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81
81화 겨울 바다 어때?
은은한 조명.
가운데 위치한 침대가 보였다.
아이가 어깨를 떨며 주저했고, 걸음을 멈춘 진혁이 한쪽 무릎을 꿇어 시선을 맞췄다.
방긋 웃어 줬지만.
떨리는 아이의 눈동자는 그런 아빠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1년 만에 엄마를 찾은 아이의 얼굴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중 아이의 발걸음을 가장 무겁게 만든 것은 아마도 죄책감일 것이었다.
“엄마도 이해할 거야.”
은서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해 못 해.”
사춘기 여자아이에게 생겨난 방어기제는 병원에 누워만 있는 엄마를 철저하게 외면했었다.
은서는.
그런 상태의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눈까지 뜬 엄마와 마주할 수 없었다.
1년 전부터 희망을 놓아 버린 상태였다.
가장 응원해 줘야 할 자신이.
엄마가 다시 회복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포기했었으니까.
이 병원까지 오는 동안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희망을 만나자, 그간의 자신이 얼마나 증오스러웠는지.
“난… 엄마를 만날 자격이…….”
흐릿하게 일그러진 은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천히 일어난 아빠가 나지막이 부르는 노래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저벅저벅 걸어서 은서의 뒤에 선 진혁이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아이의 귓가에 주문처럼 속삭이며, 같은 구절을 되뇌었다.
은서가 눈을 꼭 감자.
몽글몽글 맺혀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엄마 눈 떴대.”
“…응.”
“얼마 안 있어 벌떡 일어날 거야.”
“…알아.”
“얼른 가서 직접 말해 줘야지.”
“…….”
어깨를 잡은 손이 밀지도 않았는데,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왜… 왜 이렇게 말랐어.”
은서가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얼른 일어나.”
심호흡하고.
머리맡으로 움직여.
반쯤 떠진 엄마의 눈을 바라봤다.
“지금 우리 얼마나 재밌는지 알아?”
초점은 맞지 않았지만, 까치발을 세워 엄마의 눈동자가 향한 방향에 얼굴을 가져갔다.
“같이 놀… 자.”
아이의 등을 쓰다듬던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작은 목소리를 듣고, 퍽이나 재밌게 놀고 싶겠다.”
은서의 눈동자에 맺힌 물방울이 엄마의 얼굴에 떨어져 흘러내렸다.
“같이 놀자! 엄마!”
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겨 엉엉 울기 시작했다.
진혁은 그런 은서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이제 좀 재밌어할 거 같네.”
은서의 등에 몸을 포갠 진혁이 나지막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재밌는 건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법이었다.
영화도 함께 보고 싶었고, 새로 시작한다는 드라마도 같이 떠들며 봐야 더 재밌었다.
시답잖은 개그 프로도, 같이 보면 깔깔거리고 웃게 되기 마련이었다.
‘이제, 너만 일어나면 돼.’
진혁이 초점 없는 그녀의 눈에 입을 맞췄다.
* * *
[대박! 이번 축제 20% 환불해 준다던데?]└심지어 관객들한테 컴플레인도 안 나온 상태에서 결정된 거임.
└대박. 진혁느님 하나 빠졌어도, 그 정도 퀄리티면 불만 없을 축제 아니었나?
└그냥 눈 감고 입 싹 닦았어도, 욕먹을 정도는 절대로 아니었음.
└워낙 축제가 역대급이었으니까.
└와, 그 많은 사람 전부다 환불해 주면 적자 아냐?
└SJ 엔터 호감도 팍팍 오르네.
└진짜 대단하다.
└앞으로 거기서 하는 축제든 공연이든 다 가야겠다.
└아무튼 사후 처리도 완벽하네.
* * *
“형님, 반응 보셨어요?”
“봤지!”
“흐흐. 이 정도면 뒷말은 안 나오겠죠?”
“뭐 나오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묻어 버리겠지.”
“아무튼 빠르게 결정하길 잘했습니다.”
“그래. 크흡…….”
동구가 잔뜩 신난 얼굴로 말했고, 석준도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어쩌지 못했다.
책상 위에는.
[‘하늘 아래 음악 축제’ 영상 시청 수익 정산표]가 올려져 있었다.축제를 마무리할 때만 해도 사후 처리에 대해 고심하던 중이었는데.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이 서류를 보자마자 바로 환불 결정을 내린 것이다.
유료로 결제한 총시청 인원이 자그마치 천팔백만 명이 조금 넘었기 때문이었다.
결제 한 건당 2만 원씩이었으니까, 총매출액만 3천 6백억이 넘었다.
물론 서버 이용료와 사이트 운영비 같은 잡다한 부분 그리고 세금 등 처리해야 할 것이 꽤 남았지만.
“진짜 대… 대박이다.”
손을 벌벌 떨며, 얼른 탁자 위에 올려진 서류를 집어 들었다.
아무리 세어 봐도, 숫자는 열두 개였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대박이 터진 것이었다.
“야! 사옥 새로 지을까?”
멧돼지와 너구리가 두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었다.
* * *
인간 밴드가 빠졌음에도, 축제는 마지막까지 최고의 퀄리티를 유지했다.
사실 본래 정해진 순서대로 돌아간 것이기도 했고, 이미 이 축제를 거치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팀들이었기에 평소보다 훨씬 더 멋진 무대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불 꺼진 메인 무대의 존재는 꽤 컸다.
알게 모르게 관객들도 아쉬워했지만.
누구보다 가장 아쉬워했던 사람들은.
‘인간 회사’와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던 아티스트들이었을 것이다.
축제는 끝났지만.
그날, 수많은 악기의 합주는 아직도 그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이라도 그런 무대를 다시 만나고 싶은 그들이었다.
하지만.
녹화된 그날의 현장을 반복해서 재생하며 아쉬움을 삭힐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수장이 아직 집결을 명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의 상황을 모든 팀이 알고 있었기에, 누구도 재촉할 수 없었다.
그저, 뜨겁게 달아오른 심장을 유지하며 언제라도 날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분명.
다음번은 훨씬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났고.
그렇게 기다리던 소식이 모두에게 도착했다.
* * *
“그날은 메인 사운드 채널이 있었고, 유선으로 모두 연결이 가능했기 때문에 딜레이가 생기지 않았으며, 소리가 엉키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건…….”
“기술적으로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겁니다. 몇백 미터도 아니고…….”
“음,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가로막힌 산에 소리가 부딪쳐 울리는 바람에 사운드가 뭉치기도 했고, 유선으로 연결했어도 각 무대끼리 생긴 간헐적인 이질감은, 공연 당사자들이 더 잘 알 겁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이런 식으로 공연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엔지니어들 커뮤니티에서도 모두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습니다.”
“한 방향도 아니고 양방향, 거기다 다방향이라니. 아무리 무선 인터넷망이 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건 무립니다.”
회의실에 모인 음향 기술자들이 저마다 부정적인 의견만을 내놓았다.
“하, 언뜻 생각하기엔 될 것도 같았는데…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후우. 핸드폰은 그리도 잘되는데…….”
저마다 의견을 내놓던 엔지니어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도저히 이런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을 두 거물이, 가장 상석에서 한숨을 내쉬었기 때문이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선임 기술자가 입술에 침을 바르고,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선 통신망이 아무리 잘 발달했다고 해도, 거리라는 것은…….”
“에잉. 쯧쯧.”
구석에 있던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선임 기술자의 눈썹이 꿈틀댔다.
KSB의 음향 고문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자신들이 사용하는 용어의 절반도 채 알지 못하던 그였기 때문이었다.
밴드들이 사용하게 될 이동 무대의 장비들을 맡았다고 들었는데, 이런 기술적인 회의에까지 참석하다니.
뭘 알기는 하고 혀를 차는 것일까?
“그, 단순하게 주고받으니 시차가 생긴다는 거 아녀?”
선임 기술자가 못마땅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고받는 놈들이 많으니까 점점 더 꼬이고?”
“네. 뭐, 비슷합니다.”
“그럼, 받는 놈이랑 주는 놈이 같은 놈이면 어뗘?”
“네? 그게 무슨…….”
“센터 하나 만들고, 모든 놈들 거를 다 받아서 한꺼번에 쏴 주면, 받는 놈들은 동시에 받을 거 아녀?”
“아. 단 한 번만 주고받는다면… 어… 그게…….”
“왜? 안 되는 거여?”
선임 기술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상석의 두 거물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음, 고문님 말씀대로 되는 건가?”
나지막한 목소리에 목젖이 꿈틀댔고.
“자… 잠시만, 검토를…….”
서둘러 기술자들을 모아, 종이에 뭔가를 한참 끄적이며 토론하더니.
“되… 될 것도 같습니다.”
“될 것도?”
“아… 아닙니다. 그, 개발 중인 차세대 통신까지 동원한다면 영상의 딜레이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고품질 음원 정도는 최소한의 딜레이로 가능합니다.”
“최소한?”
“0.03초 이하의 미세한 딜레이입니다. 이것도 기지국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화는 있겠지만, 연주에 방해가 되지는…….”
“바로 시험해 보고, 결과 보고 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바라보던 공씨 할아버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어… 전부 새로운 곡이네?”
“저도 악보 받고 깜짝 놀랐어요.”
“후아… 언제 곡을 다 만들었대?”
“저는 그것보다 팀명이 조금 더 살 떨리던데요?”
“인간 프로젝트 그룹 1기?”
“제대로 못 하면 2기에서는 잘릴 수도 있다는 말 같아서…….”
“아… 그것도 살 떨리네.”
“아무튼, 저희 팀은 내일부터 모입니다. 재경이네는 오늘부터 모인대요.”
“우리도 내일부터 시작해야겠다.”
임도유와 제이가 악보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 사람 모두 각 팀의 리더였고, 밴드의 곡들을 만들어 온 이들이었다.
자신만의 음악색이 뚜렷한 이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의 리더가 보내온 곡들은 색깔을 연연할 수준이 아니었다.
누가 감히 이런 악보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각 파트별로 나뉜 악보는 대충 살펴봐도 머리가 깨질 정도였다.
예전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던 임도유는 당시 그들의 악보를 봤던 기억이 났다.
그때 봤던 수많은 음표의 향연을, 록 밴드들에게 주어진 악보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그런 곡이 무려 열 곡이었다.
“형님.”
“응?”
“근데, 재밌기는 하겠죠?”
“당연하지.”
임도유가 방긋 웃었다.
그날, 그 높은 곳에서의 공연을 떠올렸다.
다시 들어 보니 사실 실수도 여럿 있었고, 아쉬운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다만 그날의 그 벅찬 감정은 완벽한 연주에서만 나올 고양감이 아니었다.
그렇게 많은 악기가 어울리며 증폭시킨 에너지가 사람들을 어떻게 흥분시켰는지 직접 보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관객들보다 자신들이 더 열정적이었던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어서 빨리,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졌다.
“얼른 연습하자. 빨리 무대에 오르고 싶네.”
“저도요. 이렇게 공연이 기다려지기는 또 처음인 거 같네요.”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의 록 밴드를 이끌던, 두 리더가 해맑게 웃었다.
* * *
[아… 뭔가 김빠진다.]└어떻게 죄다 활동을 중단하지?
└인간 밴드나 JH야 워낙에 활동이 없었다고 해도, 나머지까지 그대로 증발해 버렸네?
└그러게. 이제 연말 이벤트는 코리아 탑 밴드 하나 남았나?
└그거 조만간 예선 시작이지?
└그것도 기대는 되는데, 워낙 그날의 임팩트가 강해서.
└맞아. 나도 그 영상만 주구장창 돌려 보고 있어.
└님들 근데 그거 암? 그날 무대에 올랐던 가수들 전부 소속사 바뀐 거?
└응?
└무슨 소리야?
└어? 지금 확인해 보니까 임도유 소속사가 인간 회사?
└이왜진?
└대박! 차일드 애플까지?
└나비 계곡 얘네는 원래 자기들이 만든 레이블 아니었음? 뭔데 얘네도 그 회사지?
└야! 다들 그 회사 사이트 들어가 봐.
└오! 이거 뭐야? 웬 전국 지도?
└크리스마스? 디데이가 찍혔네?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일단, 회원 가입은 완료했음.
└나도.
엄청난 공연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었을 때, 갑작스럽게 퍼진 소식은 가뭄에 단비처럼 내려앉았다.
완연한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기에, 더욱 움츠러들었던 사람들의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 * *
“Box-43 라인업에서 빠졌던데?”
“진짜? 새 앨범 발표는?”
“소속사랑 조정 들어갔다더라.”
“조정?”
“몰라, 애가 그냥 맛이 갔어.”
“아… 한국?”
“대단한 건 알겠는데, 그래도 지금껏 쌓아 온 커리어가 있지. 다 버리고 거길 가겠다니.”
“칼리도 칩거 중이라던데?”
“걔는 왜?”
“밴드 멤버들이랑 치고 박고 싸웠다더라?”
“무슨 한국만 갔다 오면 다들 정신을 못 차리네?”
“아, 유리도 이번 투어에서 빠진다던데?”
“뭐? 유레이시가?”
“응. 어제 매니저한테 들었어.”
“걔는 왜 또?”
“몰라, 일단 파티나 즐기자.”
“오케이!”
발코니에서 대화를 나누던 싱어송라이터 레이햄과 래퍼 칼로스가 와인 잔을 부딪치며 홀로 들어섰다.
* * *
그들이 참석한 파티는 평소의 파티와는 조금 성격이 달랐다.
세계 최대 레이블인 카폰 레코드사가 주최하는 자선 파티였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초대받은 이들은 각 분야에서 최고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었고, 방금 발코니의 그들은 올해 처음으로 이 파티에 초대된 것이었다.
그만큼 걸출한 거물들도 많았는데, 빌보드의 정점을 찍었던 가수들부터, 할리우드의 대배우, 스포츠 스타, 톱 모델, 유명 기업의 수장들까지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이 파티에 초대되었다는 것은, 그만한 지위를 인정받았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위치가 조금 올라갔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 연말 파티의 초대장을 목을 빼고 기다리곤 했다.
다만, 굉장히 이례적으로 올해에는 초대장을 받고도 오지 않은 몇이 있기는 했다.
“선생님, 혹시 한국에서 벌어진 축제를 보셨습니까?”
소파에 앉아 있는 카폰 레코드사 대표 스테빈에게 다가온 남자가 위스키 잔을 건네며 물었다.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스테빈의 옆 자리에 앉은 그는 신생 레이블 La Musique의 수장인 안토니오 클레버였다.
“대충.”
“아…….”
시큰둥한 그의 대답에, 안토니오가 침을 꼴깍 삼켰다. 오늘도 대화의 스타트를 잘못 잡은 모양이었다.
자신 같은 신생은 어쩔 수 없이 거대 기업의 눈치를 봐야 하는 법.
무시당하는 것은 이미 익숙했다.
하지만 한 마디만 더.
“별로셨던가 보군요.”
“안톤.”
“네. 선생님.”
“자네는 성선설을 믿나?”
“굳이 따지자면, 저는 성선설도 성악설도 믿지 않습니다.”
“얼토당토않은 이상주의자더군.”
“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고쳐 쓸 수가 없지.”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켠 스테빈이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을 바꾸려고 하더군.”
“아, 그 한국의…….”
“음악으로 사람이 바뀔 정도면, 이미 몇 번은 바뀌었겠지. 위대한 음악가가 얼마나 많았는데.”
“그렇기는 하죠.”
“맘에 들지 않아. 건방져.”
“저는 그래도…….”
“그저 쇼일 뿐이야. 제법 잘 뽑힌 곡에, 피나는 연습으로 만들어 낸 서커스 같은 거지. 저기 있는 애들이 모여서 연습하면 그 정도도 못 할 거 같나?”
안토니오의 시선이 홀을 향했다.
올해 빌보드를 빛냈던 젊은 주역들이 서로와 어울리고 있었다.
“물론, 해내겠지요.”
“최초였던 것은 신선했네.”
“네.”
“거기까지야. 갑작스러운 새로움에 홀린 신기한 즐거움인 거지.”
스테빈이 위스키를 마저 털어 넣고 일어났다.
“깜짝 쇼는 처음 단 한 번만 먹히지. 금방 사그라들 걸세.”
양팔을 펼치며 유명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안토니오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사실, 그가 ‘대충’이라고 했을 때 대화는 마무리되었어야 했었다.
그런데도 스테빈은 상당히 많은 단어를 내뱉었다.
그것도 평소 그렇게 무시하던 자신에게 말이다.
진짜로 대수롭지 않았다면, 저렇게까지 떠들어 대지는 않았을 터.
Box-43이 그의 품을 벗어나려고 하는 상황 때문에 예민해졌다고 하기에는, 꽤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아무래도, 서둘러 한국으로 가 봐야 할 것 같았다.
* * *
인간 회사의 홈페이지에 걸려 있던 대한민국 지도에 변화가 생겼다.
[겨울 바다 어때?]동해안을 따라 표시된 붉은 점들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전국이, 또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