에 어울려 줬다.
‘아이돌 엄청나게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차일드 애플의 티안은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칼리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봤다.
예전에 어딘가의 시상식에서 자신들의 인사를 씹었던, 그 표독스러운 표정의 그를 잘 알고 있었기에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자신이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동선을 따라 자신들의 퍼포먼스까지 따라 했다.
‘술 먹었나?’
어쨌든, 꽤 재밌는 경험을 하는 중이었다.
‘아니, 그런데 왜 토끼 인형만 보면 가서 손은 내밀고 난리지?’
저 행동 하나는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 *
차일드 애플과 박재경 밴드가 포문을 열었고, 그대로 상급 슬로프에서도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래쪽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마친 아이돌과 트로트 가수들도, 사람들 틈에 섞여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즉석 팬 미팅도 벌어지곤 했다.
“오! 저 위에 테일이다!”
“뛰지 마! 애기들 있잖아!”
“아… 거기 위험해, 조심히 가.”
“너 거기 올라가면 안 돼!”
“이리 와, 누나랑 올라가자.”
“야. 누나는? 이모 아니야?”
“아! 뭐래!”
“꼬맹아, 너도 테일 좋아해?”
어른들이란 그랬다.
그들끼리만 움직일 때는 몰라도, 사이사이 아이들이 끼자 조금 더 조심하게 되었다.
질서를 지키는 데 더 신경 썼고, 상대방을 배려했다.
습관적으로 무단 횡단을 하던 길이었더라도, 아이가 빤히 보고 있으면 왠지 하기 어려운 것처럼.
아이들의 존재가 어른들을 더 바르게 만들었다.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무대를 찾아 움직였고, 길목 곳곳에서 먹거리를 사 먹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추울 만하면 등장한 온풍기는 몸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점심이 지나자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고, 안전 요원들이 바삐 뛰어다녔다.
사람들 틈에 섞여 무빙워크를 오르던 토끼 인형 하나가 뒤로 돌아 아래를 내려다봤다.
사람들로 만들어진 물결이 넘실대는 풍경은 실로 엄청났다.
심장이 두근댔다.
이 많은 사람이 음악으로 모이다니.
자신 혼자서는 절대로 해내지 못했을 일이었다.
‘역시 같이해야 더 재밌어.’
토끼 인형 속 진혁이 방긋 웃었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상상했던 풍경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세상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법이었다.
결국, 인간은 어울려야만 했다.
진혁이 밴드를 고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같이 놀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재밌기 마련이었으니까.
이 축제가 끝나고 난 후가 훨씬 더 기대되는 진혁이었다.
이렇게 세대를 초월한 어울림을 겪은 이들은 이 재미를 잊지 못할 것이었다.
‘더 재밌는 세상을 만들어야지.’
진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테일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추위를 녹였고, 말라 가는 풀밭 곳곳에 새싹을 피우는 것만 같았다.
말 그대로 ‘각성’한 테일은 엄청났다.
그의 목소리 하나하나에 실린 감정은 모두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반대편에서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는 임도유 밴드였다.
전국 투어를 마친 후 바로 달려왔지만, 역시 대한민국 록 밴드의 기둥은 나이답지 않게 생생했다.
테일의 무대가 끝나고 오랜만에 ‘가수’로서 등장한 마흔일곱의 ‘국민 여동생’은 그 나이만큼이나 깊이 있는 목소리를 선사했다.
이번에 처음 발표한 신곡은, 그녀의 목소리로 완성된 중년 모두의 자서전이었다.
그녀와 함께 나이 먹은 모두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돌아갈 수 없는 그때는 누구에게나 아련한 법이었으니까.
황지선의 깜짝 이벤트로는 무려 30년 전 열일곱 때 불렀던 데뷔 곡을 준비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중년인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음악은 각인된 기억과도 같았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 당시의 일들과 심정이 떠오르기 마련이었고, 그 울림은 상당히 뚜렷했다.
마흔여덟의 몸으로 생기발랄하게 선보인 댄스는 이들을 박장대소하도록 만들 생각이었겠지만.
어째선지 그들의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다.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빛나 보이는 그 시절이 너무나도 선명해졌기 때문이었다.
그 깜찍했던 얼굴에는 주름도 생겼고, 몸짓은 엉성했으며, 목소리도 많이 굵어졌다.
하지만 삼십 년을 건너뛰어 등장한 그녀의 ‘기쁜 날’은 너무나도 빛났고, 너무나도 깜찍했다.
“아! 재롱을 떨었으면, 좀 웃어 주죠? 사람 무안하게? 다 때려치워?”
물론, 수줍게 고개 숙이며 살풋 미소 짓던 그 앳된 소녀는 걸쭉한 입담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지만.
사람들이 깔깔대며 웃는 동안, 반대쪽 임도유의 목소리는 어느새 나비 계곡 제이의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명실상부한 현 대한민국 톱 밴드의 열정은, 노을 진 하늘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열기를 뿜어냈다.
어느 한 무대도 버릴 수 없는 축제가 정신없이 흘러갔고, 조금씩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축제 첫날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성큼 다가선 것이었다.
‘어? 벌써?’
사람들은 아쉬웠겠지만.
산속이라 해가 더 빨리 지기도 했고, 이 지역은 해가 떨어지고 나면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기에, 안전 문제가 가장 컸다.
대중교통이 전무했고, 숙소도 멀리 있어 셔틀을 이용해야만 했다.
그래서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무대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마지막 조명을 독차지한 무대를 향해 움직였다.
곳곳에 자리한 모든 스크린이 그 무대를 비췄기에, 위까지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도 첫날 마지막 무대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어? 차일드 애플이다.”
중급 슬로프에서 공연했던 그들이 메인스테이지에서 또 등장했다. 그리고 테일이 신곡을 부르며 걸어 나왔다.
“와! 테일이랑 사과 애들이랑 컬래버? 대박인데?”
“뭔가 잘 어울린다. 티안 랩이 예술인데?”
“빈이도 노래 잘한다.”
“이것도 음원 나오나? 다 씹어 먹겠는데?”
대한민국 대표 발라드 가수와 세계적 아이돌의 컬래버는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예상치 못한 즐거움.
serendipity.
사람들의 감정이 배가 되기 시작했다.
뜻밖의 어울림이 끝나갈 무렵, 그들의 무대 뒤 어두운 곳에서 또 다른 무대가 천천히 올라왔다.
실루엣으로 보아, 밴드가 자리한 것으로 추측되었다.
노래를 마친 테일이 뒤를 바라보며 양팔을 벌려 환영했고, 기타를 맨 임도유가 조명을 받으며 등장했다.
그가 기타를 치자, 허스키한 여성 보컬의 목소리가 울렸고, 모든 조명이 켜지며 무대 전체를 비췄다.
임도유 밴드의 키보드에 기대어 싱긋 웃던 황지선이 강렬한 샤우팅을 내질렀다.
차일드 애플의 랩이 베이스와 어울렸고, 테일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코러스로 들어갔다. 황지선의 샤우팅을 이어받은 임도유가 무리한 탓에 얼굴이 빨개졌고, 테일이 서둘러 그 뒤를 받쳤다.
임도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믿고 뒤를 맡길 수 있는 보컬이 있었기에, 평소라면 망설였을 소리를 마음껏 내지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질러야지.’
지금껏 해 왔던 공연을 통틀어 가장 겁 없는 열정적인 무대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의 끓어오르는 열기에 무대 전체가 달아올랐다.
그리고 빨간 기타를 맨 제이와 종탁이 어느새 그 무대에 동참하고 있었다.
장르를 뛰어넘는, 실로 굉장한 무대였다.
* * *
“놔! 나도 올라갈 거야.”
“좀 닥치고 있어! 도마뱀 새끼야. 나도 참고 있으니까.”
“참긴 왜 참아!”
“척. 이 새끼 입도 좀 막아 줄래? 저들의 무대를 감상하는 데 심각한 방해가 되네?”
“오케이.”
“읍! 훕!”
“아는 노래도 없는 놈이! 저들의 완벽한 무대를 망가뜨리려고?”
“웁! 웁!”
“제니스, 넌 이 무대 알고 있었어?”
“아니. 나도 여기 초대받은 건 아니라서.”
“와. 한국 뮤지션들 진짜로 잘 노는구나.”
“웁! 후웁!”
“기다려 봐. 아직 주인공이 안 나타났으니까.”
“주인공?”
“우웁?”
“응. 이 모든 것의 시작.”
“어? 저기 나오는 저 세 사람?”
척의 말에 제니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 아직.”
* * *
벅차오르는 심장을 붙들고 환호를 지르던 이들이, 임도유 밴드 옆으로 또 올라온 무대를 바라봤다.
그곳에도 밴드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앞의 세 사람에 집중했다.
방송에서 단 두 번 얼굴을 비춘 것만으로 테일의 견고한 왕좌를 위협했던 그 보컬 그룹이 등장한 것이었다.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와 함께.
JH 세 명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끝없이 펼쳐진 사람들이 잔잔하게 물결쳤고, 축제 현장 모든 스크린에 진혁의 얼굴이 담겼다.
정말로 즐거워 미칠 것 같은.
그의 해맑은 얼굴이 비치자.
모두의 얼굴이 그의 미소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