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92
92화 태극기
한때는 금지곡이었던 적도 있었던 노래였다.
국제 정세상 일본의 눈치를 봐야 했던 시기도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원곡자는 가수가 아닌 코미디언이었다.
그 이후에도 몇몇 가수가 다시 부르기도 했으나, 간간이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곤 했다.
부정확한 정보가 담겼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거리라든지 언급된 세종실록지리지의 페이지가 다르다는 소소한 부분이었기에,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 노래가 탄생한 이후.
가장 많은 사람 앞에 선보였으며.
가장 많은 사람이 동시에 부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록으로 재탄생한 이 곡은 전혀 다른 곡이면서도, 너무나도 익숙했다.
익히 알고 있던 곡이 정말로 멋지게 편곡되었고, 사람들은 금방 그 곡조를 따라 부를 수 있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독도를 뒤에 두고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에게나 익숙하지만, 심리적으로 가장 먼 섬.
그 앞에서 그들이 뛰어올랐다.
* * *
“이게 말이 되는 광경입니까? 주한 대사는 저런 사실도 모르고 뭘 한 겁니까?”
“그게, 일반 관람객으로도 신고되지 않았고, 특수 목적 입도 허가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 자기 나라의 법도 지키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아니… 그게, 입도하지 않았으니… 아직은…….”
“아…….”
일본 외무성 대신 타카키 마사노리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뭔가 꼬투리를 잡아야 하는데, 바다 위에서 공연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발끈하기에는 모양새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러모로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일단, 한국 대사부터 들어오라고 하세요. 뭔가 액션은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타카키 마사노리가 모니터를 노려봤다.
전 세계에서 보고 있을 그 화면 속 섬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지금껏 자신들이 국제사회에서 노력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력화되는 중이었다.
* * *
[오, 이 노래 멋진데?]└뭔가 강렬하면서도 흥겹네.
└한국인들은 이 노래를 다 알아?
└다들 따라 부르잖아. 그리고 이 노래 그때 그 한국 영화에서도 나왔던 노래야.
└맞아, 가사를 바꿔서 나왔었지.
└난 방금 연출이 너무 멋있었어.
└역시 인간 밴드는 항상 짜릿해.
└저 섬이 한국에게는 그렇게 특별한 섬인 건가?
└전에 말했던 동해라는 바다명 표기와도 관계있어. 독도라는 섬은 일본에도 한국에게도 중요한 곳이야.
└저기 펄럭이는 것은 한국 국기 아닌가?
└맞아. 태극기지.
└그럼 한국의 섬 아닌가?
└맞지.
└동해 공연 때도 말이 나왔듯, 일본이 억지를 쓰며 우기는 중이야.
└자기네 국기를 걸지도 못했으면서 교과서에 실었지.
└지도 회사들에 로비도 엄청나게 해 왔다더군.
└한국의 역사를 알면 지금 이날 저 연출이 얼마나 소름 돋는지 알게 돼.
└응?
└한국에게 3월 1일은 엄청나게 특별한 날이거든.
└아. 나도 검색해 봤어.
└한국인들 정말로 멋지더군.
└지금 저들의 복장이 그날의 퍼포먼스야.
└오. 흰색 상의에 어두운색 하의?
└그렇지.
└저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같은 복장에 한목소리로 노래하니까 정말로 웅장하군.
└자꾸만 저 노래가 맴도네.
└노래 자체가 예술이니까.
└아무튼 오늘도 정말 멋지다.
└언젠가 나도 한국에 가서 공연을 보고 말 거야.
└나도 돈 모으는 중이야.
└저기 끼어 있는 친구들 정말 부러워. 언제 저런 공연을 만나 보겠어.
└정말 전설로 남을 거야.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3월 1일의 의미와.
외로운 섬 두 개의 실체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 * *
인간 밴드의 환상적인 연주에 다른 밴드들이 동참했고, 원곡은 엄청나게 웅장한 곡으로 탈바꿈했다.
때론 거칠게, 때론 흥겹게, 때론 아련하게 울린 그 곡은, 세계 모든 사람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별다른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지금 이 공연을 화면으로 전해 보는 모두에게, 태극기가 펄럭이는 저 섬이 한국의 섬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로 각인되었다.
약 2조 엔.
오랜 기간, 일본 외무성이 각국 국회를 상대로 한, 로비에 사용된 추정 액수였다.
일본으로서는 그 어마어마한 금액이 한순간에 날아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들 국회가 아무리 떠들어 봐야.
전 세계에 퍼진 이 영상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3월 1일에 대한 역사도 퍼지기 시작했으며, 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세계 곳곳에 자리한 어떤 동상을 떠올리게 했다.
단, 4분에 불과한 노래 한 곡이 뿜어낸 엄청난 힘이었다.
-자! 다 같이!
베이스의 둥둥거림이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렸고.
-독도는 우리 땅!
한반도 전체에 울려 퍼진 목소리였다.
아니, 세계 곳곳에서도 이 노래가 불리고 있었다.
* * *
스테빈은 본능적으로 저 곡이 마지막 곡임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저 공연의 클라이맥스였을 것이었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이라서 가능한 무대였다.
미국의 독립 기념일에 저런 공연이 가능할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었다.
문제는.
그 퍼포먼스에 전 세계가 동참했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음악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아 한국의 역사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한국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을 다른 국가의 사람들에게도 퍼트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스테빈 자신도 울컥할 정도였으니…….
일반적인 대중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물은 엎질러졌고, 그들의 공연은 끝났다.
“우리 공연 송출할 수 있는 미디어 모두 동원해.”
저들의 공연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가장 큰 이점 때문이었다.
아티스트들의 이름값으로만 봤을 때, 지금 이 오사카의 라인업과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자신들의 공연이 전 세계에 송출된다면, 저 공연보다 더 많은 시청 인원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었다.
더군다나 저런 큰 이벤트가 끝난 이후 사람들은 들떠 있을 터.
그들의 공연에 아쉬움을 느낀 이들은, 분명 이곳의 공연으로 고개를 돌리게 될 것이다.
자존심은 상했지만.
알게 모르게 비교되는 상황에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우리도 공개 공연으로 간다.”
“일본 측에는…….”
“신경 쓰지 마. 그들도 어떻게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만 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유럽 공연에서 발표하기로 한 미공개 곡들도 준비하고, SNS로 관련 내용 뿌려. 레이햄은 미국에서 하기로 했던 무대 준비하고.”
스테빈의 미간이 좁아졌다.
유럽 무대와 미국 무대에서 써야 할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어차피 이곳 관객석만으로는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상대도 되지 않았다.
적어도, 유투부 시청자는 넘어서야만 했다.
스테빈이 고개를 돌려 태블릿 화면을 노려봤다.
곡을 마무리한 그가 독도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아, 뭔가 아쉽다.
스테빈의 옆에 서 있던 통역이 서둘러 그의 말을 전했다.
-아! 우리 안 한 게 하나 있었네요?
통역의 말을 들은 스테빈의 눈썹이 꿈틀댔다.
-1919년 이날, 사람들이 가장 먼저 모인 곳은 어디일까요?
고개를 돌린 그가 방긋 웃었다.
-5시에 거기서 만나요.
“뭐?”
스테빈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 * *
“어? 저거 뭐지?”
방금까지 ‘독도는 우리 땅’을 따라 부르다가 물건이 오는 바람에 편의점 밖으로 뛰쳐나온 청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오전 광화문 행사가 끝나고, 간간이 차들이 다니긴 했는데, 도로가 통제되었는지 오토바이 하나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 넓은 도로 한가운데 무언가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행사 또 하나?”
조금씩 무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자, 방금까지 보고 있었던 영상이 떠올랐다.
“아오… 알바만 아니었으면 나도 공연 보러 가는 건데…….”
애꿎은 박스를 발로 차며 심통을 부린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엄청난 공연이었기에 영상만으로도 그 열기가 전해졌고, 그랬기에 더 아쉬웠으며, 진한 여운을 남겼다.
“후… 손님도 없고…….”
공연 실황을 모아서 중계하던 유투부는 이미 꺼진 상태였고, 서둘러 커뮤니티 게시판을 들어갔다.
[대박! 지금 그럼 서울로 달려야 되는 건가?]└공연이 두 개로 나뉘어 있던 게 이 뜻이었을 줄이야!
└그러게 왜 준비물 꺼내란 말을 안 하나 했다.
└야, 근데 애매한 게, 지금 가도 버스를 탈 수 있냔 말이야.
└아, 그렇겠네?
└이쪽 옥계는 다들 주저앉았어. 어차피 지금 움직여도 못 가니까. 그리고 나비 계곡은 여기서 공연한대.
└오, 우리 경남 쪽 임도유도 지금 노래 중임.
└우리도 차일드 애플 고삐 풀렸음.
└그럼 다들 자리 지키는 거임?
└서울에 공연 못 갔던 사람들 뛰쳐나오기 시작했음.
└와, 서울도 장난 아니겠다.
└무슨, 독도에서 갑자기 서울까지!
└아무튼 대박이다!
[후훗. 나 알바 때문에 못 갔는데, 우리 편의점 바로 앞이 무대임.]└오! 종로임?
└진짜 부럽다!
└진혁느님 바로 앞에서 보겠네!
└지금 무대 막 만들어지고 있음.
└와. 난 경주임.
└편돌이 계탔네!
└나도 종로 가고 싶다.
└영상 찍으면 바로 올리셈!
댓글들의 반응을 보던 청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섯 시면 알바 교대 시간이었다.
시간까지 딱이었다.
‘아차!’
서둘러 동생에게 흰색 상의와 준비물을 들고 달려오라는 톡을 보냈다.
* * *
각 고속도로 무대에서는 각자의 공연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갈팡질팡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 열정을 다하는 무대 위 아티스트들에게 집중했고, 이탈자는 많이 나오지 않았다.
어디서 어떻게 무대를 만나건, 모두 같은 무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신들만을 위해 펼쳐진 고속도로 위의 무대를 즐기기 시작했다.
마구 날뛰다가 힘들면 다 같이 쉬었고, 저마다 모여 자신들끼리 놀기도 했다.
이미 함께 노는 것에 길들어진 이들에게 몇 시간의 기다림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전국 곳곳의 해가 순차적으로 기울 때쯤.
모든 스크린에 종로의 모습이 비쳤다.
종로 2가 사거리에 설치된 무대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인파가 자리했다.
봄맞이 전국 공연 2부가 준비되었다.
* * *
“야. 어째서 나이 든 사람들뿐이지?”
관객석을 바라보던 레이햄이 인상을 구겼다.
아무리 봐도, 자신들의 공연과는 맞지 않는 연령대의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가이 스타디움이 꽉 차기는 했지만, 평소 자신들이 공연하던 분위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거 뭐지?”
“무슨 노인잔치도 아니고…….”
대기실에서 밖을 내다본 스테빈 사단의 아티스트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주최 측에선 쉬쉬했지만, 그래도 들려온 소문은 있었다.
환불 표가 발생했고, 그 좌석을 일본 정부가 사들여 메운다는 것이었는데.
“이건 너무하지 않나?”
절반, 아니 그 이상이 동원된 관객으로 보였다.
“나이라도 좀 맞추든가.”
레이햄이 애꿎은 대기실 문을 발로 걷어찼다.
“이런 분위기에서 신곡을 발표하라고? 미친 거 아냐?”
“아. 나도 제니스 따라서 한국이나 갔어야 했어.”
“아까 그 공연 정말로 환상적이었지.”
“한국 애들 잘 노는 건 알아주잖아.”
“한국에서 공연했던 팀들은 꼬박꼬박 거기만 가잖아.”
“그 독기 가득한 라스칼도 살살 녹았었지 아마.”
“난 무조건 다음은 한국 공연 잡는다.”
“거긴 관객들 반응이 엄청나.”
“맞아. 공연할 맛이 나지.”
“어? 서울 시작하나 보다.”
“뭐?”
“아… 우리랑 시간 겹쳤었지…….”
아티스트 한 명의 태블릿에 모두가 모여들었다.
그가 들어간 채널의 시청자 수는 이미 삼천만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 * *
-와, 진짜 많이 모였네요.
무대 위 진혁이 저 멀리까지 이어진 인파를 바라봤다.
온갖 시련의 역사 속에서 민족성을 잃지 않았고, 결국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살기 좋아지자 갈라지기 시작했다.
성별로 갈렸고, 세대 간의 갈등이 심해졌으며, 지역으로 나뉘었다.
전혀 재미없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진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늘만큼은 모두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으니까.
무대 양쪽에서 태극기가 펄럭였다.
-다들 준비됐죠?
전 세계 모두에게.
한국이 얼마나 재밌게 잘 노는지 보여 줄 참이었다.
진혁이 태극기를 뽑아 들었다.
다 같이 놀려면 먼저 모두의 마음이 뭉쳐야 하는 법.
머리 위로 태극기를 들어 올리자.
흰색의 거대한 물결에 색이 더해졌다.
스크린에 등장한, 무대 위의 아티스트들도 태극기를 들어 올렸다.
진혁이 온 힘을 다해 흔들자.
동시에.
전국 곳곳에 만들어진 태극기의 물결이 마구 출렁거렸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태극기가 휘날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