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75
75화 너의 자리
음원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그룹이었다.
얼굴도 알려지지 않았고, 이렇다 할 활동도 없었다.
하지만 한국 유명 평론가의 극찬과 함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한번 들어 본 이들은 그들의 음악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창작 계통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새롭게 만들었다고 여겼어도, 방대한 과거의 데이터 속에는 그 비슷한 것이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하물며, 5분 이내에 대중을 사로잡아야만 하는 음악계에서 그 범위는 엄청나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이란, 그 오랜 기간 발전하며 누적되어 누군가 이미 시도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현대의 대중문화 예술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수록 더더욱 ‘표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누구도 떠올리지 못한 발상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대부분 되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에 시도하지 않았었을 뿐이었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들려 주고 싶다는 욕구가 시작이었을 터.
단지 새롭기만 하고, 누군가 함께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저 소음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이 신인 밴드는 달랐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기존의 음악 장르를 초월한 각각의 음원은.
더 이상 완벽하게 순수한 창작은 존재할 수 없을 거라는, 음악계의 변명을 가뿐히 부정해 버렸다.
모든 것이 새로웠으면서도.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밴드명이 그대로 들어간 평론가의 글은, 그들의 음악을 정확히 정의했다.
세대, 장르, 취향, 성별, 인종을 떠나.
모두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앨범이 탄생한 것이었다.
그렇게 극찬한 음악이었는데.
‘전 남편 찬스’로 메인 무대 가장 앞에 설 수 있었던, 대중음악 평론가 민정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자신이 사심 가득 담아 작성한 평론 따위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을, 어마어마한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디지털로 변환되어 작은 스피커 또는 이어폰으로 들어서는 절대로 느끼지 못할, 엄청난 감정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지금 펼쳐지는 이 무대 위의 음악을 만난 이상, 평론하기 위해 몇 번이고 들었던 그들의 디지털 음원은.
완벽한 가짜가 되어 버렸다.
25년 전 친구의 손에 이끌려 처음 갔던, 그 홍대 라이브 클럽 앞에서 했던 언니의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얘네는 라이브가 진짜야.’
모두 마흔이 넘었는데.
어째서, 그때보다 훨씬 더 강렬해진 거지?
민정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그 뛰는 심장 속에서.
25년 전 꿈 많던 여대생이 나타났다.
삶에 치어 미뤄 뒀던 그 젊음의 열정이 ‘나 아직 여기 있었어.’라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 * *
[뭐야. 게시판 죽었어?]└너, 영상 안 보는 애지?
└응?
└영상 보고 있다면 키보드 두드릴 정신이 없을 거라던데?
└너는?
└난 지금 결제 중.
└게시판에 글이 하나도 안 올라와.
└조금 전부터 그랬어. Hb 나왔다며 잠깐 떠들썩하더니 싹 사라졌어. 뭐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 많던 애들이 다 없어졌지? 아. 나 로딩 끝났다. 내가 확인하고 말해 줄게.
└응. 땡큐.
└어이.
└이봐, 친구. 영상이 어떤데 그래?
└헤이!
└말해 준다면서.
└어딜 간 거야!
└젠장! 영상 사이트가 어디랬더라?
분당 수백 개씩 갱신되던 게시판이 갑자기 조용해져 버렸다.
* * *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던 제니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들이 낸 앨범 속 모든 곡을 들었고.
그 음원을 훨씬 뛰어넘을 거라는 예상도 했다.
분명 ‘응수동 축제’ 이상의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 기대했다.
그랬기에,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오! 젠장! 나의 신이여!”
무릎까지 꿇고 양팔을 펼쳐 그들을 찬양하는 – 자신 못지않은 악동인 – 칼리의 모습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무대였다.
자신도 기도하듯 모은 손이 그대로이지 않은가.
세계 수많은 축제와 콘서트에 초대되어, VIP 관객으로서의 경험만큼은 누구보다 엄청난 ‘척’ 역시, 저 우람한 몸으로 방방 뛰어 대는 중이었다.
지금껏 저 친구가 누군가의 공연에서 저런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록? EDM? 얼터너티브? 힙합? 프로그레시브? 로큰롤?
어떤 것으로 정의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질 않았다.
따지고 보면.
장르라는 것은 소비자가 선택하기 좋도록 비슷한 물건들을 묶어 놓은 것과 같았다.
그렇게 사람들은 장르라는 분류에 갇히게 되었다.
취향이 갈리게 되었고, 찾던 장르를 또 찾게 되었으며, 심하게는 다른 장르를 배척하기도 했다.
어쩌면 편의적인 부분에 길들어지며 박탈된 자유일 수도 있었다.
굳이 머리 아프게 나누지 않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찾을 수 있다면, 분류 자체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이들의 음악을 분류하자면.
모든 대중적 장르의 최상위를 차지할 것이었다.
이미 제니스의 머릿속에서 응수동 토끼는 지워진 상태였다.
그때의 그는 지금 저 열기의 채 반도 뿜어내지 않았었으니까.
‘뭐가 다른 거지?’
제니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때는 이제 막 뭔가에 눈을 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철학적 의지가 깊게 담겨 있었다면.
지금은?
무대 위 다른 아티스트들과 뒤엉켜 뛰어다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저 해맑은 미소.
‘아.’
지금의 그는 진정 자신의 감정만을 즐기는 상태였다.
가면에 가려지지 않은 그의 표정은 정말로 자유로웠다.
굳이 메시지를 남기려 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지도 않았다.
확신?
자신이 진짜로 즐겁다면, 그걸 바라보는 관객들도 분명히 재밌을 거라는 확신.
담장 너머 왁자지껄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면, 그 누구라도 고개를 내밀어 확인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마음일 터.
누가 밀거나 당기지 않아도, 알아서 그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어질 것이다.
억지로 끌려간 세계보다는 자발적으로 들어간 것이 훨씬 더 즐겁고, 동화되기 쉬울 테니까.
그렇게 기웃거리다 무심코 발을 들인 사람들에게 또 외치겠지.
-다 같이 놀자!
제니스가 서둘러 칼리의 덜미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일단, 놀아. 찬양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아.”
칼리의 어깨에 팔을 두른 뒤, 주먹을 하늘로 뻗으며 뛰어올랐다.
“우리의 신이 놀자고 하시잖아.”
지금은 골치 아픈 생각 따위는 집어치우고 마음껏 놀아야 할 때였다.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놀이터였으니까.
* * *
“아니! 선생님! 분명히 동공에 반응이 있었다니까요?”
-그래서, 응급이야? 그게?
핸드폰을 귀에 댄 해원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건…….”
-당직 인턴이 확인했고, 월요일에 MRI 찍어 봐야 뭐가 나와도 나올 거란 판단이야. 지금 coma 2년차야. 반사작용 조금으로 semicoma 상태가 된다고 해도 크게 호전되기는 어렵다는 거 몰라? 지금 내가 가서 뭐 머리라도 열어 봐? 영상으로 확인하기 전에 괜히 보호자한테 전화해서 호들갑 떨기만 해 봐. 나 오랜만에 주말 오프다. 적당히 해.
통화가 끊어졌고, 해원이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자신이 잡고 있던 손가락에서 미약한 힘이 느껴졌고, 서둘러 일어나 확인한 동공에서 미세한 반응이 확인됐었다.
환자가 중환자실로 들어온 후 지난 2년 사이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잔뜩 흥분했던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아내이기도 했으니, 조금 사적인 감정이 실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 식물인간 판정까지 가기 직전이었던 – 자기 환자가 반사 반응을 보였으면, 좀 기뻐는 해야 하지 않나?
‘그냥 보호자한테 확 찔러 버려?’
지금 통화한 뇌 의학 전문의는, 이 환자의 보호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잘 알지 못했다.
음악이라고는 클래식이 전부라고 여기는 꽉 막힌 사람이었으니까.
대중음악을 대놓고 싸구려 취급하고는 했었다.
“아차!”
환자의 상태에 흥분해서 뛰쳐나온 탓에.
그 엄청난 무대를 깜빡했다.
서둘러 집중 치료실로 들어가 태블릿 화면을 확인한 그녀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이미 무대가 끝난 후였기 때문이었다.
“에잇! 환자가 중요한 거지!”
애써 아쉬움을 달래며 환자의 머리에 걸친 헤드폰을 빼어 냈다.
“어땠어요? 엄청 재밌었죠? 남편분 진짜 굉장해요! 정말 부럽다. 얼른 깨어나셔야죠! 저 노래를 매일 생으로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와, 생각만 해도 설레네. 저 목소리로 ‘밥 줘!’ 하고 소리친대도 사랑스러울 거 같아. 거기다, 따님도!”
상상만 해도 아찔한 행복이었다.
저 무대 위에 있는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다니.
“진짜… 부럽다.”
황홀한 표정의 해원이 고개를 저으며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얼른 일어나세요!”
깨어나기만 한다면,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아내가 되어 모두의 부러움을 살 테니까.
이 병원의 담당의는 글렀다.
모든 걸 고자질하게 된다면, 병원을 옮길 수도 있었다.
지금 그가 가진 능력 정도면, 이곳보다 훨씬 더 좋은 병원으로 갈 수 있을 테니까.
‘아…….’
병원을 옮기게 된다면.
더 이상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에잇! 환자가 중요…….’
순간적으로 본인의 경력과 스펙을 계산해 봤고, 이직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시작했다.
* * *
‘Human being – 인간’의 환상적인 무대를 끝으로 모든 조명이 관객들을 향했다.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재밌게 놀아 댔던 사람들의 얼굴이 반짝였다.
스마트 워치에 표시된 기온은 영상 3도에 불과했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땀이 흥건했다.
아쉬움조차 남기지 않고 체력을 탈탈 털려 버린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의 일정이 모두 끝났음에도 슬로프를 내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인간 밴드가 선사해 준 무대는, 새로운 즐거움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듬뿍 심어 줬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매일같이 새로울 것이고, 재밌는 일들로 가득할 것이다.
지금 손을 잡은,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함께 어울리다 보면 또 다른 뜻밖의 즐거움을 만나게 될 것이었다.
뭣보다 오늘 단 세 곡만을 부른 그 밴드가 내일은 더 많은 노래를 불러 준다고 했다.
그 기대감은 지금의 아쉬움을 그대로 묻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발걸음은 전혀 무겁지 않았다.
“몸이 떨리시는 분들은 손을 들어 주세요!”
“무빙워크는 노약자분들께 양보해 주세요!”
“힘드신 분들은 온풍기 근처에서 쉬셔야 합니다. 체온이 내려가지 않게 조심하세요.”
“다른 지역 숙소 셔틀은 아래쪽 주차장에 있습니다.”
“하이로원 숙박하시는 분들은 그대로 케이블카 타시면 됩니다.”
안전 요원들이 노인들을 주시하며 움직였고, 곳곳에 설치된 온풍기들은 보행 통로의 추위를 밀어냈다.
모든 조명이 길을 비추었고, 하늘에 아직도 떠 있는 불꽃 LED가 있었기에 밤이 되었어도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젊은이들은 알아서 아이들과 노인들을 챙겼고, 혼잡한 무빙워크보다는 보행로를 택했다.
가득했던 사람들이 질서 있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 *
“후아.”
무대 뒤쪽에 주저앉은 진혁이 하늘 위 반짝이는 LED 불꽃을 바라봤다.
“어때요. 다들? 재밌었죠?”
진혁을 중심으로 빙 둘러선 출연진들이 활짝 웃었다.
땀에 범벅된 그가 해맑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계획하고 상상했을 때도 꽤 재밌었는데.
실제로 함께해 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불꽃에 반짝이던 사람들의 물결이 떠오르자 심장이 쿵쾅댔다.
그녀도 듣고 느꼈을까?
이렇게 재밌는 걸 두고 누워 있겠다고?
‘어림도 없지.’
뭐, 이 정도로도 안 되면.
다음번엔 더 재밌게 놀아 주고.
벌떡 일어난 진혁이 엉덩이를 털었다.
방금까지 날뛰었던 무대 위로 올라갔다.
열기로 가득했던 텅 빈 관객석을 둘러봤다.
시선을 조금씩 당겼고.
무대 바로 앞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멈췄다.
열일곱 소녀가 반짝이는 눈빛을 하고, 신나게 뛰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아련하게 그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진혁의 입에, 또다시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걸렸다.
‘빨리 일어나, 네 자리 찾아야지.’
그녀가 일어날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조금 더 빨리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다른 지역에 숙박을 잡은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갔고.
“어? 광장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어.”
“아깐 없었는데?”
“캠프파이어 하나 봐!”
“와! 이거 뭐지?”
“잠깐, 저기 대형 천막에 번쩍이는 조명은 뭐지?”
“빨리 가 보자.”
날은 깜깜해졌지만, 사실 잠이 들기엔 이른 시간이기는 했다.
문득 내다본 창밖 하늘의 별들은 너무나도 반짝였다.
그렇게나 흥분한 후였기에, 숙소에만 있기에는 정말로 아쉬운 밤이었다.
그래서 광장으로 빠져나온 몇몇 사람이,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곧, 선착순으로 사전 예약을 했던 사람들의 핸드폰에 문자가 하나씩 도착했다.
[이 축제가 성사되도록 도와주신 분들께만 드리는 깜짝 선물이 준비되었습니다. 조금 더 놀아 볼까요? -하늘 아래 음악 축제-]K2리조트.
골프장의 글램핑.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배추밭에 설치된 천막들.
아쉬움에 눈이 말똥말똥했던 사람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