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99
99화 동해 소년
“응. 앨범은 그렇게 작업 들어가는 걸로 알면 되고, 또 궁금한 거 있어?”
“아뇨.”
라현이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와, 근데 사투리가 거의 없네?”
“제가 살던 동네는 억양 빼면 크게 다른 말은 없어요.”
“강릉이라고 했나? 거기 공연하러 가 본 적 있는데, 시골은 시골이더라.”
“아… 거기보다 조금 더 들어가서…….”
“응?”
“주문진이라고…….”
“주문진? 강릉 옆에 그런 데가 있었나? 아! 오징어 사러 갔었다.”
“맞아요. 오징어 맛있어요.”
“히야. 그런 데서 어떻게 음악을 배웠지?”
“동네에서…….”
“진짜 대단하다. 촌에서는 세션 구하기도 어려운데. 말 그대로 개천에서 용 난 거네?”
“거기도 음악 하는 사람들 꽤 있어요.”
“에이, 그래 봐야 시골 수준이 뻔하지. 네가 대단한 거야.”
분명히 칭찬이었지만, 알게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동네 오빠들은 대부분 통기타를 칠 줄 알았고, 아저씨들도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았다.
그리고 누구나 노래했다.
라현은 그런 틈바구니에서 어릴 적부터 음악을 만나 왔었다.
참 재미없는 동네였지만, 낭만만큼은 차고 넘쳤다.
“아쉽다. 서울에서 자랐다면, 훨씬 더 대단했을 수도 있는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과연 그럴까?’
그곳에서 겪었던 음악들을 선생님으로 여겨 온 그녀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그렇게 무시당할 만한 동네까지는 아닌데…….
환하게 빛나던 얼굴이 조금 찌그러졌다.
“노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재능이 있어야 하지. 그런 면에서 넌 선택받은 거야. 누군가는 시도도 못 해 보거든.”
창명이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뭐, 이제라도 왔으니까! 촌티 조금만 빼고, 다음 앨범부터는 세련되게! 파이팅 하자.”
“아… 네.”
“음악은 기회를 잡아야 해. 그냥 막무가내로 한다고 다들 성공하지는 않아. 열정만 가지고는 살아남기 힘들지.”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무나 노래하는 거 아니다. 열심히 해!”
“넵!”
라현이 고개를 숙이며 힘차게 대답했다.
하지만 대화 내내 물음표만이 늘어날 뿐이었다.
재능? 촌티? 세련? 아무나?
어릴 때부터 아무나 노래하는 동네에서 살아왔다.
흥겨운 곳이었고, 다닥다닥 붙은 집들에선 저마다 술에 취해 엉망진창인 노래들을 불러 댔다.
자전거를 타고 술에 취한 아버지를 데리러 부둣가로 나가면, 항상 그들만의 공연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동네잔치 때는 서로 마이크를 차지하려고 몸싸움도 벌였다.
그런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자란 라현이었다.
그녀에게 노래란.
누구나 부를 수 있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였다.
갑자기.
음치 주제에 성가대에 들어오려고 했었던 까만 녀석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를 내쫓았던 그녀였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노래.
잘해야만 하는 노래.
아…….
그 노래랑 이 노래랑 다른 거였구나.
물음표 몇 개는 지워졌지만, 그래도 뭔가 모를 무시에 대한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열정 하나만큼은 괜찮았는데…….
어마어마한 목소리로 소리를 꽥꽥 지르던.
그 까만 녀석의 진지한 얼굴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 * *
“응. 이해해.”
진혁이 방긋 웃었다.
장하와 상정도 마주 웃어 주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나도 내 세상을 보여 주고 싶어.’
단 한마디 던졌을 뿐이지만, 진혁은 바로 알아들었다.
음악 하는 이들에게 창작의 욕구가 없다면 그건 악보를 옮기는 기계나 다름없었다.
누군가의 곡을 받아 노래하더라도 자신만의 색을 입혀야 했다.
정해진 악보를 따라 쫓아가야 하는 세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오래된 밴드들일수록 멤버들의 음악에 대한 참여도가 높았고, 작곡과 작사를 분담하곤 했다.
하지만 이들은 애초에 넘볼 수 없는 곡들만을 만나 왔다.
25년 전 그때도.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아주 작은 것도 끼어들 수 없는 완벽한 곡들만을 필사적으로 연주해 왔다.
그 어디에도 자신의 세상은 없었다.
거대한 공연을 경험했고.
다른 무대들을 바라보며.
꾹꾹 눌러두었던 욕망이 고개를 들었다.
“기대되네, 너희들의 세상.”
해맑게 웃는 진혁의 얼굴에 두 친구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저 천재가 기대라는 말까지 하다니.
“따로 놀다가, 또 같이 놀자.”
“물론이지.”
세 중년인이 주먹을 맞대며 활짝 웃었다.
* * *
바닷가 지역의 주류 판매량은 인구 대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뱃사람들이 술을 좋아한다는 것은 심심치 않게 들어 본 말일 것이다.
종일 흔들거리는 배를 타고 파도와 씨름하다가 뭍에 오른 이들은, 땅 위에서 휘청이곤 했다.
육지 멀미라는 걸 매일 경험하는 이들이었고, 이를 빠르게 해소하는 데는 소주 한잔이 최고였다.
게다가 언제나 신선한 물고기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배에서 내려 퇴근하는 길.
어판장에서 만난 대충 손질한 회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소주가 필요했다.
외지에서 봤을 때는 다이내믹한 일상들이었지만, 이들에게는 매일 똑같은 나날들이었다.
그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취했고.
항상 생명을 걸고 일해야 하는 직업이었기에.
그 두려움을 잊기 위해 취했다.
여름을 제외하고는 조용한 곳이었고, 젊은이들이 점점 사라져 빈집은 늘어 갔으며, 서서히 죽어 가는 동네였다.
그 서글픔을 잊기 위한 한잔이기도 했다.
매일 취했고.
그래서 흥겨웠다.
알딸딸한 그들의 눈앞에는 언제나 수평선이 있었고.
술이 술을 불렀고.
그렇게 그들만의 낭만이 남았다.
노을은 등 뒤로, 수평선에 하나둘 떠오르는 별을 바라보며 마시는 소주는 너무나 달콤했다.
“히야! 술 잘 먹네!”
“그러게! 연예인은 양주만 먹는 줄 알았더니!”
진혁이 빨개진 얼굴로 방긋 웃었다.
이들 중에는 얼마 전 있었던 공연을 전혀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그나마 아는 사람들도, 그저 삼일절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는 소식 정도만 들었을 뿐.
전국의 모두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고 여겼지만, 크게 관심 가지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곳은 젊은 사람이 적었기에 그런 소식에는 더더욱 둔감했다.
어차피 주류 문화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곳이었기도 했다.
그렇기에 진혁의 얼굴을 아는 사람도 몇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진혁은 매스컴에 얼굴을 비춘 적이 거의 없었다.
공연 실황을 담은 오피셜 영상들도, 유투부에는 업로드하지 않았다.
관객들이 멀리서 찍은 영상들은 넘쳐 났지만, 그 영상에 비친 모습으로 진혁을 알아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만, 유명한 연예인이라기에 신기해할 뿐이었다.
“자네, 음악 한다고 했나?”
“네.”
“참외에 있겠네?”
“아… 거기엔 아직 올리지 않았습니다.”
“허허. 그래? 그 나이에 도전하는 건가?”
“이 친구야! 공연은 해 봤다고 하잖아. 그것도 엄청나게 큰!”
“가수가 참외 차트에 있어야 가수지. 거, 홍씨네 딸내미도 지금 여기 떡하니 있잖나!”
“맞아. 공연은 강가도 자기 가게에서 심심하면 하는구먼.”
핸드폰에 참외 TOP 100 화면이 떠 있었고, 78위에 랭크된 라라미용실이 보였다.
“음… 걔는 뭔 대회도 우승했다잖나. 나이도 젊고.”
“그래. 상금이 무려 3억이란다. 대단한 거지.”
대부분이 50대에서 60대였고, 터미널 건물 라이브 카페 사장 강대균의 말을 전해 들은 것이 전부였다.
핸드폰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얻기도 했지만, 주류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이었기에 그다지 자세히 보지는 않았다.
지금 앞에 앉은 싹싹한 친구도 그가 데려다 앉혀 놓은 것이었다.
대단한 가수라고 했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인상은 정말 좋았지만.
수수한 차림새를 봤을 때, 연예인이라는 것은 그다지 믿기지 않았다.
“아무튼, 잘 왔어! 세상천지에서 여기만큼 맛있는 회는 없어.”
“네! 진짜 맛있어요!”
“허허. 한 잔 더?”
“네! 감사합니다!”
“야. 이 친구 말술이네!”
갓 잡은 물고기를 손질해 먹는 회는 꿀맛이었고.
그에 곁들인 소주는 훨씬 더 달았다.
“허허. 저 친구 또 시작이네.”
아까까지 함께 자리했었던 중년인이 통통배에서 섹소폰을 꺼내 입에 물었다.
밤바다는 반짝이는 조명을 머금은 채 흔들렸고.
그 위에 멋들어지게 내려앉은 섹소폰의 울림은 정말로 잘 어울렸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 동시에 소주를 털어 넣었고, 선상 위에서 펼쳐진 끈적한 무대를 잔잔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어이. 기타.”
누군가 벌떡 일어나 어판장 구석에서 아무렇게나 뒹굴던 통기타를 들고 왔다.
섹소폰의 연주에 기타가 끼어들었다.
80년대 유행했던 포크송의 반주가 반복해서 흐르자, 술이 불콰하게 오른 어른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간혹 소리가 새는 섹소폰과 조율도 엉망인 통기타는 완벽하게 따로 놀았고, 그들의 노래들도 제각각이었다.
제대로 된 불협화음.
취한 목소리들의 어눌한 발음.
엉망진창인 연주와 노래였지만.
낭만만은 가득했다.
흐뭇한 표정으로 그들의 즉석 무대를 즐기던 진혁이 방긋 웃었다.
상당히 재밌는 걸 발견했을 때의 그 미소였다.
* * *
[와. 다들 앨범 작업 들어간 거야?]└그런 듯 JH는 2박 3일 막촬 했다던데?
└인간 밴드도 앨범 작업 중이겠지?
└그러길 빌어야지.
└와, 활동 하나 안 하는데도 순위 변동이 없네.
└레몬티 차일드 새 앨범 치고 올라오는 중.
└그래도, 다들 들어가니까 레몬티 형아들이 뜨네.
└뭐, 지금 작업하러 들어간 밴드들 제외하면, 인디 밴드 중에서는 아직 톱이니까.
└저번에 공연하는 거 보니까 칼을 갈았던데?
└야, 너희들 아침에 하는 방송 봤냐?
└응? 그게 뭐임?
└오늘은 좋은 아침?
└거기서 지방 밴드들 소개하더라.
└나도 봤어. 엉망이던데?
└왜 아직도 지방에 있는지는 확실히 알겠더라.
└자작곡들 수준이 영…….
└잘나가는 밴드들은 다 서울로 올라왔겠지.
└맞아. 라라미용실도 강원도 출신 아님?
└하긴, 아직도 지방에 남아 있는 거면 딱 그 수준인 거지.
└근데, 아침 방송에 그건 좀 오바다.
└맞음. 진짜로 안 어울림.
└기획 의도를 도저히 모르겠더라.
└요새 누가 아침 방송 보나.
└우리 엄마 보던데?
└아?
└우리 할머니도 봄.
└미안. 취소.
삼일절 무대에 섰던 모든 뮤지션이 활동을 멈췄고, 그 이유가 새로운 앨범 작업이라는 것에, 사람들은 기대로 가득 찼다.
대형 밴드들이 빠지자, ‘드림캐쳐’ 소속 밴드들이 지도에 남았다.
그들 역시 전국적으로 일어난 밴드 붐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는 중이었다.
기존 발라드 가수들도, 댄스 가수들도, 하물며 트로트 가수들도 저마다 세션을 구하기 시작했고.
대한민국에서 오로지 밴드들로만 구성된 기획사인 ‘드림캐쳐’의 몸값도 덩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 * *
지금이야 상위권에 자리한 이름에 변화가 거의 없었지만.
국내 모든 음원 사이트의 순위 차트는 언제나 변동이 심했었다.
이는 프로모션의 영향이 컸는데.
대형 기획사들은 소속 가수들의 새로운 곡이 나올 때마다 메인에 베너를 띄우곤했다.
사람들의 눈에 들어가야 손가락이 갔고, 손가락으로 터치해야 결국 그들의 귀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터치해야 차트에 들어갔고, 조금씩 순위가 오르면 그 자체만으로도 마케팅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 메인 베너를 얻기 위해서, 기획사들끼리는 언제나 치열한 각축전이 펼쳐지곤 했다.
팬덤들의 음원 사재기도 그런 마케팅의 한 부분이었다.
다만, 이 시기의 모든 기획사는 상위 순위권에 대한 미련을 놓은 상태였다.
이미 올라 있는 그 공연 음원들이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돌 주력의 대형 기획사들은 앨범 발매를 미루기도 했으며, 자존심을 세우던 몇몇 대형 가수도 뒤늦게 MR을 버리고 세션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써 외면했던 그 지도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리는 것만이 가장 큰 프로모션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음원 사이트들의 배너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치고 올라오는 음원들은 그런 배너 하나 없이 승승장구하는 중이었다.
소속사는 다들 따로 있었지만.
결국 그들도 인간 회사의 사이트에 음원을 등록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록 밴드들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의 음악은 그 사이트로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트에 등록한 이상 모두가 공연을 해야 했다.
결국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방법은 그곳에 붉은 점을 찍는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그 지도는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큰 음원 마케팅 시장이 되어 버렸다.
거리마다 음악이 가득한 한국이었다.
날은 더욱 따뜻해졌고, 사람들의 옷이 점점 얇아질 때쯤.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던 붉은 점들에 대항하듯.
텅텅 비어 있던 동쪽 끝에.
하나의 점이 반짝였다.
[동해 소년]아직 음원도 등록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