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아침 방송 꼭지
희철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침을 꼴깍 삼켰다.
꿈에 그리던 그를 만났는데…….
“음… 시작한 지, 이주 된 거치고는 잘했어.”
“뭐, 목소리도…….”
“리듬감 괜찮네.”
“흥도 있고…….”
전혀 귀에 들리지 않는 칭찬이었다.
박수도 두 박자나 늦게 터지지 않았던가.
아마도, 자신의 어마어마한 노래 실력에 넋을 놨을 테지.
처음 그들을 만나 함께 사진까지 찍었고, 곱창을 같이 먹자는 말에 배달 기사 앱을 종료시켰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환상적인 하루였는데.
‘기타? 진짜? 가져와 봐!’
너무 흥을 낸 나머지 기타를 시작했다는 말을 뱉었고,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집으로 달려가 기타를 가져온 후였다.
그리고.
감히 그들의 앞에서 노래하게 된 것이었다.
언젠가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겠다는 야심 찬 꿈을 꾸기는 했지만.
희철은 자신의 노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것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
이런 엄청난 관객들 앞에서 노래하게 될 줄이야.
아직 코드도 몇 개 외우지 못했기에 선택했던 것은, 그나마 자신이 할 줄 아는 유일한 곡인 ‘고래 사냥’이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고개를 들 수 없었고.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뭔가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야, 넌 노래는 진짜 안 되겠다.’
짝사랑했던 성당 누나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누나 때문에 성당을 나갔고, 성가대까지 지원했었는데…….
오늘 벌어진 엄청난 사건에 너무 들뜬 나머지, 자신이 음치였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었다.
“흠, 충기도 처음에 저랬는데.”
“뭐? 내가?”
“맞아. 그랬지.”
“열정은 있었어.”
슬그머니 시선을 들어 C2K라고 불렸던, 현 인간 밴드 드러머의 표정을 살폈다.
장난이라고 치기엔, 꽤 진지한 표정이었다.
갑자기 모두가 희철을 바라봤다.
“어때?”
“재밌겠는데?”
“그치?”
“좋아. 해 보자.”
꿈에 그리던 그가 희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노래 잘하고 싶어?”
“네?”
“같이 놀래?”
그가 해맑게 웃었다.
* * *
“야. 쟤들은 아직도 저러고 있냐?”
“국장님이 건들지 말래요.”
“하… 재수도 더럽게 없다, 진짜.”
“그러게요. 하필이면 그 시기에 공연이 겹쳤으니…….”
“무조건 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태각시 축제까지만 해도 딱 좋았는데, 전국 공연이 터질 줄 누가 알았나요.”
“내 말이.”
“아무튼 국장님이 그냥 없는 팀이라 치고 신경 쓰지 말래요.”
“저 우중충한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후… 그래도 절대 건들지 마세요. 아까도 보도국 선배가 놀리러 왔다가 개박살 났으니까.”
“아… 나도 근질근질한데…….”
예선부터 고전하던 ‘코리아 탑 밴드’ 결승전 생방송 시청률은 결국 0.8%를 찍었다.
방송국 전체가 밀어준 프로그램을 그대로 말아먹었으니, 뭔가 질책이 있을 만한데도 그 누구도 그들에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이건 말 그대로 천재지변이었기 때문이었다.
방송 포맷을 바꾼 뒤, 승승장구하던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도 모두 죽을 쒔으니까.
아니, 지상파를 막론하고 케이블 TV들까지 방송계 모두는 최악의 겨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인간 회사 홈페이지의 영상에 빠져 있었고, 그 태풍은 무슨 짓을 해도 거스를 수가 없었다.
그저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
그렇기에.
지금 저 한없이 우울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팀을 향해.
그 누구도 손가락질할 수 없었다.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는 정태강 PD의 얼굴에는,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듯한 표정이 가득했다.
“PD님…….”
“뭐…….”
“점심…….”
“안 먹어…….”
“네…….”
“밥 먹을 가치도 없어.”
“그렇네요.”
“너도 먹지 마.”
“네…….”
선임작가 최봄이 그대로 키보드에 얼굴을 묻었다.
이미 살이 8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이 어마어마한 상실감.
확실히 다이어트 효과 하나만큼은 엄청났다.
반응이 없을 게 뻔한 대본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로 지옥과도 같았다.
그걸 전해 주는 자신도, 받아 든 출연진들도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필이면, 예정된 결승전 생방송 무대가 3월 2일이었다.
KSB 공개홀에서 펼쳐진 공개 라이브 결승전의 관객석은, 고작 반을 조금 넘게 채웠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절반은 방청객 아르바이트들이었다.
방송국이 생겨난 이래 공개 생방송임에도 관객이 그 정도였던 것은 최초였다.
‘아… 우리도 역사를 만들었구나.’
키보드에 볼을 밀착시킨 최봄이 ‘히힛’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제대로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야… 최봄… 너도 종로 갔었지?”
“자기도 갔으면서…….”
“하…….”
성질낼 힘도 없는 정태강이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봤다.
절대로 망할 수 없는 프로그램.
그걸 자신이 말아먹었다.
물론, 누가 맡았어도 말아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근데, 그게 왜 하필 나야!’
천장을 향한 그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방송국에선 2주가 지나도록 아무런 터치도 없었다.
그 배려마저도 서글픈 그였다.
* * *
세상이 발전하며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져 왔었다.
예전에는 앨범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강했었는데,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을 거치며 구독과 공유라는 개념이 생겼다.
소정의 금액만 결제하면 언제 어디서건 모든 음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수들의 주 수입원 역시 방향성이 달라졌다.
한때는 앨범의 판매량에 따라 가수들의 급이 나뉘었지만, 이젠 음원의 재생 횟수로 순위를 매기게 되었다.
각 기획사의 주 수입원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상위 몇몇을 빼고, 음원의 저작권만 가지고는 수익을 내기 힘들었고, 결국 각종 예능이나 행사 또는 광고를 통한 수익 모델들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가수들은 노래만 해서는 먹고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 고착된 생태계에 전혀 새로운 플랫폼이 하나 탄생했다.
인간 회사.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음원을 등록할 수 있었고, 이 사이트는 순위가 없었기에 직접 가수를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에겐 후원을 할 수 있었다.
이 사이트의 가장 큰 핵심은.
여기서만 만날 수 있는 한국 지도였다.
지도 곳곳에는 빨간 점이 깜빡였고, 몇몇은 깜빡임이 멈춘 채 빛을 내고 있기도 했다.
바로 등록된 가수들의 라이브 현황이었다.
빨간 점을 터치하면 그곳에서 공연 예정이거나 공연 중인 아티스트들의 정보가 떴고, 그 장소는 각양각색이었다.
어느 라이브 카페일 수도 있었고, 지하철역 앞이기도 했으며, 한강 어느 다리 아래이기도 했다.
-와! 갑작스럽게 등록했는데도 많이들 와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인간 회사의 공연 덕택에 소리 소문없이 묻혀버린 프로그램, ‘코리아 탑 밴드’의 우승 팀인 라라미용실의 리더 라현이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성산대교 아래 트레이닝복 차림의 그녀가 급하게 세팅된 사운드를 체크했고, 곧 흥겨운 공연이 시작되었다.
스무 명 남짓했던 관객 수는 점점 늘어났고, 곡이 끝날 때마다 그들은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서울 지도 속 성산대교에 찍힌 붉은 점을 터치하자 ‘라라미용실’의 프로필이 떴고, 그 아래 하트를 누르니 후원 문구가 나왔다.
저마다 자신이 후원하고 싶은 포인트를 입력했다.
최근 곳곳에서 일어나는 광경이었다.
후원된 포인트는 그 밴드의 주 수입원이 되었고, 아티스트들은 더욱더 열심히 공연했다.
어느새 사람들은 공연을 즐긴 대가를 지불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언제 어디서건 공연을 만났고, 그대로 콘서트장이 되었다.
봄을 맞이한 대한민국 음악계는 새로운 음악 생태계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 * *
[나도 한국 간다.]└오. 드디어?
└난 아직 준비 중이야. 앨범 작업부터 끝내고.
└근데 듀크는 벌써 들어가지 않았나?
└어제 홍대라는 곳에서 공연했다더군.
└그래? 어땠대?
└관객들이 해 준 후원만 2천 달러가 넘었다더라.
└오…….
└나도 얼른 준비해서 가야겠다.
└거긴 관객들 관람 수준도 예술이야.
└반응 보면 절로 흥이 나.
└공연하는 맛이 있는 나라지.
└일단 인간 회사에 등록부터 해. 지금 아티스트들 밀렸다고 하더라.
└난 이미 음원은 올렸어. 음원 후원만 이미 6천 달러를 넘겼지.
└나도 녹음만 끝내면 바로 올린다.
해외 아마추어 밴드들에게는 이미 한국은 공연의 성지가 된 상태였다.
수입이라곤 없이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던 이들도,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고, 이는 전 세계 뮤지션에게 굉장한 이슈가 되었다.
거리 공연을 하게 되면 관객들이 기타 케이스에 현금을 넣어 주곤 했는데, 그들의 지갑을 여는 것은 여간해선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포인트라는 것은 달랐다.
한국 사람들은 흔쾌히 핸드폰을 들었고, 이는 어느샌가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지도는 한국 지도뿐이었고.
그 지도에 빨간 점을 올리려면 한국으로 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기에 어느샌가 가난한 아티스트들에게 한국은 꿈의 나라가 되어 있었다.
아마추어 밴드들도 그랬지만.
몇몇 메이저 아티스트도 이 문화를 즐기기 위해 한국행을 결정하기도 했다.
부산 해변에서는 Box-43이 어마어마한 관객을 동원했고, 칼리의 ‘Red lizard’도 합정역에서 공연했다.
이미 인간 회사의 공연에 동참했던 이들이었다.
그들의 공연을 영상으로 접한 몇몇 정상급 밴드도 한국행을 암시하는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은 밴드 붐을 제대로 맞이했고.
이를 주목하는 세계 역시 록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잠시 주춤했던 록 음악의 전성기가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화제의 중심에는 인간 회사가 있었다.
* * *
이곳은 어릴 적 풍경 그대로였다.
가파른 진입로도 그대로였고, 쇠사슬이 걸려 있는 난간도 그대로였다.
봄을 알리는 연산홍을 바라보며 오르다가 만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성모상도 그대로였다.
신앙은 없었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은 이 장소는 진혁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줬다.
진혁에게 방긋 웃는 방법을 알려 주신 아가타 수녀님을 떠올리며 잠시 눈을 감았다.
성당도 그랬지만.
이 동네는 정말 신기하리만큼 그대로였다.
언덕 위에 올라서니.
키 작은 건물들의 정수리가 훤하게 보였다.
여름 딱 한 철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동네.
아이들은 머리가 크면 자연스럽게 대도시로 시선을 돌렸고.
어느새.
젊은이들이 모두 사라진 동네였다.
이번 공연으로 사람들을 전국 곳곳으로 흩어 봤지만, 그건 일시적일 뿐이었다.
아지트가 있는 정선을 떠올려 봤다.
죽어 가던 회색 거리가 새롭게 바뀌었다.
전국의 블루스 재즈 연주자들이 모여들어 멋진 거리로 만들었다.
그 끈적한 분위기가 좋았던 사람들은 평일에도 그곳을 찾았고, 거리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음악이 가진 힘이었다.
멀리 수평선을 바라봤다.
어릴 때는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곤 했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진한 봄 내음이 가득 찼다.
이맘때면 조금씩 끈적해지기 시작하는 짠내였다.
얼마 전에도 바다는 만났었다.
하지만 조급함을 내려놓고 다시 만난 바다는 그 느낌이 달랐다.
마흔셋 진혁이 가슴이 답답할 때면 언제나 떠올렸던 그 바다였다.
이런 멋진 곳을 이렇게 죽어 가게 둘 수는 없었다.
‘흠…….’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간단했다.
지도에 점 하나만 찍어도 수만 명이 달려올 것이었다.
저 야트막한 동네는 사람들로 바글대게 되겠지.
그 잠깐 새에 너무 유명해져 버렸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사람들은 열광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당연해진 것은 재미가 없었다.
문득, 별것도 아닌 횡단보도를 굉장한 장소로 만들어 버린 밴드가 떠올랐다.
세계인들은 아직도 그 밴드를 기리며 그 도시를 찾곤 한다.
그곳도 바닷가였다.
한국에도 그런 도시가 하나쯤 있으면 재밌을 것 같았다.
세계적 밴드가 탄생한 도시.
이제 막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한 새까만 청년을 떠올렸다.
진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어때, 할 수 있겠어?”
정태강 PD가 KSB 예능국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제 사람들은 지상파 같은 거 안 봐요.”
“야. 그러니까 보게 만들자는 거지.”
“괜히 돈 쓰지 말죠.”
“허허. 애가 완전히 맛이 갔네.”
“적당히 리얼리티 쇼나 밀어줘요.”
“그냥 해 보자. 이것도 리얼리티지.”
“취지가 불분명하잖아요.”
“문화 인프라의 분산! 괜찮지 않냐?”
“지방 밴드들 띄워서 뭐 해요. 어차피 뜨면 다들 서울로 올라올 건데.”
이번 코리아 탑 밴드 우승 팀인 라라미용실만 해도 그랬다.
방송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기사도 몇 나갔고 여기저기 토크쇼에도 얼굴을 비쳤기에 제법 유명해졌다.
그러더니 원래는 강릉에서 활동하던 밴드였는데, 우승 후엔 서울에서만 활동하고 있었다.
“아무튼, 나 시킬 거면 그냥 수요일 오전 열 시쯤 꼭지로 편성하던가. 말아먹어도 티 안 나게.”
“그래. 일단 편성은 그렇게 해 볼게.”
“나 진짜 설렁설렁할 거예요.”
“그래그래. 머리 식히러 여행이나 간다고 생각하고, 한번 짜 봐.”
“짜기는… 대충한다니까.”
“알았어. 알았어. 대충 양식만 맞춰서 기획 올려.”
예능국장 박문철이 축 늘어진 정태강의 어깨를 바라봤다.
코리아 탑 밴드를 연출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그대로 봐 왔다.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얘기했지만, 본인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간 같이 일해 오면서 그렇게까지 무너진 상태를 본 적이 없었다.
시청률이 나올 수 없는 프로그램을 끝까지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은, 고문과도 같았을 터.
자신이 가진 역량의 반도 내지 못했을 것이었다.
유능한 후배가 이대로 무너지게 둬서는 안 됐다.
안 그래도 요새 재밌는 예능들은 외주나 케이블에서 터트리고는 했다.
스타 PD들이 프리를 선언하는 일도 많아졌다.
KSB 예능국 전체에 무력감이 퍼지고 있었다.
그냥 멍하게 놔뒀다가는 망가질 게 뻔했다.
뭐라도 시켜야 했고, 일부러 가벼운 프로그램을 던졌다.
날씨도 좋으니 지방을 돌며 맑은 공기라도 마시고, 기분 전환이라도 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침 방송 꼭지로 들어가는 코너에 넣을 거고.
어차피 시청률이 좋은 시간대도 아니었기 때문에 별 부담도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저 지방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정도이니, 그다지 품도 많이 들지 않았다.
“후… 힘내자.”
의욕이 하나도 없는 후배를 바라보며.
참고 참았던 안타까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