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90
90화 3월 1일
“아니, 그걸 이제 얘기해?”
“그게… 불과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라서…….”
스테빈이 인상을 쓰며, 책상 위의 서류를 집어 던졌다.
일본에 투어를 갈 때마다 매번 오사카의 나가이 스타디움은 가득 찼었다.
사전 예약 8만 장은 하루면 매진되었었고, 언제나 웃돈이 붙어 다시 거래되고는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3월 21일의 표는 모두 매진된 상태였다.
작년 금액보다 더 높은 2만 엔으로 책정했지만, 리셀가가 4만 엔을 넘어가기 시작했고, 이번 공연 역시 가득 찬 관객석을 만나게 될 터였다.
일정을 조금 앞당긴다고 큰 변동은 없으리라 여겼다.
어차피 같은 일요일이었고, 게스트도 더 추가해 주지 않았던가.
공연 시간도 소폭 늘려 가며 선심까지 썼는데…….
“그래서… 얼마나 빠졌지?”
“그게… 절반 정도가…….”
“뭐?”
스테빈이 발작하듯 벌떡 일어났고, 일본 기획 관리자가 몸을 움츠렸다.
“아니, 날짜 조금 당겼을 뿐인데…….”
아주 작은 변수로 생각했던 한국의 공연이 이 정도의 타격을 줄 줄이야.
“일본인들은 원래 한국과 사이가 안 좋지 않나?”
“그게… 안 좋다고 하기보다는, 그냥 지금까지는 관심이 없었다고…….”
“후…….”
“한국의 공연이 워낙 큰 이슈가 되기도 했고, 게다가 무료라서…….”
“그게 변명이 될 말인가?”
“어떻게, 일본 정부에서 제안한 부분은…….”
스테빈이 미간을 좁혔다.
일본 정부가 책임을 져 준다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스테빈 사단의 공연을 무료로 진행하다니,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일본에서 그런 선례를 남긴다면, 다른 공연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스테빈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일본인들의 습성을 경계했어야만 했다.
일본에는 ‘거짓말도 방편이다.’, ‘거짓말도 백번 하면 진실이 될 수 있다’, ‘진실을 말하면 바보다. 거짓도 진실도 말하지 말라.’라는 유명한 속담들이 있었다.
거짓말을 합리화하는데 관련된 속담만 100개가 넘는 나라였다.
일주일 전 환불 사태가 시작되었을 때 연락받았었다면 공연 일정을 다시 잡았을 수도 있었다.
당연히 매진된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것이 실책이었다.
“우리가 나서서 무료로 표를 뿌릴 수는 없어. 일본 정부가 알아서 하라고 해.”
“그럼… 일단 정부에게 직접 사람들을 동원하라고 말해 보겠습니다.”
기획 관리자가 서둘러 밖으로 나갔고.
스테빈이 참담한 심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까지 진행해 왔던 월드 투어 콘서트에서 관중을 억지로 동원했던 적이 있었던가?
눈앞이 아찔했다.
그 나라의 공연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이 많았기에, 오사카의 공연 이후 반응을 보고 시즈오카 공연까지 계획하지 않았던가.
마침 가까운 나라에 수백만이 들어와 있었고, 당연히 자신들의 공연에 더 관심을 가지리라 여겼는데…….
다리에 힘이 풀렸고.
힘없이 소파에 주저앉았다.
* * *
-조금 후 열 한시에 펼쳐지게 되는 인간 회사의 공연 현장입니다. 아직 일곱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요. 각 지자체가 나서서 서포트하고 있습니다. 저 위 남해 고속도로 고가에 설치된 무대가 전라남도의 무대고요. 아, 함안 나들목 쪽에도 무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그곳은 경상남도의 무대입니다. 그리고 또 들어온 소식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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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 조금 후면 광화문에서 대통령님의 축사와 각종 행사가 진행될 텐데요. 그 행사 이후 저희 KSB2 채널에서는 특집 방송으로 인간 회사의 공연을 실시간으로 보여 드릴 예정입니다. 각 공연장에는 기자들이 직접 현장으로 향해…….”
* * *
“와, 지금 한국 시간은 오전 여덟 시가 조금 넘었죠?”
“네. 그런데도 벌써 사람들이 저렇게 많네요.”
“저도, 이 토크쇼만 아니었으면, 한국으로 날아갔을 텐데…….”
“저 역시 LA로 오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거예요.”
“뭐, 이미 늦었죠.”
“이렇게라도 보는 게 어디예요.”
“지금 보이는 곳이 서해안 고속도로인가요?”
“홍성이라는 도시 부근이라고 합니다. 오늘 공연을 위해 고속도로 몇 군데가 통제되었다고 하네요. 와, 저렇게 고가 위에 스크린들이 있으니까,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도 시야가 가리질 않네요.”
“저기만 봐도 숫자가 엄청난데, 저런 곳이 여덟 군데나 있다고요?”
“네, 작년 크리스마스부터 한국에서 시작된 인간 회사의 공연은, 무대를 분산해서 합동 공연을 해 왔는데요…….”
* * *
“지금 저희는 동해 고속도로 위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저곳이 옥계 나들목 부근이고, 사람들이 모인 면적으로 보았을 때, 대략 35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조금 후에 보여 드릴 북양양 나들목에는 50만 명 정도가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아직 이곳에서 누가 공연하게 될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보시다시피 고속도로 외벽을 따라 대형 스크린들이 설치되어, 사람들이 가로로 주욱 늘어서 있는 모습입니다. 이제 공연까지는 약 삼십 분 정도 남았는데요. 흰색 상의를 입은 사람들이 저렇게 가득 차니, 정말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광경입니다. 이는 2002년 월드컵 붉은 악마 이후로…….”
* * *
“난간 쪽은 가지 마라.”
“아… 보고 싶은데…….”
나비 계곡의 베이시스트 이찬이 제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와! 방송국 헬기다!”
“진짜네?”
“너는 밑에 봤지?”
“보지 마. 숨이 턱턱 막혀.”
“나도 볼래!”
“어… 너 공연 시간까지 못 기다릴걸?”
이찬은 얼른 제이의 옷깃을 꽉 잡았다.
그 많은 관중을 직접 보게 된다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훨씬 더 길게 느껴질 것이었다.
당장 올라가 그들의 반응을 이끌고 싶어질 테니까.
친구에게 붙들린 제이가 고개를 돌려 통제된 고속도로를 바라봤다.
4차선 곧게 뻗은 도로가 텅텅 비어 있었고, 멤버들과 스태프들이 그 한가운데 아무렇게나 앉아 있었다. 이는 평소에 정말로 하기 힘든 경험이었다.
뭔가 세기말적인 느낌도 있었고, 시각적으로 정말로 고요했다.
다만, 웅성거리는 소리라고도 표현하기 어려운 엄청난 인기척이, 이 공간을 에워싸고 있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관중이 이 고가 아래에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무대 설치는 끝났고, 이젠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걸어 나가던 프레디 머큐리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제이가 난간 방향을 바라봤다.
5만? 10만?
지금 이 아래에는 몇 명이나 모여 있을까?
수많은 사람이 내는 통일성 없는 각자의 소리는, 어떠한 기계장치의 힘을 빌리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박력을 안겨 줬다.
그저 목소리들의 모임만으로 마치 이 고가가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눈을 감고.
곧 만나게 될 함성을 떠올렸다.
팔에 소름이 오슬오슬 올라왔다.
이찬의 말이 맞았다.
지금 저 아래의 광경을 보게 된다면, 얼른 그 함성을 듣고 싶어질 것이 뻔했다.
다른 고속도로들 위에서도, 이 설렘 가득한 기나긴 기다림을 견디고 있을 터.
“진짜 이런 광경을 만나게 되는구나.”
“그러게.”
“꿈도 못 꿔 봤다.”
“나도.”
“웸블리가 6만 명이었나?”
제이가 팔을 활짝 펴 하늘로 향했다.
“퀸?”
“응.”
“차일드 애플이 거기서 공연하지 않았나?”
“걔네 3만 명이었어.”
“최고 기록은 마이클 잭슨이지?”
“뭐, 8만 찍었었으니까.”
“저번 서해 때 우리 몇 명이었지?”
“2만 5천 명.”
“그것도 엄청났었는데…….”
가슴에 손을 얹은 제이가 눈을 감았다.
‘세상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광경을 선물해 줄게요.’
그날, 태각시의 그 축제 첫날 밤 – 수익은 거의 없을 거라며 계약서를 내민 – 그가 내세운 보너스였다.
뭐, 그랬을 리는 없었겠지만.
‘만일 그날 사인하지 않았다면…….’
눈을 떠 난간을 바라봤다.
그 너머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어디까지 다가가면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까?
얼마나 많이 모인 거지?
“딜레이 확인 들어간답니다! 준비해 주세요.”
스태프가 외쳤고.
“와, 씨. 다리 떨려.”
“나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나비 계곡 멤버들이 움직였다.
* * *
인간 회사는 공연에 대한 모든 중계권을 프리로 오픈했고, 그에 세계 여러 언론사가 이 공연을 취재하기 위해 특파원들을 보내왔다.
여러 플랫폼의 개인 방송 진행자들도 몰려들었고, 유투부에선 이례적으로 자체적인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아침부터 모든 SNS와 포털 사이트는 이 공연의 소식을 퍼 나르기 시작했고, 평소 관심이 없어서 알지 못했던 사람들도 라이브 방송을 찾도록 만들었다.
미국 경제 주간지에서 평가한 인간 회사 공연의 경제적 가치는 약 4조 원이었다.
그만큼 엄청나게 뛰어오른 몸값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무료로 공개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3월 1일.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게 되었다.
* * *
“무료라서 가능한 거야.”
“아…….”
“수익을 내지 못하는 공연 따위는 지속될 수도 없고, 그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해.”
스테빈이 나가이 스타디움의 전망대에서 텅 빈 관객석을 바라봤다.
공연은 오후 5시였고, 일본 정부가 표를 사서 사람들에게 나눠 줬기에 어찌 만석은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본 국영방송에서까지 나가이 스타디움의 공연을 떠벌리며, 치켜세웠지만…….,
“이게 도대체…….”
스테빈이 태블릿 화면 가득한 한국의 소식들을 바라봤다.
저렇게 모인 사람들을 직접 본 이상, 어떤 핑계를 대도 충격받은 가슴을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세계의 수많은 언론이 주목하는 공연이라니.
말도 되지 않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는 중이었다.
조금 전, 이 전망대로 올라오는 도중 만났던 직원 몇몇도, 그 영상들을 보고 있지 않았던가.
다행히 일본 정부 덕에 체면치레는 하게 생겼지만, 환불 표가 더 나왔다는 소리까지 들려왔었다.
“후우…….”
오만했던 자신의 완벽한 패배였다.
* * *
고속도로 아래의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기다림을 즐기는 중이었다.
한 시간의 공연을 보기 위해 전날부터 텐트를 쳤던 사람들도 있었다.
흰색 상의.
모두에게 주어진 드레스 코드였다.
어쩌면, 그간 서로 흩어지기 바빴던 대한민국 사람들이었다.
성별로 나뉘고, 계층으로 나뉘었고, 이념으로 또 나뉘었다.
그 밖에 여러 이유로 서로를 밀어내고, 헐뜯고, 무시해 왔다.
그런 그들이 이날 같은 색의 옷을 입고, 같은 목적으로 모였다.
백색의 옷이 주는 동질감은 이날이라서 더욱 특별했다.
고개를 들어 저 멀리까지 펼쳐진 백색의 물결을 발견한 이들은, 왠지 모를 뭉클함을 느꼈다.
모두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기에 잊고 지냈었지만.
같은 나라에서 같은 언어를 쓰는 한 국민이라는 것은 굉장히 특별한 것이었다.
선조들이 피를 흘리며 지켜 낸 조국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교과서적인 부분이었고, 이제는 미약한 존경의 의미만이 남았을 뿐이었지만.
지금 느껴지는 이 소속감은 국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 처절했던 역사가 만들어 준 감동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한 국민이라는 동질감에 들떠 있던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고속도로 외벽 스크린을 향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에 함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모인 수십만 명이 낸 한목소리는.
정말로 고가도로를 흔들 정도였다.
전국 여덟 개 무대에 오늘의 주인공들이 올라왔다.
스크린에 차례대로 그들의 모습이 잡혔고.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