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02
와일드 헌트 (5)
와일드 헌트가 시작된 지 4일째 되던 날. 대공포가 준비될 때까지 거리로 나와 괴물을 사냥하던 재환은 사방에서 거머리 괴물들이 들끓는 모습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갈수록 생긴 게 더 기괴해지는군.’
그는 5층 건물의 지붕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시간이 지날수록 괴물들의 모습은 흉측한 방향으로 변형됐고, 공격성과 위험도 역시 더더욱 커지고 있었다.
‘다른 괴물도 성가시지만, 그중에서도 변종이 제일 성가시지. 덩치도 크고, 다른 괴물들보다 힘도 강한 편이니까.’
그는 한 골목에서 날뛰고 있는 도마뱀 형상의 괴물을 바라봤다. 몸의 길이만 해도 5m도 넘어 보이는 이 ‘거머리 왕도마뱀’은 등에서 돋아난 여덟 개의 길쭉한 촉수들로 건물의 외벽을 두들기고 있었다.
거머리 왕도마뱀이 촉수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외벽의 벽돌이 부서졌고, 벽돌이 부서지고 나자 작은 거머리 괴물 수십 마리가 외벽을 넘어 실내에 있는 시민들을 사냥하러 들이닥쳤다.
‘저 놈들에 비하면 인간형 괴물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지… 인간형 괴물들은 저 정도로 체급이 커지지는 않았으니까 말이야.’
와일드 헌트가 진행될수록 가장 숫자가 많이 늘어난 괴물은 인간형 괴물이었다.
거머리에게 물리거나 거머리 드래곤이 내지른 괴성을 듣게 된 인간들은 스스로 머리에 거머리 가죽을 뒤집어쓴 뒤 사람의 피를 사냥하러 거리로 나섰고, 이들은 무리를 이뤄서 민가를 습격한 뒤 피가 빨린 사람들의 머리에 거머리 가죽을 뒤집어씌워서 개체 수를 늘렸다.
‘상황이 이러니, 고일 대로 고인 사냥꾼들도 함부로 나가진 못하는 거지.’
거머리 가죽을 뒤집어쓴 군중들이 횃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은 시선을 돌려서 자신이 쓰러뜨린 거머리 괴인 무리가 거리에 널브러진 것을 내려다봤다.
근처에 있던 거머리 무리가 거머리 괴인들의 시신을 향해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었고, 이들은 거머리 괴인들의 시체를 파먹거나 거머리 괴인들의 뇌를 파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저대로 두면 배를 불린 거머리들이 거머리 괴인이 되거나 거머리 도마뱀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괜히 바깥으로 나왔다가 물리기라도 하면, 다른 사냥꾼들한테도 민폐니까.’
거머리 괴물의 몸을 쿠션 삼아 착지한 재환은 탈바꿈을 휘둘러 몸집을 불리기 시작한 거머리들을 토막 냈다. 이대로 거머리 괴물들이 개체 수를 늘리기 시작하면 거머리 드래곤을 부르는 거머리 봉오리가 형성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밖에 안 남았는데, 거머리 드래곤이 여기에 내려오면 곤란하지. 나는 버틸 수 있어도, 다른 사냥꾼들이 미쳐버리면 지금까지 고생한 게 소용없어지니까.’
그는 거머리 괴물로 변하려던 시신들을 아예 잘게 으깨버린 뒤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의 색깔이 짙어지는 것으로 보아 머지않아 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시작될 것처럼 보였다.
‘그래… 얼마 안 남았지. 저 놈이 죽든, 내가 죽든. 사냥이 끝나면 둘 중 하나는 죽을 테니까.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저 빌어먹을 거머리 놈들을 싹 쓸어버릴 수 있겠지.’
조만간 하늘에서 거머리가 쏟아질 거라고 판단한 재환은 얼굴을 묻은 피를 닦은 뒤 근처에 있던 공방 건물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약탈자 집단 카르페 디엠이 점거한 이 공방의 건물 내부에서는 카르페 디엠 소속의 기술자들이 대포를 대공포로 개조하고 있었다.
“아, 오셨군요.”
다른 기술자들과 함께 분주하게 작업을 하던 기술자 중 한 명이 인기척을 느끼고 재환에게 말을 걸었다.
“작업은 이제 마무리 단계입니다. 이번 우기가 끝나는 대로 쓰실 수 있게 세팅하는 중이니, 느긋하게 눈이라도 좀 붙이고 계시죠.”
기술자는 그렇게 말하며 대공포로 개조된 샬롬식 대포를 가리켰다. 본래 화약 공방 소속의 장인들이 불꽃놀이에 쓰기 위해 완성해뒀던 이 대포는 외지에서 온 약탈자들의 손을 거쳐서 하늘을 나는 괴물을 떨어뜨릴 수 있도록 마개조되었다.
“성능에는 문제없는 겁니까?”
재환은 수레바퀴 위에 거치 된 대공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적어도 날개 한쪽은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게 아니면 명중시키더라도 무용지물이니까요.”
“물론 그 정도는 가능하죠.”
기술자는 그렇게 말한 뒤 대공포에 사용될 포탄을 가리켰다.
“맞출 수만 있다면 날개 하나쯤이야 갈기갈기 찢길 겁니다. 일단 폭발하고 나면 온몸을 불태울 수 있도록 개조했거든요. 샬롬의 물자와 우리들의 기술력만 있다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죠.”
기술자는 그렇게 말한 뒤 재환에게 의자를 권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 예언자님께서 삼천 미터가 넘는 높이에서 날아다니는 저 호러를 맞힐 수만 있을 때의 얘기지만 말이지만요. 위대하신 예언자님이시니, 그 정도는 가능하겠죠? 예언자가 사냥에 실패하는 건, 온 샬롬의 망신거리니까요.”
하늘을 나는 호러를 떨어뜨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거머리 드래곤은 건기일 때는 구름 속으로 몸을 숨겼고, 그렇기에 구름 속을 날아다니는 거머리 드래곤의 위치를 계산하여 대포로 맞춘다는 것은 날아다니는 새를 눈을 감고 맞추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장님들의 세상에서는 눈을 뜬 사람이 예언자 노릇을 할 수 있죠.”
재환은 기술자가 권한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아무리 신선한 괴물의 피를 마셔서 몸의 피로를 풀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신의 피로는 조금씩 쌓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예언자라는 건 고작 그 정도예요. 못 보는 걸 조금 더 볼 수 있는 게 고작이죠. 저 거머리 드래곤을 떨어뜨리는 것까진 할 수 있어도, 그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릅니다.”
예언자는 성공을 장담하지 않았지만, 기술자는 오히려 그 대답에 만족스러워했다.
“보스한테는 몰라도, 사실 저희한테는 그거면 됩니다. 썩 괜찮은 불꽃놀이를 볼 수만 있으면, 저희가 할 일은 다 한 셈이거든요.”
재환이 눈을 감은 모습을 본 기술자는 그렇게 말하며 작업을 마무리하러 돌아갔다.
“편히 쉬시고, 건투를 빕니다. 저희는 괜찮아도, 보스까지 괜찮아할지는 모르는 일이니까요.”
* * *
우기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재환은 눈을 뜬 뒤 거리로 나섰다. 대공포를 발사할 지점에 있을 괴물들을 미리 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와일드 헌트… 백귀야행…’
문을 열자마자 바깥에는 괴물이 된 시민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고, 재환은 탈바꿈을 쥔 채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냥감이 널려있다는 건, 사냥꾼한테도 축제나 다름없는 일이지. 그런 의미에서 이건…’
그는 거머리 가죽을 뒤집어쓰거나, 혹은 머리가 아예 거머리가 된 괴인들을 향해 탈바꿈을 휘둘렀다. 그러자 탈바꿈이 세차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괴인들의 머리와 몸통이 두부처럼 썰려 나갔다.
‘카니발이랑 다를 게 없군. 성자 대신에 호러가 있다는 걸 제외하면, 카니발이랑 별다를 게 없어.’
괴인들의 몸은 사냥꾼의 괴력에 비하면 연약하기 짝이 없었고, 이성을 잃어버린 채 몸을 흐느적거리는 괴인들은 재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가 탈바꿈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명 이상의 괴인이 쓰러졌고, 거리를 메웠던 수십 명의 괴인이 모두 쓰러지는 것에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늦지 않겠군. 총알을 쓸 필요도 없어서 다행이야.’
재환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던 괴인들을 모두 정리하면서 거리를 질주한 대공포를 설치하기에 적당한 공터에 도착했다.
그리고 공터에 도착한 그를 맞이한 것은 지난 우기 사이에 완성된 거머리 봉오리였다.
‘남은 폭탄이랑 총알은 여기서 쓸 예정이었으니까 말이야.’
거머리 봉오리는 크고 작은 거머리 괴물들이 서로 뭉쳐서 만들어진, 건물 하나 크기의 거머리 덩어리였다.
이들은 와일드 헌트의 주인인 거머리 드래곤의 일용한 양식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 제물이었고, 오직 거머리 드래곤에게 먹히는 것만이 이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사명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사명이 방해받을 것을 직감한 거머리 봉오리는 괴성을 질러서 근처에 있던 거머리 괴물들을 불러 모았고, 이와 동시에 수십 개의 촉수를 몸에서 뽑아내어 재환을 향해 휘둘렀다.
‘이미 늦었어.’
재환을 향해 날아오던 촉수들은 허공에서 갈기갈기 찢어졌다. 공격이 날아올 것을 예상하고 거머리 봉오리를 발견하자마자 폭탄을 던져둔 덕분이었다.
이후 한 손으로 폭연을 가린 채 거머리 봉오리로 달려든 재환은 촉수가 재생하기 전에 거머리 봉오리의 살점을 탈바꿈으로 파해쳤다.
‘이렇게 느려 터져서야 닿을 리가 없지. 방해를 하려면 알고도 못 막는 수준은 돼야 하는 거니까.’
살점을 파헤치는 와중에도 거머리 봉오리에서는 촉수가 돋아났지만, 거머리 봉오리의 안에서 돋아난 촉수들은 튀어나오자마자 탈바꿈이 그리는 궤적에 잘려나갔다.
자르고, 돋아나고, 자르고, 돋아나고.
수십 번에 걸쳐서 반복되던 이 순환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머리 봉오리의 살점이 거덜 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아무리 재생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머리 봉오리는 평범한 괴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덩어리에 불과했고, 아무리 이들에게 재생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평범한 수준의 괴물이 자신의 피와 살을 태워가며 발악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거머리 봉오리의 살점이 어느 정도 파이게 되자 재환은 거리를 벌린 뒤 자신의 품 안에 챙겨뒀던 나머지 폭탄들을 일제히 던져버렸다.
‘이걸로 준비는 끝이군.’
폭탄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재환은 라이터를 거머리 봉오리의 품에 던졌고, 라이터가 날아가는 것과 함께 근처에 있던 건물을 향해 달려가 몸을 숨겼다.
‘나머지는 약탈자 놈들이 세팅하면 그만인 일이니까.’
재환은 건물의 외벽에 몸을 기대 엄폐를 끝냈고, 이와 동시에 격렬한 폭음과 함께 거머리 봉오리가 폭발했다.
폭음이 가라앉자 그곳에는 내부에서부터 일어난 폭발에 의해 산산이 조각난 거머리 봉오리의 잔해가 있었고, 재환은 그 모습을 보면서 샬롬에서 구한 담배를 꺼낸 뒤 여분의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고작 10분 만에 길을 뚫다니. 소문대로 시간에 정확하시네요.”
재환은 담배를 피우며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거머리 봉오리가 부른 괴물들을 정리한 뒤 괴물 사냥에 쓸 폭약과 대공포를 가져온 카르페 디엠의 단원들이 있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 일은 설치하는 것까지만 입니다. 나머지는 혼자서 하셔야 하는 거 알죠?”
단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뒤 너스레를 떠는 선임 단원의 모습을 보던 재환은 담배 연기를 내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애초부터 저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거머리 드래곤을 떨어뜨릴 대포였을 뿐, 그 이상의 빚을 질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기에 재환은 저들의 태도에 불만이 없었다.
‘쉬는 시간도 이제 끝이군.’
재환은 일사천리로 대공포의 세팅을 끝내는 카르페 디엠의 단원들을 보며 담배를 태웠다.
‘이제부터는 애피타이저가 아니라 메인 디시를 처리해야 할 시간이니까. 샬롬에서 썩어간 사냥꾼들이 왜 질색을 했는지, 이제 조금만 있으면 직접 알게 되겠지.’
대공포의 세팅을 끝낸 카르페 디엠의 단원들은 금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대공포가 설치된 공터에 홀로 남겨진 재환은 담배를 발로 밟아 불을 꺼트렸다. 제대로 된 사냥이 시작되면 담배를 입에 무는 일 따위는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