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00
와일드 헌트 (3)
사냥은 동이 텄음에도 끝나지 않았고, 하늘에서는 여전히 거머리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건물의 지붕에도, 거리의 바닥에도, 가로등과 담벼락에도. 어디를 둘러봐도 사방에서는 거머리가 꿈틀거리고 있었고, 이 손가락 크기의 괴물들은 사람과 괴물의 피를 빨아먹기 위해 스멀스멀 기어 다니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창밖에서 쏟아지는 거머리 비를 노려보던 재환은 근처에서 기어오던 거머리 하나를 신경질적으로 짓밟았다.
‘건기랑 우기로 나눠진 건 좋지. 적어도 아예 밖으로 못 나간다는 건 아니니까. 그랬으면 꼼짝없이 집 안에 갇혀있기만 했겠지.’
건물의 바닥은 그의 발에 짓밟힌 거머리들의 사체로 흥건했다. 그 숫자는 어림잡아 수십이 넘었고, 지금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거머리를 죽이는 건 어렵지 않아. 어렵지 않지. 괴물을 죽이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냥 죽이는 것뿐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그는 괴물을 사냥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자신이 있었다. 아직 성자에 비하면 힘과 능력이 모자란다고 할지라도 그 역시 수십 년 동안 수백만 마리의 괴물을 사냥해온 괴인이었고, 자신의 기량 역시 평범한 사냥꾼들과 비교하면 뛰어난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뛰어난 사냥꾼이라 할지라도 하늘에서 거머리가 비처럼 쏟아지는 현상에는 몸을 보전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전신 갑옷이라도 있었으면 몰랐겠지만… 있었어도 별 소용은 없었겠지.’
그는 이를 악문 채 자신이 밟아 터트린 거머리를 바라봤다.
이 거머리들은 액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연하고 흐물흐물했으며, 약간의 틈만 있어도 금세 기어들어 와 피를 빨려고 했다.
그렇기에 저 거머리에게서 몸을 보호할 방어구를 만들려면 섬세하고 정교한 기술로 제작된 전용 방어구에 거머리를 쫓는 약품을 바르는 수밖에 없었고, 와일드 헌트에 등장하는 괴물의 종류와 성질이 매번 무작위로 정해진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역시 운이 따라야만 실현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저걸 먹을 수도 없고, 먹는다고 해서 힘이 강해지는 것도 아니라니. 정신 나가기에는 딱 좋은 상황이군.’
거머리의 피에는 오물과 불순물이 섞여 있기 때문에 이를 섭취할 수 없었고, 설령 섭취하더라도 피로가 회복되거나 힘이 강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서 거머리의 비가 내린다는 것은 집 안에 갇혀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사방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는 거머리를 죽이는 것은 괴물 사냥이라기보다는 해충 구제에 가까운 일이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은 내려와. 조만간 내려오겠지.’
재환은 도시의 저편에 쌓인 살점 덩어리를 노려봤다. 피를 듬뿍 마신 거머리들이 한곳에 모여서 거머리 드래곤에게 피를 바치려는 징조였고, 밤을 새우는 동안 저런 모습을 몇 번 발견한 재환은 거머리 드래곤의 습성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빌어먹을 도마뱀이 계속 우기에만 내려오는 게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 열 받지는 않았겠지. 그랬으면 건기에 죽이러 가면 되는 거니까.’
거머리 드래곤이 땅에 내려올 거라는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거머리 드래곤은 2시간에 한 번꼴로 땅에 내려왔고, 10분 정도 거머리로 이루어진 봉오리를 포식하고 나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재환은 거머리 드래곤을 사냥하러 갈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아무리 뛰어난 사냥꾼일지라도 하늘에서 거머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한 번 시험해보는 것도 괜찮을지 모르지.’
재환은 창틀 너머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거머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거머리는 재환의 피를 빨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었고, 재환은 두 눈을 감은 뒤 예지력을 사용해 거머리에게 물렸을 경우 일어날 일을 짐작해냈다.
‘10분. 괴물이 되기 전에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대략 이 정도인가.’
거머리에 물린 생명체는 사람과 괴물을 가리지 않고 거머리의 형태로 변형된다.
그리고 거머리 괴물로 다시 태어난 생명체는 신선한 피를 빨아 마신 뒤 거머리 봉오리가 되고, 거머리 봉오리는 땅으로 내려온 거머리 드래곤의 일용한 양식이 된다.
‘그 안에 저걸 잡으면, 사람으로 되돌아올지도 모르지. 이 거머리들은 거머리 드래곤의 살점이나 다름없으니까. 본체가 죽으면 이것들도 죽겠지.’
목숨을 내던질 각오라면 되어있었다. 이미 수백 번이 넘는 죽음을 겪어온 회귀자에게 목숨이란 도박판에서 쓸 수 칩 중 하나였고, 그는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도박판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목숨을 버리는 게 정신 건강에는 해롭다는 거지. 겨우 힘을 얻었어도 정신이 망가지면 무용지물이니까. 여러 번 괴물이 됐다가는 아예 정신이 괴물처럼 변해버릴지도 모르는 거고 말이야.’
재환은 저 와일드 헌트의 주인이 ‘호러’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냥꾼들에게 두려움을 일으키는 괴물이라는 점을 되새겼다. 이런 특성이 속삭임이 말하던 ‘불가해’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결국 재환은 손에 힘을 줘서 거머리를 터트린 뒤 거머리 비가 내릴 때 호러를 사냥하려는 생각을 포기했다.
‘이러면 방법은 하나밖에 안 남았지.’
그는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거머리 드래곤이 날아오르려는 모습을 바라봤다. 머지않아 거머리 비가 그치고 건기가 시작되려는 징조였다.
‘건기 때 내려오지 않으면, 떨어뜨릴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니까. 그다음에는 비를 내릴 틈도 주지 않고 급소를 노리면 돼.’
거머리 드래곤의 몸집은 걸어 다니는 건물이라고 불어야 할 정도로 거대했다. 꼬리를 포함한 몸의 길이는 15m 정도 되어 보였고, 키는 얼핏 봐도 10m는 넘어 보이는 이 거대한 괴물을 사냥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든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못 죽일 것도 없지.’
재환은 식사를 끝마치고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거머리 드래곤을 바라봤다. 무수히 많은 거머리가 비늘처럼 박혀있는 그 모습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흉측한 몰골이었다.
‘저거보다 더한 괴물도 사냥해 봤으니까. 무슨 수를 더 숨겨두고 있을지는 몰라도,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있어.’
거머리 드래곤이 날아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머리의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거머리 드래곤이 다음 비를 내리기 위해 준비를 하는 시기였다.
‘아무리 덩치 큰 괴물이어도, 저 높이에서 떨어지면 곤죽이 될 테니까. 쓸만한 대포만 구할 수 있으면, 사냥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지.’
하늘 높이 날아오른 거머리 드래곤은 시꺼먼 먹구름 너머로 녹아들었고, 비가 그친 것을 확인한 재환은 화약 공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계획이 세워지고 나자 길바닥에 깔린 거머리가 밟히는 소리가 썩 경쾌하게 들렸다.
* * *
건기가 시작되자 공방의 거리의 곳곳에는 약탈을 나선 사냥꾼들로 시끄러웠다. 이들은 괴물이 된 공방의 장인들을 사냥하고, 주인을 잃은 공방에 있는 화약과 무기들을 탈취하고 있었다.
“자경단 출동하기 전에 싹 쓸어담아!”
“빨리 빨리! 늦으면 다른 혈맹 놈들한테 빼앗기는 거다! 먼저 집는 놈이 임자라고!”
“시비 거는 놈들 있으면 다 죽여! 어떤 새끼든 건드리는 놈들이 있으면 다 죽여 버려!”
공방 거리로 들어선 재환은 약탈에 심취한 사냥꾼들의 모습을 보면서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저 사냥꾼들은 무법지대가 된 거리에서 괴물뿐만이 아니라 생존자들 역시 가리지 않고 사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려주십쇼! 이 공방은 제 인생을 바친…!”
“300년 넘게 이어온 공방이다! 네놈들 같은 버러지들이 손댈 게 아니란…!”
“그만! 그만!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제발…!”
“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
저들이 약탈하는 것은 공방의 물품만이 아니었다. 사람의 목숨, 존엄, 성과 자부심까지.
이곳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뺏고 빼앗기는 지옥이었고, 사람이 만들어낸 지옥을 바라보던 재환은 ‘자경단’이란 조직을 경계하는 사냥꾼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예상했던 대로 쓰레기 같은 놈들 천지로군. 내가 이런 꼴을 직접 겪었으면, 나도 강철우 그 인간처럼 됐을지도 모르지.’
그의 기준으로 봤을 때 강철우의 방식은 선을 넘은 것에 가까웠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방식은 아니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거리가 외지에서 온 회귀자들에 의해 망가지는 모습은 선을 지키려는 사람일수록 보고 있기 힘든 법이었고, 재환의 눈에 저들은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재환은 괴물을 사냥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이놈들을 죽여 봐야 소용없겠지. 어차피 다음 회귀 때 다시 살아날 테니까.’
사람이 만들어낸 지옥을 살펴보던 재환은 약탈자들의 우두머리를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수인에 불과한 사냥꾼들을 일일이 상대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바깥까지 이런 지옥이 되는 걸 막으려면, 결국은 회귀를 끝내는 수밖에 없어.’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약탈자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 빌어먹을 악몽이 끝나지 않으면, 어딘가에서는 또 이런 지옥이 나올 테니까.’
공방의 거리에 낯선 사냥꾼이 등장하자 약탈을 하던 사냥꾼들은 경계하기 시작했다.
차림새로 보아 샬롬 출신이 아니라 외지인인 것이 분명했고, 샬롬에서 외지인 사냥꾼은 곧 회귀자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회귀자들끼리는 불문율이 있다더니, 사실이었나 보군. 아무리 기분 나쁘고, 약해빠진 회귀자여도 척을 지게 되면 귀찮아지기 마련이니까.’
한사랑에게 들은 얘기를 떠올린 재환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약탈당한 물자들이 모이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방심하긴 이르지. 약속이란 건 깨지기 마련이고, 회귀자를 괴롭힐 방법은 많으니까.’
물자가 모이는 곳을 향해 다가가자 재환은 자신의 뒤를 밟는 사냥꾼들이 생긴 것을 눈치챘다. 그들은 처음 보는 이 사냥꾼이 적대적인 행동을 하는 순간 덮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수상한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빈틈을 보이는 순간 제압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잘 됐어.’
재환은 저들이 어떤 식으로 공격할 계획인지 예상하면서 약탈한 물자들이 모이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이놈들을 이용해서 대포를 구하려면 실력 발휘를 해야 하는 거였으니까. 협상 테이블에 앉으려면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게 먼저지.’
그렇게 싸늘한 시선을 받으며 한동안 걸어갔을 때, 사냥꾼 두 명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보며 재환은 나직하게 웃었다.
저들을 보낸 주인공이 이 거리를 약탈한 사냥꾼들의 우두머리이고, 그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