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80
80화 기적
새로 고침만 누르면, 한 페이지가 넘도록 새로운 글이 올라오던 게시판들이었는데.
국내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해외 음악 관련 게시판들 역시, 마치 서버라도 터진 듯 순식간에 잠잠해져 버렸다.
그 이유는 당연했다.
게시판들이 떠들어 대던 무대가 등장했고, 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장면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었다.
빌보드 핫 100에 오른 인간 밴드의 산책이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멍하니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본래부터 그렇게 연주하도록 만들어진 듯, 수십 개의 악기가 가진 포지션은 명확했고, 완벽하게 어울렸다.
열정으로 달아올랐던 사람들이 뭉클해진 가슴에 손을 올렸다.
산책과도 같은 삶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는 그들의 앞에 소박한 한 줄기 길을 제시했다.
자신이 지치지 않을 속도로, 천천히 즐기며 걸을 수 있는 길.
걷다 조금 힘이 들면, 잠시 쉬어 가도 그다지 초조하지는 않았다.
이 평탄한 길은, 좋은 운동화를 신었다고, 더 튼튼한 다리를 가졌다고 엄청나게 특별해지지는 못할 것이다.
이는.
더 빨리 어딘가 도착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으니까.
그저 한 걸음마다 자신만의 의미를 깊게 새길 뿐이었다.
단어 하나하나에 들어간 은유적 표현들은 해석하기 나름이었지만.
그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가장 이상적인 삶이 그려졌다.
피 말리는 경쟁에서 벗어나 즐거운 무언가를 떠올리며,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자신만의 산책로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길이 참 멋져 보였기에,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어졌다.
자신만의 산책로에 새로운 색이 더해졌고, 다른 모양의 나뭇잎들이 생겨났으며, 불어오는 바람마저 다양해졌다.
자신만의 산책길도 멋졌는데, 함께 만든 길은 훨씬 더 굉장했다.
서로의 길에 스스럼없이 초대할 수 있는 존재.
가족이란 그런 존재였다.
노래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저마다 같은 길을 함께 걷고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의 손을 잡았다.
* * *
“어… 이 음악 뭐지?”
“빌보드에 있는 음원과 느낌이 전혀 다른데?”
“와… 이 노래 해석본 있어? 가사가 궁금해.”
“아까부터 찾고는 있는데, 저마다 의미가 다 달라서…….”
“이봐! 유리! 이 노래 정확한 뜻 알아?”
모두의 시선이 모였고, 유레이시가 피식 웃었다.
“제니스가 그랬어. 온전히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려면 한국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그리고 검지를 입술 앞에 세웠다.
“일단, 들어.”
멍한 얼굴의 아티스트들이 벽면의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지금 펼쳐지는 저 환상적인 공연을 놓쳐서는 안 됐다.
“저기! 이제 미팅 시작…….”
갑자기 들이닥친 공연 팀 직원을 향한, 세계적 아티스트들의 ‘쉿’은 정말로 단호했다.
* * *
[와. 이 노래가 이런 느낌이었나?]└저렇게 악기들이 모이니까 진짜 웅장하다.
└무슨 오케스트라 같아.
└드럼이랑 베이스가 박자 쪼개는 게 예술이야.
└진혁느님 목소리는 더 대박이고.
└소리가 꽉 차니까 잔잔한데도 뭔가 가슴이 벅차오른다.
└원곡은 발치에도 못 미치는데?
└그 발치에도 못 미치는 원곡이 빌보드에 올랐어.
└이 라이브 음원이 이대로 나오면, 빌보드고 뭐고 다 씹어 먹겠다.
└난 원래 비혼주의자였는데, 갑자기 결혼이 하고 싶어졌어.
└여자는 있고?
└아. 뼈 때리네.
└남잔지 여잔지부터 물어야 하는 거 아니냐?
└어쨌든, 가족이란 것은 상당히 따뜻한 거였어.
└지금 있는 가족한테라도 잘하자.
└저렇게만 살 수 있다면, 결혼이란 거 그렇게 지옥만은 아닐 거 같은데?
└워낙, 비관적인 글들만 인터넷에 넘쳐서 그래.
└제대로 사는 사람들은 굳이 그런 데다 글을 쓰지 않으니까.
└하긴, 행복한 사람들은 기사로 나올 일도 없겠어.
└아무튼, 내가 봤을 때 조만간 혼인율이랑 출산율 올라간다.
└뭐, 가시적으로 확인될지는 몰라도,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변하기는 하겠다.
└와, 진짜 갓끼님의 메시지와는 또 다르네. 오늘부터 인간 밴드로 갈아탄다.
└뭐라냐? 갓끼님이 진혁님임.
└얘 아직도 모름?
└뭐? 갓끼님이?
└와,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었네.
└진짜?
└이미 기정사실임.
└어제 게시판 정독하고 오셈.
└논리적인 추론과 증거들 수두룩하니까.
└얘 확인하러 갔나 보다.
└그러게, 댓글이 없네.
└어? 종탁이다. 이번엔 제니스랑 종탁이 먼저 시작하나 봐.
└이거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네!
└일단 듣고 오자.
└다음 쉬는 타임에 보자.
노래 ‘산책’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 동안 떠들썩했던 – 커뮤니티 1위를 차지하고 있는 – 인간 밴드 갤러리가 다시 잠잠해졌다.
* * *
-속보. 태각시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에 참여 중인, 인간 밴드의 리더 조진혁의 아내가 입원해 있는 한국병원 담당의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이 인터넷에 퍼지고 있으며, 이는 실로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모 인터넷 기자가 해원의 게시글을 재빨리 기사로 작성했고, 다른 기자들이 교차 검증을 위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너지?”
“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갑자기 호출되어 중환자실 밖으로 끌려 나온 해원이 입술을 질끈 물었다.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기는 했다.
대충 둘러대며 글을 적기는 했지만, 인터넷상에 뿌려진 이상, ‘한국병원 뇌 의학 전문의’의 정체는 누구나 추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글에는 그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통화 내용까지 요약되어 있었으니까.
이 이슈의 시작이 누구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겠지.
‘욕 조금 먹는 거야 뭐… 때려치울 작정까지 했는데!’
해원은 눈을 똑바로 뜨고, 성관중 교수를 노려봤다.
“제가 틀린 말 올린 것도 아니지 않나요?”
“뭐? 이게 미쳤나?”
“저는 있는 그대로 올렸고, 지금 집도하시려는 수술도 그냥 쇼 아닌가요?”
“네가 뭘 안다고…….”
“저는 조금 아는데…….”
성관중의 뒤에 서 있던 선민이 조용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하… 이것들이 지금 쌍으로…….”
“그, 지금 하시려는 수술 계획서를 봤을 때…….”
“닥쳐! 어디 레지던트 따위가!”
그가 손을 들어 올렸고, 선민이 얼른 CCTV 카메라가 비추는 공간으로 발을 옮겼다.
“어쭈? 머리 굴리네? 야. 정해원! 너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뭔지 알아?”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던 해원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아차…….’
그저 욕만 조금 먹고 직장을 옮길 각오까지는 했는데, 뭔가 껄끄러운 죄명이 툭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내 이름만 나오지 않았다 뿐이지, 이미 신상도 다 털렸고, 기자 새끼들 벌써 냄새 맡고 전화하기 시작했어! 너 콩밥 먹을 준비부터 해라. 어디 간호사 나부랭이가!”
“그… 그렇지만, 환자를 이용해서 메스컴을 타겠다는 것은 잘못된 행위입니다!”
해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해야 할 말을 끝까지 뱉어 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었다.
“뭐? 지랄하고 있네. 어차피 2년이나 코마 상태였어. 이제 와서 세미 코마가 됐다고, 뇌가 온전할 줄 알아? 이미 인지능력이고 뭐고 다 박살 난 상태라고! 가망성이 없어! 그런 환자 눈이라도 좀 뜨게 해 준다는 게 그렇게 욕먹을 일이야?”
CCTV의 방항을 확인한 선민이 소심하게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어… 교수님? 지금 집도하시려는 그 수술은 예후가 너무 좋지 않아서, 식물인간으로 판명된 뒤 최후에나 하는…….”
“넌 좀 닥쳐! 2년이나 코마로 있었으면, 그게 식물인간이지! 네가 보기엔 저 상태에서 벌떡 일어나기라도 할 거 같아?”
“의사는 환자가 살아 있는 한,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뭐?”
“교수님께서 강의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야! 레지던트 4년차가 이상과 현실도 구분 못 해? 어차피 뒈질 거! 눈이라도 떠 보고 뒈지면…….”
선민을 노려보며 소리치던 성관중이 머리통을 부여잡았다.
“이런 미친년이!”
해원이 주차 금지 표지판을 움켜쥐고 바들바들 떨면서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노려봤다.
“말이 지나치잖아요!”
“너, 특수폭행죄까지 추가야!”
성관중이 CCTV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선민 샘! 여기까지 하죠!”
“네. 회장님!”
두 사람이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주고받자, 성관중의 눈썹이 꿈틀댔다.
“저! 콩밥 먹을 준비 됐습니다! 교수님은 의학계에서 매장당할 준비 하시죠!”
해원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고, 그 화면에는 [녹음 중]이라는 글자와 붉은색 마이크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이… 이것들이… 이리 내!”
성관중이 달려들었고.
누군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아, 제가 딱 맞춰 왔네요. 청강 의료재단 법무 팀 장성범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건은 저와 대화를 나누시면 됩니다.”
“뭐… 뭐?”
“아, 정해원 간호사님?”
“네……?”
“저희 이사장님께서, 용기 있는 행동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법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해원이 힘겹게 들고 있던 주차 금지 표지판을 툭 하고 떨궜다.
힘겹게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사실 다리에서 힘이 풀린 지 오래였던 그녀가 휘청였고, 선민이 얼른 달려가 해원을 부축했다.
* * *
“이사장님, 법무 팀에서 도착했고, 녹음 파일까지 확보했다고 합니다.”
“아… 그래?”
“준비되는 대로 청강 의료원으로 옮기겠습니다.”
“일단은 조용히 법적인 부분부터…….”
“크흠!”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김충석이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저었다.
“가장 높은 곳에 너무 오래 계셨나 봅니다.”
“예?”
“그런 망할 인간은 아작을 내야지요.”
“무슨…….”
“조용히? 법적? 고상한 척 좀 그만하시고, 그 녹음 파일 넘기시죠. 의료계, 아니 대한민국에서 매장시켜 버리게.”
“아…….”
“매스컴? 원 없이 타게 해 주지!”
전망대 밖 무대를 바라보던 김충석 회장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어디 감히…….”
옆에서 자초지종을 들었기에, 대충 상황을 파악한 그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졸지에, 대한민국 재계의 두 거물에게 찍혀 버린 성관중 교수였다.
* * *
“정 쌤! 괜찮아요?”
해원이 중환자실로 돌아오자 걱정하던 동료들이 달려왔다.
“아… 어떻게 잘 끝나기는 했어요.”
“와, 진짜 대단하다.”
“이것이 찐 팬의 용기인가?”
“정말 멋있어요. 해원 쌤!”
“이거 우리도 의견서들 준비해야 하는 거 아냐?”
동료 간호사들의 응원을 받으며 집중 치료실에 도착한 해원이 문을 열었고.
“어…….”
“왜? 왜 그래요?”
“누… 눈이…….”
그녀를 뒤따라온 간호사들도 환자를 확인했고, 모두가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냈다.
“자… 잠깐, 성관중 교수… 말고… 아… 일단 선민 쌤부터!”
“제가 전화할게요!”
“우선 혈압부터 재고! MRI… 일단, 청강에 먼저 연락해야 하나?”
“먼저 보호자부터!”
“아… 보호자가…….”
“아, 맞다.”
간호사들의 시선이 태블릿 화면으로 향했다.
“우선 연락해요! 누가 되었건 간에!”
간호사들이 모두 밖으로 나갔고.
해원은 천천히 환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이제 막 눈을 뜬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제 목소리 들려요?”
눈동자는 그대로였지만, 눈꺼풀이 조금 움직인 것도 같았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남편분 금방 오실 테니까.”
해원의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 * *
선하와 은서가 하늘과 가장 가까운 무대로 달려갔다.
다음 곡을 준비하던 진혁이 방긋 웃으며 그녀들을 맞이했고.
은서가 소리치자.
손에 들고 있던 기타를 떨어뜨렸다.
“어… 나 먼저 간다.”
멤버들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멍한 표정의 진혁이 무대를 내려갔고,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며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이로원으로 향하는 케이블카로 걷던 그가 뒤를 돌아봤다.
하늘과 맞닿은 무대가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분명 다음 무대도 엄청나게 재밌을 거고, 사람들을 더 열광하게 했을 것이었다.
더 굉장한 퍼포먼스도 준비되어 있었고, 차일드 애플의 환상적인 댄스 무대도 있었다.
마지막 즈음, 제니스가 마이크를 들고 이 무대까지 달려오며 부르는 장면은, 진짜 환상적일 것이다.
테일과 두 명의 JH가 처음 선보일 무대도 정말로 감동적이겠지.
‘진짜 재밌을 텐데.’
다시 앞을 바라보자, 같은 선상을 계속해서 맴도는 케이블카가 보였다.
고개를 저으며 피식하고 웃었다.
열아홉 진혁에게도.
마흔셋 진혁에게도.
무엇보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았다.
은서의 손을 꼭 잡았다.
“가자, 엄마 보러.”
진혁이 케이블카에 올랐다.
* * *
“헬기 띄웠지?”
“네! 10분 후에 하이로원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방금 케이블카 탔다고 하니까, 얼추 시간은 맞겠군.”
“환자도 지금 청강 의료원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래. 잘했어.”
진봉구 이사장이 벅차오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활짝 웃었다.
“가슴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두근대 보신 적이 언제십니까?”
“음… 잘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저도 그랬습니다.”
“앞으로는 같은 날, 같은 장소를 기억하겠군요.”
김충석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기적일까요?”
진봉구가 물었다.
“글쎄요. 어쨌거나, 여러모로 대단한 축제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대단한 축제는 창천이 만들었지요.”
진봉구 이사장이 김충석의 얼굴을 마주 봤다.
“흠…….”
김충석이 조금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관객으로서…….”
스물여덟에 재계에서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이었다.
어쩌면, 비슷한 또래로서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평생 경쟁 관계로만 점철되었던 관계였었다.
두 사람이 만난 이후,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서로에게 고개를 숙여 본 일은 없었다.
“이렇게 대단한 축제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청강의 실질적 총수의 진심 어린 감사는, 그 무게 자체가 달랐다.
아주 살짝 숙였을 뿐이지만, 그 엄청난 의미를 잘 알고 있는 김충석은 그보다 조금 더 고개를 숙여 화답했다.
“저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두 거물이 전망대 창밖을 바라봤다.
엄청나게 어수선해진 스태프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왔다.
“축제의 마지막은… 살짝 망했군요.”
“뭐, 그것도 나름 재밌지 않습니까?”
두 중년인이 껄껄 웃었다.
* * *
[뭐지? 진혁느님은 어디 간 거야?]└그러게? 다른 무대들도 그냥 따로따로 자기들 공연만 하는데?
└인간 밴드 다섯 곡 한다고 하지 않았나? 한 곡만 했잖아?
└메인 무대 카메라도 꺼졌어.
└축제는 이대로 마무리야?
└뭐, 다른 무대들도 재밌기는 한데…….
└그래도, 뭔가 김이 빠지긴 했다.
└야, 이거 환불 얘기까지 나오는 거 아냐?
└그러게, 뭔가 기대치가 너무 높아진 상태라서.
└진짜 무슨 일 있나?
└무슨 사고라도…….
└큰일 날 소리를!
└야! 저 새끼 쳐 내!
└안 그래도 진혁느님 과거가 있는데!
└말이 씨가 된다는 거 몰라?
└야. 근데, 이건 뭐지? 인간 회사?
└아, 나도 그거 봤어. 인간 밴드 소속사가 SJ에서 그걸로 바뀌었던데?
└라이브 전문 기업?
└도대체 뭐 하는 회사지?
└일단 인간 밴드만 있어도 웬만한 기획사는 쌈싸먹지 않나?
└그건 맞지.
└야! 외국 애들이 한국어 강습 갤러리 만든 거 봤냐?
└한글 알려 달라는 애들 엄청나게 많던데?
└아! 드디어 내가 꿈꾸던 세상이 온 것인가?
└응? 뭔 세상?
└한글이 엄청나게 유명해져서 영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얘 너무 갔네.
└뭐, 그래도 인간 밴드 덕분에 국뽕은 지리네.
└게시글 대부분이 가사 해석 요청이던데.
└아무튼, 지리는 공연 보고 싶으면 한국으로 오라 이거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국어도 공부하고!
└크으! 주모!
잠잠했던 게시판이 다시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메인 무대의 조명은 다시 켜지지 않았지만, 나머지 무대들은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열정을 마음껏 뿜어냈기에, 사람들은 남은 축제를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메인 무대를 향한.
아주 조금의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 * *
“이쪽입니다. 아직 초점까지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반사적인 움직임은 감지됩니다. 의학적 용어로는 세미 코마 상태라고 하며, 반혼수 상태라고도 합니다. 어떤 자극에 의해 반사적으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의사 표현인지는 불명확합니다. 눈은 떴지만, 그 외에 큰 변화는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VIP 병실의 앞에서 진혁에게 설명하던 의사가 안경을 고쳐 썼다.
“하지만 2년 만에 어떤 조치 없이 눈이 떠졌다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고, 앞으로도 호전될 가능성이 있다고까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의사의 설명을 듣던 진혁이 방긋 웃었다.
“일어날 거예요.”
“그건… 의사로서 말씀드리자면…….”
“앞으로 더 재밌는 세상이 펼쳐질 테니까.”
“네?”
“들어가도 되죠?”
“아… 네.”
진혁이 머뭇거리는 은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인사해야지?”
어깨를 조금 들썩이던 아이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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