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0
동서울 피난촌 (1)
“충성. 김 순경님, 순찰 다녀오십니까?”
출입구 인원 통제를 맡은 군인이 김 순경을 보자 말을 걸었다. 위병조장 견장을 찬 병장이었다. 김 순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사고가 있어서 조기 귀환했어요.”
“사고라면···?”
“선배님이 순직하셨어요.”
“아… 유감입니다. 박 경장님, 좋은 분이셨는데.”
순간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서울에 괴물이 나타난 이후, 순직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김 병장의 부대 역시 적지 않은 숫자의 인원이 괴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출입 기록 작성 도와드리겠습니다. 막내야, 판때기 가져와라.”
“네, 김 병장님.”
김 병장은 같이 당직을 서는 후임이 가져온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김 순경님이 대표로 작성해주셔도 됩니다.”
김 순경은 서류를 살펴봤다. 이름, 출입 일시, 생년월일 등을 기록하는 서류였다. 김 순경은 서류를 작성하며 말했다.
“새로 오신 분들이 적는 것도 같이 주세요. 그리고 이 분 사냥꾼이시니까, 대대장님한테도 연락 주시고요.”
“아, 사냥꾼이세요?”
김 병장은 그렇게 말하며 재환을 훑어봤다. 그리고 그의 배낭에서 삐져나온 도낏자루를 보며 탐탁지 않아 하는 시선을 보냈다. 재환은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며 생각했다.
‘먼저 온 사냥꾼들 인성이 별로였나 보네.’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불안한 시국인 만큼, 기이한 힘을 지닌 사람이 경계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만약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오히려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형식적인 거니까, 적을 수 있는 부분만 적어주시면 됩니다.”
재환은 김 병장이 새로 가져온 A4용지 2장 분량의 서류를 살펴봤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는 기본이고 가족의 생사여부와 정신 질환 이력, 전과 여부처럼 민감한 사항까지 상세하게 요구하는 서류였다.
‘별걸 다 적으라고 하네.’
그는 A4용지 한 장 분량의 신상 기록을 작성한 뒤 뒷장을 넘겼다. 뒷장에 적힌 내용은 주의사항을 기록한 동의서였다. 천천히 주의사항을 살펴보던 재환은 마지막 사항에 적힌 내용을 중얼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눈을 의심할 만한 내용이었다.
“생사여탈권?”
그가 읽은 내용은 주둔지 인근에서 민간인의 생사여탈권을 군인의 재량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여차하면 민간인에게 총질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김 병장은 재환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해 보이는 말투였다.
“그거 겁주려고 적어놓은 거예요. 괴물로 변하는 게 아니면 총 쏘면 안 된다고 지시받았거든요. 당연한 거기도 하고요.”
재환은 김 병장이 어깨에 걸린 소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실탄, 들어있겠지?’
그는 경찰이 괴물로 변하는 민간인에게 총을 쐈던 일을 떠올렸다. 괴물로 변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대로 놔뒀다간 멀쩡한 사람마저 죽거나 다칠 수 있었으니까. 특히나 지금처럼 전시 상황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조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재환은 이런 내용에 동의를 구하는 의도 자체에 불편을 느꼈다.
‘꼬우면 꺼지라는 뜻인가? 살벌하구만.’
군부대 입장에서는 수용하는 민간인이 늘어날수록 통제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니 군부대의 태도에 불만이 있는 사람을 이런 방식으로 걸러내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형식적으로 대답하는 것마저 불만인 사람이라면 받아들여 봐야 문제만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목숨을 남에게 맡긴다는 사실이 생리적인 불쾌함을 자극했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의사항에 서명했다.
‘일단은 사인하자. 미친 것도 아니고, 군대랑 싸워서 뭐하겠어.’
그에게는 군대를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군대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협력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군대에는 총이 있었고, 총이야말로 현시점에서는 가장 듬직한 무기였다. 총을 받을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하다못해 군용 물품이라도 지원받으려면 군대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여기 있어요.”
그는 동의 여부를 묻는 항목에 체크한 뒤 서류를 건넸다. 서류를 훑어본 김 병장은 느슨하게 경례를 한 뒤 말했다.
“확인했습니다. 통과하셔도 됩니다.”
“네, 수고하세요.”
“수고하세요.”
김 순경은 인사를 건넨 뒤 위병소를 통과했고, 재환 역시 인사를 한 뒤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위병소를 통과한 재환은 느슨하게 경례하던 김 병장의 모습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병장이었을 때의 모습과 겹쳐 보인 것이다.
‘하긴, 군인도 사람인데. 불안한 건 다 똑같겠지.’
군대의 입장이 아니꼬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납득할 수밖에 없는 판단이기도 했다. 아무리 총과 전차를 하고 있어도 그들의 본질이 사람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우가 괴물이 되고, 시민들이 언제 폭동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 만큼, 군부대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미친 게 아니면, 함부로 총을 쏘진 않을 테고.’
지휘관이 미친 게 아닌 이상 가뜩이나 불안한 시국에 시민들을 함부로 자극할 리는 없었다. 분노한 시민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키면 군부대는 그날로 끝장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육군 전력의 대부분은 억지로 끌려온 사병들이었고, 이들은 간부가 허튼짓을 하는 순간 탈영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명분이 없는 군대는 유지될 수 없다. 군필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사실이었다.
‘알아서 잘하겠지. 내가 군인도 아니고.’
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뒤 주변을 둘러봤다. 아침이 되어 안개가 옅어진 덕분에 주변의 모습이 비교적 선명하게 보였다. 그러자 난민촌에 가까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분들, 다 피난민이에요?”
한눈에 봐도 급하게 짐을 챙겨서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게 보였다. 대부분은 신문지, 종이상자 등을 깔고 앉아있었고, 사정이 좀 나은 사람들은 침낭이나 텐트를 치고 있었다. 집을 잃었거나, 서울 밖으로 나가려던 사람들이 동서울 외곽으로 모인 것이다.
“네. 괴물이 급증해서 그런지, 피난 오신 분들이 점점 늘어나더라고요.”
“그럼 저분들 숙소는 어떡해요?”
“일단 학교나 상가 건물에서 합숙하도록 안내해드리는데···. 솔직히 잘 되고 있진 않아요. 기존 주민분들이랑 건물주분들 불만이 많고요.”
재환은 착잡한 심정으로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의 눈에는 하루아침에 노숙자가 된 사람들의 모습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 역시 집이 없다는 점에서는 저들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주거 공간조차 확보하기 힘든 현실이 잔인하게 다가왔다.
“부족한 게 많아 보이네요.”
“그렇죠… 전자기기도 다 마비되고, 도로도 괴물 때문에 먹통이니까요.”
그는 김 순경의 대답을 들으며 주변을 살폈다. 거리 곳곳에서는 자원봉사자, 경찰, 군인들이 생필품과 식자재를 나눠주고 있었다. 시민들을 달래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생필품을 나눠 받는 시민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들 이런 행동이 임시방편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생산 시설이 마비된 이상, 서울의 물자가 동나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물자가 바닥을 드러냈을 때 어떤 지옥이 펼쳐질지는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알던 서울은 이미 멸망했다.
모두가 우울한 거리에서, 재환은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기독교 계열 종교인이 포교하는 목소리였다. 우울하기는커녕 활기까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회개하세요! 회개하세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지옥은 괴물이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 모두 회개하여 천국 가세요! 교회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 모습을 살펴보던 그는 불쾌한 느낌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함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예수쟁이라서 그런 건가?’
서울이 멸망하면서 종교인들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졌다. 누군가는 종말이 다가왔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신이 재림한다고 말했으며, 결론은 종교에 귀의해 구원받으라는 말로 끝나곤 했다.
‘기분 탓이겠지. 밤새 괴물을 사냥하고 다녔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김 순경이 그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저분도 사냥꾼이신데, 잠깐 얘기 좀 나눠보실래요?”
재환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김 순경을 보며 황당해 했다. 생각보다 다른 사냥꾼을 만날 기회가 빨리 찾아왔지만, 그는 선뜻 대답하기가 꺼림칙했다.
“진짜예요?”
“네. 교회 분들이랑 같이 괴물 처리하는 걸 도와주고 계세요. 자율방범대 같은 느낌으로요.”
“마태복음 10장 34절!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노라!”
열성적으로 포교하는 모습을 보던 재환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세상이 미쳐가긴 하나 보네요.”
그는 종교에 미쳐있는 사람을 좋게 보지 않았다. 사이비 종교의 패악은 악명이 자자했고, 대학가에서 전도 하는 사람들에게 시달려본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동자는 신념으로 번뜩거렸고, 그들의 목소리는 복음으로 끈적거렸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됐고, 나중에 다른 사냥꾼분들 부를 때 같이 불러주세요. 저분은 종교색이 너무 강한 것 같아서요.”
그는 신을 믿지 않았다. 정말 신이 있었다면 세상을 이런 꼴로 만들 리 없었고, 설령 그런 신이 있다고 해도 그 신이 선량한 성격일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신에 미쳐있는 사람과는 상식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김 순경 역시 그의 심정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우선 서로 곧장 가시죠. 거의 다 왔습니다.”
재환은 김 순경을 따라 거리를 걸었다. 거의 다 왔다는 김 순경의 말대로 10분 정도 걷자 경찰서가 나타났다.
경찰서 청사의 모습은 비교적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안갯속을 걸어가는 경찰과 민원인들의 모습에서는 우울과 불안이 물씬 풍겨왔다. 건물이 멀쩡하다고 해서 사람까지 멀쩡하란 법은 없는 것이다.
청사 건물에 도착한 김 순경은 그를 민원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연탄으로 작동하는 난로가 설치되어있었고, 초췌한 얼굴의 민원인들이 경찰과 대화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가족을 찾아달라는 문구가 적힌 전단지를 들고 있었다.
재환은 그 모습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80년대나 90년대에서나 쓰일 골동품을 2020년에 쓴다는 게 어색했고, 지금 서울에서 실종자를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주세요. 서장님께 먼저 보고드리고 와야 해서요. 커피나 녹차라도 좀 드실래요?”
김 순경은 난로 위에 얹어진 주전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재환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초상집이나 다름없는 분위기 속에서 커피를 마시기에는 눈치가 보였다.
“지금은 안 마셔도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시고 먼저 다녀오세요.”
김 순경은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자리를 떠났고, 재환은 적당히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스마트폰이 먹통이 된 상황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곤욕이었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 혼자만의 불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불편했고, 누구나 불안했으며, 누구나 초췌했다. 그 사실에 그는 질식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