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어림도 없지
[이번 서해도 찢었다.]└와. 동해 생각하고 갔던 사람들 전부 난리 났음.
└어떻게 같은 레퍼토리가 하나도 없지?
└노래도 다 바꿔 불렀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다 새로운 곡인 줄.
└저번에 임도유랑 박재경이 부른 거 차일드 애플이 부르는데, 왜 그렇게 잘 어울림?
└원래 펑크에 랩 들어가도 꽤 괜찮음.
└와, 진짜로 음원을 안 내네?
└라이브로만 발표한다고 했잖음?
└근데, 이렇게 해서 돈이 되나?
└난 5만 원 풀로 후원했음.
└아, 100만 원이라도 하고 싶은데, 어째서 상한선이 5만 원임?
└여기 불법으로 장소 공유하는 애들 없지?
└난 가족한테도 안 알려 줬음.
└나도 형 새끼가 하도 알려 달라고 해서 번호 차단해 놨음.
└이런 라이브 계속 보려면 후원이 끊기면 안 됨.
└불법으로 어디 올리는 놈 있으면 내가 먼저 고소 넣을 거임.
└난 우리 가족 명의로 후원 싹 돌렸음.
└근데, 다음은 남해 아님?
└그러게, 왜 점이 안 찍힘?
└아무튼 난 제주에서 한다고 해도 바로 달린다.
└나도.
인간 밴드 갤러리엔 쉴 새 없이 글이 올라왔고, 사정상 공연을 보지 못했던 이들을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와중 동해 공연의 오피셜 영상이 그 사이트에 떴는데.
[와. 이거 뭐지? 대박이다. 풀 영상 떴다, 얘들아.]└오, 드론으로 촬영한 거임?
└와, 장난 아니다. 사람들 이렇게 많았어?
└불꽃이 저렇게 멀리서 올라온 거였구나.
└각 무대 동시에 점프하는 거 완전 멋지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한 무대 같네.
└고성에 웃통 벗고 난리 치는 놈 나다.
└아, 뱃살 출렁출렁?
└뺄 거임.
└와, 관객 동시 함성 진짜 지리는데?
└이게 놀 줄 아는 나라의 클라스지!
└무슨 영화 보는 줄. 포인트 만 원에 이 정도 퀄리티 영상이면 인정?
└당연히 킹정이지.
└아, 빨리 또 보고 싶다.
└진짜 내 삼십 평생 이렇게 설레긴 또 처음임.
└인정.
마치 영화와도 같은 풀 영상이 업로드되었고, 사람들은 또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 * *
“제니스!”
“왜.”
“킹정이 뭐야?”
“음… 완벽하게 수긍한다는 뜻이지.”
“지린다는 건 뭐고?”
“정말로 멋져서 바지에 소변을 볼 정도라는 극찬의 말이야.”
“흠. 더럽군.”
“너, 좀 집에 가라.”
“싫은데? 나 가면 제니스 혼자 저기 놀러 갈 거잖아.”
“후… 너 무단으로 투어 불참 선언한 거는 뭐라고 안 해?”
“감히? 나한테?”
유레이시가 어깨를 으쓱하며 턱을 세웠고.
“하… 넌 참 재수가 없어.”
“제니스만큼은 아니야.”
제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난 너 데리고 갈 생각 없다.”
“왜?”
시선도 주지 않은 제니스가 음악 전문 잡지를 툭 던졌다.
[악동 제니스와 어울리더니 조금씩 물들어가는 성녀 유레이시. 이번 월드 투어에 불참 선언. 팬들의 원성은 결국 제니스에게로…….]“뭐, 맞는 말이긴 하네.”
“난, 물들인 적 없다.”
“물들었는데?”
“네가 와서 묻어 간 거지!”
“뭐, 아무튼.”
“만약에 너 데리고 나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나 영국에서 영원히 추방당할 수도 있어.”
“만약에 진짜 나 몰래 혼자 나가면, 그래도 추방될 거야.”
“이게 진짜!”
유레이시가 방긋 웃으며 턱을 들었다.
“윈저성에 또 초청받고 싶어?”
생글거리는 그녀를 노려보던 제니스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 고귀하다는 왕족들의 공간에서 보냈던 4시간은,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곤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언제 갈 건데?”
‘유레이시 올리비아 캐서린 테일러’가 탁자 위 태블릿 화면의 한반도 지도를 가리켰다.
“헨리 오빠도 이번 서해 공연에 갔었대.”
“뭐?”
“물론 비공식으로, 친구들이랑.”
“하아… 너도 거기나 따라가지?”
“관객 말고.”
“응?”
“저들과 같이 무대에 오르고 싶어.”
제니스가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간절한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장난 아니야, 제니스.”
영국에서, 아니 서구권에 속하는 웬만한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일보다 하지 못하는 일이 훨씬 더 적은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보일 만한 표정이 아니었다.
솔직히 자신의 지위를 이용한다면 억지로라도 그들에게 합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방법을 쓰지는 않았다.
“유리, 난 네가 참 재수 없어.”
“알아.”
“부모 잘 만난 덕에, 모든 걸 누려 왔지.”
“인정해.”
“성격도 별로야.”
“음, 인정할 수 없지만, 일단 알았어.”
“생긴 것도 맘에 들지 않아.”
“그건 좀 억지네. 세상 모두가 날 보고 인형이라고 하는데?”
“근데, 음악은 괜찮아.”
“흐음…….”
리버풀 빈민가의 가장 밑바닥을 기던 제니스와 영국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은 유레이시가 서로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만일 그의 음악에 방해되는 요소가 생긴다면, 난 영국 국적을 포기할 작정까지 하고, 널 내쫓을 거야.”
유레이시가 싱긋 웃었다.
“제니스, 난 네가 참 맘에 들어.”
“닥쳐.”
“그 천박한 말투가 너무 좋아.”
“안 데려간다?”
“고마워, 제니스.”
유레이시가 폴짝 뛰어올라 제니스를 꼭 안았다.
“아, 칼리도 같이 간다.”
“어… 걔는 싫은데.”
함박웃음을 짓던 유레이시가 미간을 찡그렸다.
* * *
[원래 저렇게 대단한 뮤지션들이었나?]└음, 이전 음원들 들었을 때는 대단까지는 아니고, 적당히 괜찮은 정도?
└차일드 애플은 워낙 퍼포먼스로는 유명했잖아?
└나비 계곡이라는 밴드도 이전 앨범들 제법 괜찮았어.
└임도유 목소리도 원래 대단했지.
└박재경 밴드는 이전 음원이 많이 없기는 한데… 확실히 많이 늘긴 했어.
└뭐, 본문에서 말한 의미로 치자면, 다들 이 정도 뮤지션들은 아니었지.
└맞아. 마치 아마추어에서 굉장한 프로로 바뀐 정도?
└한국 음악 수준이 원래부터 저 정도였으면, 빌보드 차트에 차일드 애플만 보였을 리가 없지.
└그가 저렇게 만든 건가?
└인과를 따지자면, 그렇겠지?
└그, 하늘 아래 음악 축제 이후로 확 달라진 거잖아?
└역시 진혁은 대단한 사람이군.
└지금 나온 신곡 모두 그의 작품이야.
└아무튼, 세기의 천재가 한국에서 나왔어.
└이번 두 번의 공연은 세계적으로도 통할 공연이야.
└맞아. 이런 엄청난 공연이 한국에서 연속으로 펼쳐지다니.
└그 산속 축제가 끝난 지 두 달 조금 넘었나?
└맞아.
└한국은 정말로 재밌게 노는구나.
└저런 공연이 무료라니.
└아, 후원은 해야 한다더군.
└그 정도면 무료나 마찬가지야.
└아무튼, 이번 교환학생 한국 대학교로 신청했는데,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네.
└우리 동네는 어학당 들어가는 대기 줄도 엄청나.
└한국 커뮤니티 가면 친절하게 잘 가르쳐 줘. 음성 채팅으로 알려 주는 친구들도 있어.
└맞아. 한국인들 다들 친절해.
인간 회사의 공연은 세계에서도 주목받았고, 점차 한국의 위상도 함께 올라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카폰 레코드사에서 주최하는 월드 스타 세계 투어에 대한 게시물과 비슷할 정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빌보드를 오랫동안 점령했던 세계적 스타들이 즐비한 스테빈 사단에 비하면 초라한 이력의 한국 뮤지션들이었기에, 이는 더 큰 화제가 되었다.
* * *
“그러니까 수익금을 모두 후원으로 돌리신다는…….”
“네. 다만 앞으로는 공식적으로 그들을 따라다니며, 기록을 남기고 싶습니다.”
윤석준이 앞에 앉은 푸른 눈의 중년인을 가만히 바라봤다.
동해 공연이 끝나고 난 후, 그가 가져온 영상의 퀄리티는 상상을 초월했었다.
자신들도 공연 풀 영상을 제작하던 중이었고, 다른 영상들보다 조금 더 비싼 3천 포인트에 공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편집에 관여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은 결코 그 정도의 가치로 폄하되어서는 안 될 퀄리티로 나와 버렸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와도 같은 한 시간짜리 영상이 만들어졌고, 재생에 필요한 포인트를 만 포인트로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물론 저희는 환영합니다, 앨런.”
석준이 서둘러 손을 내밀었고, 세계적 다큐멘터리 감독이 환하게 웃으며, 그 손을 덥석 잡았다.
“제 다큐멘터리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공연 이외의 일정들에도 동행할 수 있을까요?”
“아티스트 본인이 허락하는 일정은 제가 조율해 드리겠습니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석준은 갑자기 굴러 들어온 황금 호박 덩어리의 손을 꼭 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 * *
“선생님께서는 같이 놀고 싶은 분들이 있으신가요?”
서울로 달리는 차 안에서 진혁이 물었다.
아직도 간간이 음악 활동은 하고 있었지만, 그때그때 후배 밴드들이 세션을 봐 줬을 뿐, 자신의 팀은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흠… 베이스를 치던 놈은 암으로 죽었고, 드럼 치던 녀석은 미국으로 가서 연락이 끊겼지. 키보디스트도 일본 어딘가에서 사업을 한다는 말만 들었어.”
“음, 그럼 단독 무대보다는 페어를 맞춰 드리는 것이 좋겠네요.”
“아, 같이 놀고 싶은 놈이 하나 있기는 한데…….”
진백철이 미간을 좁혔다.
“우리 한창 젊었을 때, 지리산이라는 놈들이 있었어. 우리 한라산과 동시에 활동을 시작했으니, 누가 누굴 따라 한 건 아니었지. 그놈들도 잘했는데, 결국 우리만 떠 버렸어.”
진백철은 아련한 추억을 회상하듯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낮은 한숨을 쉬었다.
“군사정권이었고, ‘저항’의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던 정부였지. 그때 밴드의 리더였던 그놈도 나도 험한 꼴을 많이 당했어. 어느 날부터 우린 승승장구했고, 그 밴드는 뿔뿔이 흩어졌지.”
후회 가득한 노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인 상황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한라산 밴드 2집 때 얘기인 것 같았다.
진혁의 기억에, 그 앨범에는 살기 좋은 우리나라를 찬양하는 곡이 몇 곡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놈이 나에게 지었던 쓴웃음은 아직도 꿈에서 나오곤 하지.”
진백철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뭐, 땅도 많은 집안이었고, 얼마 후에 개발도 됐으니 떵떵거리고 잘살았을 거야.”
“연락은 되십니까?”
“아니. 그런데 금방 알 수 있어. 그 녀석 그 동네 토박이였고, 평생을 거기서만 살 녀석이었거든. 수소문하면 금방 찾을 거야.”
“아… 그분은 포지션이…….”
“키보드야. 모르긴 몰라도, 둘이 같이하면 꽤 괜찮은 음악이 나올 수도 있어.”
“기대되네요.”
“자네들이 25년 만에 뭉쳤다는 걸 보니, 욕심이 생기네.”
“그럼, 그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아! 자네도 잘 아는 동네지? 왜…….”
* * *
응수동은 도로 지하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공사하는 인부들에게 음료를 나눠 주고, 자신의 건물로 향하던 주성돌 할아버지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응?”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이 핸드폰 화면에 떠 있었다.
서둘러 통화 버튼을 터치하고는.
“어이! 공연은 잘 봤다.”
활짝 웃으며 전화를 받은 할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허. 이게 누구여, 쓰벌놈?”
원망도 많이 했었고, 배신자라며 손가락질도 했었다.
50년 전, 그때는 말이다.
하지만 케케묵은 감정 따위는 멀겋게 희석하고도 남을 정도로 세월이 지났다.
“진짜 오랜만이네. 진혁이랑 같이 있는 거여?”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떠날 줄 몰랐고, 너무나도 반가운 오랜 친구의 목소리를 전해 주는 핸드폰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응? 아… 뭐? 그게 말이 되는… 뭐, 재미는 있겠다만… 그려. 일단 얼굴 보고 얘기하지.”
난처해하는 표정과는 달리, 주성돌 할아버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 * *
‘사회의 시스템을 조정하는 곳은 결국 정부와 국회야. 사람들이 아무리 바뀐대도, 지금껏 이어져 온 법칙을 벗어나지는 못해.’
오랜 친구와의 설레는 통화 이후, 이내 잠이 든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입술이 살짝 올라가 있었다.
지금 정부가 가진 방향과 그들이 뭘 원하는지. 그리고 그걸 거절했을 때 벌어질 일들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다.
그들이 뭘 두려워하는지 들었을 때는 피식하고 웃음까지 터졌었다.
사실 진혁은 그렇게 거창한 계획까지 세우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너무 팍팍해 보였고,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재밌는 세상을 보여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재밌게 날뛰다 보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도 얼른 일어나고 싶어질 테니까.
그렇게 단순하게만 생각했는데.
마냥 재미만 추구하기엔 뭔가 막히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결국, 아무리 신나는 공연을 만나더라도 오랫동안 달리고 있던 쳇바퀴는 벗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다시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사회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뿌리 깊게 자리한 시스템이 자신에게까지 손을 뻗어 온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데, 직접 듣고 보니…….
‘조금, 짜증 나는데?’
차창 밖을 바라본 진혁의 미간이 좁아졌다.
다수의 지지를 받아 국민을 대표하여 나라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단체.
만일 그들의 방향이 옳았다면.
세상은 지금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갈등을 조성하여 확고한 표를 확보하곤 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은.
모두 하나가 되어 재밌게 화합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인간 회사의 이념과는 전혀 반대되는 세상이었다.
그런 그들이, 진혁의 목소리를 원한다고 했다.
뭐가 되었건.
그에게는 재미없는 일이 될 터였다.
‘어림도 없지.’
재미 하나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에 도움을 달라니.
진혁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