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91
91화 아리랑
모든 이들이 백색의 옷을 입고, 당연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어서였을까?
첫 곡으로 흘러나온 아리랑은.
그래서 더욱 가슴을 울려 댔다.
피아노 연주로 시작된 구슬픈 아리랑에, 신디사이저들이 만들어 낸 다양한 악기음들이 섞여 웅장한 곡으로 바뀌더니, 얼마 후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이 더해지자 강렬한 록으로 변화했다.
황지선과 테일의 목소리로 시작했는데, 다른 목소리들이 차곡차곡 쌓이자, 세상 어디에도 없던 거대한 아리랑이 되었다.
관객들도 저마다 입을 달싹였고.
첫 곡부터.
전국에 떼창이 시작되었다.
이 곡은 이곳에 모인 이들이 모를 수가 없는 곡이었다.
5분이 넘도록 계속해서 이어지는 아리랑 메들리는 전국에 모인 모든 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더욱 완벽해지고 있었다.
의미 있는 날이었고.
백색으로 모였기에.
감정은 더욱 격해졌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갈라졌고.
그 모든 과정 자체가 이야기였다.
이 곡의 의미를 크게 알지 못하던 외국인들조차, 그 엄청난 감정의 파도에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였다.
전국 각지에 파견된 외신 기자들도 본연의 임무를 잊은 채, 멍한 눈으로 그 엄청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막.
첫 곡이 시작되었을 뿐인데.
이미 공연은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각 지역에 모인 이들은, 각각 적게는 30만에서 많게는 60만 명이 넘었다.
그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내는 소리는, 그 자체만으로 감히 말로는 묘사할 수 없는 엄청난 광경을 만들어 냈다.
과거 그날을 떠올린 것도 아니었으며, 치욕적인 역사를 꺼내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며 따라 부르기만 했을 뿐인데.
자신들이 만들어 낸 이 엄청난 소리를 만나자,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경이로운 무언가를 직접 보았을 때 느낄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기에.
가슴이 벅차오른 것은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인이라면.
어디서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누구나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곡.
그렇기에, 가장 큰 소속감을 느끼게 해 주는 노래.
한국에서의 아리랑은.
그런 존재였다.
모두의 목이 메어 왔지만, 노래는 끊이지 않았고.
더욱 진해졌으며, 더욱 깊어졌다.
한국 역사상 최고의 아리랑이 한반도 전체에서 울리고 있었다.
* * *
“그…….”
“아…….”
미국 NDC 유명 토크쇼인 ‘투데이 버라이어티 쇼’의 진행자인 랄프 픽셀은 현장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게스트로 나온, 자칭 ‘한국 전문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할리우드 배우 캔 프라우드 역시 할 말을 잃고, 감탄사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이미 5분째 그러고 있었으니, 방송 사고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랄프의 성격이 괴팍하다고는 해도, 이 정도까지 방송 사고가 났으면 프로듀서가 끼어 들었어야 할 타이밍이었는데도.
그 프로듀서 역시 입을 벌린 채, 한국의 아리랑을 듣고 있었다.
초반 한 곡쯤 들으며, 적당히 함께 즐기고 얘기를 나누다가 다음 코너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미 그 시간은 지나 버렸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스태프들과 관객석 모두가 같은 얼굴이었다.
관객으로 온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그 아름다운 음절을 중얼거렸고, 그 소리는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 객석 전체로 퍼져 나갔다.
진행자 랄프도 입을 달싹였고, 할리우드 악동 캔 프라우드의 떨리는 목소리도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투데이 버라이어티 쇼 역사상, 5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아니, 소리는 냈다.
랄프로서는 생전 처음 불러 보는 한국어 노래였다.
이 순간.
이 광경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모두의 머릿속에선.
‘나도 저 소리에 동참하고 싶어.’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정말로 거대한 감정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구전 민요는, 그렇게 세계 곳곳에서 출렁였다.
* * *
계속해서 변주를 주던 아리랑의 연주가 절정으로 치달았고, 따라 부르던 이들의 목이 한없이 잠겨 갈 즈음.
모든 스크린에 단 하나의 밴드만 남았다.
처음 스크린에 밴드들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던 그 밴드였다.
다른 무대들의 배경은 모두가 고속도로 위였는데, 이 밴드의 뒤에만 수평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악기의 소리가 멈췄고.
그 밴드의 리더가 방긋 웃으며 마이크를 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숨을 죽였다.
-진짜 나를 깨닫는 즐거움이여.
나 ‘아(我)’, 이치 ‘리(理)’, 즐거울 ‘랑(朗)’.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어려움과 고비를 넘어.
어떠한 악기도 끼어들지 않았기에, 맑은 음성이 더욱 또렷하게 들렸다.
-나를 버리고 정처 없이 헤매다가 보면, 인생의 진짜 목적을 이룰 수 없어.
청량한 목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흩어졌고.
-다시.
아주 잠시 흐른 정적.
-한 번 더.
멈춰 있던 모든 악기가 동시에 울리며 거대한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모든 보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임도유와 제니스의 거친 목소리가 강하게 긁었으며.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황지선과 박재경 테일 그리고 JH 두 명의 음성이 하늘을 향해 울려 퍼졌고.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깊은 울림을 내는 진백철의 목소리를 끝으로.
장장 10분 동안 이어지던 아리랑이 막을 내렸다.
첫 곡이 끝났고.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지만.
잠시간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스크린 속 그가 천천히 손뼉을 쳤다.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 주세요.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전국 모든 곳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그들의 모습을 촬영하던 앨런은 목까지 차오른 먹먹함을 어쩌질 못하고 있었다.
보통 다큐멘터리란 있는 그대로를 담아 내기 이전에, 감독 본인의 방향성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 목적 안에서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이었다.
지금껏 그가 만들어 왔던 다큐멘터리 역시, 그의 사상과 생각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다큐멘터리는 달랐다.
어디에도 본인의 생각이 끼어들 수 없었다.
그가 세운 계획은 너무나도 엄청났고, 흘러가는 과정 자체를 따라가기도 벅찼기 때문이었다.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찍어 내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굉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날것인 상태로도 거대한 감동을 만들어 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기록.
이 엄청난 순간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이미 자신의 팀들이 전국에 퍼진 각 무대를 담고 있었다.
방금 스크린을 통해 전해졌던 그 엄청난 전율이 모두 모인다면, 과연 어떤 영상이 만들어질까?
앨런 무어는 벌써 가슴이 벅차올랐다.
떨리는 눈으로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바라봤다.
여지없이 그는 방긋 웃고 있었다.
한국을 지켜보던 전 세계가 탄성을 지르던 때.
-일단, 마음은 한데 모였고.
수백만의 시선을 모은 그가 해맑게 웃으며, 수평선 위로 뛰어올랐다.
그대로 그들의 본 무대가 시작되었다.
* * *
숙연해진 분위기를 뒤로 하고.
전국 각지에 만들어진 고속도로 무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전의 공연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열기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각 무대에 올라선 아티스트 본인들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굉장할 거예요.’
그가 그렇게 말했으니 예상은 했지만.
이는 정말 상상도 못 한 광경이었다.
아리랑이 첫 곡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심장이 터져 버렸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그 곡으로 인해 촉촉이 젖어 들었기에, 마구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조금이나마 컨트롤할 수 있었다.
수십만의 사람들.
흰색으로 이루어진 끝도 없는 인파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은 실로 엄청났다.
그 모두가 이 무대를 향하고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도, 마이클 잭슨도, 이런 광경은 본 적이 없을 거야.’
순간 ‘저 아래로 다이빙하면 죽겠지?’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던 제이였다.
* * *
현장에 자리한 사람들은 그들의 공연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고, 다른 생각 따위는 섞일 틈조차 없었다.
다만, 각 매체의 생중계를 보던 사람들은 아주 약간의 여유가 있었기에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이미 영상으로도 확인했고, 게시판을 통해 각 지역 무대의 아티스트 정보가 작성되었다.
그런 정보들을 살피던 이들은 모두가 의문점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어? 인간 밴드는?’
전국 어느 곳에도 그들의 이름이 없었던 것이었다.
[봐. 지금 시간에 해가 저 위치면, 남해인가?]└야. 저 수평선 방향이 어딘지를 알아야지.
└아, 그렇긴 하네?
└자잘한 섬들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동해야.
└서해도 각 잘 잡으면 깨끗한 수평선 보임.
└도대체 어디지?
└그러게, 왜 저긴 드론이나 헬기 촬영 안 함?
└와, 아무튼 첫 곡부터 찢었다.
└맞음. 첫 곡에 아리랑이 나올 줄이야. 나 혼자 방에서 울컥하면서 부르는데, 거실에서 아부지도 따라 부르고 있었음. 결국 지금 같이 보다 들어왔음.
└그 많은 사람이 같이 부르는데 진짜 소름이…….
└외국 애들 반응 영상 실시간으로 뜨더라.
└우리만 울컥하는 게 아니었음.
└전 세계가 따라 불렀을 거임.
└괜히 인류 무형 유산이 아님.
└이것이 한국 구전 민요의 클라스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도 하지 않았음?
└오! 진짜임?
└이건 국뽕 좀 섞어도 문제없음.
└와, 근데 진짜 많이 모였다.
└나 오늘 오후 알바만 아니었어도…….
└서울이 텅텅 비었음.
└맞아. 사람이 없어.
└진짜 역대급이다.
└어? 멘트한다!
└진혁느님 멘트 거의 없지 않음?
└맞지.
-자, 여기까진 공짜.
세 번째 곡을 끝낸 영상 속 그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방긋 웃었다.
-음, 이제부터 후원받습니다.
영상을 보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영상에 보이는 관객들의 표정도 멍해졌다.
-첫 번째니까. 오천 포인트 후원자 수가 백만 명을 돌파하면, 바로 다음 곡 가겠습니다.
그가 무대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때까지 좀 쉴게요.
황당한 사태에 멍해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정신을 차렸고, 저마다 핸드폰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거 뭐지?]└대박. 전 세계를 상대로 후원받겠다는 건가?
└난 일단 후원했음. 안 그래도 무료로 보기 미안했음.
└나도 했음. 빨리 다음 곡 들어야지!
└하긴, 지금 저 회사 적자 아님? 이렇게라도 벌어야지.
└잠깐. 5천 원씩 백만 명이면 50억 아님?
└야. 저 정도 규모 공연이면 그걸로도 어렵지.
└몰라. 일단 얼른 백만 채우고, 어? 진혁느님 일어났다.
└뭐? 벌써 백만 넘겼어?
└대박!
영상 속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좀 쉬자니까.
그가 후원 멘트를 한 지, 불과 2분 만이었다.
-아… 이러면 두 곡 더 해야겠는데? 어? 세 곡?
그가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카메라에 내밀었고.
계속해서 올라가는 숫자는, 이미 이백만을 넘어 삼백만까지 치솟는 중이었다.
-바로 갑니다!
신나게 머리를 흔들었고, 그의 미친 듯한 고음이 터져 나왔다.
* * *
“야. 지금 뭘 본 거냐?”
“2분 만에 백오십억이 벌리는 거요.”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니…….”
“근데… 노래 시작했는데도 숫자가 계속 올라가는데요?”
“아…….”
“적자 난 부분 전부 다 메워 주겠다더니… 진짜로 질렀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석준과 동구가 입을 쩍 벌리고, 후원 상황이 표시된 모니터를 바라봤다.
막판에 다 회수한다더니, 정말로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돈에 관한 한, 영 믿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런 영특한 생각을 할 줄이야.
석준이 흐뭇한 표정으로 공연 현장 화면을 바라봤다.
이번엔 태각시 때처럼 직접 카메라를 설치할 필요도 없었다.
사람들이 알아서 현장 영상들을 내보내는 중이었고, 유투부 라이브 채널들은 이미 저 공연으로 도배된 상태였다.
심지어 미국의 어느 토크쇼에서는 실황 중계를 하는 중이라는 소식까지 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분명 다른 방송사들도 소식을 전하고 있을 것이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전 세계로 공연 현장을 송출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수천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다음 곡을 인질로 잡다니.
“난 가끔 말이다.”
“네?”
“‘저놈이 사실은 음악 외적으로도 똑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더라.”
“에이. 그냥 소 뒷걸음에…….”
“아냐. 저번에 문체부 장관 엿 먹인 것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어? 잠깐만요.”
동구가 석준의 입을 턱 막았다.
“에이 씨… 새끼가…….”
신나게 무대를 뛰어다니던 진혁이 마지막 소절을 끝내고, 카메라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제가 지금 어딨는지 궁금하죠?
진혁의 장난기 넘치는 얼굴에, 동구와 석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영상 속 무대 뒤 수평선 위의 구름이 조금씩 왼쪽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반 바퀴쯤 돌자.
-우리나라에선 아리랑만큼이나 유명한 곡이죠?
진혁이 기타 솔로를 시작했다.
미칠 듯한 속주가 터져 나왔고.
완벽하게 다른 곡으로 바뀌었지만.
지금 흐르는 이 기타 소리는 모두가 아는 곡이었다.
환상적인 음악을 만나 흥에 겨운 사람들이 첫 소절을 떠올리며 기다리던 때.
화면 속 그들의 무대 뒤, 두 개의 섬이 나타났다.
-자, 다 같이.
전국 모든 무대가 동시에 연주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