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97
97화 새싹
싸늘한 공기가 선선해졌고 사람들이 움직이기 가장 좋은 계절을 맞았다.
그리고.
인간 회사의 지도에는 매일같이 붉은 점이 떠올랐다.
가입된 아티스트의 수만 해도 300여 팀을 넘긴 상태였고, 그들은 서울과 전국 대도시들에서 공연을 이어 가고 있었다.
3월 1일 그 무대에서 공연했던 대형 스타들이 갑작스럽게 등장하기도 했기에, 사람들은 매일같이 지도를 확인했다.
최근 실력이 검증된 해외 아티스트들도 국내로 많이 들어왔고, 한국에서만 형성된 이 공연 문화를 체험하려는 외국인들의 입국도 늘어났다.
인간 회사의 공연으로 모였던 세계의 시선들은 다시 흩어지지 않고, 더욱 집중되고 있었다.
그들의 공연을 찾아 중계하는 개인 방송인들도 생겨났고,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건 라이브를 만끽할 수 있었다.
라이브란 그랬다.
그 현장, 또는 실시간으로 접해야만 그 의미가 있었다.
녹화된 공연을 본다는 것은, 이미 승부가 나 버린 축구 경기를 다시 보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겨울부터 봄까지 전국을 강타했던 그들의 공연은 정말로 아찔한 경험이었다.
공연하는 팀들은 현장에서 후원이라는 제도 아래 바로 평가되었기에 더욱 분발했고, 이는 평균적인 음악적 퀄리티가 더욱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관객을 많이 만나려면 사람이 많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고, 점점 지방과 대도시와의 양극화가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강원도 정선의 ‘치유 거리’만이 그곳만이 가진 특색으로 살아남았을 뿐이었다.
초기 응수동 축제 때 전국적인 밴드 붐이 일어났고, 각지에서 인기가 높아진 밴드들은 결국 서울로 모여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방에는 실력 좋은 밴드들이 씨가 마른 상태가 되어 버렸다.
대한민국은 서울의 의존도가 너무 높은 나라였다.
모든 문화와 경제는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처럼 문화적 호황기를 맞게 되면 그 사각지대는 더욱 넓어지곤 했다.
그렇게 지역적으로 기울어진 록의 호황기는 봄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 * *
[도대체 진혁느님은 어딜 가신 거냐!] [진정 저희를 저버리시는 겁니까?] [진짜 이대로 또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고?]└이젠 적응하자, 우리.
└그래. 갓토끼님 때도 그랬잖아.
└언젠가 또 짠 하고 나타나실 거야.
└그분은 항상 그러셨으니까.
└이렇게 즐기다 보면 분명히 멋진 공연을 만들어 주실 거임.
└맞아. 일단은 지금을 맘껏 즐기자.
사람들은 두문불출하는 그들에게 적응 중이었지만, 밀려드는 아쉬움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빌보드에 오른 한국 아티스트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고, 모든 곡의 작곡자인 ‘조진혁’이라는 이름은 세계 곳곳에 퍼지게 되었다.
대단한 것은, 영문자 표기가 아닌 한글로 된 이름으로서 퍼졌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한글로 표기되었다. 물론, 곡들의 제목과 가수들의 이름도 마찬가지였다.
* * *
교대역의 라이브 카페 ‘올인원’의 무대에서 마지막 곡을 마친 임도유가 숨을 할딱대며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150명까지 입장되는 공간이 가득 찼다.
멤버들과 저녁을 먹다가 급하게 잡은 공연이었는데도 두 시간 만에 모인 관객이었다.
지난주엔 맥주를 먹다가 그 자리에서 공연을 한 적도 있었다.
언제 어디서건 공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살면서.
이렇게 자유롭게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때 홍대에서 술을 먹다가 버스킹하던 누군가가 그들의 곡을 커버했고, 술에 취한 채 뛰쳐나와 그들의 무대에 난입한 적이 있었다.
그때 느꼈던 생소했던 감정을 요새는 매일같이 만나고 있었다.
정말 음악 하는 맛이 나는 나날들이었다.
진혁이 선물해 준 곡은 부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선사했다.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자유로움을 주제로 한 노래는 장소가 바뀌고, 시간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자유를 선사했다.
그렇기에, 매번 공연 때마다 녹음된 음원이 모두 다 달랐다.
멤버들도 즉흥적으로 변화하는 자신의 느낌을 잘 따라와 줬다.
정말로 신기한 곡이었다.
그리고 이 곡을 부르면 부를수록.
더더욱 앨범 작업에 목이 말랐다.
정규 앨범을 낸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고, 부를 노래들도 넘쳐 났다.
그렇기에 미뤄 뒀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한발 물러섰는지도 몰랐다.
25년 전, 처음으로 진혁을 만났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이 그대로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분명히 지금 자신은 훨씬 더 성장해 있을 테고, 굉장한 앨범이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천재가 만들어 준 이 노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터였다.
부를 때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노래라니.
악기를 챙기고, 관객들과 떨어진 곳에 마련된 테이블로 움직이며 이를 악물었다.
“우리 내일부터 앨범 작업 들어간다.”
평생 피할 수는 없었다.
깨지더라도 부딪쳐 봐야 하는 법.
그게 자신의 성격이었다.
“다들 그렇게 알아.”
그간의 강행군으로 인한 피로에 야유가 나올 만한데도 멤버들의 얼굴은 생글거렸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언제 그 소리 나오나 했다.”
“형 성격에 남이 만들어 준 노래를 계속 부르기는 좀 그렇지.”
“사실 이 곡은 누가 불렀어도 빌보드 들어갔어. 인정?”
“에이 씨. 그건 아니지.”
멤버들의 너스레에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몇 번의 교체를 통해 이 멤버가 꾸려진 지 10년째였다.
이젠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형! 근데 형수님이랑은 언제 다시 합쳐요?”
너무 잘 알아도 탈이었다.
* * *
임도유 밴드뿐만이 아니었다.
진혁의 곡을 받았던 모두의 마음속에선 새로운 열정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봄에 돋아나는 여린 새싹과도 같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쏙 하고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그대로 봄비에 흠뻑 젖어 크다 보면 무엇이 될지 모를 그런 새싹.
꽃을 피울 수도 있었고, 열매를 맺을 수도 있었다.
아직 확실치 않은 새싹이었지만.
오랜 시간 활동해 오며 잠시 정체되었던 음악인들에게는 굉장한 기회였다.
‘음악적 영감’보다도 더 오기 힘든, ‘각성’의 기회였다.
꿈도 꿀 수 없었던 경지를 만난 후 모두가 받은 선물이었다.
그렇기에,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임도유 밴드를 시작으로, 다른 아티스트들도 자신만의 새싹을 키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진혁이 준 가장 큰 선물은 각자에게 준 곡이 아니라, 그 곡으로 인해 얻게 된 한 단계 더 높은 깨달음이었다.
‘재밌게 하면 다 돼요.’
마법과도 같은 말이었다.
* * *
“야. 정 PD 끝난 거 맞지?”
“그냥 지방 방송사 줘도 되는 거, 굳이 내려보내는 걸 보면…….”
“후… 조금만 덜 놀릴걸. 운도 지지리 없지… 결국, 이렇게 유배를 보내는구나.”
“그래도, 국장님이 정 PD 아끼지 않았나?”
“그러게, 가차 없네.”
“썩을… 그게 뭐 연출 탓인가? 예능의 신이 있대도 그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걸…….”
“그 양반들이 현장을 알긴 하나. 그저 시청률이나 볼 줄 알지.”
“아니! 소소하게 고등 밴드나 하게 두지. 그걸 키운 건 회사잖아?”
“여기서 이렇게 소리친다고 뭐 달라져? 뭐, 총파업이라도 해?”
“에이. 그 정도는… 어?”
왁자지껄하던 KSB 방송국 흡연실이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야. 한 대만 주라.”
“어… 아… 너 끊지 않았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등장해 손을 내밀었고, 동료 하나가 서둘러 담배를 꺼내 들어 우물쭈물했다.
“줘 봐.”
“어… 여기.”
“씁. 후욱, 켁! 쿠흡. 콜록!”
눈물까지 빼며 기침해 대는 정태강 PD의 모습에 동료 PD들이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에이. 씨… 이것도 못 피겠네…….”
“야… 괜찮아?”
“후우…….”
모두가 그의 안색을 살폈다.
며칠 새, 많이 수축해진 그의 모습에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야. 너희들 국장 너무 씹지 마라.”
“그래도 이건 아니지.”
“맞아. 지금 편성 기획이 몇 갠데, 꼭지나 보내고…….”
“아침 방송 시청률이 2%야! 이건 무슨 신입 PD 경험 쌓는 것도 아니고…….”
“나 이번에 0.8% 찍었다. 다들 닥쳐라.”
“아…….”
다시 터진 위안 섞인 투덜거림은 정태강의 한마디에 조용해졌다.
“아무튼 거기까지만 하자. 나는 괜찮으니까.”
“뭐…….”
“바람이나 쐬고 올게.”
“그래. 바람 좋지.”
“힘내라. 뭐 프로그램 말아먹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
“후우… 씨…….”
정태강이 딱 한 번 들이켠 장초를 신경질적으로 비벼 껐다.
“잘들 살아라.”
담배꽁초를 툭 던진 그가 터덜터덜 걸어갔고, 나머지 PD들은 마지막에 말을 던진 동료를 매섭게 노려봤다.
항상 메인 기획만을 맡아 오던 베테랑 PD가 아침 방송의 꼭지를 맡다니…….
동료가 처한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 보면 정말로 눈앞이 아찔했다.
모두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나라면 사표 쓴다.’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있기는 했었다.
현재 KSB의 아침 방송 프로그램 ‘생방송 오늘은 좋은 아침!’은 아침 시사 정보 교양 프로그램이었으며, 주 타깃층은 가정주부와 은퇴한 노년에 맞춰져 있었다.
보통 신입 PD들이 실전 경험을 쌓는 꼭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장 무난한 연출에, 가장 정형화된 프로그램들이었고,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인 말 그대로 무미건조한 방송이었다.
그래도 간혹 굵직한 예능을 터트렸던 PD가 꼭지로 갈 만한 자리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 아침 방송에 지방 밴드들을 소개하겠다니…….
게다가 현재 인간 회사 홈페이지의 영향으로 쓸 만한 밴드들은 죄다 수도권으로 몰려오지 않았던가.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진혁은 테트라포드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봄 햇볕은 따뜻했고,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코를 간질이는 바다 냄새는 참으로 정겨웠다.
방파제에 부딪힌 파도는 그대로 리듬이 되었고, 높은음의 끼룩거림은 멜로디가 되어 내려앉았다.
세상 모든 것이 음악이었고, 그렇게 노래가 되었다.
사람 하나 없는 방파제 끝, 홀로 선 등대가 관객이었다.
급하게 달리느라 잠시 잊고 지냈던.
세상이 만들어 낸 음률을 음미하며.
눈을 감았다.
이곳에서 처음 만났던 순박한 청년은 진혁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얼마 전 공연을 함께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이미 완성되어 있던 상태였다.
그랬기에, 진혁은 마음껏 내달릴 수 있었다.
결과적으론 그래서 더 욕심을 냈고, 급하게 진행하게 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만남은.
어쩌면 너무나도 즉흥적이었고.
너무나도 충동적이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어떤 색에도 물들지 않은 순수함을 보게 되었고.
이는 진혁에게 있어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마구 내달리다가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기에 정말로 멋진 만남이었다.
가르치는 맛이 남달랐다.
이젠 제법 음정도 맞출 줄 알게 되었고, 기타도 꽤 늘었다.
하얀 백지였기에 흡수가 빨랐다.
그와 함께하며 이번 공연에서 얻었던 무거운 마음이 한층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후…….’
다시 눈을 떠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봤다.
이런 바다를 평생 바라보며 살아온 그가 만들어 낼 음악은 어떤 음악일까?
진혁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의 음악이 기대된다는 것은 꽤 설레는 감정이었다.
그 서투른 연주와 목소리로, 서툰 감정을 내뿜는 것은 상상만 해도 재밌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완벽한 음악으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감정의 음악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는.
진혁은 할 수 없는 음악이었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