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94
94화 자부심
분명히 잘 알고 있는 곡이었다.
각종 스포츠 경기가 시작할 때 들었으며, 간혹 TV 정규 방송을 끄지 않고 잠이 들면 잠결에도 들려왔었다.
국가 행사에서는 빠질 수 없는 노래였고,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대부분 경험했을 군대에서도 불렀다.
다만, 불러야 할 때가 아니라면 그냥 나오긴 힘든 노래였다.
대한민국의 애국가.
그 노래가 영국 여신의 선창으로 시작되었다.
전국의 무대 중 한국 국적이 아닌 멤버들로 이루어진 유일한 무대였다.
하지만 그 이름값은 모든 무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높았던 홍성 무대였다.
어눌한 한국어로 시작된 노래는 이미 그곳 관객들의 목소리에 묻힌 후였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고속도로 난간에 설치된 대형 조명이 켜졌다.
애초부터 무대를 비출 생각은 없었던 듯.
그 조명들의 방향은 관객을 향해 뻗어 있었다.
아티스트들이 자리한 무대는 더욱 어두워졌고.
목소리를 높이는 관중들의 모습은 더욱 환해졌다.
이 공연의 마지막.
주인공은 관객 모두였다.
조명에 반짝이는 물결들이 노래했다.
유레이시는 이미 마이크에서 두 발짝 멀어진 후였다.
입은 달싹였지만.
굳이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노래를 시작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마지막 무대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기타를 연주하던 손도 멈췄다.
더 이상의 반주도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뒤늦게 정신 차린 스태프가 사운드를 껐다.
어둠 속 그녀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굉장하네, 한국은.’
모두 하나가 되어 한목소리로 부르는 그 노래는 유레이시의 마음에 쏙 들었던 편곡 버전은 아니었다.
아마도 본래 그들이 불러 왔던 노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유레이시는 알 수 있었다.
그 어떤 완벽한 연주와 음악이었어도, 지금 울려 퍼지는 저들의 노래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아마도 전국 모든 곳에서 저 목소리가 울리고 있을 것이었다.
무반주로 진행된 수십만 명의 합창은 너무나도 웅장했고, 세상 그 어떤 악기나 프로그램으로도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어두워진 무대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유레이시가 스크린을 바라봤다.
모든 스크린에 관객들이 가득했다.
스피커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화면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지는 목소리들이었다.
오늘 공연을 진짜로 경이롭게 만들어 낸 주인공은.
바로 저들이었다.
무릎을 모은 유레이시가 제니스를 바라봤다.
어때?
제니스가 방긋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 * *
노래하는 모든 사람은 지금 느껴지는 감정의 크기에 놀라는 중이었다.
간혹 느껴 본 것 같기는 했다.
올림픽, 또는 월드컵 등등 스포츠 경기가 그러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열렸던 월드컵 때 사람들은 모두가 뛰쳐나왔었다.
전국이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던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이 느낌과는 달랐다.
그땐 ‘승리’가 있었어야 했고, ‘경쟁’이 필요했다.
결국, 열심히 뛴 선수들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경쟁도 없었고, 승리도 없었다.
그저 모여서 같은 노래를 부른 것만으로 만들어진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그랬기에 모두가 주인공일 수 있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1절이 끝났고, 반주가 없었기에 바로 2절이 시작되었다.
머리가 큰 이후 억지로 불렀던 적은 있어도, 자발적으로 불러 본 적은 없었던 노래였다.
자신 있게 불렀던 1절에 비해 2절부터는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입이 달싹였다.
아주 약간의 도움으로도 생생하게 기억나기 시작했다.
이 어마어마한 합창에서 자신이 빠질 수는 없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고 이 현장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말함에 있어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했다.
거센 심장의 고동.
애국가를 부르며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두워진 무대.
그에 대비되어 노래하는 이곳은 너무도 밝았다.
오늘 쓰인 역사의 주인공이 자신들이란 것을 충분히 알려 주는 빛이었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모두의 마음이 ‘국가’라는 단어 아래 하나가 되었다.
어둠 속 진혁이 활짝 웃었다.
마지막까지 완벽했다.
* * *
4절까지 끝낸 사람들이 각 스크린에 비친 다른 곳의 주인공들을 바라봤다.
관객들을 비추던 조명들은 애초에 무대를 비출 생각이 없었던지,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환한 조명의 방해로 무대는 더욱 어두워졌지만, 그 위에 있던 아티스트들의 모습이 이미 사라졌다는 것은 모두 알 수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아쉬움 가득한 마무리였지만.
사람들의 가슴은 부풀어 있었다.
조명은 이곳을 비추는 중이었고.
아직도 주인공은 자신이었다.
세계 모두가 이 엄청난 광경을 봤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이 있었다.
역사 속에 자리한다는 경험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완벽해야 했다.
사람들은 신나게 놀았던 자리를 정리했고, 질서를 지켜 움직였으며, 서로를 도왔다.
오늘 만들어진 이 거대한 역사에 오점을 남길 수는 없었으니까.
세계인들은 그 누구도 통제하지 않았음에도 깔끔하게 퇴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한국인은 국민성까지도 예술이었다.
그해 3월 1일은 정말로 찬란한 날이었다.
* * *
“와. 진짜 멋지다.”
“뭔가 가슴이 먹먹하네요.”
“지하철로 세 정거장이나 떨어졌는데도 그대로 들렸잖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불렀으니까.”
“나 방금 환자랑 같이 애국가 불렀잖아.”
“현장은 진짜 엄청났겠다.”
“그러니까요. 영상으로도 이런데…….”
“지금 외국 언론들도 난리 났대요.”
“그럴 만하죠. 세계 최대 규모일걸요?”
“어? VIP 8호실 호출!”
“아. 제가 갈게요!”
청강 의료원 VIP 병동 간호사들이 태블릿 한 대에 모여 저마다 감탄사를 연발했다.
“근데, 아까 홍 교수님이 2호실로 뛰어갔었지?”
“네. 의사 표현 반응이 보였다고…….”
“어… 근데, 거기 보호자가… 맞지?”
“아, 쌤도 이번에 오셨죠?”
청강 의료원 VIP 병동 1호실부터 5호실까지는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특별 환자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따로 있었고, 비밀을 엄수하는 전담 간호사와 주치의만 출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간호사들 사이에선 소문이 나기 마련이었고.
“맞아?”
“그… 저도 직접 보진 못해서…….”
“그럼, 그 여중생이…….”
“뭐, 소문은 그래요.”
“와… 실제로 봤으면 여한이 없겠다. 그 방긋 웃는……?”
말하던 간호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쌤 왜요?”
“저… 저기…….”
“응?”
상대의 시선을 좇아 고개를 돌린 간호사도 몸이 굳었다.
“지, 진짜네…….”
두 간호사가 빠르게 멀어져 가는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 * *
“아빠!”
병실 벽에 붙은 TV 화면에선 공연 정리가 한창이었다.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소녀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숨을 헉헉거리며 멈춰 선 아빠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게… 그 영국 언니가 애국가를 부르고… 사람들이 막 따라 하니까… 눈꺼풀이 움직이길래… 내가 말을 막 거니까…….”
“응. 알았어.”
아이의 머리를 따뜻하게 감싸 안은 그가 방긋 웃었다.
그녀의 얼굴은 TV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지만.
눈동자는 이쪽을 향하려 하는 느낌이었다.
진혁이 아이의 어깨를 안고 천천히 걸어 그녀에게 다가갔다.
“봤어? 내 뒤로 독도가 딱 나타나는 거?”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전국 모든 사람이 동시에 뛰었었어.”
그녀와 눈을 맞췄다.
분명, 무언가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눈이었다.
“땅이 흔들리는 거 같진 않더라.”
다시 한번 깜빡였다.
“굉장했어. 종로가 가득 찼다니까? 월드컵보다 더 엄청났어.”
그녀가 그랬었다.
그때의 그 엄청난 장면을 또 보고 싶다고.
“애국가 여기까지 들렸지? 전국이 다 같이 불렀어.”
그녀의 손을 꼭 잡자, 미약한 힘이 느껴졌다.
“음악으로 역사를 만들었어.”
천천히 몸을 숙여 조심스럽게 그녀의 상체를 안았다.
가슴으로 그녀의 심장 고동을 느꼈다.
“전 세계가 우리 무대를 바라봤어.”
한 걸음씩.
급하지 않게.
분명히 일어날 테니까.
계속해서 마음을 다잡고는 있었지만, 그도 사람이었다.
매번 공연을 끝낼 때마다 그녀의 상태를 체크했었고,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소식에 마음을 졸이기도 했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자꾸만 조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진혁이었기에.
은서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은 뒤, 뒤도 보지 않고 달려왔었다.
방금.
종로에서 이곳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아주 미약한 변화일 수도 있겠지만, 눈을 맞추고, 그녀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것이었다.
뭣보다.
의식이 돌아오고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진혁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희망.
굳게 자리했지만 아주 조금씩 흔들리던 그 단어가 다시 무게를 담았다.
* * *
공연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6일이 지났다.
그대로 병원으로 실려 가서 수액을 맞았다는 아티스트도 있었고, 공연의 여운을 견디지 못해 바로 다음 날 어딘가의 라이브 카페에서 단독 공연을 했다는 팀도 있었다.
그 두 팀을 제외한 대부분은, 공연이 끝난 그 지역에서 그대로 휴식을 취했다.
한 시간씩 두 번의 공연이었지만.
실제로는 종일 무대를 이어 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많은 관객을 몇 시간이나 그냥 둘 수는 없었으니.
모든 무대는 쉬지 않고 노래하고 떠들었었다.
모든 팀이 뻗어 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피로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심장은 식을 줄 몰랐다.
일주일이나 지났는데도, 그날 그 광경을 떠올리다 보면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날 정도였으니까.
애초에 그는 자신이 주인공이 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았다.
모든 곡은 각 무대가 모두 주목받을 수 있게 편곡되었고, 클라이맥스는 다른 무대들이 돌아가며 차지할 수 있었다.
막말로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이번 공연은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고, 그랬기에 관객들에게 마지막 그 자리를 넘길 수 있었다.
결국, 세계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의 이름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더욱 크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세계 모두에게 주목받는 공연이 될 거예요. 멋지죠?’
당시에는 피식하고 웃었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 모든 것은 정말로 엄청난 일이었다.
쉬지도 않고 그대로 라이브 카페로 달려가 노래하는 바람에 몸살까지 앓게 된, 임도유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후…….”
협탁에 놓인 핸드폰을 바라봤다.
모두 모이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그곳으로 가서 맞게 될 상황이 달갑지 않아서였다.
해산식.
애초에 세 번의 공연을 위해 탄생한 회사였고, 계약서에도 그렇게 명시되어 있었다.
사실 이런 엄청난 공연을 또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도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야 했다.
하지만.
하늘 끝까지 올라간 사람들의 기대치는 어떻게 만족시켜 줘야 하지?
정상의 자리에 올라가 봤었기에, 현실을 마주하자 앞날이 막막했다.
‘유닛’이었던 자신도 이런 심정인데.
모든 것을 계획했던 그는 얼마나 큰 압박감을 느끼게 될까?
물론 굉장한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대중들 앞에 선 지 이제 겨우 몇 달째였다.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높이 올라갔다.
아래로 서서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을 경험했던 이들은, 그 아찔한 감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대중들의 관심이라는 것은, 때론 너무나도 무서웠다.
오를 때는 한없이 좋다가도.
떨어질 때는 그 냉정함에 좌절하기 마련이었다.
자신도 몇 번이고 경험했던 일이었지만,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고작, 자신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전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한 그는 어떻게 견뎌 낼 수 있을까.
순간.
방긋 웃는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재밌게 하면 다 돼요.’
갑자기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표정이 떠오르자 착잡했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재밌게!”
그 모든 괴로움은 욕심에서 나온 것일 터.
얼른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었다.
어서 빨리 그의 얼굴을 보고 싶어졌다.
* * *
한국은 그날의 후유증으로 몸서리를 앓고 있었다.
모두가 들떠 있는 감정을 어쩌질 못하는 중이었고, 그 여운은 아직도 심장을 톡톡 건드렸다.
다만 분위기는 꽤 활기차 보였는데, 사람들에게선 전에는 없었던 자부심이 느껴졌다.
뉴스에선 매일같이 해외 언론들의 반응을 전했고, 그들이 칭송하는 그 나라에 자신이 살고 있었다.
그저 국뽕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명확한 반응들이 인터넷에 널려 있었고, 조금 지친 하루였더라도 그날의 영상을 보면 치유되곤 했다.
사람들의 가슴에 심어진 자부심은 암울했던 대한민국 사회를 조금씩 밝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시점.
사람들은 또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세 번의 공연에 쓰인 곡들이 음원으로 발매됐고.
국내 음원 차트에 줄 세우기를 시작하더니.
그 순서 그대로 빌보드 차트에 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곡은 한글로 된 곡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