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77
77화 인맥의 격
짧지만 여운이 가득 남은 ‘깜짝 선물’이 끝났고, 사람들은 맑은 공기를 맘껏 마시며 숯이 되어 일렁이는 모닥불의 마지막을 즐겼다.
깜짝 공연은 끝났지만, 여기저기서 형식 없는 팬 미팅이 이뤄지는 중이었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대비해, 밤이 되었음에도 안전 요원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축제의 첫날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 * *
태각시를 중심으로, 바다 쪽으로는 삼척과 동해가 있었고, 내륙으로는 영월과 정선이 있었다.
모든 도시의 인구를 다 합쳐도 26만 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점점 큰 도시로 빠져나갔고, 새로 들어오는 유입은 거의 없었다.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드는 상황이었기에, 몇몇 도시는 통합 계획안까지 나온 상태였다.
그렇게.
비어 있던 도시들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
본래 그들의 인구보다 더 많은 방문객이 시내를 가득 채웠고, 시즌도 아닌데 숙박 시설들은 모두 만실이었다.
티켓을 계획한 초반, 숙박 예약 업체와 윤석준이 긴밀하게 진행한 가격 정찰제 때문에, 숙박 요금은 본래 비수기 요금으로 고정된 상태였다.
상인들에게는 앞으로 지속될 축제를 약속했고, 좋은 이미지를 부탁했기에 대목을 잡았다 하면 기승을 부렸던 바가지요금도 사라졌다.
“와! 회가 이렇게 싸?”
“장난 아니다!”
“여기 오징어 좀 잔뜩 사 가야겠어!”
“잡어 구이 최고!”
“여기도 볼거리 많아.”
“밤바다 좋다.”
“다음 휴가는 이쪽으로 잡아야지.”
“숙박 멀리 잡혀서 짜증 났는데, 오히려 더 좋네!”
“여기 회는 살살 녹아!”
‘깜짝 선물’을 놓친 사람들도, 나름 만족스러운 밤을 보내는 중이었다.
천천히 말라 가던 도시들이었는데.
생기가 넘쳐흘렀다.
* * *
“어? 서준 엄마?”
“아. 민기네도 왔어요?”
광장을 서성이던 주영이 오랜만에 만난 학부모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갔다.
“와. 민기가 티켓을 사지 않았다고 하던데, 어떻게 여기서 다 보네?”
“뭐, 어쩌다가 보니…….”
“웃돈 주고 산 거야?”
“그게…….”
민기와 서준이는 태권도 도장을 같이 다녔고, 둘 다 성격이 있어서인지 간혹 부딪치고는 했다.
그래서 약간 껄끄러운 상대였기에, 주영은 서준이 집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는 했었다.
“그, 치킨집도 접었다면서?”
“아. 다른 걸 좀 한다고…….”
들려오는 소문 중에는 대출을 엄청나게 받았다는 말도 있었다.
조금 더 허름한 동네로 이사했다는 소식까지 들었기에, 다들 쉬쉬하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사정이 좋지 않은 듯했다.
“어떻게 여기 티켓을 구했네? 많이 비쌌을 텐데?”
“아는 사람이 있어서요.”
“아, 그렇구나. 나도 우리 남편 덕에 좋은 구경했지 뭐야. 저쪽에 가수들만 있는 주차장 있지? 조금 이따가 거기도 갈 거야. 호호.”
“아… 네.”
‘이것 봐라?’
주영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이쯤 하면 예의상 되물어 보기는 해야 하지 않나?
“우리 남편이 예강 기획사 이사로 있잖아. 그래서 이따가 불러 주기로 했거든.”
“아. AXIS요?”
“응. 잘 아네? 가끔 기획사 가면, 서로 인사도 하고 그러는 사이거든.”
“그 그룹, 아까도 잘하던데요?”
“걔네 다 우리 남편이 키운 거지.”
“아… 네.”
‘뭐 이렇게 반응이 미지근하지?’
차일드 애플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알아주는 아이돌이 아니었던가.
“이따가 거기에 같이 갈래? 연예인들한테 사인도 좀 받고, 서준이도 엄청나게 좋아할 텐데?”
“아…….”
주영은 별로 내세울 만한 것도 없으면서, 제법 뻣뻣하게 구는 서준이 엄마가 못마땅했다.
그래도 학부모들 모임을 하면 보통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재개발에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며 그 동네도 치맛바람이 꽤 거세진 상태였다.
어른들은 어른들 나름대로 등급이 나뉘었고, 은근히 매겨진 어른들의 등급은 알게 모르게 말투에서 묻어났다.
주영의 나이가 서준 엄마의 나이보다 두 살 더 많기는 했다.
하지만 상대가 높임말을 쓰는 데도 반말을 쓸 정도까지 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은근히 하대하는 듯한 저 말투는.
매번 서준이에게 싸움을 걸고도, 되려 맞고 오는 아들을 몇 번 보고 나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정황상 민기가 더 잘못한 상황이 대부분이라서 큰소리는 낼 수 없었기에, 이렇게라도 분풀이를 하는 것이기도 했다.
별로 관리도 받지 않았으면서도, 제법 괜찮은 외모를 유지하는 것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서로의 ‘등급’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톡톡히 알려 줄 생각이었다.
덤으로, 아들의 어깨에도 제법 힘이 들어갈 터였다.
고민하는 듯한 서준 엄마의 얼굴에.
주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 *
‘아… 이 망할 아줌마가…….’
하필이면 여기서 이 짜증 나는 얼굴을 마주칠 줄이야.
그렇지만.
‘오예!’
선하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요. 저도 연예인들 좀 알아요.”
“응? 아… 뭐 특별히 좋아하는 가수 있어? 우리 애 아빠한테 얘기해 줄까?”
“뭐, 그러실 필요까지는…….”
“아냐. 아냐. 남편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지. 누구 보고 싶어? 응?”
“글쎄요. 가서 봐야 알겠어요.”
“그래그래. 어? 애 아빠 전화 온다.”
선하는 짐짓 거만한 표정으로 통화하는 민기 엄마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 * *
“야. 우리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
“우리 아빠도 대단하거든?”
“뭐, 너희 집 치킨이 맛있긴 하지. 근데, 치킨집 이제 안 하잖아?”
“음…….”
서준이 입을 꾹 닫았다. 엄마가 얘기하지 말라고 했지만, 거만한 얼굴을 보니 짜증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참자.’
“너 가서 막 가수들한테 너무 귀찮게 하면 안 돼.”
“음…….”
“아닌 척하기는, 속으로는 엄청 좋지? 응? 여기서 나랑 만나는 바람에 가수들도 직접 보는 거잖아?”
“그렇다고 치자.”
“에? 너 안 데려간다?”
“음…….”
서준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얘! 민기야! 친구한테 그렇게 굴면 어떡해!”
앞서 걷던 엄마가 소리치자 민기의 입이 쑥 나왔다.
어깨에 힘 좀 주라고 할 때는 언제고.
어쨌거나, 도착하기만 하면 잔뜩 거드름을 피워 줄 생각이었다.
민기의 입꼬리가 쑥 올라갔다.
* * *
자유로운 광장을 마음껏 즐긴 연예인들이, 트레일러가 모여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들만을 위한 공간에 들어선 이들은, 꺼져 가는 모닥불 근처에 모인 사람들을 발견했고, 쭈뼛거리며 멈춰 섰다.
이 축제의 주역들이 한가운데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도 붙이기 힘든 대선배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과 밴드.
그리고 누가 뭐래도 이 축제의 주인공인 Human being까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떠한 아우라가 그 공간에 펼쳐져 있었다.
이들 중에는 가족을 초대한 이도 있었고, 지인을 데려오기도 했는데.
따라온 사람들 역시 그 공간에서만 흐르는 뭔가 다른 공기를 충분히 감지할 정도였다.
“어. 왔어?”
“네. 이사님.”
“아, 우리 와이프가 지인을 만났다는데, 같이 올 거야.”
“네.”
“야. 근데 저기 저렇게 모여 있으니까 어마어마하다 야.”
“그렇네요. 말도 못 붙이겠어요.”
“급이 다르지. 암. 급이 달라.”
“에이. 그래도 소속사 가수 앞에서…….”
“어? 와이프다.”
예강 기획사의 이사가 화들짝 놀라며 입구로 달려갔고, AXIS의 민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사님의 사모님 옆에서 같이 걸어오는 다른 사람이 보였다.
또, 지인에게 잔뜩 자랑하면서 어깨에 힘을 줄 생각일 터.
뭐, 기획사 이사님의 부탁이었기에, 적당히 안내만 하며 체면치레나 해 주면 될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모닥불 쪽을 바라봤다.
‘나도 언젠가…….’
민결이 주먹을 꽉 쥐었다.
* * *
광장을 신나게 돌아다니며 원 없이 놀고 난 은서가 숙소가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간 정체를 숨겨 왔다는 것은 중학생 여자아이에게는 참 힘든 일이었다.
이맘때 아이는 사람들 앞에서 마구 뽐내고 싶었을 터.
그 소원을 제대로 푼 날이었다.
돌아다니다 마주친 초등학생들의 그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입술이 씰룩거렸다.
마치 여신을 대하듯 쭈뼛거리는 꼬맹이들이라니.
제법 본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 쓸데없이 초딩들 주변을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이런 게 연예인의 삶이군.’
은서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
이렇게 대단한 누님을 마귀할멈이라고 놀려 대는 꼬맹이의 뒤통수가 보였다.
“야! 안서준!”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아주 조금만 때려야지.
은서가 신나게 달렸다.
* * *
뒤늦게 컴퍼니에 합류한, ‘박재경 밴드’의 키보디스트와 담소를 나누던 상정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누군가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자신이 쓰는 신디사이저의 전 주인이 박재경 밴드의 키보디스트였다니.
그날의 추태가 생각나 얼굴이 빨개졌지만,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그의 말에 광대가 하늘로 승천한 상태였다.
“어머! 서준이 엄마, 그쪽은…….”
‘응?’
고개를 돌리자 선하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좀…….
평소 알던 아내의 모습과는 뭔가 달랐다.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턱을 잔뜩 세운 생소한 표정의 선하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 여보?”
갑자기 팔짱을 끼더니.
“서준이 친구 민기 엄마야, 인사해.”
“응? 아… 안녕하세요?”
“여긴 우리 남편이요.”
“어… 그… 그러니까 치킨집…….”
“아! 치킨은 접었습니다.”
평소 밖에서는 손도 잘 안 잡던 아내였는데, 팔짱까지 끼고 어깨에 얼굴을 기대 오자 상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사람은 성공하고 봐야 했다.
“어? 누나 왔어? 근데 거긴 왜 달라붙어 있어? 안 어울리게?”
“어? 호… 혹시 C2K?”
선하의 옆에 선 여자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아. 지금은 그 이름이 아니라, 인간 밴드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는 김충기입니다.”
충기가 머리를 긁적이며 방긋 웃었다.
“아무튼, 이따 서준이 데리고 저쪽으로 와. 내가 꼬치 구워 놨어.”
“응. 알았어.”
“근데, 표정은 또 왜 그래?”
“가, 얼른.”
평소와는 뭔가 다른 분위기의 표정을 짓는 선하의 얼굴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충기가 모닥불 쪽으로 움직였다.
“어? 안녕하세요!”
모닥불 앞에서 멤버들과 앉아 있던 박재경이 벌떡 일어나 선하에게 인사했다.
그날 첫 방문 이후로 몇 번 더 진혁 선생님의 집에 들렀었고, 그때마다 음료와 다과를 챙겨 주시던 그 집의 실세였기에, 깍듯하게 허리를 굽혔다.
“응. 아까 공연 잘 봤어. 잘하더라.”
“감사합니다!”
“왔냐?”
“어. 오빠도 있었네? 아까 민정이가 찾던데?”
“아… 맞다! 핸드폰…….”
임도유가 벌떡 일어나 자신의 트레일러로 달렸다.
“둘이 아직도 뜨겁네? 꼭 이런 자리에서까지 그렇게 달라붙어 있어야 하냐? 솔로 서럽게?”
“아, 언니? 정말 오랜만이에요!”
“손님? 이따 한잔하자, 오랜만에.”
“네!”
맥주를 챙겨 오던 황지선이 눈을 흘기며 지나갔다.
“서… 서준이 엄마?”
민기 엄마라는 사람이 더듬거리며 선하를 찾자, 상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 학부모의 입이 왜 저렇게 벌어져 있는 거지?’
단순히 연예인들을 보게 된 게 너무 좋아서 지어졌다기엔, 뭔가 오묘한 표정이었다.
* * *
“누… 누나. 사… 사인 좀…….”
“아. 서준이 친구라고 했으니까, 사진도 같이 찍을까?”
“가… 감사합니다!”
“우리 누나 이뻐?”
“응? 아… 어.”
민기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맨날 같이 지내서 그런가… 잘 모르겠던데.”
“안서준, 그쯤 해라.”
“뭐, 오늘 무대 위에서는 조금 이쁜 거 같긴 하더라.”
‘얼레? 웬일이래, 이 꼬맹이가?’
곧 죽어도 이쁘단 소리는 절대로 하지 않았던 서준이였기에, 은서의 눈이 동그래졌다.
“너무 귀찮게는 하지 마. 우리 누나 바쁘니까.”
“어? 어… 알았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서준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 * *
모닥불이 완전히 꺼졌고, 잔불도 없이 재만 남았지만, 그 주변의 아티스트들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헤드폰을 낀 채로 눈을 감고 노래를 흥얼거렸고, 누군가는 태블릿 화면에 가득 찬 악보를 노려보고 있었으며, 곳곳에서는 작은 소리로 악기가 연주되고 있었다.
모두에게 내려진 갑작스러운 통보.
내일 있을 공연의 레퍼토리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모두가 실력만큼은 알아주는 아티스트들이었지만, 갑작스럽게 주어진 과제는 제법 부담이 되었다.
“일단, 내일은 연습이라고 생각해요.”
뭐? 연습?
이 미친 난이도의 과제를 내준 장본인의 뻔뻔함에, 황당한 시선들이 모였다.
“서로 무대도 가까우니까 쉬울 거 같은데…….”
진훈과 추지훈만이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고, 다른 아티스트들은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이게 쉽다고?
저마다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하루 만에는 무리지 않을까요?”
종탁이 손을 들고 용기 있게 말했지만.
나머지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들려올 대답은 뻔했기 때문이었다.
“즐겁게 하면 다 돼요.”
그가 방긋 웃었고.
“분명히 재밌을 거예요.”
멍한 표정의 아티스트들이었지만, 이내 그를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저 해맑은 미소는.
전염력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 * *
사람들은 너무나도 행복했던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았다.
마련된 잠자리의 난방은 상당한 수준이었고, 입김이 나오던 바깥공기와는 다르게 포근한 따스함을 선사했다.
천막이라 걱정했던 이들은, 그 걱정이 그저 기우였음에 또 한 번 만족했다.
내일의 공연을 떠올리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일은 또 얼마나 엄청난 일이 벌어질까?’
상상 이상으로 오늘의 공연이 굉장했기 때문이었다.
이 가슴 떨림은.
어릴 적.
소풍 가기 전날.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그 설렘과 같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그 아련한 설렘에.
어둠 속 얼굴들에는 행복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아마도 모두가 즐거운 꿈을 꾸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고원에서의 밤은 깊어 갔다.
* * *
“어? 야! 나와 봐!”
“왜? 뭔데 그래?”
“이거 봐!”
“어… 와…….”
밤새 두근대며 잤음에도, 상쾌하게 아침을 맞은 사람들이 천막의 입구를 열었고.
밖을 확인한 그들은.
말도 못 할 정도로 환상적인 아침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